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그리스 문자 프사이(ψ)로 표현되는 이 파동은 전자와 원자의 행동을 거의하게 설명함으로써 미시세계의 현상을 거짓말처럼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었지만, ψ의 정확한 의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파동함수 ψ는 주어진 장소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나타내는 함수였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전자의 위치를 100%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으며, 단지 ψ를 통해 '그곳에 있을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전자가 둘 이상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면, 전자의 진정한 위치를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걸까.
예를 들어 사람을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을 실제 사람의 외형과 거의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또한, 파동함수는 주변으로 갈수록 값이 작아지기 때문에 사람이 달에서 발견될 확률은 지극히 적고, 그래서 사람이 달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이것은 우주 전역에 걸쳐 사람이 고르게 분포되어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나무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는 나무가 서 있을 확률과 쓰러질 확률을 구체적인 수치로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지만, 나무가 쓰러질 것인지, 아니면 서 있을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나무는 서 있거나, 아니면 쓰러져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서 있으면서 동시에 쓰러져 있는' 나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깨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하이젠베르크는 '파동함수가 외부의 관찰자에 의해 관측되면 단 하나의 값으로 붕괴된다'고 가정했다(파동함수의 붕괴). 그러나 '관측'이라는 행위는 물리학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물리학자들은 다시 머리를 싸매야 했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에 파동방정식을 도입하면서 방정식이 이론을 너무 앞서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는 보어를 찾아가 '만약 제가 제안한 파동방정식 때문에 물리학에 확률이 도입된다면 저는 몹시 후회스러울 것입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슈뢰딩거는 확률의 개념을 피해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제안하였다.
여기, 상자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갇혀있다. 상자 안에는 독가스가 들어있는 병이 있고 병마개는 닫힌 상태이다. 병 근처에는 망치가 세팅되어 있는데, 이 망치는 가이거계수기와 연결되어 있고 계수기 근처에는 우라늄조각이 놓여있다. 우라늄원자의 방사능 붕괴는 순수한 양자적 사건이므로 언제 붕괴될지 미리 예측할 방법은 없다. 일단, 우라늄원자가 1초 이내에 붕괴될 확률이 50%라고 가정하자. 우라늄원자가 붕괴를 일으키기만 하면 가이거계수기가 작동하고, 그 결과 망치를 붙잡고 있는 고리가 풀리면서 병을 내리치도록 되어있다. 그러면 병 안에 들어있는 독가스가 새어나오고, 그것을 마신 고양이는 죽게 될 것이다.
이런 조건하에서 상자의 뚜껑을 닫아놓았다면 고양이의 상태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상자의 뚜껑을 열기 전에는 고양이의 생사여부를 전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의 상태를 서술하려면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를 서술하는 파동함수를 도입하여'50%는 죽어 있고 50%는 살아 있는' 희한한 상태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슈뢰딩거는 이 상황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자신이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죽어있는 고양이와 살아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까? 아인슈타인은 이런 역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양자역학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는 아인슈타인과 보어와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토론에서 다뤄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