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오래된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거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직도 잊지못할 풋풋하고 싱그러운 젊은날의 흑백사진들...그 사진을 펼쳐보며 잠시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해 본다
오래전 내가 살았던 부산 초량동 집에서 조금 올라가면 부산의 명문인 부산고등학교가 있다.그 학교 주변엔 외지에서 온 학생들이 하숙하는 집들이 많았고 우리 앞집 이층에도 부고생 두명이 하숙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도시의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그렇듯이 앞집과 뒷집의 간격이 좁은 마당 사이로 밀집되어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점이 많았다. 이층 내방에서 창문을 열면 앞집 하숙생들의 책상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기에 가끔씩 창가에서 마주칠때도 있어 내 책상을 몇번이나 옮겨봤지만 그쪽은 늘 변함없이 창가에 책상 두개가 나란히 놓여있어 나로선 불만이 많았었다
여름 방학을 몇주 앞둔 어느날 방가후에 미술 선생님의 개인지도를 받고 늦은 오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길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점점 빗방울이 굵어져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기 시작할때쯤 누군가 앞에서 우산을 받쳐주는게 아닌가. 깜짝 놀라 가방을 내리고 보니 앞집 하숙생중 키가 크고 약간 마른 안경쓴 그 학생인데 교복을 입고 어딘가 가는길에 나와 마주친 것 같있다.비를 맞아 하복 상의가 몸에 달라붙어 당황해 하는 내손에 말없이 우산을 잡혀주고 뒤돌아서 비를 맞고 뛰어가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인상 깊었던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가슴 설레이게 했었다
다음날 아침 등교길에 앞집 대문을 살짝 열고 우산을 문앞에 세워두고 나오려는데 마침 책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그와 마주쳐 "어젠 고마웠어요"하고 나오는데 같은 고2인데 말을 낮춰도 된다며 싱긋 웃는 모습이 참 순수하고 멋져보였다.내가 고2인줄은 우연히 알게 됐다며 몇마디 얘기를 나누고 골목길을 나와 각자 학교로 향했다 그 이후로 우린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아는체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어느 무더운날.창문을 열어놓고 데생 연습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방으로 종이 비행기 하나가 날아왔다.깜짝 놀라 앞집쪽을 보니까 그 친구가 우두커니 서있다가 나를 보고 슬쩍 피해버렸다.아니 여태껏 창가에서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나? 속상해서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참으며 종이 비행기를 펼쳐보니 이번 여름방학때 자기 친구들과 캠핑을 가려고 하는데 내 친구들과 함께 가고싶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학교에가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모두가 대환영이었다.집에가서 나도 비행기 접어 답장을 날려보내려다 마당으로 떨어져 몇번이나 시도해 겨우 전달이 되었고 며칠후 사복차림으로 앞집 두 친구와 내 단짝 친구랑 넷이서 제과점에서 만났다.우린 처음으로 정식 통성명을하고 구체적인 야영계획를 세워 부고팀 다섯명과 내 친구 다섯명이 송정 해수욕장 어디에서 몇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헤어졌는데 아마도 그날은 잠도 제대로 못잤던 것 같다.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중에 만난 그사람..모닥불을 중심해서 열명이 둥글게 둘러앉아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기타 반주에 맞춰 그때 유행했던 포크송과 팝송을 부르며 짧은 여름밤을 지새웠던 우리는 입시준비에 무거웠던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식히며 1박2일의 캠핑으로 젊은날의 꿈과 낭만을 마음껏 즐겼다.
아~벌써 50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아련한 젊은날의 추억이여~지금도 그리운 그 옛날의 아름다운 친구들이여~이제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그리움 없이 생을 채워 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건조하고 삭막한 인생인가. 살아가면서 내 마음속으로 살며시 들어와 자리잡은 그리움은 영영 시들지 않고 지지 않는 아름다운 꽃으로 남을것이다..
첫댓글 아래에 콩꽃님의 소녀감성적인 풋풋하고 예쁜글에 힘입어 오래전 블로그에 담아둔 흑백 추억을 간추려서 올려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순수의 시절에만 가능한 범생이들의 건전한 일탈이었죠. 집에선 학교에서 해양훈련 가는줄 아셨고요.
당돌한 면도 있었지만 다들 건강하게 성장하여 잘 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님의 글이 정겨운 까닭은
내 모교와 가까운 거리에
님의 학창시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순수했지만 이성에 첨으로
눈 뜨는 숨은 모습입니다.
오후시간 바닷물에 몸담그고
숙소로 오니 님의 추억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그 동네에 동창들이
많이 살았지요.
수국화님, 지주 뵈어요.
새삼스럽지만 용기를 내어 올려 봤지요.
콩꽃님의 닉만 봐도 정겨웠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나 봅니다.^^
부산 내려가셨군요. 즐거운 휴가 가족들과 건강히 잘 보내고 오셔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네~감사합니다
여고시절의 순수한 추억이 이렇게 또 아름다운 글이 되었네요
그 시절에는 남학생만 보아도 부끄러워 고개도 못들고
순진한 시절이였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잘 보고갑니다
네~아마도 한때 규율부장이라 좀 담대했나 봅니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서..
지난세월이. 생각납니다.
특히나 여름엔..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가요~`
항상건승하시고 강녕하시기
바랍니다ㅡ.
감사하며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아련한 추억 아름답게 묘사 했네요.
카페 개인 정보 성별/나이,방문일,본인 공개로수정 했으면 더욱 좋은 글이였네요.건안이요.
감사합니다~ 미처 확인을 못했네요. 건안하십시요.
수국화님의 아름다운 시절의 얘기에
왜 제가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련함에 젖게 하는 글 고맙습니다.
해무리님도 비슷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내서 공감하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수필 수상
부산이 그립다쯤
글쓰기를 만났으니 분명 행운아다
잘 읽었습니다
댓글 주심에 감사해요..
여고 시절의 아름다웠던 남학생과의 추억을 읽으면서 아슬아슬하게 읽어감니다
창문 사이로 서로가 얼굴을 볼수 있으며, 비행기로 드디어 서로의 서신이 왔다갔다 하는 신비로움.....
그 남학생은 매일 님때문에 공부도 않되고 잠도 제대로 잤을까? 생각해 봅니다
드디어 남녀공동으로 캠핑까지 갔으니...
아련한 옛추억이 멋드러지게 펼쳐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삶의 즐거움도 있지않나 생각해봅니다
정말 순수한 청소년기의 글입니다 잘 읽어보았습니다
네에~캠핑에만 포커스를 맞춰
간추린 글이라 염려 되셨군요.
그 이후 2학기때 그 친구가
마침 하숙집을 옮기게 되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부에만
열중하게 되었답니다.^^
와아!!
수국화님 오랫만 입니다
이렇게 수필방에서 뵐줄이야..
건강하시지요?
어릴때의 추억이 내일인것 같이 생각됨은 같은시대를 살고 있기때문인것 같아요
좋은 솜씨 아끼지마시고 자주 실력발휘하셔요.
옛생각에 젖게하는 다감한 글 잘보고갑니다
요즈음도 그림 열심히 그리시지요?
무더운 여름 건강잘 챙기셔요
밝음님~정말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지요?
가끔 밝음님의 산행기를 보며 타고난 건강과 열정에 감탄 하기도 했었는데..
반갑습니다.
저 요즘 사진 찍으러 다녀요^^
자주 뵙지는 못해도 못잊지요.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셔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