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에 흩어지는 송림의 향훈, 토속 막국수와 혀끝에서 녹아나는 생선회거리 , 여독을 상큼하게 풀어주는 설악산 산채나물 - 이것들이 어우러지는 겨울 동해안 , 언제 만나도 정감이 흐른다 . 강원도 주문진에서 양양 , 낙산 , 속초 , 거진을 거쳐 대진에 이르는 이 일대는 짙푸른 동해바다와 자연호수 , 설악산의 빼어난 절경 , 해변으로 늘어선 겨울소나무와 끈끈한 삶의 현장으로서 어항들이 어우러진 곳이다 . 누구든지 이 일대를 여행하다보면 냉철해지려는 이성을 발견하는 듯 상쾌하고 해맑은 기분을 맛보게 된다.
일출, 수줍은 소녀의 볼처럼
제일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낙산사, 관세음보살의 훌륭한 몸매를 육안으로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의상대사가 백일동안 기도했다는 낙산사의 의상대 , 그곳에서 일출을 보았다 . 수평선이 소녀의 볼처럼 붉게 물들어가다가 빠알간 아침해가 쑥 떠오른다 .
신라 문무왕 때인 671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 낙산사는 의상대 , 홍련암 , 홍예문, 7층석탑, 높이 16m의 해수관음보살상 등이 있는 관광사찰로 유명하다 . 눈이 오고 추운 겨울이 되어야만 그 지조를 알 수 있다는 송백들이 늘 푸른 잎을 지닌 채 천년고찰을 에워싸고 있다. 자살하려고 찾아온 인생 포기자들도 낙산의 경치를 한번 둘러본 다음에는 새로운 생의 기분을 찾아서 재출발한다는 승려의 말에는 공감이 갈만하다.
고향당은 옛말을 한눈으로 느낄 수 있게 꾸며놓았다. 인공이 가미안된 원탁은 지식, 나이, 상하를 초월해서 즐거이 말문을 열게 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 고향당에서 주지스님이 정성스레 달여 준 약차를 대접받았다. 동해의 거센 파도소리가 귓속까지 찰랑거리고 입안에 짜릿하게 퍼지는 향기가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바닷물 백사장 소나무의 조화
동해의 해변가는 그 어디고 산책로로 좋다 . 맑은 바닷물과 고운 백사장 , 짙푸르게 약이 오른 소나무 숲을 보며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특히 낙산사 주변의 아침산책은 인상적이다 . 입구에 세워진 유스호스텔 (1박하는데 겨울은 1만 5천원 내외 ), 낙산비치호텔 (1박요금 3만원 내외 )이 여행객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 아침식사는 설악산에서 채집된 고사리 , 도라지 , 취나물이 들어간 산채나물 비빔밥 (2천 5백 )이다 . 강원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이한 산나물맛에 여독이 중화된다 .
싫도록 출렁이는 바다를 본다 . 삶의 한 가운데서 쓰라린 수심이나 아픔 , 사랑의 열병같은 것들이 바위에 부서지는 포알처럼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 같다 . 점심 때에는 강원도 모밀 막국수로 이름난 양양읍의 단양식당을 찾았다 . 순모밀로 만드는 모밀막국수는 회가 동하도록 맛이 있었다 . 얼큰한 맛과 쇠고기 , 돼지고기가 함께 든 비빔막국수 한그룻의 값은 3천원 .
이 식당은 3대째 내려오는 이름난 막국수집인데 아버지 고영주 (62)씨의 뒤를 이어받아 광희 (33)씨가 운영하고 있다 . 관광객은 물론 이 지방 사람들도 즐겨 찾는 막국수집이다 . 버스를 타고 양양에서 속초쪽으로 20여분쯤 달리면 생선회로 유명한 대포동 (속초시에 속하나 상당히 떨어진 마을 )이 있다 . 10가지 생선이 한접시에
별미회집 , 대포회집 , 돌고래회집 , 삼해장회집 , 무진장회집 등 13개의 대형회집이 부두가에 주욱 늘어 서 있다 . 동해의 맑은 물에서 갓 건져낸 살아있는 생선들은 싱싱하기가 그만이다 . 혀에 착착 달라붙는 생선맛은 "대포동의 모듬회 한접시를 먹어보아야만이 사는 맛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 이곳의 생선모듬회는 해삼 , 멍게 , 오징어 , 소라 문어 광어 , 가재미 , 도치 , 새우 등 10여가지의 생선이 한접시에 오른다 . 겨울 생선회 값은 여름보다 싸며 맛이 더 있다고 한다 . 한 접시로 4명이 즐길만 한데 값은 7천원에서 2만원까지 다양하다 .
대포동에서만도 40년을 살아온 별미회집 조혜영 (57)할머니는 "고기맛은 물론이려니와 온갖 양념이 섞여진 초장 (마늘, 파, 참기름, 깨가 들어감) 맛이 일품이기 때문에 회맛이 뛰어나다"고 자랑이다 . 대포동에서 바다를 따라 설악산 입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에는 부부나 애인들로 보여지는 쌍쌍이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 . 모두들 싱그러운 표정들이다 . 어찌 발이 아프다고 주저앉을 수 있으랴 . 별이 바로 머리위에 빛나는 밤이면 더 좋을 것이다 .
해안은 어디를 가나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출어준비를 하거나, 만선이 된 배에서 하역중이거나, 그물 손질로 바쁘다 .주문진, 대포동, 양양, 속초거진, 대진 등은 겨울 명태잡이 어장의 성어기로 한창 일손이 바쁘다 .
강한 생명력이 이글거리는 곳
어장은 진실되고 끈끈한 삶들이 모인 현장이다 . 누구하나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없다 . 힘든 줄 모르고 고기잡이를 하는 구릿빛 얼굴을 가진 어부들 . 항구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 낚아온 고기를 손질하는 아낙네들의 바지런한 손길들 , 통통소리를 내며 물살을 가르는 , 어느 것 하나 정체된 삶이 없이 생명이 요동치고 있다 . 항구는 좌절이 없는 곳 , 오직 생명만이 이글거려 새로운 삶의 의지를 배우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
속초항에서 만난 김일동씨 (46 · 청호동 1통 2반 )는 "낚시로 명태를 많이 잡는 날은 혼자서 1천마리를 더 낚을 때도 있지요" 하며 분주히 그물을 손본다 . 그 옆에서 일하는 바닷가 여인들의 생업현장은 명태를 덕목에 걸어 꽁꽁 얼린 상태에서 건조해 도시의 식탁으로 보내는 곳이다 .
거울같이 맑은 바닷가 자연호수
속초의 영금정에서 본 바다는 또 다른 맛이 있다 . 동해물은 갯바위에 흰포말을 흩뿌리며 , 얼음보다 차갑고 냉철한 가슴을 드러내고 흩날린다 .
속초에는 36만평의 거대한 자연호수인 영랑호가 있다 . 한눈에 보이는 설악산 설경과 , 얼어붙은 호수풍경이 깊숙한 겨울맛을 풍긴다 . 신라 화랑이었던 영랑이 이 곳을 지나다가 아름답고 장엄한 호수풍경에 현혹되어 길 떠날 것도 잊고 고기를 낚으며 풍류를 즐겼다는 곳이다 . 지금은 강태공들이나 호수를 좋아하는 이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호반가에는 종합레져타운이 형성되어있다 .
낙산사를 좌우로 한 동해안지역은 해안성기류를 띤 온화한 무설지대로 겨울여행에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
토속음식의 맛은 물론 뛰어난 경관이 우리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동해안은 신이 창조한 걸작지대임이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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