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4~25장]
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0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11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2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4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15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6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18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1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2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3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4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5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6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7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설교]
오늘 본문은 남 유다의 마지막 두 왕, 여호야긴과 시드기야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째로, 남 유다의 열여덟째 왕, 여호야긴입니다. 여호야긴은 성경에서 고니야, 여고냐, 여고니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왕입니다. 여호야긴은 18세에 왕이 되어 3개월 10일을 다스렸다고 말씀합니다. 사실상 거의 왕으로서의 통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짧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 왕을 평가하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나이가 겨우 18세에, 왕이 된지 겨우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왕이 도대체 무슨 악을 행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여호야긴은 명백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이때 악이란 매번 말씀드리지만 단순한 도덕적 과실을 뜻하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과실이란 말하자면 18세 비행청소년 여호야긴이 무슨 큰 불법을 범해서 교도소에 들어갔더라… 이런 것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사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달리 말해 곧 ‘불신’을 가리킵니다. 불신?! 말 그대로 여호야긴이 살면서 도무지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꿔 말해 여호야긴이 무슨 큰 불법을 범했거나, 무슨 큰 해악을 범했거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신이란 이런 뜻이죠. 여호야긴이 살면서 어쩌다 왕이 되었는데, 왕으로서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무엇인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분을 신뢰하며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 유다를 둘러싼 다른 열방에는 없는, 하나님 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 곧 남 유다의 왕은 반드시 여호와를 신뢰해야 합니다. 여호와만 의존하며, 여호와께 모든 대소노사를 아뢰고 그분을 의탁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남 유다가 처한 상황은 말하자면 어떤 상황입니까? 까딱하면 나라 전체가 패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야긴은 왕으로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껏 자신이 왕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든지, 적어도 왕이 되었다면 그는 소위 ‘하나님 나라의 공인답게’ 여호와를 의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야긴은 어떻게 했습니까? 전혀 그렇게 살지 않고, 다만 자신의 의기를 따라 나라를 망쳐버립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여호야긴 당시, 남 유다는 그야말로 완연한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연대로 치면 정확히 주전 597년 3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호야긴은 당시 예레미야가 예언한대로 바벨론에 산채로 잡혀가 아주 굴욕적으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12~16절 말씀대로 남 유다의 수많은 백성들이 전쟁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게 되지요. 왕 한 사람이 여호와를 불신하게 된 죄악이 이처럼 크나큰 비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당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이러한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이제 남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자신의 꼭두각시 임금으로 세우게 됩니다. 남 유다의 열아홉 번째 왕, 시드기야입니다.
이 왕에 대해서도 성경은 어떻게 평가하느냐? 앞선 여호야긴과 똑같이 시드기야도 역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똑같이 악을 행한다는 것은 앞선 여호야긴 때와 같은 의미입니다. 곧 시드기야가 도덕적으로 무언가 흠결이 있었다?! 큰 불법을 범했다?! 이런 것이 아니라, 단지 시드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그저 자기 의기를 따라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한 마디로 불신이지요.
어떻게 하다 시드기야는 여호와께 악을 행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지난번에 함께 묵상했던 예레미야서에서 아주 자세히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37장을 보면 선지자 예리미야가 시드기야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어떻게 했습니까? 예레미야 37장 21절에서 시드기야는 남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가두고, 예레미야로부터 들려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모두 고의로 귀를 닫았습니다. 말하자며 시드기야는 여기서 어떠한 악을 범했느냐? 말 그대로 불신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고의로 듣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여호와를 불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드기야는 자신이 뜻하는 대로 나라를 엉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잘 되겠지 … 저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중흥하겠지 … 하다가 그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패망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남 유다의 왕들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던 이 죄, 곧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오로지 자기의 의기를 따라 삶을 살았던 불신의 죄가 얼마나 지독하고 무서운 죄인지를 다시금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불신은 사실 오늘날 현대적 용어로 치면, ‘믿지 않음’이라고 볼 수 있지만, 조금 더 일상적으로 번역하자면 ‘자율성’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오로지 인간만 있는 자율성.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오로지 나의 판단만 있는 자율성. 이러한 자율성이 오늘 본문 속 이 두 악한 왕이 빠졌던 패망의 길이었다는 사실을 한번 잘 기억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 안에 이러한 자율성이 조금은 더 고개 숙이고, 하나님 앞에서 순전히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신뢰성 혹은 믿음이 우리 안에 충만하길 위하여 기도하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