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의 「의자」 감상 / 임종명
의자 장옥관
의자를 개처럼 데리고 다니는 사람 있을까
개 대신 고독을 의자에 앉히고 진눈깨비 내린 비탈길을 내려간다 무릎이 없어서 의자에 앉을 수 없는 슬하의 오후였다
의자에 끌려가는 이를 전철에서 만났다 의자 앞에 정수리 숙이거나 변기에 기대 우는 날이 많았다
개새끼 죽일 놈 의자를 치켜들고 벌벌 떨거나 의자를 엎어놓고 후배위로 올라타는 똥개도 보았다
푹신한 소파를 꿈꾼 적은 없으나 각목으로 짠 직각의 의자, 반듯한 자세로 흐트러진 뼈를 간추리고 싶을 때는 있었다
노을 속에서 등 굽은 의자가 걸어가고 있다 기다림을 잃은 보폭이다
무릎 꿇고 통성기도하는 새벽이 아니다 손목과 발목 묶인 고문대도 아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옥중서신을 의자로 삼은 청춘도 아니다
골목에 내어놓은 의자가 먼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오후다
동네 개들이 찾아와 오줌을 지릴 때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는 자세, 추운 방에서 밤새 새처럼 오그려 잠든 자세
허리도 굽고 하루도 굽고 곧 쓰러질 듯 삐걱대는 저 의자에 너는 굽은 못을 박지 마라 의자는 의자가 아니다
의자가 의자로 있게 하라
— 계간 《창작과비평》 2024년 봄호 .............................................................................................................................................................. 노을이 지는 늦은 오후 골목에 내놓인 등 굽은 의자에서 굴곡의 인생을 본다.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정수리를 보였고, 화날 때는 "개새끼 죽일 놈" 욕해 대며 의자를 치켜들고 벌벌 떨기도 했고, 각진 의자처럼 반듯한 사람이 되보려 노력하기도 했던 젊은 날의 자신을 본다. "삐걱대는 저 의자에/ 너는/ 굽은 못을 박지 마라 의자는 의자가 아니다// 의자가 의자로 있게 하라"는 주문은 뼈아프다. 굽은 못을 박으면 얼마 못 돼 다시 삐걱댈 수밖에 없다. 그 의자에 사람들이 앉는 가구 외에도 의로운 자(義者)의 뜻도 함의되지 않았나 싶다. / 임종명 |
첫댓글
허리도 굽고 하루도 굽고
곧 쓰러질 듯 삐걱대는 저 의자에
너는
굽은 못을 박지 마라 의자는 의자가 아니다
의자가 의자로 있게 하라
장옥관 — 계간 《창작과비평》 2024년 봄호
ㅈㅎㅇㄴ 시네요 추천합니다.
천천히 여러 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현대시의 여러가지 특성을 터득하세요
"의자에 끌려가는 이를 전철에서 만났다 의자 앞에 정수리 숙이거나 변기에 기대 우는 날이 많았다"이럴 때 의자는 義者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