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사랑은 물결무늬
저-정재숙 시집(1946년 경북 영양군 출생)
출-시와 반시
독정- 24.7.11 목(출판일은 24.8.1)
작가의 네 번째 시집 <사랑은 물결 무늬> 책을 펼치면 작가 약력 밑에 <자서> 시가 있다.
‘고향은 늘 내 안에 머물고 있다’는 시에서 마음에 늘 아이를 담고 사는 시인을 본다. 따스한 마음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늘 베풀며 살아온 온기가 시에 고스란히 응축되어 담겨 있다. 기억 밖의 흉터> <내 아득한 꽃잎> 시를 봐도 유년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익어가는 나이대 독자들에게 공감과 힐링을 준다. 70여 편의 시 가운데, <붕어빵을 사다> <오늘이다> <바람을 흘리다> <나는 가끔(씩) 녹는다> 같이 종결형 어미로 끝나는 시들이 울림이 크다. <나는 가끔씩 녹는다> 나는 형체를 잃고 그렇게 녹아내리는 게 좋다/결국 나는 물이었던가
-‘있음도 바뀌고 없음도 바뀌는’ 이치를 따라 사는 삶의 자세가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다. 그 길에 <다시 장미> 시에서 ‘장미는 쓰레기로도 장미일까?’ 던진 의문에, 시들어 빛깔과 물기와 향기를 잃어 역겨운 냄새를 품는 장미에서 삶의 무상과 허무를 고즈넉이 느끼게 되고, <밥> 시에서는 밥이 그림 같다는 마음이 먹먹하게 읽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에서 ‘사람에게는 사람이 약이었어’ 답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그 시의 예를 뒷받침해 주는 시가 바로 <굴비 한 마리> 였다. 손주가 공방에서 만들어온 굴비 한 마리를 천정에 달아주며 “할머니, 이 굴비 밥맛 없을 때 쳐다보고 밥 많이 잡수세요.” 손주의 애정이 할머니를 힘 나게 하는 약이 된 시를 읽으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 시집을 읽으며 ‘시집은 시인의 인격으로 지은 집인가?’ 시집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해보게 되었다. 정재숙 선생님! 마음에 힐링과 평안과 생각을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뵙게 되는 날, 밥 한 번 사고 싶어요. 감사드립니다.
<굴비 한 마리>
할머니, 이 굴비
제가 공방에서 만든 거예요
할머니 밥맛 없을 때 이것 쳐다보고 밥 많이 잡수세요
손주가 식탁 위에 올라가
천정에 꼭꼭 매달아 놓은 굴비 한 마리
화안한 등불하나 내걸린 식탁에서
내 숟가락은 참으로 긴 끈을 이어주겠구나
-공방에서 만든 굴비를 식탁 위에 매달아 할머니의 밥맛을 응원하는 손주의 사랑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풍경 속에, 시인은 밥 숟가락 든 손에 힘을 얻는 삶에 대한 의욕이 커짐을 느낄 수 있어 다정하고 정겨운 시였다
<한바탕 춤>
흰 눈 덮인 나뭇가지조차
더 검은 춤추는 것 보게 되었을 때쯤
그림자가 싫었다
그러다 내 그림자가
너울너울 검은 춤 추는 걸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그림자보다 더 싫어지게 되었다.
그림자에게서 멀어지려고
멀리멀리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 그림자의 춤도 보이지 않고
사라진 그림자의 춤을 찾아
너울너울 내가 춤추며 그림자가 되어
날기 시작했다.
<내 아득한 꽃잎>
엄마으 장독간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도
나는 아직 그 곳을 품고 있다
그 어떤 여름의 빨알간 기억들
자그마한 동생 손톱같이 피어나던 꽃잎
어여쁜 동생 젖니같이 쏘옥 솟아나던 꽃잎
이젠 장독간도 엄마도 붉는 꽃도 사라지고 없는데
나만 아는 냄새로
나만 아는 가슴에 꽃을 키우고 있다
사라진 건 엄마의 장독간이 아니라 가여운 꿈이다.
<사랑은 물결무늬>
밤이 길다
창문을 열고
캄캄한 세상 속으로 얼굴을 담근다
너만 혼자인 것 같으냐
어둠의 물결이 귓가에서 속살거린다
또한 저 물결 건너
어느 가장자리에선가
그가 내쉰 숨결이 내 귓볼에 와 닿아
찰랑거린다
지금 그도 창을 열고
밤바다에 얼굴을 담그고 있는가 보다
- 고독한 밤에 그리운 마음은 함께 있다는 위로로 스스로를 힐링해가는 영혼의 이야기 같다.
<건방진 기도>
나의 한 처음에 울음이 있었다 울음은 나와 함께 있었는데, 그 울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꽃이 진다 시간의 얼굴이 바뀌는데
슾픔은 울 수 있는 핑계라고 땅땅 못질을 하고 만다.
<피카소를 핑계 대며> 칠십년을 넘게 살았지만
내 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쓰인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살만큼 살았다.
파카소에게고 미안하고
닭고기에게도 미안하고
내 몸에 대해서도 무척 미안하다
<배룡나무 꽃 피우다>
꽃은 오랜 기도처럼 간절하고 붉다
시간을 안고 돌고
바람을 안고 돌고
그의 끝간 데 없는 몸짓은
하늘을 열고 몰아치는 휘몰이
돌아설 곳 없이 나부끼는 허튼 가락이다.
활활 타오르는 배룡나무 뜨겁다.
목마르다
이제 그 간절한 붉은 기도는
하늘을 찢고 쏟아져 내린다.
-붉은 배롱나무를 보며 간절한 기도를 읽는 시인의 심연에 품은 기도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