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린 마음에도 인생의 허무함,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었지요.
1년 상을 마칠 때까지 조석으로 상청에 밥상을 날라다 드리고
홀로계신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으며
마을회관에서 저녁에 한문공부를 하며 재수했다.
다음 해 서울로 이사를 해 입학한 곳이 덕수중학교 야간.
학교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에 청계천 평화시장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 1층에는 헌 책방이 줄지어 있었지요.
어버지의 죽음 이후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이를 찾고자 헌 책방을 뒤지던 일이 기억에 난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앙드레 모로의 『젊은이여 인생을 이야기 하자』 등
제목에 인생이 들어간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당시 무종교였던 나는 불교에 관심이 많아
당시 큰 스님이었던 청담스님의 '靑潭 명상록 마음' 이라는 책을
읽었지만 죽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의
어록을 살펴본다.
‘인생의/헛된 삶과/참된 길’ / 청담 스님
우리인간이란 본래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또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며,
그저 막연히 생겨났으니 살 때까지는
죽지 못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
고달픈 삶에 쫓기다 보면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각박한 현실생활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기 이전에 벌써 살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나는 잘 사는 문제를 가지고 말하려 한다.
농사짓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이나 고기잡는 사람이나
공장직공, 정치인, 학자, 종교인
심지어는 석가, 공자, 예수에게 물어 보더라도 잘 살려는 마음,
이 생각만은 똑같이 가지고 있으리라.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을 잘 산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이 누구나 잘 살려는 이 한 마음을 가졌을진댄
잘 살 수 있는 어떤 법칙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잘 사는 법을 말하기 전에 먼저
어떤 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하는가를 묻고 싶다.
세계의 경제를 한 손에 쥐고 주무르는 재벌이나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제왕이 되거나
또 사자후의 웅변을 토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서늘하게 만들고 천하의 독자를 붓 하나로 놀라게 하는
큰 문호가 된다면 이것을 일러 잘 사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부귀와 명예를 헌신짝같이 던져버리고
뜬구름과 흐르는 물로 살림을 삼아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양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을 일러 잘 사는 사람이라 할 것인가? 아니다.
이 모두가 겉치레의 잘 사는 방법이 될지는 몰라도
참된 의미의 잘 사는 방법은 되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부족함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구할 것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원망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성냄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미움과 질투가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공포와 불안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강제와 속박이 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해탈과 자유가 있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보다 위없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마음에 흡족한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인간의 일평생을 백년이라 한다면
이 일평생을 흔히 살아간다고 한다.
이 귀중한 한평생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또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흔히 이런 문제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머리엔 흰 머리카락이 얹혀 있고
얼굴엔 주름살이 잡히는 수가 있다.
만약 인간들이 이런 이유를 모르고
그저 먹고 자고 성생활만 즐기며 살아간다면,
이는 저 금수들의 생활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살아간다’ 한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말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말이다.
가령 인간이 백년을 살 권리를 가지고 와서
하루 살았다는 말은 하루 죽었다는 말 외에
또 무슨 다른 뜻이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일 년을 살았다는 말은 곧 일 년을 죽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말은 죽어간다는 말이라 해도 옳을 것이다.
우리가 농사짓고, 장사하고, 정치하고, 경제하고,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죽지 않으려는 것인데
그래도 죽어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이는 참으로 비참한 사실이다. 권력, 재력,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성철스님의 명언
인과의 법칙은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다.
밥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옷은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면 됐고,
공부는 밤을 새워서 하라.
시간은 자기 생명과도 같다.
잃어버린 건강은 음식으로
잃어버린 재산은 근면검소로 회복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회복할 수 없다.
만사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이 없으니
무슨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
걱정할 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병인가? 안 나을병인가?
나을병이면 걱정하지말고, 안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인가?
안죽을병이면 걱정하지말고, 죽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 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거 같은가?
천국에 갈거 같으면 걱정 말고,
지옥 갈거 같으면, 지옥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모든 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들에 미쳐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산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실행 없는 말은 천 번 만 번 해도 소용없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용맹 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고,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첫댓글
아...
오늘은 불교에 대해서
한 페이지 기록 하셨습니다
몇년전에 조계사 앞에
트리가 세워졋다는 밤 뉴스를 보다가
전철 타고 부라 달려가서
그 트리의 인증을 담아 오기도 하는 열성이였는데
올핸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