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광풍무(161) [광풍성(狂風城)] 천주산에서부터 들려온 소식은 강호 무림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귀광두의 살겁이나 동창제독인 하후장설의 죽음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사건들이 강호 무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천주산 사건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을 가리켜 광풍성이라 했다. 살아남은 천붕십일천마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세력이라고 했다. 과거 천붕회 소속 문파들은 물론이고 신비에 쌓여 있던 녹림수로채마저 광풍성 휘하로 들어갔다고 했다. 지난 오십 년간 재기를 모색했던 칠파 정예 일천이 천주산에서 몰살을 당했고, 어부지리를 노리려 했던 남천벌과 북황련 무인 천여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특히 칠파연합 수뇌들을 처형할 때 보여준 그들의 행위는 전율이 일 정도라고 했다. 칠파연합맹 맹주인 담무광은 사지가 잘린 채 땅속에 파묻혔고, 꽁꽁 언 채 발견되었다는 소문에 세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붕십일천마. 전설이라고 알려진 그들이 드디어 강호를 향해 두 번째 칼을 뽑아든 것이다. 귀광두라는 한 인물 때문에. 과앙! “귀광두!” 거친 폭발음에 이어 비명 같은 고함 소리가 실내를 강타했다. 텅 빈 의자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실내를 꽉 채웠던 의자들은 전부 주인을 잃었다. 만상모씨세가, 철혈패씨세가, 산동만씨세가, 요서모용세가, 산동악가. 북황련 주축이었던 다섯 가문의 가주들이 앉았던 의자는 텅 비어 있다. 얼마나 많은 북황련 무인들이 죽었는지 그 수조차 헤아릴 수가 없었다. 출병을 나갔다 하면 전부 패전 소식뿐이다. 아니, 한 사람에게 전부 패했다. 천붕회를 낚기 위한 미끼로 사용했던 귀광두에게.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귀광두.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먼저 네놈의 광풍성을 잡고 난 다음에 마교는 생각해 보겠다.” 위지천악은 진득한 살기를 사방으로 쏟아냈다. “제갈승후는 어디있나?” “부르셨습니까, 련주님!”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던지 떨어지기가 무습게 제갈승후는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당장 남천벌로 떠나라! 가서 남효운에게 전해라. 이 위지천악이 일대일 통합을 제의하더라고.” “련주님!” 제갈승후는 경악한 얼굴로 위지천악을 쳐다보았다. 합작이 아닌 통합이라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동안 북황련을 구성했던 다섯 가문의 수장들은 전부 죽었지만 아직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그들과 같이 죽어 간 북황련 전력은 오 할에 불과할 뿐이다. 더구나 북황련 최고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북천위지세가는 북천지옥데 두 개 조만 잃었을 뿐 나머지는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통합을 제안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제갈승후의 판단이었다. “물론 광풍성이나 마교에 비해 전력이 밀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부하들의 사기다. 지금 상황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하들의 사기를 올릴 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통합이다. 우린 통합을 함으로써 두 가지를 얻는다. 일거에 강호 제일 세력이 됨은 물론이고 부하들의 사기가 올라간다. “알겠습니다, 련주님!” 제갈승후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남천벌이나 북황련이 가장 필요한 것은 현 난국을 타개할 돌파구다. 실은 전쟁을 생각했었다. 북황련의 숨겨 둔 세력인 불사삼살(不死三殺)을 투입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면 밀리는 국면을 바꿀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위지천악은 남천벌과의 통합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최후 세력은 숨겨 두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전히 위지천악은 한 수 위였다. “통합 단체가 들어설 곳은 섬서성으로 하고 단체 이름은 직접 얼굴을 보며 논하자고 해라. 지금 당장 떠나라!” “존명!” 고개를 숙인 제갈승후는 빠르게 물러났다. 위기의식이 불러온 이 결정이 앞으로 강호 무림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알 수 있다. 남천벌과 북황련의 통합되어 만들어질 단체는 강호 제일 세력이라는 것이다. 축축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 밤을 꼬박 지새운 남궁무의 얼굴은 추레하기 그지없었다. 인마불거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목숨을 바칠 테니 남궁세가를 살려 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백산을 비롯한 나머지 다섯 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편을 쳐다봐 주는 이조차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남궁미령이라는 생각에 그녀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측은한 눈으로 몇 번 쳐다보더니 이내 외면하고 말았다. 아침이 오면서 벌판은 부산해졌다. 잠을 자던 무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 둘 인마불거로 모여들었고, 곧이어 기다란 행렬을 이루었다. “출발한다!” 일행이 전부 자리하자 백산은 멍에를 지고 인마불거를 끌기 시작했다. 이제는 십팔호위로 변한 십팔나한은 반야심경을 낭송하며 백산을 따랐다. 눈앞으로 지나가는 삐거덕거리는 인마불거를 남궁무는 망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광풍성 무인들은 남궁세가를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씁쓸한 얼굴로 남궁세가를 쳐다보며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왜 그냥 가십니까? 절 죽이고 가십시오! 절 죽이고 가란 말입니다!” 떠나는 백산 일행을 향해 남궁무는 고함을 내질렀다. 죽을 각오를 하고 왔는데 말조차 걸어 주지 않는다. 아니, 전염병 환자 보듯 피해 가고 있다. 차라리 욕을 할 것이지. 침을 뱉을 것이지.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날 죽여주란 말입니다! 날 죽여주시오!” 바닥에 머리를 찍는 남궁무의 귓전으로 차가운 전음이 들려왔다. [멍청한 놈!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이더냐? 넌....... 죽일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죽여 봐야 손만 더럽히기 때문에 그냥 가는 거란 말이다. 잘 생각해 봐라. 너를 비롯한 남궁세가가 해야 할 일이 무언지. 무엇을 해야 이들의 분노를 잠재울 건지 잘 생각해 보란 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전음이었다. 남궁미령의 전음을 끝으로 백산 일행은 남궁세가에서 멀어졌다. “사진악, 배가 있는 곳이 어디냐?” 무거운 침묵을 깨고 소살우가 입을 열었다. “안경(安慶)!” 사진악은 짤막하게 말했다. “그동안 돈은 좀 모았냐?” 인마불거 뒤쪽을 흘끔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해진 옷, 해쓱한 얼굴, 그리고 추위에 얼어붙은 광풍성 무인들은 패잔병의 모습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나마 견딜 만했다. 일행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배고픔이었다. 하루에 지급되는 음식이라고 해봤자 손바닥 반만 한 육포가 전부다. 무공의 여부 또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육포는 한 끼 식사로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일행은 그걸로 끼니를 때우며 거의 두 달을 견디고 있다.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고 있는 거였다. 소림사의 멸문에 대한 책임과 백산을 공격했던 죗값을 그들은 그런 식으로 갚아 나가고 있는 거였다. “먹고살기가 힘들어 광풍성에 빌붙어 살러 가는 거 보면서 물어?” “그래도 일단 음식 장만은 시켜라. 저 자식들 영양 보충은 시켜야지, 저러다 남경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겠다.” “쿡! 난 아예 굶겨 죽이려고 작정을 한 줄 알았네. 이미 거령을 보냈다네. 그런데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슬쩍 미소를 물던 사진악은 의아한 얼굴로 소살우를 보며 물었다. 지금껏 생각 없이 그를 보았고 어떤 느낌도 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다. 내공을 전혀 운용하지 않고 걷고 있는 게 아닌가. 보통 사람이라면 사진악이 지금처럼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반노환동을 겪은 그는 마음이 먹으면 내공이 절로 운용되는 경지에 올라 있다. 요컨대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공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한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소살우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니, 소살우뿐만 아니라 일휘나 섯다, 모사까지도 소살우처럼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이다.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다. 지금 상태로 계속 가면 육체의 기능이 전부 죽고 만다고 해서.” “젠장! 하여간 사람 기죽이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소살우를 빤히 쳐다보며 사진악은 투덜거렸다. 녀석을 보고 있자니 돈 많은 부자가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먹을 게 없다고 불평하는 것 같다. 남들은 육체를 내공 활동에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녀석들은 내공 활동을 죽이고 육체를 살리려 하고 있다. 녀석들의 발전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사진악의 놀라움은 시작일 뿐이었다. 저녁 무렵에는 인마불거의 마부인 섯다와 모사를 따라 이천이 넘는 이들이 삼천 배를 올리는 광경에 기절할 뻔했다. 그리고 삼천 배를 끝낸 섯다와 모사의 고함 소리는 사진악을 공황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땀이다! 드디어 땀이 난다고!” 모사와 섯다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땀! 양민들이나 일반 무사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섯다와 모사에게 있어 땀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내공에 의존하여 움직이던 몸이 급기야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인 것이다. “씨발! 우리 몸에서 흘러나온 땀 맛 좀 보자.” 감격한 얼굴로 섯다는 모사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훔쳐 입안으로 가져갔다. “나도!” 이번엔 모사였다. 손바닥 가득 섯다의 땀을 훔친 모사는 혀로 슬슬 핥아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바로 이 맛이라고!” 두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두 사람의 고함 소리에 오히려 놀란 사람은 삼천 배를 올리고 철퍼덕 앉아 있던 팽가를 비롯한 문파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놀란 얼굴로 섯다와 모사를 쳐다보았다. 무려 두 달 동안 두 사람 뒤에서 삼천 배를 올렸지만 단 한 번도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저 경건한 얼굴로 정중하게 절을 올렸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서로의 땀을 핥아먹는 변태적인 행위를 하면서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문득 두 사람이 돌아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생각을 맨 먼저 입에 담은 사람은 그나마 일행과 가장 친한 유몽이었다. “사숙님!” “왜 그러냐. 유몽아?” 해냈다는 생각에 다소 여유가 생겨서인지 섯다는 살수 대신 유몽이란 이름을 부르며 그를 쳐다보았다. “땀이 나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입니까?” 파안대소를 터뜨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다소 황당한 얼굴로 유몽은 물었다. “유몽아, 너 같으면 말이다, 오십 년 만에 처음 땀이 났는데 기쁘지 않겠느냐? 오십 일도 아니고 오 년도 아니고 장장 오십 년이란 말이다.” “물론 그 기분이야 능히 짐작하지요. 제가 잃었던 무공을 찾았을 때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무공이 아니라 땀 아닙니까. 조금만 움직이면 그냥 나는 땀 말입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변태 짓을 할 정도로 땀이 대단한 거냐, 이 말입니다.” 여전히 답답한 듯 유몽은 물었다. “너 같은 잔챙이는 알 수 없는 오묘한 의미가 땀에 들어 있느니라. 그러니 너무 알려고 하지 말거라. 그러다 다치면 넌 고자가 되는 수가 있다.” 껄껄거리며 웃던 섯다는 슬쩍 눈을 돌려 화정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해온 삼천 배 영향으로 체력이 좋아졌는지 화정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 처음처럼 쓰러지는 일 없이 잘 버텨 냈다. “괜찮으냐?” 화정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섯다는 부드럽게 물었다. “네, 상공!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이었나 보네요.” 화정은 면포를 꺼내 섯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음마!’ 섯다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어냈다. 거칠게 내쉬는 그녀의 숨결을 따라 상하로 요동치듯 움직이는 가슴을 보자 오락 쥐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던 것이다. 더하여 아래 그곳에서 간지러움 같은 기묘한 기운이 이는 듯했다. “상공!” 화정은 놀란 얼굴로 섯다를 보았다. 섯다의 호흡이 조금 거칠어졌던 탓이었다. 그것은 건강한 사내만이 발산할 수 있는 욕정이었다. “그래! 그동안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신 것 같다. 이게 전부 네 덕이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상공께서 정성을 다해 빌었기에 소원을 들어 주신 겁니다.” “아냐, 내가 정상인으로 돌아온 건 전부 네 덕이다.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아니옵니다, 상공.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허허, 아니라니까.” ‘조금 전에는 변태 짓을 하더니 이젠 완전히 돌아 버렸구먼.’ 섯다와 모사를 번갈아 쳐다보던 유몽은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처음 만날 때부터 느낀 점이었지만 이들은 천하제일인인 천붕십일천마가 맞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들도 아니고, 나이 팔십이 넘은 노인네들 아닌가. 그런 그들이 어린 처자들을 데리고 닭살이 팍팍 돋는 느끼한 말들을 능숙하게 뱉어내고 있다. 그런 유몽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섯다와 모사는 두 여인을 향해 앞으로 계획을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내일부터는 하체 단련을 위해 마보(馬步)를 연습해야겠다. 보약이 어쩌고 해도 정력에 가장 좋은 약은 운동 아니냐. 그런 다음 뜀박질도 좀 하고. 같이 하겠느냐?” “물론입니다, 상공. 상공이 하시는 일인데 소첩도 당연히 따라야지요.” “고럼, 당연히 그래야지. 부부는 모르지기 일심동체가 되어야 하는 거야. 우리 둘이 합심해서 자식도 많이 낳아 보자. 힘닿는 한 말이야.” “켁!” 결국 끊임없이 이어지는 두 사람의 느끼한 언변에 유몽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비명을 질렀던 진정한 이유는 비단 늙은 변태 노인의 느끼한 언변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천 명을 데리고 경건하게 올렸던 삼천 배의 비밀을 이제야 알게 되었던 탓이었다. 그들은 반응이 없던 아랫도리를 고치기 위해 삼천 배를 했던 것이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수천 명의 무인들은 두 사람을 따라 삼천 배를 올렸다. 온 정성을 다해. “전부 속았어. 여기 있는 전부 속은 거라고.” 급기야 월영은둔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유몽은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자식! 모든 게 정상인 네 녀석이 우리의 고통을 어찌 알겠느냐. 남자란 말이다, 그게 고장 나는 순간 끝장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놈아.” “형님!” 유몽을 쳐다보며 환하게 미소를 짓던 섯다가 밝은 목소리로 백산을 불렀다. “ 저 아이들도 이젠 반성할 만큼 했고, 부처님도 용서했을 겁니다. 이제 그만 쉬게 해줍시다.” “.......?” “아, 그러니까 여기서 밤을 지새우지 말고 안경으로 가자는 말입니다. 저놈들이야 상관없지만 무공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도 생각해야 할 것 아닙니까.” 백산이 말없이 쳐다보자 섯다는 어색한 얼굴로 팽가 가솔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가!” “네?” “제수씨랑 먼저 가라고.” “형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쇼? 나는 순전히 저 아이들이 추울까 봐, 그러니까........ 에이, 낼 가면 될 것 아뇨. 씨팔, 지는 애까지 생겼으니까 상관없다, 이 말인데 오십 년간 참은 놈도 생각은 해줘야 할 거 아냐?” 인마불거 불상 곁으로 털썩 드러누우며 섯다는 투덜거렸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하는 순간 자꾸만 목이 탔다. 물을 마셔서 해갈되는 그런 갈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수천 쌍의 눈이 있는 곳에서 화정을 안고 산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시팔, 저놈의 별은 언제 떨어지냐.” 눈을 찌를 듯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섯다와 모사는 인마불거 위에서 별을 헤아리며 정상으로 돌아온 첫날밤을 보냈고, 둘째 날도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남경으로 향하는 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인 탓에 녹림수로채가 준비한 배에서도 두 사람은 성능 시험을 하지 못했다.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내자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두 사람은 힘을 받기 시작한 아랫도리를 붙잡고 하릴없이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야 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반역의 도시라 낙인찍혀 죽음의 도시로 변했던 남경이 다시 활기를 되찾은 건 삼 개월 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과거 남경왕부가 있던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남경은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은 남경을 장악하고 있던 금의위와 동창무인들이었다. 남경왕 주홍의 생가가 있던 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을 찾아가며 돕지 못해 안달을 하곤 했다. 그들의 변화는 상인들에게 이어졌고, 곧 남경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금일 남경은 온통 도검을 소지한 수많은 무인들로 들끓었다. 도검을 소지한 무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아나 남경 수비군에서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내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도검을 소지한 무인들이 입고 있는 옷 때문이었다. 광풍(狂風). 가슴 한가운데 선명하게 새겨진 그것은 광풍성 무인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던 것이다. “혈뇌문(血雷門) 문도는 서둘러라! 문주님이 오고 계신다!” “서둘러라! 성주님이 오신다!” 선착장을 정리하는 수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지르는 두 사람. 그들은 광풍성을 짓고 있던 철웅과 광치였다. 붉은 두건을 머리에 쓴 철웅과 검은 옷을 걸친 두부류의 무인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선착장을 기준으로 이 열로 늘어섰다. 혈뇌문 문도 이백 명과 하낙에 살던 걸레 일행의 가솔 이백 명까지 합쳐도 사백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몸에서는 태산과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오시는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수십 척의 배를 보며 철웅은 감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파면신개 어르신을 복건성에 두고 자신은 강소성으로 왔다. 혈뇌문 문도들을 데리고 남경으로 오기 위해서였다. “엄청나군!” 배의 수가 삼십여 척이나 되자 광치는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배 한 척에 백여 명씩만 타도 삼천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수가 아닌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장강을 따라 내려오던 배는 장항에 도착했고, 그곳으로부터 무인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형님!”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무인들을 보며 철웅은 광치를 쳐다보았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얼마나 많은지 장포는 배에서 내린 무인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행렬을 따라 뒤쪽으로 계속하여 이동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를 수용하기에 장포는 너무 좁았다. 단 한 척의 배를 제외한 모든 배에서 내린 무인들은 장포를 기준으로 정렬했다. 그리고 모든 일행은 마지막 한 척의 배를 주시했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밖을 흘끔 쳐다보며 백산은 주하연을 향해 물었다. 지금 상황도 그녀의 머리에서 나온 게 분명했다. “두 번째잖아요. 그때 제가 했던 말 기억해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턱을 바짝 당기고, 가슴을 펴고, 팔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선은 전면을 향하라고 했잖아.” “맞아요, 오빠. 그런 다음 간밤에 암기한 것을 외치면 되는 거예요.” 주하연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일 년이 넘게 지났다. 그를 아버지게 소개시켰던 이 자리에 다시 섰고, 이번에는 소령과 같이 왔다. 그때는 자신이 그를 데리고 내렸지만 이번에는 그 혼자 가야 한다. 광풍성의 성주로서. “가세요.” “니미럴!” 낮게 욕설을 뱉어 낸 백산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들을 단죄하고 밧줄을 목에 걸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턱을 바짝 당기고, 가슴을 펴고, 팔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선은.......’ 내심 중얼거리며 백산은 선실을 나서 백의 선수에 섰다. “성주님!” 우렁찬 함성 소리가 장항의 물살을 뒤흔들었다. 일행의 맨 앞에는 석두 일행과 사진악, 그리고 남궁미령이 무릎을 꿇었고, 그 뒤로 각 문파 수뇌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무인들이 백산 한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천여 명의 무인들. 그들을 쳐다보는 백산의 눈에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간밤에 연설문을 죽도록 암기했다. 위신이 서려면 그 정도 말은 해야 한다며 설련과 하연이 합심하여 만들어 준 연설문이었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무릎을 꿇고 있는 저들이 고맙고 또 자랑스러웠다. [여러분!]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백산을 향해 주하연은 전음을 보냈다. 전날 밤에 적어 주었던 연설문의 첫마디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백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열기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오빠!] 주하연은 답답한 얼굴로 재차 백산을 불렀다. 바로 그 수간, 백산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어들 나라!” ‘아이고, 미치겠네! 다 까먹었잖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첫마디에 주하연은 초조한 얼굴로 주시했다. 당혹스런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백산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난 여기 있는 여러분보다 배움이 짧다. 여기 있는 여러분보다 머리도 나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약속할 수 있다. 여러분이 광풍성을 떠나지 않는 한 결코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광풍성이 천하를 정복할 때까지 나는 여러분들의 선두에 있을 것이며, 광풍성 세상이 될 때까지 나는 천하와 싸울 것이다! 앞으로 몇 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 강호 무림엔 광풍성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 묵안혈마 백산은 목숨을 걸 것이다. 천을 죽여야 한다면 천을 죽일 것이고, 만을 죽여야 한다면 만을 죽일 것이다. 천하를 없애야 한다면 천하를 없애 버릴 것이다!” 자신의 몸에서 붉은 혈기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백산은 느끼지 못했다. 광혈지옥비가 전부 튀어나와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 있었지만 백사은 알지 못했다. 다만 열기 가득한 눈으로 광풍성 무인들을 보며 고함을 지를 뿐이었다. “나를 따라 광풍천하를 만들 자는 외쳐라! 광풍천하(狂風天下)! 오른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백산은 광포하게 고함을 내질렀다. “광풍천하!” 사천 명의 무인이 내지르는 함성이 천지를 강타했다. 무인들의 함성을 받은 물살이 견디지 못하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광풍성(狂風城)!” 백산은 재차 소리를 질렀다. “광풍성! 광풍성! 광풍성!” 오 장 높이로 치솟아 오른 물살이 아침 햇살을 받아 무지갯빛을 사방에 뿌렸다. 그 사이로 광풍성이란 함성이 바람처럼 파고들었다. <7권 -종->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읽고있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즐독 ㄳ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솟아라...광풍성이여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즐독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