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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5:1
삼손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나실인으로 구별되었으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개인적인 복수를 행했고, 충동적이었으며,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우리도 삼손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공주야! 삼손은 어느 모로 보나 사사 자격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확신과 지식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Samson received the Spirit of God, was chosen as a Nazirite, and was called to be Israel’s deliverer. However, Samson acted out of personal revenge, was impulsive, and self centered. God works even through people who are this lacking. Aren't we like Samson?Princess! Samson does not seem qualified to be a judge in any way. But God’s providence goes beyond human certainty and knowledge. That does not mean that God's sovereignty eliminates human 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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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삼손의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가 유념할 바다. 신부의 아비는 삼손이 딸을 버린 줄 알고 성급히 들러리로 온 친구에게 자기 딸을 준다. 분노가 가라앉아 뒤늦게 아내를 찾으러 왔지만, 삼손은 자기 아내가 이미 타인의 아내가 된 것을 알게 된다. 다 삼손으로부터 시작된 사달이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도, 충동적인 수수께끼를 냉 것도, 아내에게 돌아선 것도 다 삼손이 한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 장인을 탓하며 애먼 블레셋 사람들의 밀밭만 태운다.
This is what we should keep in mind when reading the story of Samson. The priest’s father, believing that Samson had abandoned his daughter, hastily gives his own daughter to a friend who had come as a bride price. As his anger subsides, he comes to find his wife, only to discover that she has already become someone else's wife. It is a mess that began with Samson. Marrying a foreign woman, giving the impulsive riddle, and turning his back on his wife were all Samson’s actions. When it is time to reflect on himself, he blames his father-in-law and burns only the fields of the innocent Philist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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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도 무죄할 것이라고 자의대로 판단 한다. 성급하고, 충동적인 분노 표출이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했을 뿐이다. 삼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농사에 막대한 피해를 준 원인을 파악한 블레셋 사람들도 참지 못하고 삼손의 아내와 아비를 죽인다. 삼손을 못 당할 것 같으니 그들을 죽여 삼손의 화를 누그러뜨리려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삼손은 더욱 크게 분노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쳐 죽인다.
And yet they arbitrarily decide that they will be innocent. It is a hasty and impulsive outburst of anger. I merely did what was right in my own eyes. Having identified the cause of the great harm Samson had caused to the people, the Philistines could no longer bear it and killed Samson's wife and father. Fearing that Samson could not be defeated, he tried to kill them to appease Samson's anger. But contrary to their expectations, upon hearing that his wife had died, Samson became even more enraged and struck down the Philistines by killing their shins and thi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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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아무도 스스로는 절제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고, 서로 자기 자신을 파멸하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블레셋이 삼손을 치려고 유다 근처로 올라와 진을 친다. 유다는 블레셋에 맞서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대로 삼손을 묶어 내준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 사사를 통해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을 기대하기보다 이방의 지배아래서 거짓 안전을 누리는 데 만족하려고 한 것이다.
Violence breeds more violence, and revenge gives birth to more revenge. No one was able to restrain or forgive themselves, and they fell into a vicious cycle of self destruction. This time, the Philistines moved up near Judah to camp and attack Samson. Judah fails to stand against the Philistines and, as they demand, binds up Samson. Since they did not rely on God, they were content with enjoying false security under the rule of the Gentiles rather than expecting God to save them through the m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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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바람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여 나귀 턱뼈로 천 명의 블레셋 군인을 죽인다. 하지만 천명을 죽인 후 갈증과 허기를 느낀 삼손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기세등등하던 삼손은 한계를 만나고서야 하나님을 찾는다. 내가 문전박대를 각오하고 찾아갈 곳은 어디일까? 삼손의 블레셋 복수는 정당한가? 하나님의 뜻에 쓰임 받는다는 사실이 인간의 분노와 폭력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가?
But that was not God's will. The Spirit of God came upon Samson and killed a thousand Philistine soldiers with the jawbone of a donkey. But after killing the thousand, Samson, feeling thirst and hunger, cries out to God. Samson, who had been full of confidence, only sought God after he reached his limit. Which place should I go to, even if I have to be turned away? Was Samson’s revenge on the Philistines justified? Can the fact that we are used for God's will justify human anger and 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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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개인적인 복수(1-8)
a.아내를 빼앗긴 것에 대한 복수:1-5
b.아내를 죽인 것에 대한 복수:6-8
삼손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기는 유다 지파(9-13)
라맛 레히 시건(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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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밀 거둘 때에(1a)
삼손이(1b)
염소 새끼를 가지고(1c)
그 아내에게로 찾아 가서(1d)
가로되 내가(1e)
침실에 들어가(1f)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1g)
장인이(1h)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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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네가 그를(2a)
심히 미워하는 줄로(2b)
내가 생각한고로(2c)
그를(2d)
네 동무에게 주었노라(2e)
그 동생이 그보다(2f)
더욱 아름답지 아니하냐(2g)
청하노니 너는(2h)
그의 대신에 이를 취하라(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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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3a)
그들에게 이르되(3b)
이번은 내가(3c)
블레셋 사람을(3d)
해할 찌라도(3e)
그들에게 대하여(3f)
내게 허물이(3g)
없을 것이니라 하고(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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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가서(4a)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4b)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4c)
홰를 취하고(4d)
그 두 꼬리 사이에(4e)
한 홰를 달고(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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홰에 불을 켜고(5a)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5b)
곡식밭으로 몰아 들여서(5c)
곡식단과(5d)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5e)
감람원을 사른지라(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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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이 가로되(6a)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6b)
혹이 대답하되(6c)
딤나 사람의 사위(6d)
삼손이니(6e)
장인이(6f)
삼손의 아내를 취하여(6g)
그 동무 되었던 자에게(6h)
준 연고니라(6i)
블레셋 사람이 올라가서(6j)
그 여인과(6k)
그의 아비를 불사르니라(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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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7a)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7b)
내가 너희에게(7c)
원수를 갚은 후에야(7d)
말리라 하고(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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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을(8a)
크게 도륙하고(8b)
내려가서(8c)
에담 바위틈에 거하니라(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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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9a)
블레셋 사람이(9b)
올라와서(9c)
유다에 진을 치고(9d)
레히에 편만한지라(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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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사람들이 가로되(10a)
너희가 어찌하여(10b)
올라와서(10c)
우리를 치느냐(10d)
그들이 대답하되(10e)
우리가 올라오기는(10f)
삼손을 결박하여(10g)
그가(10h)
우리에게 행한 대로(10i)
그에게 행하려 함이라(10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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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사람 삼천 명이(11a)
에담 바위틈에 내려가서(11b)
삼손에게 이르되(11c)
너는 블레셋 사람이(11d)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11e)
알지 못하느냐(11f)
네가 어찌하여(11g)
우리에게(11h)
이같이 행하였느냐(11i)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11j)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11k)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1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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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12a)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12b)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려고(12c)
이제 내려왔노라(12d)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12e)
너희는(12f)
친히 나를 치지 않겠다고(12g)
내게 맹세하라(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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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삼손에게(13a)
일러 가로되(13b)
아니라 우리가 다만(13c)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13d)
그들의 손에 붙일 뿐이요(13e)
우리가 결단코(13f)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13g)
새 줄 둘로 결박하고(13h)
바위틈에서 그를 끌어 내니라(1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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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레히에 이르매(14a)
블레셋 사람이(14b)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14c)
소리 지르는 동시에(14d)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14e)
삼손에게 임하매(14f)
그 팔위의 줄이(14g)
불탄 삼과 같아서(14h)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14i)
떨어진지라(1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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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15a)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15b)
손을 내밀어 취하고(15c)
그것으로(15d)
일천 명을 죽이고(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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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나귀의 턱뼈로(16a)
한 더미, 두 더미를(16b)
쌓았음이여(16c)
나귀의 턱뼈로(16d)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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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치고(17a)
턱뼈를(17b)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17c)
그곳을(17d)
라맛 레히라 이름 하였더라(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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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18a)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18b)
주께서 종의 손으로(18c)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18d)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18e)
할례 받지 못한 자의(18f)
손에 빠지겠나이다(1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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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19a)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19b)
터치시니(19c)
물이 거기서(19d)
솟아나오는지라(19e)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19f)
정신이 회복되어(19g)
소생하니(19h)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19i)
엔학고레라(19j)
이 샘이 레히에(19k)
오늘까지 있더라(1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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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의 때에(20a)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20b)
이십년을 지내었더라(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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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분노와 성급한 보복_
The anger of Samson and hasty retaliation.
어리석은 판단과 어리석은 분노_
Silly judgment and foolish anger.
무모한 전쟁과 공허한 부르짖음_
Reckless war and empty c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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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인정하는 데서 하나님나라 역사가 시작되는 줄로 압니다. 제 안에 있는 업적을 자랑하는 라맛레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 엔학고레의 삶을 살게 하소서.
Lord, I understand that the history of Your kingdom begins with the acknowledgment that salvation comes from You. Abandon the Ramah-rehah that boasts of its own achievements, and let me live a life of Hannech-go-reh by God’s grace.
2026.10.1.thu.Clay
신학 비평//
하나님의 뜻에 쓰임 받는다는 사실이 인간의 분노와 폭력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가? 사사기 15장의 불편함은 하나님의 구원과 삼손의 사적인 복수가 한 사람 안에서 뒤엉켜 있다는 데 있다. 삼손은 민족을 해방하겠다는 거대한 명분으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다. 아내를 빼앗긴 분노에서 밀밭을 태우고, 블레셋은 여인과 아버지를 불태우며, 삼손은 다시 사람을 죽인다.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다”는 말은 이 장 전체를 지배하는 복수의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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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자신을 정의라고 부르면서 다음 폭력을 낳는다. 더 씁쓸한 장면은 유다 사람들이다. 삼천 명이나 모였지만 블레셋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삼손을 묶어 넘기기 위해서다. 압제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사람은 자유보다 익숙한 안전을 선택한다. 블레셋의 지배를 악으로 느끼기보다 그 질서를 흔드는 삼손을 오히려 위험인물로 여긴다. 사사기에서 가장 깊은 속박은 어쩌면 손발의 결박이 아니라 노예 상태를 정상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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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삼손에게도 영을 부어 결박을 끊으신다. 이것은 삼손의 모든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을 구별하게 한다. 하나님은 뒤틀린 인간을 통해 일하시지만, 인간의 뒤틀림까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천 명을 쓰러뜨린 뒤 찾아온 ‘목마름’이 중요하다. 조금 전까지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라고 외치던 영웅이 물 한 모금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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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맛 레히가 자기 힘을 기념하는 장소라면, 엔학고레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장소다. 삼손에게 진짜 필요한 구원은 블레셋을 이기는 힘만이 아니었다. 자기 안의 분노와 자기중심성으로부터 구원받는 일이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약할 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룬 일을 어느새 “내가 해냈다”고 말하기 시작할 때인지 모른다. 라맛 레히에서 엔학고레로. 자기 힘의 기념비에서 은혜의 샘으로 옮겨가는 것, 그것이 삼손에게도 우리에게도 필요한 더 깊은 구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