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CGV (에술회관역 1번 출구 앞)에서 "백선엽 장군을 아시나요 이 분이 안계셨더라면 상상조차도 지금 우리들이 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었는지 영상을 통해 알 수가 있다" 라는 '백선엽 장군님을 뵈러 갑시다'라는 시사회 홍보를 알리기 위해 무료 상영을 지난 17일 오후 3시30분에 가졌다.
"해방 직후 국군은 제대로 된 군대라고 부를수 있었을까요? 미 군정 시기와 정부 수립 직후를 거치며 국군은 인적 구성부터 지휘 구조까지 모두 불안정했고, 그 중심에서 실제 현장을 책임졌던 인물이 바로 백선엽 장군이었습니다. 명령 체계도 통일되지 않았고, 이 혼합된 인력들을 하나의 지휘 기준 아래 묶어내는 과장이었습니다. 계급은 있었지만 계급의 권위가 작동하지 않았고, 지휘관의 멸령이 현장까지 일관되게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단순한 명령, 명확한 책임, 현장 중심 판단이라는 기준은 세워야 했었습니다."
백선엽 장군은 "내 말을 잘들어라 우리는 여기서 한발자국도 후퇴할 곳이 없다 물러서면 바다 뿐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후퇴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우리와 같이 싸우는 미군들은 우리를 믿고 싸우고 있다. 대한의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나를 따르라 만약 내 명령을 어기고 후퇴하는 자가 있으면 내가 쏜다. 반대로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하며 권총을 치켜들며 돌격 명령을 내렸다.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 전반에 걸쳐 결정적인 전투에 뛰어난 지휘를 보였다. 부동전투, 낙동강 방어선 전투중에서 공을 세우며 대한민국군의 근대화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다. 특히 미국에서도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할 만큼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았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중 백선엽장군을 29살에 준장을 주고 33세에 낙동강 방어선과 38선 돌파 등 탁월한 군사 지휘력을 발휘해서 공이 크기에 대장으로 승진해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백선엽 장군은 전쟁 후에도 휴전회담 한국 대표, 교통부장관, 여러 국가 대사직을 수행하며 군과 국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2020년 7월 10일 9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고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