<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아래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강사가 도전 학생별로 맞춤 코칭을 해주며 인생의 최고점을 선물해 드립니다. 학생들의 인생을 바꿔줄 단 한 번의 기회!'라는 소개를 내세웠다.
삼남매를 키우면서 학원 한 번 보내지 않던 지인이, 그러면서도 불안감이 없던 지인이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배운 게 많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었으면 한 귀로 흘렸을 텐데 그런 지인이 하는 말이라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우리집 남매는 올해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다. 작은 아이는 지금까지 태권도장만 다닌다. 큰 아이는 농구교실만 간다. 큰 아이가 지금까지 다녔던 영어, 수학 학원 기간을 전부 합쳐도 6개월이 채 안 된다.
내게 티처스를 소개해준 지인은 인성교육은 확실하게 시킨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학원을 안 보냈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 아이들이 그 비싼 학원비만큼 다 배우고 올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결혼 전, 사교육 시장에 있을 때 가방만 들고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면서 내 아이는 스스로 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보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런 내게 선배엄마들은 스스로 학원 가겠다는 아이는 정말 드물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내신 반영된다는 중2를 앞두고는 불안감이 커졌다.
그 와중에 티처스는 '성적 자체보다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강조한다'라고 하니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었다.
"그래, 내가 먼저 티처스를 보고 아이에게 소개해 줘야겠어!"
비장하게 다짐하고 있는데 또 다른 자아가 내게 말을 건다.
"진짜? 진짜 소개만 시켜줄 수 있겠어? 좋은 말로 소개할 수 있어?"
검색하던 엄지 손가락이 멈칫한다. 내가 정말 공부 방법을 몰라서 아이에게 소개를 못하고 있을까.
아니었다. 회자되는 교육서는 다 읽었다. 엄마표 공부 정보도 줄줄 다 꿰고 있다. 나는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전달 방법이 나빠서 못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원래 그럴 때니 엄마가 참고 기다려야 한다길래 참는다고 참았지만 한번 터지만 그간 참았던 것까지 와장창 다 쏟아져 나왔다. 아이 입장에서는 1만큼의 일에 10, 100으로 반응하는 내가 황당했겠고, 나는 그동안 참은 게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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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딸의 전투 감정 빼고 말하기가 나는 왜 이리 어려울까 |
ⓒ 최은영(midjourney) | 관련사진보기 |
같은 상황에서 좀 더 침착하게 아이와 말로 풀어가는 남편을 보며 내 문제를 알았다. 사춘기 때는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사교육 시장에 있을 때 그걸 못해서 망하는 집을 자주 봤는데 내가 딱 그짓을 하고 있었다. 아이와 관계 회복이 먼저라고 다시한번 다짐한다.
내가 지금 봐야 할 것
티처스에서는 성적을 위한 좋은 방법이 아마도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만일 내가 티처스를 본다면 다짐 따위는 잊어버리겠지. 대신 그 방법을 아이에게 주입시킬 기회를 노리겠지.
내가 아는 만큼 다 주면 부담스러워할 테니 반만 알려준다는 마음으로 말했다가 아이 반응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이면 '내 마음도 모르고 어떻게 그럴 수가!'라며 화낼 것이다. 전쟁의 서막은 늘 그렇게 시작됐다.
작은 아이는 놀이터에서 축구를 한 판 하고 들어왔다. 큰 아이는 아이패드로 그럴싸한 그림을 그려서 갖고 왔다. 나는 티처스 대신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 두 편을 봤다. 그러고선 점심을 거하게 차려 먹으며 각자가 놀았던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씩 터지는 웃음 소리에 집이 더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만 널뛰지 않으면 평화로운 집이다. 그러니 나 같은 엄마는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를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