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희는 악에서 태어난 몸이기 때문에 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두 번 태어나야 할 운명, 이것은 비참한 것이옵니다.
세상에서도 의붓자식으로 생활하는 것은 지극히 억울한 것이 아니옵니까?
저희는 의붓아들의 정도가 아니라,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본연의 부모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사탄의 화살과 사탄의 창검의 공격을 무수히 받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은 이렇듯 몸을 얽어매고 있는 끈들을 끊고 가야 하겠사옵니다.
입으로 끊든지, 힘으로 끊든지, 얽어매고 있는 자들과 부딪쳐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한 역사과정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면서도 권고도 할 수 없는 아버지, 저희와 같은 아들딸을 가진 한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아버지의 그러한 심정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죄를 지은 아들이 법관에게 끌려가서 교수대에 서게 될 때, 말할 수조차 없는 입장에서 애달픈 심정으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비통한 가슴을 조여야 하는 부모의 심정, 아버지의 사정을 체휼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영광의 아들딸로 태어난 만유의 중심 가치로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그 모습이 원수의 손길에 끌려가서 이슬같이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시고,
묵묵히 소망의 한때를 고대하여 나오신 아버지의 그 비참한 심정을 저희는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듯 소망의 아들을 바라는 마음 앞에, 초조한 아버지의 심정 앞에 엎드려, 수천 년 수억만 년을 거쳐서라도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몸부림치시는 아버지의 처참한 모습을 생각하옵니다.
그 처참함이 역사노정에서 사실로 전개될 때에도 그 자리에서마저 동정받지 못하신 아버지이심을 생각하면, 저희들은 두고두고 저주받아야 할 입장에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저주하시면 아버지가 자식을 저주하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참고 용서해 오셨던 것을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용서함과 인내함을 본받아야 되겠사옵니다. 땅 위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불쌍한 경지에서 하늘을 찾아가는 사람이 역사 가운데 남아진 것을 아옵니다.
과연 이 길을 알고,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옵니다.
이 세상의 외로운 고아들이옵니다. 누구한테도 호소할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자들이옵니다.
나라가 있어도 그 나라를 믿을 수 없었고, 세계가 있어도 그 세계에 소망을 가질 수 없었사옵니다.
그리하여 가는 곳곳마다 원수의 창과 화살을 받는 자리에 서야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버지와 심정적 인연을 두터이 맺을 수 있는 것은 저희만이 가질 수 있는 비참한 내용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원통한 심정을 상속받는 아들딸로서 아버지 앞에 진실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니 피를 흘리지 않고는 아버지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벨이 흘린 피의 역사를 저희들이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위하여 피의 담을 쌓아 하나의 보루가 되고, 아버지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도성, 영원한 안식의 터전을 마련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비참함을 위로하고, 영원히 아버지를 방위할 수 있는 하늘의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69. 12.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