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남북공동성명은 철저한 속임수였다.
1972년 7월 4일 이른바 '7.4남북공동성명'(이하 7.4성명으로 약기)이 발표되었다. 이 7.4성명은 '사상과 이념 ·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할 것'과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할 것', 그리고 '남북 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 · 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 도발을 안 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바.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온 민족>앞에 엄숙히 약속한다'고까지 맹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7.4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생각하기를 이 약속으로 남북 간의 전쟁의 불안과 위협은 말끔히 가셨고 따라서 한반도에는 이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온 것으로 알고 전국이 순식간에 술자리로 변하여 온 국민이 통행금지도 아랑곳없이 통음 · 광조로 그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온 세계 자유국민들까지도 지난 25년에 걸친 미움과 대결을 이성과 동족애로써 극복한 우리의 슬기를 찬양하면서 진심으로 한민족의 앞날을 축복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온 국민과 세계가 기뻐하고 환영한 7.4성명의 약속이 그 후 어찌 되었는가.
1973년 3월에 제주도 우도와 전라남도 완도에 무장공비가 침투해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6월에는 휴전선 몇 군데서 공산군측의 까닭 없는 총질로 국군 몇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7월에는 휴전선 일대의 공산측 공성능 스피커가 우리에 대한 비방방송을 다시 시작하더니 8월 28일 북한측은 온 민족 앞에 그처럼 다짐하고 맹세한 대화의 길을 마침내 일방적으로 끊고 말았다.
이어서 1947년 8월 15일에는 북한측이 하수인 문세광으로 하여금 이 나라 대통령을 저격케 하였고, 얼마 후에는 휴전선 일각에서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1976년 8월 18일에는 휴전선 도끼살인만행사건을 저지른 북측이 사건 직후 7.4성명의 약속에 따라 서울과 평양 사이에 가설되었던 전화마저 저들이 끊어 버림으로써 한반도의 사태는 7.4성명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도 철저한 속임수이다.
1990년대로 접어든 지 얼마 안 되어 이 나라 '반공교육'의 불길이 갑자기 꺼져 버렸다. 마치 북한의 공산주의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우리가 종래의 '반공'자세를 백지화해도 좋을 만큼 달라지기리도 한 것처럼 바뀐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 정부가 1991년 12월 13일에 발표된 이른바 '남북기본합의서'(이하 '합의서'로 약기함)를 글자풀이로 해석하여 잘못 믿고 공산주의에 대한 정책 방향을 경솔하게 바꾼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절대로 안될 극히 중대한 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합의서'는 극히 고도의 전문가가 아닌 문외한이나 자칭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아무 흠도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만일 이대로 실천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문서라고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합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제1장 1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동 3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동 4조)
뿐만 아니라 이 '합의서'에 이어서 1992년 4월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저들의 헌법을 고쳐서 남침조항(전문 제5조)을 삭제해버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를 보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크게 기뻐하며 환영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이 '합의서'의 약속은 지켜졌는가.
아니다.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그 해 여름서부터 저들은 휴전선을 비롯한 육로를 통하여 수차 무장간첩을 남파하였고 바다를 통하여 잠수정과 간첩선을 침투시켰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서해에서 무력 남침을 자행하는 등 저들의 행동은 '합의서'의 약속을 완전히 무시하고 파괴하는 침략행위로 일관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합의서' 이후의 사태는 '7.4성명' 이후의 사태와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남북 간에 굳건한 약속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약속도 없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으며 따라서 저들의 대남 약속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즉 하나의 곡두 ·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속임수이고 손자(孫子)의 이른바 궤도(詭道)인 것이다.
그렇다면 '7.4성명'과 '합의서'의 약속이 한낱 곡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확고한 근거가 있는가.
물론 있다.나는 공산주의 문헌에 근거 없이 내 말로 공산주의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을 운용하는 원칙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불포기의 원칙이다.
레닌이 1906년 9월 30일자로 쓴 '빨치산전쟁'이란 글에 보면 이 원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어떠한 투쟁형태도 포기한다는 따위의 약속은 절대로 안한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7.4성명'과 '합의서'가 <안 한다> <안 한다> 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약속이며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이고 곡두이고 환영이고 속임수인 것이다. 나는 '7.4성명'과 '합의서'가 발표된 다음 날부터 전국을 뛰면서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폭로 ·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합의서'의 약속이 실재하는 것으로 환각하고 있으며 현정권도 공산주의자들이 '합의서'의 약속을 이행해줄 날을 아직도 가슴 조이면서 <햇볕정책>에 매달려 기다리고 있다.
둘째는 임기응변의 원칙이다.
여기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투쟁형태의 문제를 무조건적으로 역사적으로 고찰할 것을 요구한다. 이 문제를 구체적인 역사적 정세 밖에 두는 것은 변증법적유물론의 A·B·C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위와 같음)
'당이 그 활동에 있어서 비타협적인 혁명성과 최대한의 즉응력 및 기동능력과를 교묘하게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스탈린 : 독일공산당의 전도와 볼셰비키화에 대하여)
'혁명을 지향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의 성공은 … 하나의 투쟁형태로부터 다른 투쟁형태로 급속한 그리고 불의의 변화에 따라서 즉석으로 옮겨갈 수 있는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소련공산당강령, 제1부 제5장)
즉 공산당이 혁명에서 이기려면 정세가 급속하게 그리고 예측할 수 없게 변하더라도 거기에 맟주어서 즉석으로 투쟁형태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한 마디로 말해서 정세가 바뀌면 전술도 재빨리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원칙 하에서는 저들이 필요에 따라 적과 어떤 약속을 했다 하더라도 정세가 변해서 그 약속이 저들의 혁명 목족에 방해가 될 때는 지체 없이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어떤 행위도 ㅡ 예컨대 살인이나 양친의 밀고라도 공산주의의 목적에 도움이 되면 정당화된다.'(공산주의자신조, 제10항)고 믿고 있다. 하물며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 우린하는 것 쯤이랴.
현대사상연구원 윤원구 저 <내가 마르크스를 죽였다>에서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