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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전복적 사고를 시도하라
장소의 사회적 통념을 바꾸어라
창경궁 궐내각사 방면은 정문에서 왼쪽이다. 그곳 동궐도 옆 평상에 참가자들을 앉혀 놓고 해설을 시작한다. 춘당지 쪽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일소한 뒤 동궐도로 가기 전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여러 의견이 나온다. 내 이야기로 정리를 한다.
“오래전 유럽에서 온 분들에게 오두산통일전망대와 임진각을 안내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사람과 동물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3분간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당황한 나는 준비한 이야기를 얼른 꺼냈습니다. 개미들과 사람만 같은 종(種)끼리 패를 나누어 전쟁을 한다는 것 말입니다.
이동 중간에 통역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내가 던진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답니다. 찰스 다윈 이후로 사람도 동물도 다 같은 선에서 출발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 이유는 궐내각사 터에 동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순종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동물원이 1983년까지 이곳에 있었습니다. 궁극 목적은 조선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겠지요.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우리는 동물원에서 즐겁게 놀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사쿠라 밑에서 미어터지게 벚꽃놀이에 흥청거리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1959년 4월 벚꽃놀이에는 한 달간 150만 인파가 모였답니다. 쓰레기는 500트럭분이 나왔고, 미아는 900명이 발생했답니다. 이는 인간적 삶인가요, 동물적 삶인가요?”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걸 막기 위해 내 이야기를 또 꺼낸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 멀리 인천에서 이곳 창경원에 놀러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놀다 갔던 것 같습니다. 임금만 놀았던 궁에 백성이 들어와 노는 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일본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는 <공통감각론>에서 ‘장소의 사회적 통념’이라는 말을 했다. 근대 사회 이전 우리는 “오감(五感)의 형성은 현재까지의 전 세계사를 통틀어 뛰어난 작품이다”라고 한 마르크스의 말처럼 오감 위주의 삶을 살았는데, 서양은 감각 통합을 거세하고 시각 위주의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봉건과 근대의 변별점인 창경궁에서 나누고 싶어 시작을 좀 세게 했던 것 같다. 즉 궁에서 동물원으로 그리고 이제 숲으로 조성된 이 장소의 사회적 통념에 새로운 의미 부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참가자가 직접 참여하는 오감 수업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7월이라 붉은 꽃이 만개하고 있는 배롱나무 앞에 선다.
먼저 내가 시를 읽는다.
어제 저녁에 꽃 하나 지더니
오늘 아침에 꽃 하나가 피었네
서로 백일을 바라볼 수 있으니
너를 상대로 술 마시기 좋아라
사육신의 한 명인 성삼문의 ‘백일홍’ 시다. 조선 양반의 풍류를 언급하고는 여기서 ‘백일’을 언급한다. 백일 동안 꽃이 피고 지는 배롱나무의 특징을 말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참가자에게 시를 읽게 한다. 이성복의 ‘그 여름의 꽃’이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 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느낌을 묻고는 ‘피로 덮을 때’를 주목하게 한다. 배롱나무의 꽃 색깔을 인상 깊게 남기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홍성운의 ‘배롱나무’를 또 참가자가 읽도록 한다.
길을 가다 시선이 멎네
길모퉁이 목백일홍
품위도 품위지만 흔치 않은 미인이다. 조금은 엉큼하게 밑동 살살 긁어주면 까르륵 까르르륵 까무러칠 듯 몸을 떤다. 필시 바람 때문은 아닐 거다. 뽀얀 피부며 간드러진 저 웃음, 적어도 몇 번은 간지럼타다 숨이 멎은 듯
그 절정 어쩌지 못해
한 백여 일 홍조를 띤다.
배롱나무 하면 간지럼 나무라고 습관처럼 나오는 대목을 이야기하기 위해 준비한 시다. 질문이 들어간다.
“이 시에서 ‘몸을 떤다. 필시 바람 때문은 아닐 거다’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맞을까요? 틀릴까요?”
여러 의견이 나온다. 그럼 나는 직접 배롱나무 가지에 다가간다. 그러고는 말한다.
“간지럼을 타듯 흔들리고 있나요? 이 부분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뒤적거려 보았는데 ‘진동에 의한 파동으로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즉 제가 이 나무에 가는 순간 공기 입자가 물결처럼 흘러갔을 것이고, 그 힘에 의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굵은 줄기가 아니라 가느다란 줄기를 살살 긁어주는 여느 나무도 흔들리지 않을까요?”
여기서 의견이 둘로 나뉜다. 내 말처럼 바람 때문이라는 것, 배롱나무라서 간지럼을 탄다는 것 말이다. 정리 멘트를 한다.
“감정 이입을 언어로 표현하는 시라고 하더라도 과학에 근거한 팩트 파악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는 사람처럼 신경계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기관별로 분포하고 있는 호르몬으로 생리 작용을 할 뿐입니다. 물론 이를 알고도 시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까지 제가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과적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시를 쓸 때에도 이과적 공부는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을 잘 알면 잘 알수록 정확하고도 깊은 울림이 있는 표현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병꽃나무를 잠시 둘러보고는 들메나무 앞에 선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을 참가자가 읽게 한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호흡이 길어 나누어서 읽고는 내가 말한다.
“왜 들메나무 앞에서 이 긴 시를 읽었을까요? 백석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이 시에 등장하는 ‘갈매나무’를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드물게 있다는 것만 맞을 뿐 높은 곳에 곧게 자란다는 이미지와 맞지 않았습니다. 음식과 나무를 정확히 표현한 백석이기에 의문은 커졌고, 그래서 아마 들메나무를 갈매나무로 잘못 인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런 시도를 했을까? 들메나무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측백나무 앞에 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편백, 화백의 차이를 나도 말한다. 잎의 숨구멍인 기공조선(氣孔條線)이 Y자이면 편백, W자면 화백이라는 것 말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종교를 묻는다. 불교 신자가 있으면 그분에게 시선을 맞추고 측백나무 잎을 들어 보인다.
“아, 염화시중(拈華示衆).”
답이 나오면 묻는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 의견이 나온다. 그럼 다음 이야기를 말한다. 인터넷 글을 옮겨온다.
[이때 한 스님이 조주스님께 물었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이 말했다.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뜰 앞의 잣나무니라)!”
“화상께서도 경계(境界)를 써서 응하지 마십시오!”
조주스님이 말했다.
“산승은 경계를 써가면서 응하지 않느니라.”
스님이 조주스님께 다시 물었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이 말했다.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뜰 앞의 잣나무니라)!”]
선문답을 처음 접하는 참가자들을 위해 간단히 해본다.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선생님은 왜 사십니까?”
난데없기에 간혹 패스하는 분들도 있지만, 열심히 응해주는 분들도 많다. 호응이 끝나면 내게도 질문을 하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바람이 밀어서 왔고, 바람이 불어서 삽니다.”
적당히 흉내를 내고는 강판권의 <나무열전>에 나오는 글을 공유한다. 옮겨온다.
[측백나무(側柏--)의 한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오해하기 쉬운 글자입니다. 중국에서는 백자를 측백나무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중국 원산의 측백나무를 우리나라에서는 잣나무로 풀이합니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 잣나무를 아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잣을 조공으로 요구했습니다. 중국의 측백나무가 잣나무로 ‘둔갑’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없는 측백나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잣나무 앞에서 정전백수자를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측백나무 앞에서 이런 선문답을 하기도 애매하다. 요즘은 서양측백나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 공부 참 어렵다. 관련 종사자 혹은 덕후 취미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나무에 대한 불명확한 동정 속에서 인식을 펼쳐나간다고 봐야 한다.
느릅나무 앞에 선다. 박목월의 ‘청노루’를 읽는다.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눈도 마음도 맑아진다.
이후 죽어가는 자작나무에 아파하고, 마가목에서 내 추억을 이야기한다.
“제가 산에 다닐 때 산행대장님이 한 나무를 가리키며 자신을 마가목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가목이 나무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나무에는 나무라는 이름이 붙는 걸로만 알았으니까요. 뒤늦게라도 그분을 만나면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나무와 연관이 있지만, 그다지 재미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음 코스인 산사나무에 가서 오감을 가장 크게 자극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사전 단계였다.
산사나무 앞에 선다. 나는 그 아래로 참가자들을 끌고 간다. 산사춘, 메이플라워, 빨간 머리 앤 등등이 나오면 끝이다. 그럼 나는 2010년 장이머우 감독이 만든 <산사나무 아래>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화혁명 시기 고등학생인 여주인공이 농촌으로 학습을 갔는데, 거기서 탐사단원인 남주인공을 만나 순수한 사랑을 하다가 남자는 죽고 여자는 아픈 추억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마을 입구 나무가 영웅수로 불리는 산사나무이고, 마지막 자막은 이렇다.
‘찡치우는 매년 여기에 와서 제사를 지낸다. 그녀는 산사나무가 물속에서도 붉은 꽃을 피울 거라 여긴다.
아 무성한 산사나무여, 흰 꽃이 활짝 피었네, 우리들의 산사나무여, 왜 그리도 슬프게 보이는지.
나는 당신을 평생 기다리겠습니다.’
울컥해지는 순간 이런 말을 해본다.
“(나뭇가지 붙잡고 징검다리 건너는 남녀 주인공 사진을 보여주고는) 선생님은 이런 추억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럼 다음 말을 또 해본다.
“선생님은 어디에서 첫 키스를 하셨습니까?”
황당할 듯하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밝다. 그 순간만은 비밀을 흘리지 않을 한 묶음의 결속된 공통 집단이기 때문이다.
“연세 있으신 선생님들은 나무 아래에서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
풋풋 웃음이 나오면 말을 이어간다.
“나무가 우리 삶의 큰 매개가 되어 정서적으로 순수함을 주었는데, 이제는 닫힌 공간에서 사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산사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사랑과 역사 그리고 생태를 느껴본다.
이제 거의 막바지다. 소나무 아래 텅 빈 공간을 보며, 오래된 우리 토종 황철나무를 보며, 느티나무 앞에 서면 숲이 끝난다. 그럼 뒤를 돌아보게 하며 묻는다.
“저 숲, 아니 저 나무들이 들어서 있는 저 공간에 뭐가 있는 것 같은가요?”
여러 의견이 나오면 또 참가자에게 시를 읽게 한다. 안도현의 ‘간격’이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꺼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익숙한 공간에 시어가 들어찬다. 감각이 새롭게 요동친다. 나무를 본 시각이, 나무를 만진 촉각이, 지나가며 맡은 나무 냄새의 후각이, 이따금 먹어본 열매의 미각이, 직접 읽어보고 들은 시들의 청각이 ‘장소의 사회적 통념’에 개체를 깊숙이 들여놓는다. 시선과 관점이 어떻게든 변화를 가져온다.
이때 숲 공부를 하며 연일 감동을 받는 내 삶을 참가자들 앞에서 읊는다.
아모르 파티
짙은 그늘을 사랑했던 사춘기 시절
싸락눈 같은 글자가 심장처럼 박혀 있는
삼중당 문고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운명처럼 읽었다
나도 이렇게 읊조리다 가면
운명이 아름다울 것 같아서
살면서 그늘이 먹장구름처럼 몰려오면
호숫가 어디선가 기침을 토하며 글을 쓰는
시인 니체가 그리워
활자 커진 그의 살려는 의지를
배우고 또 배우려고 했다
그보다 건강한 나도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먹장구름보다 더 깊은 비애가 스며든 밤이면
김연자의 살 듯 말 듯 수은등 노래를 들으며
축축 나락으로 흐르는 삶의 끈들을 길어올렸다
삶은 살아지는 것, 그것이 운명 같아서
나무 공부를 위해 추천을 받은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읽는데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것처럼 나무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지도 않는 운명애(Amor Fati)를 몸소 실천한다”, 라는 문장을 보고는
반가운 눈물이 아침이슬처럼 맺혀왔다
니체가 나무가 되어 살아온 것 같아서
만일 니체가 지금 우리 곁에서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통의 육신에 웃음 바이러스가 스며들어
봄날 벚꽃처럼 화사하게 잠시라도 웃지 않을까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삶은 그래
아모르 파티!
운명을 거부하지도 순응하지도 않는
저기 저 나무들처럼!
이제 우리가 보아야 할 나무는 주목과 향나무뿐이다. 한 쪽은 고사되어 있고, 한 쪽은 잎을 피우고 있는 창경궁의 자랑 주목에서 세월을 느끼고, 그 앞에서 잘 자라고 있는 향나무에서 죽음과 삶을 다시 길어올린다. 이제 마지막 멘트다.
“이과적 시선으로 지었다고 추론할 수 있는 식물원과 동물원이 이제 숲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는 이과적 시선일까요, 문과적 시선일까요?”
여러 의견이 나온다. 여기서 내 의견도 말한다.
“문과적 시선 같습니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기술력이 강한 나라가 되려면, 사물의 본질을 더 정확히 알려면, 이과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어려운 데’라는 표정이 읽혀지지만, 이 말을 하는 내 얼굴도 그렇지만, 과학 시대를 맞이하여 과학에 근거한 지식 공부는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정확성이 감동을 더 주기 때문이다.
5강 ‘전복적 사고를 시도하라’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
전복적 사고는 어떻게 가능할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심장이 우선일 것 같다. 하지만 쉽지 않다. 나도 사실 그렇다. 대학 시절 혁명으로 나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엎겠다는 시도는 했었지만, 이제는 나도 오십대 중반이다. 튀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너무 안 튀면서 살고 싶지도 않다. 그 경계의 타협이 늘 고민이지만, 자신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고 밀어 붙일 만하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런 시도를 하다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 덕분에 인류는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거기에 낄 축은 못 되지만 노력은 해볼 것이다.
해설을 위한 것이든, 그 어떤 생각의 개진이든, 새로운 사고의 완성은 명제를 뒷받침하는 전제들을 끊임없이 수집하고 부지런히 사색해야만 만들어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삶을 대하는 가치관이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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