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에게, “당신은 왜 라틴아메리카(中南美)를 좋아합니까?”라는 질문 세례가 줄곧 이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현업 때문에 중남미 문화를 체험할 기회가 도통 잦은 편인데, 이러한 원론적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렇다면, 당신은 중남미의 무엇을 좋아합니까?”라고 저 역시 되묻기도 했습니다만, 이때 필자에게 되돌아온 대답의 대부분은 라틴 문학(文學)과 예술(藝術), 그리고 개중에는 그들의 ‘민중 음악(民衆音樂)’을 열렬히 사랑하던 분들의 수준 높은 안목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와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나라 아르헨티나,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열정과 냉정이 서린 곳, 직항 없는 비행시간만 무려 30시간 이상 소요되는 은(Silver)의 나라로, 특히 ‘저항 음악’을 만나는 여정에 나서볼까요?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 Photo by 작가 앤마리 하인리히 (1960)
한반도의 13배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Argentina)’, 남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광활한 이곳을 떠올리면, ‘당신은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아마도 마라도나와 메시를 기억하는 축구 강국, 또는 남미 최고의 강렬함과 관능적인 탱고와 탱고 최고의 명인이었던 카를로스 가르델의 나라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들도 알고 있는 일반 상식이죠? 어떤 분들은, 쿠바 혁명을 이끌었던 체 게바라의 조국이라고 맨 먼저 외치겠고, 또한 아르헨티나의 구원자이자 페론주의의 영광을 안았던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을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 부에노스아이레스(1821년 설립) 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5명이나 배출
됐다며 이들을 언급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라틴 문학의 거장인 마르틴 피에로의 작가 호세 에르난데스(1834~1886)와 극단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펼쳤던 보르헤스(1899~1986) 등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것 같고요. 이뿐만 아니라, 양성애자였던 여류 화가 레오노르 피니(1908~1996)와 모히또,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인 콜론극장, 그리고 알록달록한 원색의 양철 지붕과 벽돌 집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 곳으로 가난한 이민자들의 거리인 라보카의 카미니토 골목길,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현재 가톨릭의 수장이신 교황 프란치스코(1936~)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것 같군요. 좀 더 세부적으로 디테일한 기억을 갖고 계신 분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 조형물(Floralis Generica)이 존재하는 나라로 기억되는 분들도 있겠고요. 이 밖에도 낡은 지하철과 거리 곳곳의 현란한 벽화들, 혀끝에 맴도는 멘도사산 말벡 와인과 이들의 전통 가우초식 바비큐인 값싸고 풍성한 아사도르 & 크리오쇼(고기구이)를 상상하는 미식가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깊숙하게 스며든 가장 치명적인 우울과 슬픈 근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랜 시절 이들과 함께 했던 민중들의 구슬픈 노래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아르헨티나인들과 중남미 민초들의 고달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불린,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극적이고 힘 있는 ‘저항가’를 정녕 빼놓을 수 없고요. 우리의 386세대들 중에 과거 대학가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은 그녀를 잘 알고 있지요?
Todo Cambia (모든 것은 변해요) - 공연 시간 4:50
먼저, 위의 민중가요를 감상해볼까요? 소사의 노래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인데요. <피상적인 것은 변하지요. 심오한 것 역시 변하고요.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변해요. 그렇게 세상의 모든 건 변해가지요.>로 시작해서, <어제 변한 것들은 내일 또 변할 거예요. 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그렇게 변해가는 것처럼.>으로 끝나는 노래입니다. 그녀가 민초들을 얼마만큼 대변하고 있는지를 단숨에 알게 하지요? ‘남미 대지의 어머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현대 고전 같은 ‘민중가(民衆歌)’고요. 1516년 스페인의 해군 일등 항해사이자 탐험가였던 디아스 데 솔리스(1470~1516)가 아르헨티나를 처음 발견한 후, 이 땅의 한복판에 흐
르는 ‘라플라타 강(江)’을 “은의 강(Rio de la plata)”으로 명명합니다. (실제로,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은(銀) 생산의 1~2위를 다툴 정도였고, 대부분은 스페인으로 빠져나가고 있었음), 이후 300여 년간 그들의 통치 하에 놓여 있다가 프랑스의 도움으로 독립을 하는데, 이때 “은”이라는 스페인어 (plata)가 프랑스어 (argent)로 변경되면서, 지금의 아르헨티나(Argentina)라는 국가명이 됩니다. 이때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강대국의 막강한 지원과 절대적인 간섭 등을 등에 업은 군부 독재가 등장하였고, 역대 최악의 독재자였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1925~2013)’의 서슬 퍼런 무차별적인 억압 통치는, 아르헨티나 자국 기업들을 무조건 외국으로
매각시켜 자신의 친인척과 자기 개인의 부(富)를 축적하면서 국가를 파탄 냈고, 이에 반대한 사람들은 모조리 마대 자루에 담아 대서양에 갖다 버린 악마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이 당시 탄압 정치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자행됐는데 일명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으로 불리며, 이때 최대 3만여 명의 민중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되고 죽음의 수용소로 납치됐거나 고문을 당했습니다. 하물며 비밀 구치소가 운영되어 이곳에서 수만여 명이 고문 학살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추기경으로 계셨던 현 교황은, 당시 군사정부에 대한 협조의 정황이 드러났고, 또한 소시민들에 대한 인권보호의 실패는 지금도 참회의 눈물로 기록되고 있으며, 당시
침묵했던 가톨릭교회의 역할에 대해선 여전히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2013년 3월 시사저널과 한겨레, 국제신문 참조) 당시, 겁을 먹고 침묵하며 치욕을 겪고 있던 민초들에게 이 구슬픈 노래가 가장 큰 위로과 위안이 되면서, 순식간에 남미의 전역으로 한없이 울려 퍼졌고, 소사는 이 곡을 대중들에게 퍼트렸다는 이유와 폭도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투옥과 감금이 거듭 이어지게 되면서, 이 노래는 금지곡이 됩니다. 또한 이 노래가 더욱 구슬프고 애처로운 것은, 중후반 무렵의 가사 <그러나 내 사랑은 변치 않아요.> 이부분인데요. 체제와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온 이들 중 남녀노소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입을 맞춘 채로 부둥켜안고 절절하게 흐느끼며 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사 세속적이고 표면적인 것은 언젠가는 끝내 퇴색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들 “조국애”는 어떠한 압제가 닥쳐와도 결단코 ‘변치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해요) - 공연 시간 5:37
앞서, “Todo Cambia (모든 것은 변해요)”의 민중가가 악명 높은 독재의 탄압에 저항하며, 모든 것들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절대적 염원이 담겨 있다면,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해요)”는 소사에게 행방불명이 되는 원인이 되는 노래입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빛나는 눈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로 시작하여, <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노래입니다.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끝나는 이 노래로 인해, 당시 군부독재의 ‘요시찰(要視察) 인물’이었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그렇다면 ‘흑’은 누구이고 ‘백’은 무엇인가?라는 어처구니없는 당시의 이유와 명분 등으로, 비밀경찰들에게 끌려가서 한동안 소식이 두절되고, 매 순간 죽음과 공포 앞에 맞서야 했던 그녀는, 이 당시의 체포와 고문 등으로 평생 두 다리가 불편한 비정상적인 상태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TV와 라디오 등의 출연과 모든 공연들이 금지(거부) 됐던 소사의 실종은, 차츰 서방 국가와 미국의 인권 및 시민단체에 알려지면서, 겨우 죽음만을 모면했던 처참한 상태로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추방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랑스에
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조국의 민주화로 확장했던 그녀였고, 1981년 비델라가 대통령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자, 이듬해에 군사 정권의 모진 압제와 피비린내 나는 폭력 속에서도 민중의 희망과 저항정신을 굳게 품고서, 기타 하나 둘러멘 채로 죽음을 무릅쓰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옵니다. 그 후 이 노래는 1985년 비델라가 살인·납치·고문 등으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되자 남미 전역으로 또다시 울려 퍼졌으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1.9.8.5.”
한해의 찬란한 별이 되어줍니다. ‘하늘까지 이어지는 밭’이란 뜻의 “안데스(Andes)”는, 기원전부터 차빈(Chavin) 문명과 나스카(Nazca) 문명은 물론, 태양의 아들이란 이름의 잉카(Inca) 문명 등, 지구촌의 어느 지역 문명 못지않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신기원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 그 이면에는 특정 문자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인디오들에게 “음(音)과 악(樂)”은, 가장 중요한 감정적 표현의 수단과 도구였으며, 오랜 세월 동안 오직 태양(잉카)을 숭배하고 대지(파차마마, Pachamama)를 위대한 어머니로 섬기던 그들의 숭고한 삶과 스토리를 담아내는 민족적 정서였습니다.
참고 :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메르세데스 소사의 앨범 (발매 연도와 상관없음)
하지만, 풍요와 번성을 누리던 잉카는 유럽의 강대국 스페인에게 무참히 붕괴되었고, 광범위한 노골적 침탈과 수탈로 이어진 이방인의 야욕으로 허무하게 몰락했습니다. 하물며 광산이나 노역장으로 끌려간 인디오들이 절대 부족하여,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데리고 온 흑인들까지 동원되어 자국의 은을 비롯한 온갖 천연자원이 강탈 당했습니다. 이때 우리가 일제 치하기 격랑의 세월 속에서 겪어야 했던 뼈아픈 수모와 국치 그 이상으로 한 맺힌 슬픔이 드리워졌고, 특히 정복자들의 인디오 문화 말살정책은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하는 것 외에도, 스페인식 성씨 개명(성본 변경)과 철저한 주종 관계와 일부다처제 강요, 그리고 칠레식 끄리오요스(C
riollos : 칠레에서 태어난 스페인인 2세) 장려로, 인디오의 적통을 멸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이들 민초들의 구슬픈 정서와 뼈아픈 역사적 현실을 응집할 수 있게 해준 저항정신은 오로지 “민중 음악(民衆音樂)” 뿐이었는데, 이들의 영혼이나 다름없는 소리꾼들마저도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이라고 폄훼한 이과수 폭포로 무차별하게 던져지고, 아르헨티나 전역의 전통 악기들을 수거해 불태우며, 오랜 전통의 소리를 켜켜이 이어오던 마을의 원로들을 화형에 처하는 등, 아르헨티나 전통의 소리를 지우려고 수 세기 동안 기득권의 전횡이 지속됐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세월들은 서방국가들의 폭거와 권세에서 완전히 벗
어난 독립 후에도 계속되어, 살 떨리는 군부 독재체제로 인해 더욱더 억압돼 모두 금지되지만, 험준한 안데스에 펼쳐진 대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곳곳에서 목숨 걸고 명맥을 이어오면서, 현재의 “민중가요(저항가요)”로 오롯이 꽃을 피웁니다. 근데 위의 노래들 속에 떠오르는 가슴 아픈 대한민국, 국가의 정체성과 과거 역사의 근간을 뒤흔드는 미친 망언들, 더욱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역겨운 작태들, 또한 ‘왜 이래!’를 지껄이며 여전히 반성을 모르는 원흉의 씁쓸한 인생 뒤안길을 바라보자니, 오늘도 지난날 우리 열사들의 뜨거운 피와 눈물이 또 상기되고, 그들의 절절한 외침에 뭉쳤던 가슴이 활활 타오르면서, 오직 민중(민초)들의 한 맺
힌 절규와 삶의 아우성을 한 목소리로 승화시킨 메르세데스 소사의 구슬프고 주옥같은 민중의 노래와 저항 정신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위에 소개해드린 곡은,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1935~2009)의 “Soy pan, soy paz, soy mas (나는 양식, 평화, 풍요로움)”입니다. 1982년의 라이브 앨범인데요. 매우 이례적인 것은, 이 곡이 발표되자 중남미 전역의 유명 가수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불리게 되었고, 소사를 대표하는 몇몇 곡 중에 가장 애절하며, 당시의 현실감을 안겨주는 곡입니다. 하물며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특히 아르헨티나 피아노 뮤지션 ‘라울 디 블라시오(1949~)’가 자신의 앨범(1985) 메인에 수록해 가슴이 더 뭉클했던 곡이죠? 지금도 라틴계 국가에서 메르세데스 소사를 그리며 불립니다.
본문은 Chrome 과 글자 크기 110%에 최적화 돼 있음을 알립니다.
첫댓글 해송1님
감사합니다
긴 글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그 동안의 상황,
메르세데스 소사라는 가수가 치열하게 독재와 맞서서 음악으로 저항했던 이야기들,그리고 와 이름이 아르헨티나가 되었는지까지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시네요.
좋은 음악과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멜세데스 소사 .. 인상 좋은 여인이군요
우리나라 정 반대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긴 설명 감사합니다 ~~
제 3세계 음악은
접할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렇게 올려주셔서
부연설명과
함께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