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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의 서설
프리드리히 니체/ 최승자 역
1
짜라투스트라의 나이 서른이었을 때, 그는 고향과 고향 호수를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즐기면서 그 십 년간을 지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마음이 변하였으니----어느날 아침 그는 동이 틈과 함께 일어나 태양 앞에 걸어나가 태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 거대한 천체여! 너에게 만일 네가 비춰 줄 것이 없었더라면, 너의 행복이란 무엇이겠는가?
십 년 동안 너는 이곳 나의 동굴까지 올라왔지만, 그러나 나와 나의 독수리와 나의 뱀이 없었더라면 너는 자신의 빛과 자신의 가는 길에 싫증이 났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아침마다 너를 기다려, 너로부터 넘쳐흐르는 것을 취하고, 그 댓가로 너에게 축복을 보냈다.
보라! 나는 나의 지혜에 지쳤으니, 흡사 지나치게 많은 꿀을 모은 한 마리 벌과도 같다. 이제 내겐, 달라고 내미는 손들이 필요하다.
나는 나의 지혜를 선사하고 나눠주고 싶나니, 사람들 중 현명한 자들이 다시 한번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가난한 자들이 다시 한번 자신들의 부富를 향수하게 될 때까지.
그러기 위하여 나는 깊은 밑바닥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저물 무렵 네가 뒤편으로 가 아랫 세상을 비춰 줄 때 그러하듯, 너 넘칠듯 풍요로운 천체여!
이제 인간들에게로 내려가고자 하는 나는 너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그렇게 부르듯, ‘몰락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를 축복해 다오, 시기심 없이 지극히 큰 행복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너 고요한 눈이여!
축복해 다오, 넘쳐흘러 내리고자 하는 이 잔을, 그로부터 황금빛 물이 흘러나와 거기 비추인 너, 태양의 기쁨을 온 세상 방방곡곡으로 실어나르도록.
보라! 이 잔은 다시 비워지고자 하고,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는 다시 인간이 되고자 한다.
----이리하여 짜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2
짜라투스트라는 홀로 산을 내려갔고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숲속으로 들어섰을 때 돌연 한 백발의 노인이 그 앞에 나타났다. 숲속에서 초근草根을 구하려고, 자신의 성스런 암자에서 나와 있던 노인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짜라투스트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나그네는 내게 낯설지 않구나. 여러 해 전에 그가 이곳을 지나쳐 간 적이 있으니. 짜라투스트라가 그의 이름이었다. 헌데 그 모습이 변했구나.
그때 그대는 자신의 재灰를 산속으로 날라갔는데, 오늘 그대는 자신의 불을 골짜기 아래로 날라가려 하는가? 방화범의 형벌이 무섭지도 않은가?
그래, 과연 짜라투스트라로다. 그의 두 눈은 깨끗하고, 그의 입가엔 아무런 구역질도 숨겨져 있지 않다. 흡사 춤추는 사람마냥 걸어가지 않는가?
짜라투스트라는 변하였다. 짜라투스트라는 잠에서 깨어난 자이다. 그런데 이제 그대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 곁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바다 속에서 살듯, 그대는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는 그대를 품어 주었다. 슬프도다, 그대는 육지로 올라가려 하는가? 슬프도다, 그대는 스스로 다시 육신의 짐을 끌고다니려 하는가?”
짜라투스트라는 대답했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오.”
“내가 숲과 황야로 들어갔던 것은” 성자가 말했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내가 인간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지금 나는 신을 사랑하지, 인간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내게는 인간이란 너무도 불완전한 것이다. 인간을 향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켜 버릴 것이다.”
짜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내가 사랑에 관해 무슨 말을 했다고! 나는 그저 인간들에게 한 선물을 갖다 줄 뿐이오!”
“인간들에겐 아무 것도 주질 말라.” 성자가 말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뭔가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함께 짊어지라.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 될테니까. 그러는 것이 그대에게 즐거움을 주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대가 인간들에게 주고자 한다면 적선 이상을 주지 말고, 그리고 그것도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달라고 애걸하게 하여 주도록 하라!”
“아니오.” 짜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난 적선이나 할 만큼 가난하진 않소.”
성자는 짜라투스트라를 비웃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 인간들이 그대의 보물을 받을는지 시험해 보라. 그들은 은둔자들을 의심스러워하고,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거리를 지나쳐 가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는 그들에겐 외롭게 울린다. 그리고 한밤중 잠자리에서, 해 뜨기 오래 전인 시각에 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그들은 필시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이다, 도둑이 어디로 가려는 걸까 하고.
인간들에게로 가지 말고, 숲 속에서 머물라! 차라리 짐승들에게로 가는 게 낫다. 어째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중의 한 마리 곰, 새들 중의 한 마리 새가 되려 하지 않는가?”
“그러면 성자는 숲속에서 무얼 하시오?” 짜라투스트라는 물었다.
성자가 대답했다. “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그리고 노래들을 만들면서 나는 웃고 울고 중얼거린다. 이렇게 나는 신을 찬양한다.
노래하고 울고 웃고 중얼거림으로써 나는 나의 신神인 신을 찬미하지. 헌데 그대는 우리에게 선물로서 무엇을 가져왔는가?”
이 말을 듣자 짜라투스트라는 성자에게 인사를 하고서 말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줄 무엇을 가졌으리오. 그러니 내가 당신들에게서 아무 것도 빼앗아가지 않도록 나를 어서 보내주오!” 그리고 이렇게 하여 두 사람, 백발의 노인과 사내는 서로 헤어졌다, 두 명의 소년처럼 웃으면서.
그러나 혼자가 되자 짜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저 늙은 성자는 자신의 숲속에서, ‘신은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 아직 듣지도 못했구나!----
3
짜라투스트라가 숲에 잇대어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에 이르러 보니, 바로 그곳 장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 줄광대가 나오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짜라트스트라는 군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인간을 초극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이제까지 모든 존재는 자신을 능가하는 무엇인가를 창조해 왔다. 너희는 그 위대한 조수潮水의 썰물이 되길 원하며, 인간을 초극하기 보다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가?
인간에게 원숭이란 어떤 것인가? 하나의 웃음거리 혹은 괴로운 수치이다. 그리고 초인에겐 인간 또한 바로 그러할 것이다. 하나의 웃음거리 혹은 괴로운 수치인 것이다.
너희는 벌레로부터 인간으로 이르는 길을 걸어왔으되, 아직도 너희 내부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벌레이다. 예전에 너희는 원숭이었고 지금도 너희는 여전히 어느 원숭이보다 더한 원숭이인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중 가장 현명한 자, 그도 또한 식물과 유령의 분열이며 잡종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내가 너희들에게 식물과 유령으로 되라고 명하겠는가?
보라, 나는 너희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은 대지의 의미이다. 너희의 의지는 말해야만 한다, 초인이란 대지의 의미이어야만 한다고!
나의 형제들아, 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너희에게 천상天上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간에 독을 섞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의 경멸자들이고, 쇠잔해 가는 자들이며, 스스로 독을 먹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대지는 지쳐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없어져버려도 좋다!
예전엔 신에 대한 모독이 가장 큰 모독이었으되,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와 더불어 신의 모독자들도 또한 죽었다. 대지를 모독하는 것이 지금은 가장 가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불가사의한 것의 내장內臟을 대지의 의미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
예전엔 영혼은 육체를 경멸적으로 보았고 그리고 그 당시엔 그러한 경멸이 최고의 것이었다. 영혼은 육체가 야위고 끔찍해 지고 굶주리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여 영혼은 육체와 대지로부터 벗어날 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 그 영혼 자신이 야위고 끔찍해 지고 굶주리게 되었고, 그리고 잔혹함이 그 영혼의 환락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말해다오, 나의 형제들이여. 너희의 육체는 너희의 영혼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는지를. 너희의 영혼은 가난이며 더러움이며 가련한 안락이 아니던가?
실로, 인간이란 하나의 더러운 강물이다. 스스로 더러워짐이 없이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 인간은 참으로 바다가 돼야만 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은 바다이고, 그 속에서 너희의 커다란 경멸은 가라앉을 수 있다.
너희가 살아 마주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커다란 경멸의 시각이다. 너희의 행복도, 또한 너희의 이성과 너희의 덕도 혐오스러워지게 되는 시각이다.
그 시각에 너희는 말하리라. 나의 행복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가난이며 더러움이며 가련한 안락이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살아 있음 자체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각에 너희는 말하리라. “나의 이성이 무슨 소용인가? 나의 이성은 사자가 먹이를 갈구하듯 지식을 갈구하는가? 나의 이성은 가난이며 더러움이며 가련한 안락이다!”
그 시각에 너희는 말하리라. “나의 덕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아직껏 나를 미치게 만든 적이 없었다. 나는 나의 선과 나의 악에 얼마나 지쳐 있는지! 그 모두가 가난이며 더러움이며 가련한 안락이다!”
그 시각에 너희는 말하리라. “나의 정의가 무슨 소용인가? 나는 내가 이글이글 타는 불이며 숯불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정의로운 인간이란 이글이글 타는 불이며 숯불인 것을!”
그 시각에 너희는 말하리라. “나의 동정이 무슨 소용인가? 동정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자가 못박히는 십자가가 아닌가? 하지만 나의 동정은 결코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던가? 너희가 이렇게 외친 적이 있던가? 아, 내가 너희가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들었더라면!
그러나 하늘을 향해 외쳤던 것은 너희의 죄가 아니라 너희의 절제였다. 죄 짓는 일에 있어서의 너희의 인색함이 하늘을 향해 외쳤던 것이다!
자신의 혀로 너희를 핥아 줄 번개는 어디 있는가? 너희에게 접목되어야만 할 광기는 어디 있는가?
보라,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그가 바로 그 번개이며, 그가 바로 그 광기이다!----
짜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을 때, 사람들 중 하나가 말했다. “줄광대에 대해서는 이제 실컷 들었으니, 이젠 그의 모습도 보여달라!”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짜라투스트라를 비웃었다. 그러나 줄을 타기로 되어 있던 광대는 그 말이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인 줄로 알고서, 자기 일을 시작했다.
4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 이상히 여겼다. 그리하여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매어진 하나의 밧줄-- 심연 위에 매어진 하나의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기도 위험하고, 가는 중에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인간은 다리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이 가장 사랑받을 수 있는 점은, 그가 하나의 ‘과도’이며 ‘몰락’이라는 점이다.
나는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면 살 줄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야말로 저쪽으로 건너가는 사람인 까닭에.
나는 위대한 모독자를 사랑한다, 왜냐면 그는 위대한 숭배자이며, 피안을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몰락하고 희생할 근거를 먼저 배후에서 찾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는 대지가 초인의 것이 되도록 스스로를 대지에 바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인식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을, 그리고는 언젠가는 초인이 살 수 있도록 인식하고자 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 사람은 자신의 몰락을 원하는 것이다.
초인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그에게 대지와 짐승과 식물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일하고 발견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그가 자신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에.
자신의 덕을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덕이란 몰락에의 의지이며 동경의 화살인 까닭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 방울의 정신도 남겨두지 않고 고스란히 자신의 덕의 정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하여 그는 정신으로서 다리는 건너가는 것이다.
자신의 덕으로 자신의 성향과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자신의 덕을 위하여 여전히 살고자 하거나 혹은 더 이상 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많은 덕을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한 개의 덕이 두 개보다 더한 덕이니, 그것은 운명이 매달릴 수 있는 더한 매듭인 까닭이다.
감사를 받으려고도 되돌려 주려고도 하지 않는, 영혼을 탕진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는 항시 남에게 선사하며 스스로 간직하려 하지 않는 까닭이다.
감사를 받으려고도 되돌려 주려고도 하지 않는, 영혼을 탕진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는 항시 남에게 선사하며 스스로 간직하려 하지 않는 까닭이다.
주사위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던져졌을 때 부끄러워하고 그리고서 “난 도대체가 사기 도박꾼인가?”하고 묻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는 파멸하길 원하는 까닭이다.
자신의 행동에 앞서 황금의 말들을 던지고 그리고 언제나 자신이 약속했던 것 이상을 행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그는 자신의 몰락을 원하는 까닭이다.
미래에 올 사람들을 정당화시키고 지나간 과거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는 현재의 사람들로 하여 파멸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자신이 자신의 신을 사랑하는 까닭에 자신의 신을 징벌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는 자신의 신의 분노로 하여 파멸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상처받는 일에 있어서도 영혼이 깊은 사람을, 그리고 조그마한 체험에도 파멸될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그는 즐거이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서 모든 것들이 자기 내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영혼이 넘쳐흐르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하여 모든 것이 그의 몰락이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가슴을 가진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하여 그의 머리는 단지 그의 가슴의 내장일 뿐이고, 그리고 그의 가슴이 그를 몰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5
이러 말들을 하고 났을 때 짜라투스트라는 다시 군중들을 바라보고서는 침묵에 잠겨버렸다. “저기 저들이 서 있구나.” 그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저기 저들이 웃고 있구나. 저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자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니다.”
눈으로 듣는 법을 배우도록 먼저 저들에게서 귀를 쳐 떼내버려야 할까? 큰 북처럼, 그리고 참회를 권하는 설교사처럼 큰 소리로 떠들어야만 할까? 아니면 저들은 말을 더듬거리는 사람들만을 믿는 걸까?
저들에겐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게 있다. 그런데 그들을 자랑하게 만드는 것을그들은 무엇이라 부르는가? 그것을 그들은 교양이라 부르고, 그것이 그들을 양치기보다 우월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저들은 자신에게 대해 ‘경멸’이란 말을 하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나는 저들의 긍지를 향해 얘기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 가장 경멸스러운 인간에 대해 말하리니, 그것이 곧 ‘최종 인간’이다.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는 군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인간이 자신의 목표를 세워야 할 때이다. 인간이 자신의 가장 높은 소망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이다.
아직은 인간의 토지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큼 비옥하다. 그러나 이 토지가 언젠가는 가난해 지고 맥이 빠져, 보다 큰 나무들은 더 이상 거기서 결코 자라나오지못하리라.
슬프다! 장차 사람이 인간들 저 너머로 자신의 동경의 화살을 쏘아 보내지도 않으려니와 그 활시위가 떠는 법을 잊어버릴 때가 오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간은 하나의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수 있기 위해 자신의 내부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만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아직은 너희 내부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다.
슬프다! 장차 인간이 아무런 별도 탄생시키지 못할 때가 오리라, 더 이상 자기 자신을 경멸할 수 없는 가장 경멸스러운 인간이 올 때가. 보라! 내가 너희에게 ‘최종 인간’을 보여 주겠다.
“사랑이 무엇인가? 창조가 무엇인가? 동경이 무엇인가? 별이 무엇인가?” 최종 인간은 그렇게 물으며 눈을 깜박거린다.
그러자 대지는 작아져버리고, 그 위에서 모든 것을 작아지게 만드는 최종 인간들이 날뛴다. 그 종족은 벼룩처럼 근절시킬 수가 없다. 최종 인간은 제일 오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냈다!” ----최종 인간들은 말하며 눈을 깜박거린다.
그들은 살기 힘든 지방을 떠났다. 인간에겐 따뜻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전히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몸을 부벼댄다. 인간에겐 따뜻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든 것과 의심을 품는 것은 그들에겐 죄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걸어다닌다. 아직도 돌에 걸려, 혹은 사람에 걸려 비틀거리는 자는 바보!
이따금씩의 소량의 독毒, 그것이 그들에게 안락한 꿈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다량의 독을 마침내, 안락한 죽음을 위해.
그들은 그래도 일한다. 일은 오락인 까닭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오락으로 몸이 지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인간은 더 이상 가난해 지지도 않으며 부유해 지지도 않는다. 둘 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누가 아직도 지배하길 원하는가? 누가 아직도 복종하는가? 둘 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목자牧者는 없고 양의 무리는 한 떼!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것을 원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진해서 정신병원으로 가버린다.
“이전엔 온 세상이 다 미쳤었다.” 그중 총기 있는 자들이 그렇게 말하며 눈을 깜박거린다.
그들은 영리하고,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조롱에는 끝이 없다. 그들은 아직도 싸우긴 하지만 그러나 곧 화해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장이 망가지는 것이다.
그들에겐 낮을 위한 작은 쾌락과 밤을 위한 작은 쾌락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건강을 중히 여긴다.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냈다”----최종 인간들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깜박거린다.
그리고 짜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이 ‘서설’이라고도 부르는 첫 설교를 끝마쳤다. 그때에 이르러 군중의 고함소리와 흥겨움이 그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우리에게 그 최종 인간을 달라, 오 짜라투스트라!”----그들은 그렇게 외쳤다. “우리를 그 최종 인간으로 만들어달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에게 초인을 선사해 주겠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웃고 외쳐댔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서글퍼져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나는 저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니다.
아마도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산중에서 살았고, 시냇물과 나무들에게 너무도 많이 귀기울였던 것이겠지. 그래서 지금 나는 저들에게 목자牧者들에게 얘기하듯 하는 것이다.
내 영혼은 조금도 흔들림 없고, 그리고 아침결의 산처럼 환하다. 그러나 저들은 내가 차갑고, 무서운 농담을 하는 야유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저들은 나를 쳐다보며 웃고, 또한 웃으면서 나를 증오한다. 저들의 웃음 속엔 얼음이 들어 있다.”
6
그런데 그때 모든 사람들의 입을 잠잠하게 만들고 모든 사람들의 눈을 고정시킨 일이 생겼다. 곧, 그 동안에 줄광대가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자그마한 문에서 나 타난 줄광대가, 두 개의 탑 사이에 뻗쳐진, 따라서 사람들이 있는 장터 위로 걸려져 있는 줄 위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줄광대가 마악 진로의 한중간에 이르렀을 때, 아까의 그 자그마한 문이 다시 열리더니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어릿광대 같은 녀석이 튀어나와 빠른 걸음으로 앞선 광대를 쫓아갔다. “앞으로 나아가, 절름발이야.” 그의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소리쳤다. “앞으로 나아가, 건달, 밀수꾼, 얼굴이 창백한 녀석아, 내 발뒤꿈치에 걷어채이지 않도록 해라! 여기 이 두 탑 사이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너는 탑 속에나 있어야 어울려, 넌 탑 속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건데, 너보다 나은 자의 자유로운 앞길을 가로막다니!” 그리고는 한 마디씩 할 때마다 그는 줄광대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그가 줄광대의 뒤로 불과 한 발자욱 사이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모든 사람들의 눈을 고정시킨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사내가 악마처럼 고함 소리를 내지르고는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앞 사람 저 앞으로 훌쩍 뛰어넘었다. 줄광대는 자신의 경쟁자가 승리한 것을 보자마자 제정신을 놓쳐버리고 밧줄도 놓쳐 버렸다. 줄광대는 장대를 내던져버리고는 다리와 팔로 이루어진 하나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장대보다 빠른 속도도 떨어졌다. 장터와 거기 모인 사람들은 흡사 폭풍에 휘말린 바다와도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뿔뿔이 혹은 겹겹이 도망질쳤고, 특히나 줄광대의 몸뚱어리가 꽈당 떨어질 자리가 제일 심했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고, 그리고 그의 바로 옆으로 줄광대의 몸뚱아리가 떨어져 내렸는데 지독하게 부상당했고 찢겨졌지만, 그래도 아직 죽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온몸이 깨진 그 남자에게 의식이 되돌아오자 그는 자기 곁에 무릎을 꿇고 있는 짜라투스트라를 보았다. “게서 뭘 하고 있소?” 남자가 마침내 말했다. “악마가 발을 내밀어 나를 넘어뜨리라는 걸 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소. 이제 그 악마가 나를 지옥으로 끌고가는 거요. 당신이 그 악마를 막아주겠소?”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친구여,” 짜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것 따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육신보다 더 빨리 죽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
사내는 의심스럽게 올려다 보았다. “당신이 말한 게 진실이라면” 사내가 이윽고 말했다. “그건 내가 목숨을 잃더라도 잃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오. 나는 인간에 의해 매질과 얼마 안 되는 음식으로 춤추도록 가르쳐진 한 마리의 짐승과 다를 게 없소.”
“그렇지 않다.” 짜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당신은 위험을 자신의 천직으로 삼았고, 거기엔 아무 것도 경멸할 게 없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천직으로 하여 파멸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당신을 내 손으로 손수 묻어 주겠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을 때, 죽어가는 사람에게선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마치 감사하기 위해 짜라투스트라의 손을 찾으려는 듯, 한 손을 움직거렸을 뿐이었다.----
7
그러는 사이에 저녁이 와 장터는 어둠에 덮였다. 이윽고 사람들은 흩어져 갔다. 호기심과 공포심 자체도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는 땅 위에, 죽은 자 곁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그는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밤이 되었고 그 고독한 자의 머리 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갔다. 그러자 짜라투스트라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마음 속으로 말했다.
“짜라투스트라가 오늘 참으로 멋진 고기잡이를 했구나. 사람은 하나도 낚지 못했지만, 그러나 송장을 하나 낚았으니.
인간의 실존이란 섬뜩한 것이고 그러면서도 또한 무의미한 것이다. 인간 실존에겐 한 명의 어릿광대까지도 운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니.
나는 인간들에게 그들 존재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싶으니, 그것은 곧 초인, 검은먹구름인 인간으로부터 뚫고나오는 번개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들에겐 멀고 나의 뜻은 그들의 뜻과 통하지 않는다. 인간들에겐 나는 아직도 바보와 송장의 중간치기에 불과하다.
밤은 어둡고 짜라투스트라의 길도 어둡다. 가자, 너 차갑고 뻣뻣한 길동무여! 내 손으로 손수 너를 묻어줄 그곳까지 내 너를 메고 가리라.”
8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나서 짜라투스트라는 시체를 등에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그러나 백 발자욱도 채 못갔을 때, 한 사람이 그쪽으로 살그머니 다가와 그의 귀에 속살거렸으니---- 보라! 이야기하는 자는 아까 탑에서 나왔던 그 어릿광대였던 것이다! “이 도시에서 떠나라, 오 짜라투스트라여,” 어릿광대가 말했다. “여기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한다. 선하고 의로운 자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당신을 자기들의 적이며 경멸자라고 부르며, 또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신도들도 당신을 미워하고 당신을 민중에게 위험한 자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들이 당신을 비웃은 것이 당신에겐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정말로 당신은 어릿광대처럼 말했던 것이다. 당신이 저 죽은 개와 한 패가 된 게 당신에겐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낮춤으로 해서 당신은 오늘 하룻 동안 자신의 목숨을 구했었던 것이니까. 하지만 이 도시로부터 떠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내일 내가 당신을 뛰어넘으리라. 곧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뛰어넘으리라.” 그렇게 말하고나서 사내는 사라졌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러나 어두운 거리를 헤치고 계속 나아갔다.
그 도시 성문에서 그는 무덤 파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횃불로 그의 얼굴을 비춰본 그들은 그가 짜라투스트라임을 알고서 그를 몹시 놀려 댔다. “짜라투스트라가 저죽은 개를 메고 가는구나. 짜라투스트라가 무덤 파는 자가 되었다니, 자알 됐어! 고깃덩어리를 만지기엔 우리의 손은 너무 깨끗하니까 말이야. 짜라투스트라가 아마 악마에게서 악마의 먹이를 빼앗으려는 건가? 좋다! 맛있게 먹어라! 악마가 짜라투스트라보다 더 나은 도둑놈이 아니기만 하다면 말이야! ----하지만 악마가 저들 둘 모두를 먹어치울 걸!” 그리고 그들은 서로 웃으며 머리를 한데로 모았다.
짜라투스트라는 거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자기 길을 갔다. 숲과 늪을 지나쳐 두 시간을 걸었을 때, 굶주린 늑대들의 울부짖음 소리가 아주 여러 번 들렸고, 그러자 그 자신도 배가 고파졌다. 그리하여 그는 한 불빛이 타고 있는 외딴 집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배고픔이 나를 기습하는구나, 마치 강도처럼.” 짜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숲과 늪 가운데서 배고픔이 나를 기습하는구나, 그것도 깊은 밤중에.
나의 배고픔은 놀라운 변덕을 갖고 있다. 흔히 나의 배고픔은 식사할 시간을 넘겼을 때에 찾아오는데, 그런데 오늘은 전혀 찾아오질 안았으니. 나의 배고픔은 어디 가 있었을까?”
그러면서 짜라투스트라가 그 집의 문을 두드렸다. 한 노인이 나타났다. 등불을 든 노인이 물었다. “누가 와 나의 편찮은 잠을 깨우는가?” “한 명의 산 자와 한 명의 죽은 자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주시오. 하루종일 그걸 잊고 지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자는 자신의 영혼을 새로이 하는 것이라고 현자들은 그렇게 말하지요.”
노인은 들어갔고, 그러나 곧 되돌아와 짜라투스트라에게 빵과 포도주를 내주었다. “배고픈 사람들에겐 이곳은 좋지 않는 지방이지.” 노인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사는 거라오. 짐승과 인간들이 내게, 이 은둔자에게 오지. 헌데 당신의 길동무에게도 먹고 마시도록 하게나. 그가 당신보다 더 지쳐 있으니.” 짜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나의 길동무는 죽었소. 그러니 그에게 먹고 마시라고 권하긴 어렵소.”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일세.” 노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 집 문을 두드린 사람은 또한 내가 내주는 것도 받아야만 한다네. 먹고서 잘들 가게나.”
그 뒤에 짜라투스트라는 길과 별빛에 의지하여 두 시간을 더 걸어갔다. 그는 밤길을 걷는 것에 익숙했고, 또 잠든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길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먼동이 터올 때 짜라투스트라는 깊은 숲속에 들어와 있었고 아무 길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죽은 사람을 자기 머리맡의 속이 빈 나무 속에 눕히고서----시체를 늑대들로부터 보호하려 한 것이었다----자기 자신도 이끼낀 땅바닥에 누웠다. 그리고서는, 몸은 지쳤으되, 그러나 고요한 영혼으로 곧장 잠에 떨어졌다.
9
오랫동안 짜라투스트라는 잤고, 아침놀이 그의 얼굴 위로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놀라서 짜라투스트라는 숲속과 숲속의 정적을 바라보았고, 놀라서 그는 자기 자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서 그는, 문득 육지를 본 뱃사람처럼 급히 일어나며 환성을 울렸다. 새로운 진실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서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 줄기 빛이 내게 떠올랐다”. 길동무를 나는 필요로 한다, 그것도 죽은 길동무나 시체가 아닌 살아 있는 길동무가. 죽은 길동무나 시체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내 자신이 메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나는 살아 있는 길동무를 필요로 한다, 자기 자신이 따라가고 싶은 까닭에 나를 따라가는, 그것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나를 따라가는 살아 있는 길동무를.
한 줄기 빛이 떠올랐다. 짜라투스트라는 군중이 아니라, 길동무에게 말해야 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짐승 떼에 딸린 목자牧者나 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짐승의 무리 중에서 많은 짐승들을 꾀어내기 위해----그러기 위해 나는 왔다. 군중과 짐승의 무리들은 내게 화를 내리라. 목자들에겐 짜라투스트라는 강도라고 불리우리라.
나는 목자들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선한 자, 의로운 자들이라고 부른다. 나는 목자들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올바른 신앙을 가진 신도들이라고 부른다.
보라, 저 선한 자들, 의로운 자들을! 그들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그들의 가치 표를 부수는 자, 파괴자, 범죄자이다.----허나 그는 창조하는 자인것이다.
보라, 온갖 신앙을 가진 신도들을! 그들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그들의 가치 표를 부수는 자, 파괴자, 범죄자이다. 허나 그는 창조하는 자인 것이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구한다. 시체를 구하는 게 아니고 또한 짐승의 무리나 신도들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새로운 표에 새로운 가치를 써넣을, 함께 창조하는 자를 구한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그리고 함께 수확하는 자를 구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수확을 위해 무르익어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백 개의 낫이 없으니, 그래서 그는 곡식 이삭들을 떼내며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그것도 자기 낫을 갈 줄 아는 그러한 사람들을 구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사람들은 파괴자, 선악을 경멸하는 자라고 부르리라. 그러나 그들은 수확하는 사람들이며 찬미하는 자들인 것이다.
함께 창조하는 자를 짜라투스트라는 찾는다. 함께 수확하는 자, 함께 찬미하는 자를 짜라투스트라는 찾는다. 그가 짐승의 무리, 목자들, 송장들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너, 나의 최초의 길동무여, 잘 있거라! 속이 빈 그 나무 속에 내 너를 잘 묻어두었다. 늑대들로부터 내 너를 잘 숨겨 놓았다.
그리고 나는 너로부터 떠난다. 때가 되었다. 아침놀과 아침놀 사이에 새로운 진리가 내게 왔던 것이다.
나는 목자나 무덤 파는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내가 죽은 자와 이야기한 것도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창조하는 자, 수확하는 자, 찬미하는 자와 나는 한 패가 되리라. 나는 그들에게 무지개를, 그리고 초인으로 올라가는 계단들을 모두 보여 주리라.
혼자 있는 은둔자나 둘이 있는 은둔자에게 나는 나의 노래를 불러주리라. 그리고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했던 것에 귀기울이는 자, 그들의 심장을 나는 나의 행복으로 무겁게 채워주리라.
나의 목적을 향해 나는 나아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주저하는 자들, 게으른 자들을 나는 뛰어 넘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가는 길이 그들의 몰락의 길이 되도록!
10
짜라투스트라가 마음 속으로 그렇게 말했을 때, 태양은 정오에 멈춰 있다. 그때 그는 의아스럽게 눈을 깜박거리며 창공 속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서 한 새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러자 보라! 한 마리의 독수리가 허공을 헤치며 넓은 원을 그리고 있었고, 한 마리의 뱀이 먹이처럼이 아니라 친구처럼 그 독수리에게 매달려 있었다. 뱀이 독수리의 목에 감겨 몸을 가누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은 나의 짐승들이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태양 아래서 가장 긍지 있는 짐승과, 태양 아래서 가장 영리한 짐승----저것들이 정찰을 하러 나왔구나.
저것들은 짜라투스트라가 아직 살아 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진실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가?
짐승들 사이에서보다 인간들 사이에서가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짐승들이여, 나를 인도해 다오!
이렇게 말했을 때 짜라투스트라는 숲속의 그 성자의 말이 생각나, 한숨을 쉬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다 더 영리해 지고 싶다! 나의 뱀처럼 철저히 영리하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긍지가 항시 영리함과 더불어 나아가기를 나는 바란다.
그리고 어느날 나의 영리함이 나를 떠나버린다면----아, 영리함이란 달아나버리길 좋아한다!----그래도 나의 긍지는 나의 우둔함과 함께라도 여전히 날아가기를!----
이리하여 짜라투스트라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1844년 프러시아 삭손州 뢰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일생내내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으로, 모든 가치들의 전복을 기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超人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다”라고 그가 부르짖었을 때, 바로 그 부르짖음 속에는 ‘신의 사망선고’가 내려져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그의 반기독교주의와 반형이상학주의, 그리고 그의 반이상주의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초인은 신을 섬기지 않은 사람이며, 하늘 나라의 이상적인 천국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초인은 우리 인간들의 미래의 인간이며, 그는 이 땅에 두 발을 튼튼히 내리고 있는 짜라투스트라이다. 짜라투스트라(니체)는 칸트 이후 비판철학의 완성자이며, 우리 인간들의 삶의 본능의 옹호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은 최승자 역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청하, 1980년)의 서설이며,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꼭 구입해서 정독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모든 서문들의 각각의 주는 편집의 편의상 생략한다. 꼭 이 책들을 구입해서 본문도 읽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