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420호]
담장을 허물다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 꽃이 하얗게 덮인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다니는 하루 수백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청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 『담장을 허물다』(창비, 2013)
*
공광규 시인은 월요시편지의 단골 손님 중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히려 손해볼 때도 있습니다... 시가 너무 좋아서 띄우고 싶은데 너무 자주 띄우면 모양새가 쫌 그래서 오히려 미룰 때가 많거든요...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진즉 띄우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더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 에이 모르겠다! 공광규 형의 시를 한 편 띄웁니다.^^
담장을 허물다... 스케일이 무척 크지요...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 하나 허물고는 저래 엄청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으니...
올해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후평동에 48평 아파트 전세를 얻었는데, 평생에 그렇게 큰 집은 처음 살아보고 있는데, 집에서 길을 잃어버리겠다 농담을 하곤 했는데, 공광규 시인의 시 앞에서 그만 초라해지고 말았네요.... 담장 하나 허물면 될 일을 가지고, 좀더 넓은 평수 아파트로 이사 가겠다고 바둥바둥 살아온 내 꼴이 참 우습게 되었네요...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큰 평수의 아파트인가요? 아니면 담장을 허무는 쪽인가요?
선택은 순전히 여러분의 몫이니 잘 선택하시길요.....
2014. 11. 3
강원도개발공사 대외협력팀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내 고향, 보령...
이 시를 읽고 공광규시인을 검색해보았네요.
지금쯤 은행나무 단풍이 한창 고울 청양이 고향이라는군요.
외산면 무량사는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절이기도 하고,
오서산의 억새 핀 풍경도 참 좋아하는데,
이 시 안에 다 들어 있네요.
덕분에 고향 생각에 젖는 저녁입니다.
저는 반기문의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올 초가을에 문경새재를 놀러갔다가 땅욕심이 나길래
머 충청도 괴산옆에 붙은땅이니 충청도땅이나 매한가지라고 했다가
경상도 아지매한테 혼났습니다.
독도도 그렇고 문경도 경상북도땅이라고요~ 우기지 말라고요~
담장 하나 허물고 오서산까지 들여놓은 시인의 무량을 감탄하며,,,
같이 살어보니 그 동네 사람들이 원래 좀 그러긴 합니다.
거기는 땅값이 어떻던가요? 작은 집 한 칸 지니고 살 만 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