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 궁전의 밝은 달이 옥그림자 비추는 ‘섬진강(蟾津江)’> 2016년 作 /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장수읍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 1,151m)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북도의 동쪽 지리산 기슭을 지나 남해의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유로 연장은 222.05㎞ 남한에서 4번째 큰 강이다. 남한의 강 中에 가장 맑은 청정수인데 ‘만일 섬진강이 오염 된다면 나라의 생태계는 멸렬할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자연생태 강(江)의 최후의 보류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는 전남와 전북, 경남의 3도에 걸쳐 있고, 역사적으로는 고대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경로였으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동학농민전쟁이 승화되기도 한 장소이다. 섬진강은 본디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사천(沙川)·기문화·두치강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하지만 사실 설화는 지명을 두고 지역민이 만든 이야기로써 전해오는 것이고 실제로는 ‘달나라 궁전의 밝은 달이 옥그림자 비추는 황홀한 강’이라는 뜻이다.
1903년, 안익제 <두류록(頭流錄)>에 따르면, “하동과 광양 두 읍의 사이에는 강이 가로질러 흐르는데, 섬진강이라 한다. 그 근원이 전라도 순창군(淳昌郡)에서 발원하여 교룡산(蛟龍山)을 지나 봉성산(鳳城山)에 이르러 구례 ․ 곡성 지경으로 흘러든다. 그리고 수백 리를 굽이돌아 하동에 이른다. 하동부의 위쪽은 동정(洞庭)이라고도 하고, 소상(瀟湘)이라고도 하여 그 명칭이 한 가지가 아니다. 이 강을 섬진강이라 하는 이유는 상세하지 않다. 아마도 악양(岳陽) 일대의 ‘밝은 달이 천리를 비추면 황금빛과 옥그림자가 달나라 궁전【蟾宮】처럼 황홀한 점’이 있기 때문에 섬진강이라 이름 붙인 것이리라. 하동부 관아의 문이 강가에 임해 있는데, 그곳을 계영루(桂影樓, 달 속의 계수나무)라고 부른다. 그 또한 이런 뜻에서 취한 것이리라.”하였다. 섬진강 하류의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는 840년에 중창된 신라의 고찰인 쌍계사(雙磎寺)와 불일암(佛日庵)·불일폭포가 있다. 명산물로는 은어와 참게를 들 수 있다.
1) 섬진강[蟾津江] / 이명배(李命培 1672∼1736)
蟾津沽酒膾鱸遊 섬진 나루에서 술을 사서 농어회로 즐기는데
江雨初霑江水悠 비가 강을 막 적시니 강물이 유유하네.
百里風烟通巨海 백 리의 풍경은 큰 바다로 통하고
兩沿魚米載中流 양쪽 언저리엔 물고기와 쌀을 싣고 흘러간다.
巖花日暖紅爭艶 따뜻한 날 바위틈의 꽃이 아름다움을 다투듯 붉고
渚柳春深綠政油 깊은 봄날 물가의 버들에는 푸른빛이 더욱 윤기 나네.
回首頭流千萬疊 머리 돌려 두류산 바라보니 천만 겹이나 되건만
孤舟忽撼蠧翁愁 외딴 배가 갑자기 흔들거리어 좀스런 늙은이 시름겨워 하노라.
● 이명배(李命培 1672∼1736)는 함안 거주, 자는 수평(受平), 호는 모계(茅溪),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선생은 자질이 빼어나고 성품이 온순하였다. 장성하여서는 성자구(成紫丘)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1699년 (숙종 25)에 전라남도 광양에 유배중인 이현일(李玄逸)을 찾아가서 수일 동안 강론을 듣고 이로부터 여러 차례 내왕하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1704년(숙종 30)에 과거에 응시(應試)했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어버이가 별세한 후에는 과업을 폐하고 위기(爲己)의 학문에만 전심하여 일생을 마쳤다. 후에 지방 사림의 발의에 의하여 산음사(山陰祠)에서 제향하였다.
2) 섬진강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따라 하동으로 내려가다[沿蟾江東下河東] / 황현(黃玹 1855∼1910), 1887년(고종24) 매천의 나이 33세 作.
終日循江下 온종일 강물을 따라 내려가노라니
汀洲慣眼成 모래톱이 어느덧 눈에 익숙해지네
皷喑船霧重 배 안개 짙은 곳에 북소리는 잠잠하고
帆裂市風腥 비린내 나는 저자 바람에 돛은 찢기었네
雪盡橫南岳 눈은 다 녹아 푸른 남악이 비껴 있고
天靑入洞庭 하늘은 푸르러 동정호로 들어가는 듯
十年亦陳跡 십 년 전의 일도 이미 묵은 자취여라
何事此重經 무슨 일로 이곳을 거듭 지나가는지.
3) 하동읍에 들어와[入河東邑] / 총쇄록(叢瑣錄) 오횡묵(吳宖默, 1834- ?)
豆峙蟾津似帶流 섬진강 두치(豆峙)에 띠를 두른 듯 흘러가는데
兩江合處置强郵 양 강이 만나는 곳에 왕성한 역참을 두었다.
山河壯勢藩邦國 웅장한 산하의 형세 속에 국토의 지경에 있으니
知是河南弟一洲 하남(河南)이 제일의 땅임을 비로소 알겠네.
4) 달빛에 배 띄우고 술 취한 흥취[泛月醉興] / 권두경(權斗經 1654∼1725)
蟾江潮滿海門通 섬진강 만조 때 해문(海門)을 통해 가는데
露幕雲帆拂半空 구름 속 돛배가 반공을 스치니 장막에 이슬 내리네.
醉擁琴歌鳴四櫓 취중에 거문고 안고 네 개의 노 젓는 장단에 맞춰 노래하며
淸風明月下河東 맑은 바람 밝은 달빛 안고 하동 땅에서 떠돈다.
5) 섬진강에서 큰 배를 타고 달을 따라 하동으로 향하며[自蟾津駕大舶 沿月向河東] / 권두경(權斗經 1654∼1725)
夕海潮頭闊 저녁 바다에 물결이 넓게 드리우고
秋天月魄圓 가을 하늘엔 둥근 달이 빛나네.
西風起大席 서풍이 일으킨 풍성한 연석에
片舸下長川 조각배는 긴 강을 따라 간다.
酒煖靑油底 푸른 기름 바닥이 보일 때까지 술을 데우며
琴淸白露前 흰 이슬 앞에서 맑은 거문고소리 울리네.
篙師奏雙櫓 노련한 뱃사공이 쌍 노를 저어가니
破浪蹴龍眠 물결을 일으켜 용의 잠을 깨운다.
그때 하동의 병선(兵船)을 타고 간 까닭에 푸른 기름을 사용한 것이다.(時乘河東兵船 故用靑油)
6) 두치진은 하동부 10리에 있다[豆巵津在河東府十里]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鳴騶引頸欣出谷 마부는 목을 빼고 기쁘게 골짜기를 빠져나오니
野渡舟橫春水綠 배는 나루에 옆으로 늘어섰고 봄 강은 푸르네
沙平日煖市初集 백사장 따사로운 햇살에 이제 장이 막 서는데
萬竈煙生羅酒肉 장터 주점엔 연기 오르고 술과 고기 진열했네
岸邊牛馬交相戲 언덕에 맨 소와 말은 서로 어울려 장난질하고
浦口帆檣森似束 포구에 모인 범선 돛대 꾸러미처럼 줄지어 섰네
西通帶方北沙伐 서쪽으론 남원 북쪽으론 상주와 통해
豪商大賈於斯簇 온 나라 거상들이 이곳에 다 모였구나
松京愛州轉錦綺 개성과 안남의 비단이 거치고 거쳐 들어오고
鬱陵乇羅輸魚鰒 울릉도 제주도의 생선이 바닷길로 수송되네
穰穰往來摠爲利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이익 때문이니
誰能挽世塗耳目 이목의 물욕에 어두운 세태 누가 능히 돌리리
回看南嶽鎖煙霧 고개 돌려 돌아보니 지리산은 운무 속에 잠겼고
靑鶴高飛杳難逐 청학은 높이 날아 묘연하니 쫓아가기 어렵구나
청학동은 지리산에 있다. 나는 당시 아내를 데리고 있었으므로 명승을 유람할 수 없었다(靑鶴洞在智異山 時因領內不能歷覽)
7) 칠석날[七夕] 섬진강에서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七日望江上 칠석날 섬진강 위에서 바라보니
天津何處通 물가 하늘은 어느 곳으로 통하는지
冥冥初有路 아득한 하늘에도 본디 길이 있으나
了了竟爲空 분명히 공허하게 되었음을 알겠네.
有巧那容乞 공교한데 어찌 허락을 받으랴만
無家信得窮 집도 없이 정말로 궁하게 되었다네.
神仙異塵土 신선이 진토(塵土)를 특별히 여겨
歲歲渡河東 해마다 하동을 건너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