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심곡서원에 갔다. 심곡서원을 가기위해 황골마을 육교 밑에있는 버스정류장에서
720-3번 버스를 타고 심곡서원으로 갔는데, 초입에는 화성행궁앞에서 보았던 홍살문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서원은 나에서는 운영하지않고 사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던 교육기관이다.
서원에는 기본적으로 교육과 제사공간이 있다. 제사공간만 있으면... (뭐가되지?)
서원에서는 국가의 세금을 면제받을수 있는 특권이 있어서 너도나도 모두다 서원을 만들고
들어가 세금을 면제받았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이 47개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그47개중 살아남은 서원중 하나가 심곡서원이다. 심곡서원은 조광조 선생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보수공사를 하여서 내부를 재대로 보지 못하였다.
심곡서원의 하마비는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는다. 그리고 우리는 도로에 있는 이정표를보고
조광조 선생님의 묘를 찾아갔다. 조광조 선생님의 묘는 앞이 탁트여있고(아파트가 없다고 가정할 시에만)
볕이 잘 드는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조광조 선생님은 중종의 옆에서 개혁을 추진했던 사람이다.
중종은 조광조와 함깨 개혁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왕이되는것을 도와주었던 훈구파들 때문에
개혁을 추진하기 힘들었다. 훈구파는 조광조를 제거하기위해 나뭇잎에 주초위왕이라고 꿀을 발라
벌래가 그 꿀을 갉아먹어서 나뭇잎에 글을 새겼다.
[주초위왕(走肖爲王) : 주와 조를 합치면 조(趙) 가 되는데 위왕은 왕이 된다는 뜻
즉 주초취왕은 조씨가 왕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조씨가 왕권을 차지한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훈구파의 말은 거짓이라는 것을 중종도 알고있지만
훈구파는 자신이 왕이 된것을 도왔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하지 못하고 조광조를 귀향보내고 사약을 내려
죽였다. 그때 당시에 사약을 내려 죽는다는것은 가장 고마운(?) 벌이였다
그당시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라고 하여 부모가 물려주신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죽어서
가장 고마운(?) 벌이였다.
조광조의 묘에는 문인석이 옆에 있었는데, 무인석은 왕만이 놓을 수 있어서 다른 사람이 놓으면 반역으로
벌을 내린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죽고나면 묘옆에 무인석을 놓고싶다ㅠㅠㅠㅠㅠㅠㅠㅠ(놔도되나?)
이번에는 무지하게 더웠다. 조광조선생님의 묘는 볕이 잘드는데 다른사람이 30도인 날에 1시간만
있어도 열사병으로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