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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5 장 : 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3)
2. 영적 미성숙에 대한 경고(5: 11-14)
⑪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⑫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⑬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⑭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5: 11 -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앞에서와 같이, 구약성경 시편 110: 4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즉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렀다.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그는 아브라함 시대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싸우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맞으며 축복했던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 창 14: 18,19 - ⑱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⑲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그때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전쟁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
* 창 14: 20 -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살렘 왕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이며 그의 이름에는 깊은 예표적인 뜻이 있었다.
성도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점점 더 경건해지고 의로운 인격이 되며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의 지식이 많아지고 말씀의 깨달음이 깊어진다. 그러나 서신의 수신자들은 아직 그렇지 못했다.
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멜기세덱에 관하여는'(페리 후) 헬라어 '멜기세덱'이라는 명칭이 직접 거명되지 않고 관계대명사 '후'로 나타난다. '후'의 성(性)에 따라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 '후'는 남성으로 10절의 멜기세덱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Robertson, Bruce, Morris).
멜기세덱에 관하여 일반적인 유대 개념과는 다른 관점에서 설명될 것이므로 저자가 7:1-28에서 그것을 논하기에 앞서 본 절을 통해 수신자들을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후'는 중성으로 그리스도의 전체적인 대제사장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Lane, Hewitt).
저자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납득할 만한 이해력이 수신자들에게 결핍되어 있음을 수신자들에게 주지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Hewitt).
'할 말이 많으나'(폴뤼스 호 로고스)는 헬라 문학의 관용구로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사용되었다(Lane).
2]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둔하므로'(노드로이)는 부정어 '네'와 '멀다'라는 뜻의 '호데오'의 합성어로서 '듣는 것에 무관심한' 혹은 '이해력이 부족한'을 뜻한다.
혹자는 본 절을 앞 문단의 결말로 보아 '듣는 것이 둔하다'는 말은 9 절에서 언급된 '자기를 순종하는' 즉 그리스도께 대한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저자의 말을 수신자들이 충분히 깨닫지 못함을 시사한다 고 주장한다(Lane, Morris).
5: 12 -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본 서신을 받는 수신자들은 믿은 지 오래 되었으므로 마땅히 영적으로 성장하여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선생들이 되어야 했었다.
성도는 믿은 지 여러 해가 되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사람은 복음 진리를 듣고 거듭나 믿고 회개함으로 새 생활이 시작되고, 성경말씀으로 양육되어 그의 지식이 자라고 견고해지고 점점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다. 그들은 우유나 마시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할 자들이었다.
1]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될 터인데)
'때가 오래므로'는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지 오래되었음을 의미한다(Morris).
본 절은 수신자들의 신앙이 성숙되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만큼 신앙의 연조(年條)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암시한다.
* 롬 2: 2 -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 벧전 3: 15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2]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말씀의 초보 - 이 말의 헬라어 '테스 아르케스 톤 로기온'에서 '로기온'은 '로고스'(말씀)의 지소어(指小語)로 단순히 말씀 자체를 의미한다(Hewitt).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의 기초적인 진리를 시사하는 것으로, 본 절은 수신자들이 이러한 기초적인 지식도 결핍되어서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함을 나타낸다.
3] 단단한 음식(식물)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젖'(갈라크토스)과 '단단한 식물'(스테레아스 트로페스)은 헬라 윤리학(倫理學)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 비유이다.(Bruce, Lane)
젖은 어린아이의 음식으로 곧 신앙의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가장 기초적인 진리를 의미한다. 반면에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어른들의 음식으로 깊은 영적인 진리를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대제사장 직분과 관련한 심오한 진리를 가르킨다.
헬라 윤리학에서는 아직 기초단계에 있는 자들을 '우유를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에 비유하며 성숙한 단계에 이른 자들을 '단단한 음식을 즐기는 어른'에 비유한다( Williamson).
* 고전 3: 1-3 - ①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②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③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저자는 본 비유를 통해서 수신자들이 오랜 신앙의 연륜에 걸맞은성장을 이루지 못한 사실을 안타까이 여겨 그들을 책망하며 권면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교인들이 있다. 하나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이다.
전자는 엄마의 젖이나 우유만 먹는 어린아이들과 같고, 후자는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성장한 자들과 같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들 즉 성경의 기본적 진리들만 받을 수 있는 정도의 교인들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 즉 성경의 모든 교리와 모든 생활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교인들이다.
세례 대상자들을 위한 학습반 공부의 내용들은 전자를 위한 것이지만, 신구약성경의 자세한 강해나 기독교 교리의 체계적 지식과 윤리적 문제들이나 여러 이단적 신학 사조들에 대한 강론은 후자를 위한 것이다.
5: 13 -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본 서신을 받는 자들은 의(義)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영적 어린아이와 같았다. 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성경말씀의 내용과 목적은 의(義)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면 그것이 의이다. 성경의 목표는 의이다. 그것은, 의가 없었던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은혜의 복음과 또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실제로 의롭게 살아야 할 교훈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실제로 의롭게 사는 것이다.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또 실제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수신자들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부족했다. 영적 성장은 단지 이론적 지식으로 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 우리의 지각과 감각이 연단되어 선악을 분별하게 됨으로 이루어진다.
영적 성장은 성도가 실제로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또 선악을 분별하는 지각과 감각이 자람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 이는(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자는 본 절에서 '젖을 먹는 자'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한다.
어린아이(네피오스)는 '유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거나 정상적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결핍된 상태나(Riggenbach, Schrenk) 옳은 것을 분별하는 도덕적인 기준이나 '의'에 관향 원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낸다(Robinson, Spicq, Owen).
2]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의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 신자들의 올바른 삶으로서의 '의'를 의미한다.
Ⓑ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가 신자들의 '의'가 된다는 면에서 예수에 관한 진리를 의미한다(Hughes).
젖을 먹는 자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위해야 하는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
5: 14 -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1] 단단한 음식(식물)은 ...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단단한 식물'은 문맥상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말씀으로(7: 1 - 10: 18) 초신자들과 같이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진리를 가리킨다(Lane).
이러한 진리를 이해하는 자에 대해 저자는 본 절에서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2] 장성한 자의 것이니
이것은 앞 절에서 언급된 '어린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전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단단한 식물'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자를 시사한다.
* 고전 3: 1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고전 13: 11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3] 그들은(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지각'(아이스데테리아)는 스토아학파(Stoics)에서 '감각 기관'을 가리키던 말이다(Robertson). 본 절에서는 도덕적인 분별력을 넘어 영적인 분별 기능을 뜻한다(Michel, Morris).
'연단을 받아'(게귐나스메나)는 '귐나조'(훈련하다)의 완료 수동 분사로 끊임없이 훈련을 받는 상태를 나타낸다.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는 훈련과 진리를 통해 성숙한 영적 분별력을 소유하게 되며 그 분별력을 통해서 선악을 분별하여 죄를 범치 않으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사람의 식단에 비유하여 쉽게 설명했다.(고전 3: 1-9 참조)
젖은 어린 아이에 적합한 음식이며 밥은 다 자란 어른에게 알맞은 음식이다. 영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은 미숙한 어린 아이 같기에 바울은 밥이 아니라 젖으로 그들을 먹였다.
젖은 초신자에게 어울리는 기초적인 복음을 말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빨리 성숙하여 밥을 먹게 되기를 원했다. 밥은 단지 영적 은사들을 갖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은사들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영적 은사나 신학적 지식들을 사랑으로써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히브리서 5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주 예수께서는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시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우리를 위한 영원하신 제사장으로 세우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을 아시는 대제사장이시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사람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의 연약을 아시고 동정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 되셨다.
그는 많은 고난을, 특히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신비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는 우리의 연약을 경험하신 우리의 좋은 대제사장이시며 좋은 구주이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되셨고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대속을 이루셨다.
그는 우리의 죄 사함의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그는 우리의 놀라운 구주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자. 우리는 세상 끝 날까지 그를 믿고 순종하자.
넷째, 우리는 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진리들만 이해하고 어려운 말씀들을 감당치 못하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 남을 가르치거나 돌볼 힘이 없고 진리를 위해 싸울 힘도 없다.
그러나 교회에는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감당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 굳게 서서 의를 실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말씀의 실천을 통해 지각이 연단되어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교회 안에 믿음이 약한 자들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붙들어 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진리들에 머물지 말고 성경의 어려운 말씀도 읽고 연구하며 배워야 한다. 또 모든 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교회 안에 처음 믿는 자들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붙들어주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고 실천함으로 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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