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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62)
===8권 시작====
[조급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사천의 무인들 앞에서 광풍천하를 만들겠다고 공표를 했고, 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백산의 다음 행보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십팔나한을 시켜 배에서 인마불거를 내린 뒤, 다시 그것들을 끌기 시작했다.
광치와 철웅을 비롯하여, 백산을 마중 나온 이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행적은 이미 소문으로 들었다. 하지만 저 모습일 줄은 주구도 생각지 못했다. 묵안혈마 백산, 아니 천하제일인으로 알려진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스스로 멍에를 지고 맨 선두에서 마차를 끌다니.
“저 인간이 저렇게 머리가 좋았나? 아니면 주모 두 분이? 아냐. 하늘같은 남편에게 저런 일을 시킬 리가 없지. 하여간 꽁수는.”
꽁수라고 말은 했지만 광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초연한 얼굴로 백산을 쳐다보는 천붕회 무인들. 그들은 이미 하나였다.
바로 저 모습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을 것이다.
“걸레야!”
“불렀습니까, 두목!”
엄숙한 분위기 탓에, 걸레는 감히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조그맣게 대답했다.
“사람을 다스리는 건 말이다, 저래야 한다. 먼저 마음을 휘어잡고 그 다음에 힘을 보이는 거다. 그런 면에서 대장은......”
“멋진 놈이라 이 말 아뇨.”
“맞다, 정말 멋진 놈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대장에게 놈이란 말은 절대 쓰지 마라. 대장이란 말도 안 되고. 무조건 성주님이다. 광풍성의 주인.”
“나도 마지막으로 한번 불러 봤소.”
걸레는 인마불거를 쳐다보며 어깨를 활짝 폈다.
장포를 떠난 인마불거는 남경 도심을 가로질러 천천히 이동했다. 인마불거의 소문 때문인지 도검을 소지한 수천 무인들이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에는 많은 양민들이 나와 있었다.
인마불거의 불상을 향해 합장하는 이들도 있었고, 마차 위에 시주 돈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마불거 덕에 남경이 사람 사는 도시로 변했기에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도심을 지난 인마불거는 해가 서편으로 기울기 시작할 즈음 자금산에 도착했다.
“여긴가?”
주변을 빙 둘러친 오 장 높이의 옹성(甕城)을 올려다보며 백산은 낮게 중얼거렸다. 좌우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옹성은 전부가 석재였다.
그리고 두 옹성이 만나는 곳 아래에 거대한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광풍성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동천문(東天門)이라 이름 지어진 문이었다.
철문 가득 새겨진 바람 문양은 금방이라도 폭풍이 불어나올 듯했다.
“광풍성은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을 만들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정문으로 했고, 자금산 쪽은 북천문(北天門)입니다.”
뒤따라오던 광치가 동천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광풍성을 세울 때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이 옹성과 대문이었다. 그런 다음 안쪽 건물을 완성해 나갔던 것이다.
“대문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올려라!”
성문 위 누각을 향해 고함을 지르자 철문이 위쪽으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잔뜩 무게를 잡는 광치를 보며 백산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형님, 그만 들어갑시다! 앞으로 질리도록 볼 텐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그 참에 광치 뒤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여 떨어질세라 화정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섯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섯다 뒤로 모사와 소살우 그리고 일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편을 주시하고 있었다.
“알았어, 새끼들아!”
인상을 확 긁어 댄 백산은 인마불거를 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밖과 달리 안쪽은 아직 공사 중인 곳이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는 백산 곁으로 다가서며 광치가 재빨리 말을 건넸다.
“성주님을 비롯한 각주들의 처소만 완공된 상탭니다. 나머지 건물들은 한 달 정도 더 있어야 할 듯 보입니다.”
광풍성을 구성하는 건물들은 한가운데 있는 오층 건물을 기준으로 방사형을 이루고 있었다.
“맨발! 너 죽고 싶냐? 지금 저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두 달 동안 제대로 잠 한숨 못 잤다. 그런 사라들 앞에서 설명하고 싶냐고!”
여전히 광풍성 내부 설명에 열을 올리는 광치를 향해 섯다가 고함을 내질렀다.
“대장! 저 노인네 왜 저러냐?”
다급한 얼굴로 자꾸만 재촉하는 섯다를 빤히 쳐다보던 광치가 귀엣말로 슬쩍 물었다.
“오십 년 만에 발정기가 왔나 봐,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컥! 아미타불!”
곁에 있던 광자를 비롯한 십팔나한들이 저도 모르게 불호를 읊었다. 아무리 형님이라지만 발정기라니. 광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섯다의 약을 올리고 싶어 백산에게 물었던 것인데, 그가 그렇게까지 말할 줄이야. 찔끔한 얼굴로 뒤편의 동정을 살폈다.
아무래도 한 방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섯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오지 않았다.
다만.
“들었으면 빨리 처소로 가야지, 뭐 하고 자빠졌냐, 새꺄!”
살기를 가득 머금은 소리가 귀를 때렸다. 화내는 사람은 섯다 혼자인 것 같은데 살기는 네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끄응! 날건달들! 따라들 오쇼.”
그들이 내뿜는 살기에 온몸이 따끔거리자 광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맨발!”
“말하쇼!”
“우리 같은 사람을 뭐라 부르는지 알아?”
“조금 전에 대장이 한 말 못 들었소? 발정 난 수컷이라 하지 않았소.”
광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천이나 되는 병력이 광풍성에 들어오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아니, 광풍성이 처음으로 사람을 받는 의미 있는 날이라 할 수 있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사람들이기에 눈물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감동 어린 얼굴은 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그의 기준으로는 분명 그랬다.
“그건 임마, 대가리에 똥만 찬 무식한 것들이 하는 말이고. 우리처럼 고상한 사림들이 하는 말로는 기인(奇人)이라 부르는 거야. 왜 있잖냐.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고, 허술한 듯 보이면서도 실하게 보이는 인간들 말이야.”
“그러니까, 두 분이 그렇다는 말입니까?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당연히 이해가 안 되겠지. 우릴 이해하면 너도 기인 반열에 올라서게 되는데. 생긴 것부터가 차이가 나잖아.”
“전 별로 기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광치로 살다 죽을 랍니다. 아랫것들이 노망났다고 비웃는 걸 어떻게....... 헉!”
갑자기 밀려오는 스산한 기운에 광치는 몸을 움츠리며 전면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의 엉덩이를 향했던 것은 섯다의 발.
광풍무를 통해 무공이 강해졌다지만, 천붕십일천마가 아닌 여타 무인들 앞에 섰을 때 이야기다.
퍼억!
광치의 엉덩짝에서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크아악!”
허공을 날아가는 광치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시작에 불과했다. 섯다는 바람처럼 광치의 뒤를 따르며 양발을 계속해서 차 댔다.
“그러니까 넌 장가를 못 간 거야! 오십 년 전에는 선배 대접을 너처럼 하지 않았어, 임마. 우린 선배를 하늘처럼 받들었단 말이야.”
마치 공깃돌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였다.
섯다고 오른발로 차 주면 모사가 받아서 몇 번 튕기다가 다시 차 주고, 섯다는 그를 재차 받아 찬다.
그 모든 일이 오직 발로만 이뤄지고 있었다. 화정과 유화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철웅을 비롯한 혈뇌문 일행은 기절할 듯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같이 일을 했으니 광치의 무공 정도를 모르지 않는다.
적어도 사황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무인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를 어린애 다루듯 하는 두 사람의 무공은 경악 그 자체였다.
‘쯧쯧! 바보 같은 놈, 저들에 비하면 주공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란 걸 모르고.’
두 사람 발에 차여 연신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오가는 광치를 쳐다보던 유몽은 낮게 혀를 찼다. 기인인지 귀인(鬼人)인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구천마검 석두를 뺀 나머지 네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성정을 가졌다.
측은한 얼굴로 광치를 쳐다보고 있자니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깍듯이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형님!”
간신히 풀려난 광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넙죽 절을 올렸다.
“그래?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구나. 안내해라!”
아마에 흐르는 땀 때문인지, 아니면 광치의 절 때문인지 모르지만 섯다는 만족스런 얼굴로 전면 건물을 쳐다보며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형님!”
우렁차게 고함을 지른 광치는 건물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잠시 후, 다섯 사람의 신형이 건물 안으로 빨리듯 사라지자 멈춰섰던 행렬은 다시 이어졌다.
“무계야!”
섯다와 모사의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백산은 조용히 무계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방장 사조님!”
“저들이 이상하게 보이느냐?”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인 면을 보는 것 같기도......”
무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의 기행보다, 사조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일까 하는 게 더 의문이었다.
“맞다. 저들은 심검을 터득하고, 반노환동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사람들이지.”
“......”
무계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반노환동, 독성지체. 그 두 가지만 놓고 보지면 그들은 이미 인간이라 볼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
무계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렀다. 그제야 백산이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달았던 것이다.
“알겠느냐?”
“네, 사조님. 처음을 잊지 말라는 말 아닙니까.”
“맞다.”
빙그레 미소를 지은 백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들이 반노환동을 했던 이유는 본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공이 강하다고 자랑한 적도 없고,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강한 무공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앞으로 지어질 소림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지금을 잊지 말고, 주춧돌 놓을 때를 잊지 말라는 말이다. 소림은 소림일 뿐이다. 무림 최강자가 된다고 해서 소림이 황실로 변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명심하겠습니다, 방장 사조님!”
무계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빠! 대단해요.]
백산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주하연은 전음으로 말하며 눈을 찡끗했다.
[이 녀석아, 나이가 몇인데. 일단 들어가자.]
“철웅아! 저들에게 숙소를 분배하라. 건물이 다 지어질 때까지는 당분간 불편하게 살아야지 별 수 없겠구나.”
“알겠습니다, 문주님!”
고개를 숙인 철웅은 뒤따라 들어오던 무인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무인들을 쳐다보던 백산의 시선이 곁에 있는 광자에게 향했다.
“광자야, 저 불상은 동천문 위 누각에 가져다 놓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방장 사조님!”
드디어, 지난 석 달간 중원 동부를 남북으로 횡단했던 불상이 인마불거에서 내려졌다.
불상을 향해 잠시 합장을 하던 십팔나한은 백산이 말했던 곳을 향해 그것을 옮겼다.
“그런데 저 건물 배치는 눈에 익다?”
각 건물로 들어가는 고아풍성 무인들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백산은 주하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혈뇌각이란 현판이 걸린 오 층 건물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건물의 배치가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졌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보았던 배치가 분명했다.
“오빠가 절 구하러 왔을 때 그 진(陣)이에요. 한빙쇄혼진(寒氷碎魂陣)!”
주하연은 아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와 두 번째 인연이 시작된 그날. 죽음이 임박했던 그때, 그가 나타난 것이다.
환한 미소와 함께.
광풍성에 구축된 광풍군림대진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빙쇄혼진을 기준으로 주변엔 환영미로진과 대혼진 등,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진을 중첩하여 설치했다.
그 진의 매개체는 지금 지어지고 있는 건물들이다.
해진법을 알지 못한다면 광풍성에 속한 무인들이라 할지라도 결코 통과할 수 없는 철옹성을 주하연이 만들어 버린 거였다.
혈뇌각 근처까지 다가선 주하연은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대문이 활짝 열린 혈뇌각 안쪽으로 조그마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과거 거처였던 봉선각이었다.
“저곳이......”
망연한 눈으로 봉선각을 주시하던 주하연은 백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남아 있으면 놔두라고 했는데 다행이다.”
“오빠!”
감격한 주하연은 백산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설마하니 봉선각이 남아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군주 언니!”
봉선각 문이 활짝 열리며 조그마한 소녀가 뛰어나왔다.
“홍아야!”
전면에서 달려오는 소녀의 모습에 주하연은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과거 이곳을 탈출할 때 반시웅의 손에 죽은 줄만 알았다. 그런데 홍아가 아직 살아 있었다.
눈물을 흘리던 둘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다행이네요.”
둘을 쳐다보던 설련이 혼잣말처럼 말해다.
아버지가 살아오고, 하나뿐인 친구마저 돌아온 주하연이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라도 가족이 있어야지, 전부가 다 없으면 너무 쓸쓸하잖아.”
백산은 설련의 손을 꼭 쥐었다.
“맞아요, 그만 들어가요.”
설련은 활기차게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잊어야 할 분들이다. 지금부터는 광풍성에, 이 집에 적응하고 살아야 한다. 백랑의 부인으로, 자식을 낳아 키우며.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광치가 다가오며 투덜댔다.
“이런 노망난 노인들 때문에, 내가 먼저 소개를 시켰어야 했는데.”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두 소녀를 보며 광치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그가 주하연에게 준비한 최고의 선물이 바로 홍아였던 것이다.
한참 공사 준비를 하던 와중 만난 소녀가 홍아였다.
처음엔 공사판에 일을 하러 왔는가 싶어 이야기를 해 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신분이 주하연의 몸종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봉선각 관리를 맡겼다. 과거 남경왕부 시절과 같은 모습으로 꾸미기 위해서였다.
“내가 집을 다시 꾸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광풍성에서 가장 좋은 자재는 전부 저곳으로 들어갔어. 다른 건물들은......”
으스대듯 주변을 둘러보던 광치는, 이편을 쳐다보는 시선과 마주치는 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섯다와 모사가 들어갔던 건물을 흘끔거리던 일휘였다.
“맨발! 너 잠깐 이리 와 봐!”
‘니미럴,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전부 맨발이래. 신발을 신던지 해야지.’
광치는 내심 욕설을 뱉어냈다. 조금 전 건물로 들어갔던 두 노인네와 같은 족속일 터인데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말은 내심과는 전혀 달랐다.
“넵! 형님!”
부동자세를 취하며 우렁차게 대답한 광치는 일휘 앞으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일휘와 소살우 앞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명령만 내리면 바로 시행하겠다는 얼굴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조용히, 조용해라, 임마! 저기 말이다.”
혈뇌각 안으로 들어가는 백산 일행을 흘끔 쳐다보던 일휘가 낮게 물었다.
“그놈들 어떻더냐?”
“무슨 말씀이신지.....”
무얼 묻는지 왜 모를까. 하지만 두 사람에 이어 일휘까지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했다. 비단 그뿐이라면 의아한 얼굴을 하지 않을 터였다. 곁에 있던 소살우조차 잔뜩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죽고 싶냐, 맨발! 내 다리는 철(鐵)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일휘는 슬쩍 바짓가랑이를 들어올렸다.
“아, 알겠습니다, 형님! 하지만 바로 쫓겨나는 바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휘 바짓가랑이 쪽으로 시선을 주었던 광치가 빠르게 말했다. 붉은 광채가 일렁이는 철각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만일 저 다리로 조금 전처럼 맞는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익혔던 외공이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절로 입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일휘 형님, 이 자식은 아직 조직의 생리를 모르는 모양인데, 교육을 좀 시켜야겠소.”
광치를 빤히 쳐다보던 소살우가 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아이고 형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가서 두 분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 두 눈에 확실히 담아오겠습니다.”
[쯧쯧! 덩치가 아깝다, 이놈아. 나잇살이나 처먹어서 그게 뭐냐?]
소살우 등 너머 허공에 머물고 잇던 유몽이 광치에게 전음을 보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그동안 소살우를 따라 오면서 당했던 고통을 광치가 대산하자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자꾸만 입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거기서 뭐하쇼.]
소살우의 눈치를 흘끔 살피던 광치는 유몽을 향해 심어(心語)를 보냈다.
[뭐하긴, 심심해서 구경하고 있는 거지.]
유몽 역시 소살우의 눈치를 흘끔 살피며 대답했다.
심심해서가 아니라 소살우가 가란 말을 하지 않았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혹여 그의 비위라도 거슬리면 돌아오는 건 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이곳까지 오면서 그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를 사부로 모시면서 한 일이라곤 복날 개처럼 맞은 기억이 전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무공 연습을 핑계 삼아 사람을 팼던 것이다.
제자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구경이라.....]
[너?]
광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자 유몽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바로 그때 소살우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믿어도 되겠느냐?”
광치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소살우는 낮게 물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걱정 마시고 들어가 계십시오. 대신 살수 형님이랑 같이 갔으면 합니다.”
[광치, 너 죽을래?]
허공 속에 숨어 있던 유몽은 질겁하며 전음을 보냈다.
[형님도 좋으면서 뭘 그러오. 진드기를 떼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오.]
[이 자식아, 난 사황과 같은 반열에 올라 있는 살황이야. 하낙에서 건달 두목을 하던 너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고!]
유몽은 거품을 물며 전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는 금세 입을 닫아야 했다.
“한마디만 더 하면 살수 너 혼자 가야 할 거다.”
‘헉!’
나직한 소살우의 말에 유몽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같이 가라는 말이었던 탓이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광치를 노려보는 그의 귓전에 소살우의 말이 재차 들려왔다.
“너희 실력으로는 숨어서 본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니까 기다렸다고 물어보고 와라!”
“맙소사! 사부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유몽은 울 듯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다른 사항도 아니고 팔십이 넘은 두 노인네들에게 방사에 성공했냐고 물어보라니.
“사부님, 만일 실패했다면 우린 맞아 죽습니다.”
유몽은 재차 소리쳤다. 삼천 배를 올리면서까지 성능 회복을 빌었고, 관계를 갖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처럼 행동했던 그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성공했냐고 묻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엔, 그 뒤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둘은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얻어터질 게 분명하다.
“살수아, 섯다나 모사가 실패하면, 넌 우리 둘에게 맞아 죽어.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다녀와, 새꺄!”
소살우는 유몽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끄응! 알겠습니다.”
유몽과 광치는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하낙의 왕이자 영환문의 문주였던 광치와 살수계의 제왕이자 살황이라 불렸던 과거를 가진 두 사람. 터벅거리며 걷는 그들의 걸음걸이에서는 도저히 과거의 신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편.
따로 떨어진 건물로 들어선 섯다와 모사는 바쁘게 움직였다.
광치로부터 대충 건물 구조를 들었던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로를 향해 결의에 찬 미소를 보내며 헤어졌다.
“정랑! 너무 속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태 말없이 섯다를 지켜보았던 화정이 둘만 남게 되자 넌지시 말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티를 내는 것 같아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일남아, 난 말이다. 환자야. 넌 환자를 고치는 의원이고.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은 본래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겠느냐.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 치료를 미루다가 시기를 놓치면, 그게 더 큰일 아니냐. 그런데 일남이 넌...... 내가 병이 낫는 게 싫은 모양이구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어찌, 정랑의 몸이 낫기를 얼마나 빌었는데요.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봐 그런 겁니다.”
화정은 화들짝 말을 받았다.
“누가 감히 날 비웃는단 말이냐.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내 몸이 낫거든, 하루라도 빨리 자식 낳을 생각을 해야 한다.”
“자식요?”
뜨악한 얼굴로 화정은 섯다를 쳐다보았다.
“많이도 말고 열 명만 낳아 보자.”
“헉!”
화정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자식이란 말 자체도 생경하거늘 열 명이라니. 잘못 들었나 싶어 섯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말 진담이십니까?”
확인하듯 화정은 힘주어 물었다. 그를 따라나섰고, 침모로 늙어죽는 것보다는 이 사람 곁에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식을 낳아 기를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식이란 보통 여인네들의 전유물로만 여겼을 뿐이었다.
“왜 열 명이 너무 많아서?”
제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섯다는 여색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자식을......”
“나이가 너무 많다는 말이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장랑은 나더러 애를 낳아 달라는 말이죠. 장시 성을 가진 아이를?”
“그렇다니까. 늘그막에 자식이라도 있어야 덜 외로울 것 아니냐.”
“하! 저기 정랑, 저 한 번 꼬집어 줄래요?”
“꿈 아니니까 정신 차리고 들어가자. 읏차!”
싱긋 미소를 문 섯다는 화정을 번쩍 안아들고 방으로 향했다. 방안은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와 침상, 그리고 한편에 작은 욕실까지 마려된 실내는 아늑했다.
문이 열려 있는 욕실을 향해 시선을 주었던 섯다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욕조에 물ㄹ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는 의미였다.
“저 먼저 씻고 나오겠습니다.”
“그러게.”
느닷없이 섯다의 반 공대에 멈칫했던 화정은 환한 미소를 던지며 욕실로 향했다.
잠시 후,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꿀꺽!
섯다의 목젖이 요란하게 꿈틀댔다.
고의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잘못 닫았는지 모르지만 빠끔 열린 욕실 문 사이로 화중선의 옆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헛!’
침을 삼키던 섯다는 내심 헛바람을 들이켰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몸 이곳저곳이 가렵기 시작했다.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들려오고 후끈한 기운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다음이었다. 심장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듯하더니 아래쪽으로 급격하게 몰려갔다.
“으음!”
저도 모르게 섯다는 신음을 뱉어냈다.
팽팽한 기분. 까마득한 시절,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그 느낌이 아래로부터 느껴졌다.
“음마!”
불쑥 솟구친 그곳의 모습에 섯다는 놀란 개구리처럼 펄쩍 뛰었다.
드디어 정상 작동했다는 기쁨보다 놀라움이 앞섰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느낌이 오히려 불편했다. 자기 몸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이 달려 있는 듯한 이물감 때문이었다.
우뚝 솟은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섯다의 얼굴에 미소가 일기 시작했다. 희미한 미소가 점점 번져 어느 순간 얼굴 전체를 덮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섯다는 제 아래를 뚫어져라 보았다.
과거 같으면 바지를 뚫을 듯 튀어나온 그것을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앞에 있다면 외쳤을 것이다. ‘봐라, 나도 된다, 나도 너희들처럼 정상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섯다의 고개가 오만하게 들려졌다. 두 팔을 돌려 뒷짐을 지은 다음 아랫배를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엉덩이 양편에 한껏 힘을 주었다.
“쿡!”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섯다는 천천히 걸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팔자걸음이라 불리는 대감걸음이다. 엉덩이 양편에 힘을 한껏 주고 무게 중심을 약간 뒤로 주면 역팔자 걸음걸이는 절로 이루어진다.
“먼저 닿았다!”
전면에 보이는 벽을 향해 똑바로 걷던 섯다는 아래어서 느껴지는 기분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불쑥 밀어 낸 배보다, 튼실한 그것이 먼저 벽에 닿았던 것이다.
“다시 한 번!”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방향을 튼 섯다는 이번엔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걷는 모양새는 전과 동일했다.
턱!
또다시 아래쪽이 벽에 먼저 닿자 섯다의 얼굴은 더욱 환해졌다.
몸이 정상 작동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였다. 온통 환희에 차 있는 것 같았다. 간혹 들려오는 새소리가 천상의 음률처럼 들렸다. 저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섯다는 욕실을 향해 몸을 홱 돌렸다.
“봐라, 화정아, 드디어 내가 정상인이 되었다. 이 당당하고 우람한......어? 어어?”
섯다의 낯빛이 해쓱하게 변했다. 잔뜩 부풀었던 바지가 점차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거였다.
“안 돼! 이럴 수는 없다고!”
기세당당하던 그놈이 제풀에 쓰러지자 섯다는 안타까운 얼굴로 풀썩 주저앉았다.
이럴 순 없다. 무려 세 달 동안 시간만 나면 삼천 배를 했다. 무공의 힘을 빌리면 정성이 부족하단 소리를 들을까 봐 내공도 끌어올리지 않았다. 그것도 부족하여 마차 뒤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절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랬었는데. 한 번, 딱 한 번 용트림을 하고는 그놈은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것도 화정과 가족계획까지 세운 이 시점에서.
“장랑, 잊으셨습니까? 그건 본래 그런 겁니다.”
옷을 대충 걸친 화정은 황망히 욕실을 빠져 나오며 말했다. 그녀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럴까?”
울 듯한 얼굴로 섯다는 화정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장랑. 차가운 물로 목욕을 하시면 나아질 겁니다. 그리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조심스럽게 섯다를 달랬다.
“알았다, 일단 네 말대로 하자꾸나.”
고개를 끄덕인 섯다는 욕실로 향했다. 머리를 식히고 몸을 차갑게 하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번 탄력을 받았던 그것은 힘을 잃은 듯, 쓰러진 채 일어서지를 못했다. 결국 섯다는 단 한 번의 짜릿함을 맛보는 것으로 광풍성의 첫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 숙인 남자로 돌아온 섯다의 분노는 애꿎은 광치와 유몽에게 꽂히고 말았다.
“니미럴!”
어둠을 뚫고 광치가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씨팔! 그럼 팔십이나 처먹고 그게 서길 바랐어? 서면 그게 비정상인 거지. 지 물건 안 서는 게 내 탓이야, 왜 나를 패냐고?”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린 광치는 이마에 불쑥 솟은 혹을 쓰다듬으며 울먹였다.
그가 처음부터 인상을 긁고 있었더라면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 상태로 봐서는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니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섯다의 얼굴에서는 실패했다는 징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해서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건달들의 상투적인 표정을 지으며.
그러다가 지금 이 꼴이 되었다.
눈두덩은 퉁퉁 부어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내려앉은 콧잔등은 숨쉬기조차 곤란했다. 애무하듯 구석구석 만져 준 섯다의 손길에 결국 기절하고 말았는지 눈을 떠 보니 정원이었다.
개 패듯 팬 다음 정원으로 던져 버린 모양이었다.
“아이고, 허리야! 그런데 이 인간은 아직도 맞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대문을 흘끔 쳐다보며 광치는 중얼거렸다.
모사를 만나러 갔던 유몽이 아직 나오지 않은 탓이었다.
“오네......? 쿡쿡 욱!”
대무을 나서는 검은 그림자를 가만히 쳐다보던 광치는 황망히 허리를 틀어쥐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자 허리와 아랫배로부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걸레, 부하인 걸레를 말하는 게 아니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픽 쓰러진 그것은 유몽이 분명했다. 얼굴로부터 시작하여 온몸이 거의 넝마 수준인 채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겨우 웃음을 참고 있는 광치의 귓전에 울먹이는 유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팔! 스무 살 차이밖에 안 난다. 얼굴은 내가 훨씬 더 늙었단 말이야. 지가 얼마나 어른이라고 사람이 이렇게 패냐. 그런 심보로 그게 설 것 같아? 그게 제대로 작동하면 내가 개아들이다, 똥개 아들.”
문득 따가운 시선을 느낀 유몽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너? 이 개자식!”
제대로 걷지도 못해 기어가고 있던 차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광치를 발견하자마자 유몽은 바닥을 박차며 날았다. 불구대천의 원수보다 더 나쁜 놈이다.
녀석이 끌어들이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몸을 씻고, 밥을 먹고, 느긋한 얼굴로 그간에 쌓인 여독을 풀고 있었을 것이다.
저 원수 같은 놈만 아니었다면.
쿵!
하지만 마음뿐 유몽은 광치 근처로 다가가지 못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반 장도 채 가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유몽은 나직한 욕설을 뱉어 내며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광치야!”
하늘의 별들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유몽이 입을 열었다.
“말하쇼!”
유몽 곁으로 다가간 광치는 그 옆에 몸을 누이며 대답했다.
“우리...... 도망칠래?”
“어디로 갈 거요. 이젠 가진 돈도 없을 것 아뇨.”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
“그렇긴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떠나면 큰 주모와 작은 주모는 누가 지킵니까? 정신병자들은 자기네 마누라 지키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던데.”
“광치야!”
“네, 형님!”
“나랑 사생결단 내고 싶어서 그 정신병자 이야기를 꺼내는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눈앞에 있으면 개 패듯 두들기고 싶어서 그런 거죠.”
“맞아, 나도 그러고 싶어. 개 잡을 때 패는 것처럼 죽도록 패 버렸으면 좋겠어.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그 짓을 더 하고 싶어. 그 느낌을 만끽하고 싶다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유몽은 분개한 얼굴로 말했다.
휙!
“먼저 얼굴을 한 대 쳐서 코피를 터뜨린 다음에!”
허공을 치는 유몽의 주먹에서 미약한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휙!
“명치를 치는 겁니다. 주먹을 회전시키면서 말입니다.”
이번에 허공을 가른 것은 광치의 주먹이었다.
“맞아 그런 다음에 다리를 들어 허벅지를 차는 거야. 그 자리에 무릎을 꿇도록 말이야.”
“무릎을 꿇으면 곧바로 면상을 차올리는 겁니다. 얼마나 짜릿할까요, 형님! 전 아마 미쳐 버릴 겁니다.”
“그렇겠지? 우린 돌아 버릴 거야. 좋아서.”
코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섯다와 모사를 떠올리며 두 사람은 한껏 상기되었다. 욱신거리는 상처가 금세 나은 듯 연신 양손과 발을 휘두르며 키득거렸다.
그 순간.
“살수야!”
“맨발아!”
귓전으로 들려온 소리에 두 사람의 몸은 석상처럼 굳어졌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오른 거였다.
심부름을 시켰던 당사자들.
두 정신병자에게 보고를 해야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니미럴!”
“살수야! 맨발ㄹ아! 늦게 오는 놈은 뒈지게 맞을 테니까 알아서 해라!”
“네! 갑니다, 지금 갑니다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늦게 온 사람은 뒈지게 맞는다는 말은 경쟁심을 유발시켰다.
“광치야, 너 뒤에 섯다 형님!”
“헉!”
화들짝 놀란 광치는 몸을 움츠림과 동시에 고개를 돌렷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산 방금 소리가 들려왔던 곳으로 몸을 날려 가는 유몽의 흔적만 감지될 뿐이었다.
“치사한 인간, 혼자만 살겠다 이 말인데.”
인상을 확 긁은 광치는 전 내공을 끌어올려 바닥을 찼다.
유몽과 광치의 움직임을 보면 조금 전까지 엉금엉금 기었다는 사실이 무색한 지경이었다.
휙휙, 바람 소리를 남기며 두 사람의 신형은 어둠을 꿰뚫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본인들의 입으로 정신병자라 하였던 소살우 일행으로부터 덜 맞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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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즐독.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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