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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3:15
어느 시대나 암울하지 않았던 적이 없지만, 오늘날 교회의 미래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서서히 번집니다. 분명 힘들고 어려운 시대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 일을 지레 손 놓을 수 없지 않은가. 공주야! 불임의 부부에게 사자가 찾아와 아이 탄생의 소식을 알린다. 마리아를 찾은 가브리엘을 떠올리게 한다. 성경 속 하나님은 항상 먼저 찾아와 알리시고, 일하시고, 성취하신다.
No era has ever been without gloom, but the future of the Church today seems even more so. A sense of despair, unable to find hope, slowly spreads. There is no doubt that these are difficult and challenging times. But we cannot simply give up on what God has not abandoned. Princess! A messenger comes to the infertile couple to bring news of a child's birth. It brings to mind Gabriel, who has gone to find Maria. God in the Bible always comes first to announce, works, and accomp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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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심의 하나님이 우리 중에 어떻게 일하실 것으로 기대하는가? 불임의 아내가 자식을 낳을 것이라고 하였고, 그가 나실 인으로 부름 받았다고 했는데도 마노아는 그렇게 말한 사람이 여호와의 사자인줄 몰라 본다. 낯선 나그네를 향해서는 과분한 정도의 대접을 자청하지만, 여호와의 사자인 줄 모르니 그에게서 나온 말이 갖는 중요성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주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신이 잘하고 싶은 것만 잘 하는 사람에 머물렀다.
How do you expect that God of zeal to work among us? Although the wife of the infertile man said she would bear children and that he had been called to Nazir, Manoah did not realize that the person who said this was the messenger of the LORD. They would offer more than enough hospitality to a stranger, but not knowing that they were the messenger of the LORD, they likely did not realize the weight of the words that came from them. Without knowing what the Lord truly desired, he remained a person who only did what he wanted to d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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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만큼 하나님 신앙이 악화된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마노아는 그를 대접하고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드리고 싶은 좋은 마음으로 그의 정체를 알려고 했지만 좀처럼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어두운 시대였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환대를 거부하고 도리어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라고 한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여 이름을 묻는 마노아의 태도를 보면, 그는 번제를 드리라고 하는 여호와 사자의 의도도 간파하지 못한 듯하다.
This shows that it was an era in which faith in God had deteriorated. With a good heart to honor him and treat him well, Manoa tried to learn his identity, but he could hardly understand. It was that dark of an era. The LORD’s messenger refused Manoah’s hospitality and instead commanded them to offer a burnt offering to the LORD. However, judging by Manoah’s attitude as he asks for the identity of the LORD’s messenger, it seems he did not fully grasp the messenger’s intention to present a burnt off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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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자’로 알려줌으로써 불임의 태에서 아이를 낳는 기적이 사람의 기대와 상식을 넘어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암시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가고 다시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지 않자 비로소 마노아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였음을 깨닫는다. 그 즉시 마노아는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마노아의 아내는 침착한 말로 남편을 안정시킨다.
By naming him “the Wonderful,” the lion implies that the miracle of bearing a child from a barren womb is beyond human expectation and common sense, something only God can accomplish. When the angel of the LORD ascended engulfed in the flames of the altar and did not appear again to Manoah’s wife, Manoah finally realized that he was the angel of the LORD. Immediately, Manoa is gripped by the fear that she might die. However, Manoah's wife calms her husband with composed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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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실 것이었다면 번제와 소제도 받지 않으셨을 것고, 이 모든 일을 보이지도 않으셨을 것이며, 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말이다. 마노아의 아내는 어둠의 시대에 ‘작은 태양’ 삼손을 낳을 만큼 분별력 있는 믿음의 여인이었다.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시는데도 인간이 자기 방식의 열심과 두려움에 갇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두운 시대에 필요한 믿음의 분별력은 무엇인가? 마노아 부부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If he had intended to kill them, he would not have accepted the burnt offering or the grain offering, nor would he have revealed all these events or said such words. Manoah's wife was a woman of discerning faith, giving birth to Samson, the “little sun,” during the age of darkness. If God is already at work, yet humans are trapped by their own zeal and fear and fail to recognize it, then what is the discernment of faith needed in these dark times? What kind of God visited the Manoa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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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와 여호와의 사자(15-16)
마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19-23)
삼손의 출생과 하나님의 축복(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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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가(15a)
여호와의 사자에게(15b)
말씀하되(15c)
구하나니 당신은(15d)
우리에게 머물러서(15e)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15f)
염소 새끼 하나를(15g)
준비하게 하소서(1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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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16a)
마노아에게 이르시되(16b)
네가 비록 나를 머물리나(16c)
내가 너의 식물을(16d)
먹지 아니하리라(16e)
번제를 준비하려거든(16f)
마땅히 여호와께(16g)
드릴 찌니라 하니(16h)
이는 마노아가(16i)
여호와의 사자인줄(16j)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1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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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가 또(17a)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17b)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까?(17c)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17d)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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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18a)
그에게 이르시되(18b)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18c)
내 이름은 기묘니라(1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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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마노아가(19a)
염소 새끼 하나와(19b)
소제 물을 취하여(19c)
반석 위에서(19d)
여호와께 드리매(19e)
사자가 이적을 행한지라(19f)
마노아와 그 아내가 본즉(1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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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단에서부터(20a)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20b)
여호와의 사자가(20c)
단 불꽃 가운데로(20d)
좇아 올라간지라(20e)
마노아와 그 아내가(20f)
이것을 보고(20g)
얼굴을 땅에 대고(20h)
엎드리니라(2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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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21a)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21b)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21c)
마노아가 이에(21d)
그가 여호와의(21e)
사자인줄 알고(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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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내에게 이르되(22a)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22b)
반드시 죽으리로다(2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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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내가(23a)
그에게 이르되(23b)
여호와께서 우리를(23c)
죽이려 하셨더라면(23d)
우리 손에서(23e)
번제와 소제를(23f)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23g)
이 모든 일을(23h)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23i)
이제 이런 말씀도(23j)
우리에게 이르지(23k)
아니하셨으리라. 하였더라(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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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아들을 낳으매(24a)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24b)
아이가 자라매(24c)
여호와께서 그에게(24d)
복을 주시더니(2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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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와 에스다올 사이(25a)
마하네단에서(25b)
여호와의 신이(25c)
비로소 그에게(25d)
감동하시니라(2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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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리다_make your name known.
이름을 증명하다_prove one's name.
사자의 정체를 알다_I know what a lion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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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대로 아들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움직이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자라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성품과 역사를 묵상하며 그 거룩한 역사에 참여케 하소서. 인간의 이해를 뛰어 넘는 구원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믿음과 신뢰로 맞이하게 하옵소서. 에예공을 지켜주시고 입혀주시고 먹여주신 하나님이여 찬양을 받으소서. 삼손이 밧줄로 꽁꽁 묶였을 때 비로소 나실 인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처럼 에스더가 바닥을 살아도 가끔 하늘을 쳐다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는 용기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We praise God for giving us our son as promised and moving him by His Spirit to grow into a savior of Israel. As we meditate on God's marvelous character and history, help us participate in His holy work. Let us welcome God, who comes with salvation beyond human understanding, with faith and trust. O God, who protected, clothed, and fed Eye gong, receive your praise. Just as Samson fulfilled the Nazirite’s duty only when he was tightly bound with ropes, may Esther, even while living on the ground, occasionally look up to the heavens. Make her a courageous person who proclaims the kingdom of God.
2026.9.29.tue.Clay
신학 비평//
본문의 흥미로운 역전은 마노아보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아내가 더 정확하게 상황을 읽는다는 데 있다. 마노아는 환대하고 제사하며 이름까지 묻지만 정작 눈앞의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신앙적 열심이 반드시 영적 분별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특히 마노아는 기적을 본 뒤 “반드시 죽으리라”고 두려워하지만 아내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차분히 연결한다. 하나님이 죽이려 하셨다면 제물을 받으시고 약속을 주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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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해석한다면, 아내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행하신 일을 근거로 현재를 해석한다. 그래서 시대를 바꾸는 믿음은 거대한 영웅주의보다 먼저 ‘해석하는 능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절망의 시대라고 해서 하나님까지 절망하신 것은 아니며, 내가 하나님의 일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기묘’라는 이름은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파악하여 소유할 수 없다는 경계선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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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는 이름을 알아내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설명되는 대상이기 전에 인간의 예상 밖에서 사건을 일으키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 본문의 작은 태양은 삼손만이 아니다. 두려움에 빠진 남편에게 하나님의 과거 행위를 근거로 미래를 읽어준 이름 없는 여인 역시 어둠 속의 작은 빛이다. 시대 전환은 어쩌면 거대한 사람의 등장보다, 하나님이 이미 시작하신 일을 먼저 알아보는 한 사람의 분별력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