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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 신념 - 우울 - 실존적 고민 - 정체성' 간의 순환고리
아동청소년의 우울은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는 상태”로만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생각의 내용이 극단적으로 경직되거나(“반드시 그래야 해”, “절대 실패하면 안 돼”), 자기평가가 전면적으로 무너지고(“나는 가치가 없어”), 동시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같은 실존적 질문이 겹쳐질 때 정서적 고통은 훨씬 복합적으로 체감됩니다. 실제로 비합리적 신념(irrational beliefs)과 심리적 고통(불안 · 우울 포함)은 다양한 연구를 종합했을 때 ‘중간 정도’로 유의미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메타분석 결과가 있습니다.
비합리적 신념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고 습관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당위적 요구(demandingness)(“반드시 ~해야 한다”), 파국화(catastrophizing)(“이건 최악이고 끝이야”), 좌절불내성(low frustration tolerance)(“이 불편함은 못 견뎌”), 전면적 인간평가(global rating of self/others)(“실패한 나는 ‘무가치한 인간’”) 같은 패턴이 묶여 논의됩니다. 이 틀은 Albert Ellis의 합리정서행동치료(REBT) 전통에서 특히 강조되어 왔고, 우울의 인지적 특징(자기 · 세계 · 미래에 대한 부정적 해석)이 강해질수록 이런 신념이 더 자주, 더 강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비합리적 신념과 고통의 연결은 단일 연구를 넘어 메타분석에서도 일관되게 보고됩니다. (Vîslă et al., 2016).
청소년기는 ‘실존의 문제’가 떠오르기 쉬운 발달적 조건도 갖고 있습니다. 추상적 사고가 확장되고, 또래 비교와 정체성 탐색이 본격화되며, “나는 누구인가/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의미(meaning) · 정체감 · 죽음/불확실성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실존적 질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질문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로 굳어질 때(예: 의미를 ‘완벽하게’ 찾아야만 한다는 당위, 의미가 흔들리면 ‘끝장’이라는 파국화, 의미가 없으면 ‘내 존재도 무가치’라는 전면평가) 우울과 결합해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청소년의 ‘실존불안(existential anxiety)’은 비교적 흔하며 심리적 증상 및 정체성 이슈와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Berman et al., 2006).
종합하면, 비합리적 신념은 우울을 ‘강화’하고, 우울은 다시 삶의 의미 · 정체감 질문을 ‘검은 렌즈’로 보게 만들며, 그 결과 실존의 문제가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정서적 고통의 증폭기”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아동청소년기 아이들에게서 이 주제가 문제가 될 때는 “슬퍼요”보다 먼저 언어의 형태가 눈에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항상/절대/반드시/완벽”으로 굳고, 실수나 거절을 ‘정체성의 붕괴’로 해석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치면 인생이 끝이야”, “친구가 답장을 늦게 하면 난 버림받는 사람이야”, “난 원래 못해” 같은 문장이 자주 반복됩니다. 이런 인지 패턴은 우울의 핵심인 무기력 · 자기비하 · 미래비관과 맞물려, 아이의 행동 선택지를 급격히 좁힙니다.
감정은 ‘우울감’ 한 단어로 표현되지 않고 짜증, 분노, 예민함, 공허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청소년 우울은 짜증과 반항, 무기력의 혼합으로 드러나 “성격 문제”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또한 좌절불내성이 높아지면 작은 불편이나 지연에도 감정 폭발이 잦아지고, 회피(학업 · 등교 · 대인관계 회피)로 이어지며, 회피는 다시 성취/관계 경험을 줄여 우울을 유지합니다.
‘실존의 문제’는 대체로 공허감(텅 빈 느낌), 무의미감(해도 소용없음), 자기정체감 혼란(내가 누군지 모르겠음), 죽음/허무에 대한 반복 사고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중요한 건, 이 질문들이 “깊은 사유”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우울의 렌즈를 통과하면서 극단적 결론(“의미가 없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나는 가치가 없다”)으로 닫혀버릴 위험이 있다는 점입니다. 실존불안이 청소년의 심리적 증상 및 정체감 이슈와 관련된다는 보고는 이런 임상적 관찰과도 맞닿아 있습니다(Berman et al., 2006).
또 하나의 특징은 “비합리적 신념의 특정 범주”가 우울과 연결돼 구체적으로 관찰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11–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비합리적 신념 범주를 살펴본 연구에서는, 우울 수준이 높은 청소년이 상황을 드라마타이즈(과장 · 파국화)하거나 좌절에 덜 견디는 경향(좌절불내성)에서 더 뚜렷이 구분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Marcotte, 1996).
'의미'는 경험으로부터 체득되고 확장됩니다
1. ‘ABC-DE 기록’으로 비합리적 신념을 ‘발견 – 이의제기 – 대안화’하기
집에서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은 아이에게 “생각을 바꿔”라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자동으로 굳어지는 패턴을 ‘기록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REBT의 ABC 모델을 아주 단순화해, A(상황) – B(그때 떠오른 믿음/해석) – C(감정 · 행동 결과)를 짧게 적어보고, 여기에 D(반박/이의제기) – E(대안적 믿음과 그때의 감정 변화를 가볍게 기록)까지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Marcotte(1996)가 청소년 우울과 관련된 비합리적 신념 범주(파국화 · 좌절불내성 등)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듯, “어떤 범주의 B가 자주 등장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하면 개입이 쉬워집니다(Marcotte, 1996).
이때 반박(D)은 논쟁이 아니라 검증 질문이면 충분합니다. “정말 ‘반드시’ 그래야만 해?”, “최악이 정확히 뭐고, 그 다음은?”, “불편하지만 견딜 수 있는 범위는 0이야, 10이야?” 같은 질문은 파국화와 좌절불내성을 조금씩 현실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비합리적 신념과 고통의 관련성이 메타분석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기록은 ‘감정일기’가 아니라 ‘인지-정서 지도’로 기능합니다(Vîslă et al., 2016).
2. ‘행동활성화(작게, 매우 작게)’로 ‘기분이 좋아질 근거’를 다시 만들기
우울이 깊어질수록 아이는 ‘의미를 찾기 전에’ 이미 행동의 반경이 줄어 있습니다. 이때 “의미를 찾아봐”는 오히려 압박이 되기 쉽고, 당위적 신념(“이 정도는 해야 해”)을 강화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행동활성화가 우선입니다. 핵심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하루에 “무조건 가능한 최소 단위”를 정해 성공 경험을 누적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5분 산책”, “샤워 후 스트레칭 2분”, “방 창문 열고 3번 깊게 호흡”처럼 실패하기 어려운 단위를 사용합니다.
이 접근은 인지행동치료(CBT) 계열 개입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청소년 우울에서 CBT의 유의한 효과가 보고된 메타분석 결과와도 방향이 같습니다(Keles & Idsoe, 2018). 행동이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해”라는 전면평가가 약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야 움직인다”는 믿음이 “움직이니 기분이 아주 조금 변한다”로 교정될 여지가 생깁니다. 특히 수면 · 각성 리듬이 흔들리면 우울과 불안이 동시에 악화되기 쉬워, 기상 시간 고정 · 아침 햇빛 노출 · 저녁 화면노출 조절 같은 생활 리듬 조정은 행동활성화의 ‘기반 공사’가 됩니다.
3. ‘의미’는 답이 아니라 경험-가치 기반의 작은 실험 + 관계 연결로 제안
실존의 문제를 가진 아이는 종종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는 방식으로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하지만 의미는 정답처럼 발견되기보다 경험을 통해 생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의미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의미가 생길 만한 행동을 아주 작게 설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3개(관계/성장/창작/정의/탐구 등)를 적고, 오늘 그것과 연결되는 행동 1개만 하기” 같은 가치 기반 실험은 우울의 무의미감을 ‘경험적으로’ 흔들 수 있습니다.
의미감과 우울의 관련성을 다룬 청소년 연구에서는, 의미(meaning in life)가 우울과 유의미하게 연관되고(대체로 의미가 높을수록 우울이 낮은 방향), 인지적 요인과 마음챙김 같은 변인이 그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고합니다(Li et al., 2023). 또한 의미중심 심리치료를 청소년 우울 치료 맥락에 적용한 연구 보고가 등장하는 흐름은, “의미 영역을 치료로 다루는 것”이 단지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탐색 가치가 있음을 뒷받침합니다(Sheng & Zhang, 2026).
여기에 꼭 덧붙이고 싶은 건 관계 연결의 최소 단위입니다. 우울과 실존적 공허가 겹칠 때 아이는 ‘고립’을 선택하기 쉽지만, 고립은 다시 비합리적 신념(“아무도 날 이해 못 해”)의 증거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연결의 단서”만 남기는 방식이 좋습니다. 하루에 한 번, 부담 없는 대상(가족/담임/상담교사/믿을 만한 친척/친구)에게 “오늘은 3/10 정도로 힘들었어”처럼 숫자 한 줄로 상태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고립의 고리를 조금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본 센터는 아동과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연령의 상담을 진행하는 센터로 사회성 발달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놀이 및 각종 상담방식이 다양한 치료센터입니다. 또한 전문 치료사가 배치되어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시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향숙 소장님 인터뷰 및 칼럼] >> 학습 부진에 시달리는 아이
[상담후기] 초등 고학년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 종결 후기
[이향숙 소장님]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아동복지학과 박사 (아동심리치료전공)
상담 경력 25년, 대학교수 및 외래교수 경력 30년
현) KG 패스원사이버대학교, 서울사이버평생교육원 외래교수
KBS, MBC, SBS, EBS, JTBC,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청와대신문 등 아동청소년가족상담 자문
자격) 미국 Certified Theraplay Therapist (The Theraplay Institute)
심리치료 수련감독자 및 상담전문가 1급 (한국상담학회)
부부가족상담 수련감독자 및 상담전문가 1급 (한국상담학회)
사티어 부부가족 상담전문가 1급 (한국사티어변형체계치료학회 공인)
청소년상담 수련감독자 및 상담전문가 (한국청소년상담학회 공인)
재활심리치료사 1급 (한국재활심리학회 공인)
사티어의 의사소통훈련 프로그램 강사/ 사티어 부모역할훈련 프로그램 강사
MBTI 일반강사/ 중등2급 정교사/ Montessori 교사/ 유치원 정교사/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등
인터뷰) 이향숙 박사 “아이 사회성 교육의 중요성”
https://tv.naver.com/v/15458031
저서) 초등 사회성 수업, 이향숙 외 공저. 메이트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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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Vîslă, A., Flückiger, C., grosse Holtforth, M., & David, D. (2016). Irrational beliefs and psychological distress: A meta-analysis. Psychotherapy and Psychosomatics, 85(1),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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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heng, L.-L., & Zhang, M. (2026). Adjunctive individual meaning-centered psychotherapy plus protocolized fluoxetine for moderate-to-severe adolescent depression. Frontiers in Psychiatry, 16, 1748005.
[6] Li, Y., Jin, Y., Kong, H., Feng, C., Cao, L., Li, T., & Wang, Y. (2023). The relationship between meaning in life and depression among Chinese junior high school students: The mediating and moderating effects of cognitive failures and mindfulness. Behavioral Sciences, 13(9), 732.
[7] Berman, S. L., Weems, C. F., & Stickle, T. R. (2006). Existential anxiety in adolescents: Prevalence, structure, association with psychological symptoms and identity development. Journal of Youth and Adolescence, 35(3), 285–292.
[8] Shorey, S., Ng, E. D., & Wong, C. H. J. (2022). Global prevalence of depression and elevated depressive symptoms among adolescen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ritish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61(2), 287–305.
* 작성 및 옮긴이: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인턴 안현우
한국 아동 청소년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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