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시련
겨울철 독감 예방 권유를 받지만 한쪽 귀로 흘렸다. 코로나 4차도 주삿바늘이 싫어 미뤘다. 찬바람 맞고 심방 후 잔기침이 났다. 안방을 지킨 작고 하얀 감기약으로 해결할 요량이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로 퇴근 시간 ‘속편한 내과’를 들렸다. 간호사가 증상을 묻고 체온기를 귀에 꽂았다. ‘정상이어요. 7번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세요.’ 의사의 호출에 얼굴을 내밀었다. ‘요즘은 열이 없어도 독감과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야 합니다.’ 3층으로 올라가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았다. 다가선 간호사가 검사하고 ‘1층 병원 밖에서 기다리세요.’ 말이 차가웠고 결과는 코로나 확진이었다. 의사가 약 처방하며 ‘물을 자주 마시라’ 권했다. 처방전을 들고 ‘편한 약국’으로 갔다. 약사가 ‘밖으로 나가 기다리라’는 소리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의 손짓에 들어가 약 봉투를 받았다. 식후 30분마다 5일간 복용하는데 점심 약이 달랐다. ‘팍스 로비드(Paxlovid)’는 12시간 간격으로 중단 없이 먹을 약이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오는 길에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들수록 예방하는 유비무환의 자세 말이다. 거실이 추웠다. 부엌 창문이 삐걱거렸다. 틈새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살면서 고장 나는 것은 언제나 고장 나선 안 될 물건이다. 고칠 곳이 많은 집이라 전기난로를 켰다. 멈춰 선 벽 시계에 건전지를 갈아 끼웠다. 어쩌다 고장 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혼밥 했다. 시계 보고 독한 알약을 삼켰다. 별 수 없이 버려진 자전거처럼 죽은 듯이 모로 누워 쉬었다. 미열이 나고 입안이 썼다. 아프다고 말하는 입술까지 개운치 않았다. 흐릿해진 시간에 어르신들이 약 드시고 ‘입이 쓰다’는 말씀이 실감 났다. 건강하게 살아내며 모른 일을 깨달았다. ‘심방 갈 때 달달한 초콜릿이나 케이크가 어른들에게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약 부작용인 설사나 근육통은 없었지만 깊은 밤이면 일어나서 물 끓여 유자차를 마셨다. 어머니가 대봉을 썰어 말려 간식으로 준 것에 손을 댔다. 꿀물을 들이켰지만 목이 따갑고 가래가 찼다. 구청 담당자의 확인 전화를 받았다. 거처와 증상을 물었다.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통지가 문자로 들어왔다. 자가 격리 1주일이었다.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과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스스로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새벽 달리기를 멈췄다. 음식은 덜어 먹었다. 저녁에는 2층, 낮에는 1층 서재에서 홀로 지냈다. 갇힌 자로 답답할 때 코를 내밀어 바깥공기를 마셨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이 외롭게 보였다. 저만치 내려앉은 나뭇잎이 찬바람에 굴러다녔다.
무거운 마음을 쓰려 내리며 아침마다 구운 소금으로 양치질하고 가글 후 뱉어냈다. 복용할 약을 위해 세 끼니 다 먹고 운동 부족에 소화가 더뎠다. 어느 날, 창문을 밝힌 달빛에 눈을 떴다. 핸드폰을 열었다. 코로나로 세상 떠난 자의 통계가 만만치 않았다. 죽고 사는 공백을 견디는 공간이었다. 벽에 걸린 웃는 표정의 가족사진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잠들지 않으려고 두꺼운 책을 꺼냈다. 정요석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는 종합 선물세트였다. 신앙의 기본을 다지는 초석이었다. 새벽 기도 시간, 예배당에 내려가지 못해 죄송했다. 아내가 새벽 강단에 섰다. 문제는 주일 예배였다. 감염자가 강단에 설 수 없었다. 핸드폰으로 드리기는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 때문에 어려웠다. 헛기침이 났지만 1층 서재에 들어가 보이지 않게 마이크를 잡았다. 설교는 코로나가 창궐할 때 영상 촬영한 것을 찾아 올렸다. 축도만 강단에 올라가 하고 먼발치에서 인사드렸다. 미안한 생각에 전화로 심방했다. 수요일 24시 해제라 수요 예배는 하루 미뤘다. 코로나 걸린 목회자를 만난다는 부담감에 그 예배조차 권사님들이 막는 바람에 접었다. 새로 맞이한 주일,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 달 만에 나온 장로님과 드린 예배에 힘이 났다. 아직도 움직이면 배가 땅겨 두 달은 지켜보자는 상태였다. 예배 전에 부른 복음성가가 마음을 울렸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서로가 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고 축하하는 자라였다. 사흘 뒤, 실밥 뺀 날 장로님과 점심을 먹었다. 내장 꿰맨 자리가 터질 우려에 적게 드셨다. 한 달 전보다 10킬로 이상 체중이 내려갔다. ‘목사님, 저녁밥 조금 먹고 자면 배가 고파 일어납니다. 간식이나 교회에서 선물한 고흥 유자차라도 마셔야 잠이 듭니다. 2시간마다 깨어 아직 깊은 잠을 못 잡니다. 짜고 매운 음식은 물론 커피도 못 마십니다. 냄새만 맡아도 좋습니다. 옛날에 담배 끊을 때도 남새가 그렇게 좋았지요. 결국 한 개비로 세 번 나눠 피다 끊었네요.’ 청국장이 먹고 싶다는 말에 이틀 뒤 ‘창평 전통 안두부 식당’으로 모셨다. 냄새가 없고 순한 맛에 달게 드셨다. 박 권사님이 간식으로 두부과자까지 챙겨 주셔서 후한 대접을 받는 자리였다. 난 말씀과 기도와 꾸준한 운동을 추천했다. 이미 하 집사님은 40일 새벽 작정과 공 예배 성공자 되길 바랐다. 아무쪼록 영육 간의 무장을 단단히 하여 다시 무너지지 않길 원한다. 난 밀린 새벽 달리기 총량을 채우려고 살에는 바람을 뚫었다. 하루 3식, 과체중에 만만치 않지만 뜻하지 않는 시련을 극복해 냈다.
2022. 12. 17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
첫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발걸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