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작업실은 그야말로 어느 산 언덕의 움막 수준이다.
처음 프랑스에서 돌아와 작업실이 필요하여 구리시 왕숙천변 폐허가 된 돌공장 구석에서의 작업실을 시작으로,
마석의 버섯 재배용 비닐 하우스 한 칸을 얻어 사용했는데 덥고 습하여
사람보다 그림이 상하는 것이 문제였다.
조립식 창고를 거쳐 지금의 수동 작업실은 그래서 나무와 흙을 이용해서 지었는데
터 고르기를 동네 트랙터를 부탁해서 했을 정도로 집짓기에 문외한이었다.
나무는 동네의 어느 집일을 해주고 받은 통나무 베어낸 것을 얻어서 지었는데,
아무 계산도 욕심 없이 그저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들었다.
창은 하늘을 향해 내고 전기도, 수도도 없어 해 뜨고 짐에 따라 작업하기를 시작하였다.
해뜨기 전 첫 새벽을 열고 시작되는 하루하루는 이제는 전기가 들어와 비오는 어두운 날에는 전등도 켜고 하는
지금에 비하면 더 귀한 정신의 자산이었다. 그렇게 7년여를 흙 속에 묻힌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흙 속에서 겨울을 뚫고 오르는 새싹의 경이로움처럼 작품들을 하나씩 세상에 내 보이게 되었다.
이진우_어느 산 언덕_천에 한지와 안료_124×118cm_2002
겹겹으로 만나지는 어느 산 언덕
● 천(면 또는 마)을 준비하여 원하는 크기로 자른 후 아교나 아크릴 바인더를 사용해서 정착한다.
그리고 고운 흙을 바인더에 섞어서 묽게 여러 번 바른다.
천의 올을 막는 과정인 것이다. 이미 천 고르기부터 작업은 시작되며 올을 막는 붓질로부터 드로잉이 시작된다.
그렇게 산과 나무를 그린다.
산과 나무를 그리는 중요한 이유는 내게 가장 보편적인 것,
내 눈 끝이 먼저 닿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함이었다.
그렇게 그리고 난 뒤 그 위에 한지를 이용해 덮는다.
종이를 덮는 이유는 먼저 그린 것을 지우기 위함이다.
종이 붙이기는 쉽지가 않다.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먼저 그린 것 위에 풀칠하고 종이를 올리고 솔을 이용해 두드려서 공기를 뺀다.
문지른다. 밀착되어야 떨어지지 않는다. 안에 공기가 남아 있으면 마른 뒤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번만 붙이고 끝나지 않는다. 또다시 그리고 덮어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작업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겸손함의 표현이었다.
자신을 감추고자하는, 말을 줄이고 표현을 줄이면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가 하는...
보기에 화려하지 않으나 먹을 수록 맛있는 된장찌개와 같이..
● 한지는 빛을 투과한다. 가늘고 긴 섬유로 조합되어 현미경을 통해 보면
그 표면이 무수한 구멍을 가지고 있으므로 먼저 칠한 색과 선을 반쯤 보여준다.
표현을 덮었으되 전부 덮지 않아 반쯤 나타났으나 처음 의도와는 다른 표현이 나타난다.
작가의 마지막 의도는 완전한 덮음이었으나 작품의 결과는 또 다른 완전한 표현이 된다.
보는 사람은 어떻든 완성된 그림을 보겠지만 작가는 그 표현을 다 지운 제 3의 결과물을 내는 것이다.
한지 저 밑에 숨어있는 한지 붙이기는 적게는 10겹, 20겹, 50겹까지 붙이게 된다.
그렇게 수 없는 붙이기와 그리기를 반복하는 동안의 노동은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다.
손목, 어깨, 목의 지병을 가져온다. 그런 작업과정들의 하루를 보내고 나면 완전 탈진된다.
그 날들이 몇 날, 몇 달, 몇 년이 지나갔다.
● 보통 새벽 6시경부터 시작하여 해 질 때까지 작업하는데 노동 그 자체인 작업과정 속에서
무슨 내용이나 근사함 등은 떠오르지 않는다. 선사선에 말하듯 무아의 상태 몰아의 상태가 된다.
한 작품이 1년 2년도 걸리는 지루한 인내의 과정 속에 더디 자라는 느티나무처럼 사람도 나무가 되어간다.
이진우_어느 산 언덕_천에 한지와 안료_77×109cm_2002~2003
오래두고 볼 수록 좋은 숲 속의 나무
● 그저 그런 야산의 언덕 근사하지 않아 눈길 받지 못하는 나무들,
봄 여름 가을 화려한 날들을 보내고 잎새를 떨군 채 삭풍이는 황혼녘 비낀 볕을 받고 서있는 나무들
그 도열과 스산함 한국의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는 듯 하지만 늘상 보아왔다. 늘 먹는 된장찌개처럼 익숙하게,
그렇게 자라고 죽는 사이 사람은 가고 세월만 쌓인다. 겹겹이 덮인 한지처럼.
그 틈에 보이는 희뿌연 모습 그 속으로 들어간다. 익숙해서 소홀했던 내 안으로...
이렇게 작품을 통해 은근하게 소통하게 되는 것이 내 작품 제작의도이다.
한번 보면 느껴지지 않아 오래 보고 보이지 않아 다가서다 그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리게 되라고...
어느 산 언덕에 앉아 어느 산 언덕을 바라본다.
이진우_어느 산 언덕_천에 한지_339×167cm_2002~2003
소통을 위하여-프랑스에서 작품 팔고 온 이야기
● 1999년 11월 파리에서 전시를 하였다.
유학(83~93) 시절부터 꿈꾸던 전시였는데, 수 없는 전시들 틈에 무명의 내가 도전해 본 작은 전시였다.
당시 내 전시를 주관한 화랑 주인은 시작 단계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대충 간추리면 "요즘 현대 미술은 일반 대중과 등돌려 있다.
나는 당신(이진우)의 전시를 열며 실험을 해 보고 싶다.
단지 사람 초대만 할 뿐, 당신에 대한 어떠한 정보나 언론매체 등을 통한 홍보 없이,
순수하게 작품을 통해 관객의 반응을 보고 싶다."라고.
당시 내 전시 인쇄물에는 내 이름만 있을 뿐 경력, 나이, 성별, 국적, 학력 등 모든 것이 기록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날 것을 보여준 것이다.
● 당시 80,90년대 프랑스 미술 시장은 침체일로였다. 화랑 주인도 내 작품의 판매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팔아야 했다. 그것은 돈 보다 중요한 소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나의 그림을 사야만 한다. 그래야만 벽에 걸고 오래오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보아야 보이는 그림을 그렸기에 말이다. 오래 보면 처음에 못 보던 속을 보게 되고 그 속에 들어가면 그림?
?보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것이 내가 그림 속에 장치한 코드이다.
그리고 내가 그림 그리는 목적이다. 사람들과 등 돌린 그림이 아니고 싶었다.
미술이 아니어도 좋으니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싶었다.
● 전시 개관 첫 날 그림 4점이 팔렸다. 제일 큰 것부터 팔리면서 한 그림을 여럿이 사고 싶어했다.
화랑 주인은 놀라움과 함께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팔리는 경우는 요즘 파리 화랑가에서는 보기 드물다."라고.
꼭 그림이 팔려서만 기쁜 것은 아니였다.
판매를 통해 관객과의 소통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당시 전시 때문에 체류하는 터여서 매일 오후에 화랑에 들렸다.
그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림 앞에 상당히 오래 머무는 것이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4번을 찾아왔다.
왜 이렇게 여러 번 오는가 하고 물어 보니 점심 시간이 30분 뿐이라 한번에 볼 수 없어서 여러 번 온다고 했다.
그는 그림 한 점 앞에 10분 이상씩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참고로 들은 이야기 하나는 누가 논문을 위해 조사했는데 인사동 화랑가의 관객이 그림 하나를 보는 평균 시간은 3초라고 했다.
● 두 번째 경우는 인근의 사진 전문 화랑에서 근무하는 당시 26세의 ?
꼭悶눼?(지금도 근무함) 내 전시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후 연락이 왔다.
월급날마다 4번에 걸쳐 지불하기로 하고 그림 한 점(소품, 80만원 상당)을 샀다고 했다.
이듬해 갔을 때 만나보았는데 식탁 옆에 걸어두고 보고 있노라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이 두 예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목적을 알게 하고 기쁨을 갖게 한 경우들이었다.
이진우_어느 산 언덕_천에 한지_61×90.5cm_2003
특별하지 않은 부업-가구만들기
● 의자, 상, 책장 등 가구랄 것도 없는 것들을 만든다.
도로 공사로 헐리는 시골 집 마루가 아까워 주워 온 것,
나무 난로 화목 자르다 아까워 둔 것 등 작업실 주변은 그야말로 쓰레기 하치장 수준이다.
그냥 이유 없이 나무가 좋아서 만지작거리는 것 중 집에서 쓰기도 하고 한두 개 이웃에 나누어주기도 하며
나무로 만든 것들과 함께 살기를 즐거워하는데,
최근 한 친구에게 나무와 함께 지내게 하고 싶어 자진해서 책장, 작은 책상, 의자 등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내 그림도 그렇지만 주장하지 않는 것을 나무를 통해 배우며, 얻으며, 기대며 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내가 만든 의자로 관람객들이 오래 앉아 어느 산 언덕의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몇몇 공간에 배치할 생각이다.
첫댓글 이진우씨가 누구지?.........난 모르는 사람이야~~!!!......ㅋㅋㅋㅋ.........메렁 (:b)
추카추카 인사동에서 하시나용?^^멋진데용^^따스한 느낌들의 그림들이..
오빠, 너무너무 가고싶어요~ 엉엉~
진작좀 올리지.. 오픈날짜도 지났네..... ㅠㅠ
이 이진우는 내가 아냐....허이참
어~~~헷갈려요~~~진실이 무어??? 시튼둥 오늘 인사동 머시걱정인가에서 대추차 우아하게 들이키구 왔는데,,,왕님 확실한 대답을<<<<<<<<<
하하, 그럼, 이진우씨가 좋아하는 이진우씨?
정말 형이 아니야? 그럼 ..... 작품 스타일이 .... 어째....!
이 지누가 저 지누가 아니라고요? 그러믄 저 이 지누는 누군가요?
저두 행님인줄 알았어여~ ㅎㅎ 행님이면 더 좋았을껄~ ^^
와~ 어쩐지... 작업실.. 나무와 흙.. 통나무.. ㅡ_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