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비밀 (외 1편)
이민하
눈을 감은 사람의 얼굴은 어디에 있나
눈꺼풀의 안쪽과 바깥
한 사람이 옷을 훌훌 벗는다면
부끄러움은 누가 뒤집어쓰나
벗은 몸의 안쪽과 바깥
당신은 깊은 잠에 빠져 있고
나는 당신 안에서 빠져 있는데
서로를 향하여 끝없이 멈추는 움직임 속에서
정지한 사람의 두 발은 어디에 있나
한 뼘과 천 길 사이
굳게 닫힌 눈과 입
실금이 간 얼굴로 시체처럼 누워
당신은 가장 가깝고
나는 가장 먼 곳에서
껍질과 수염을 벗겨내고 옥수수알을 씹는다
천 개의 알갱이를 입안에서 터뜨리며
당신을 자꾸 귀에 대본다 깜깜한 백지처럼
입을 다문 사람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입술의 안쪽과 바깥
배시시 눈을 비비며 마주보는 당신은
멀리서 불빛을 보고 숙소로 찾아든 이방인 같다
모호한 발음으로 인사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눈빛을 껐다 켰다
유리문을 열고 닫으며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 같다
가장 투명한 곳에서
붉은 스웨터
한 올만 당기면 풀어질 듯
입을 막고 있어서 우리는 얼굴까지 빨개졌다
몸속에 둔 실마리를 들키지 않을 것처럼
가족과 이웃과 동료들에 엮여서
두껍고 따뜻하고 촘촘한 사람이 되었지만
손가락이 닿으면 파르르 떨리는
스웨터의 물결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손끝에서 맥박이 섞이고
눈을 가만히 닫고 있으면
물려 입은 옷처럼 타인의 냄새가 난다
조심조심 숨소리를 헤아리는 호흡이 틀니처럼 박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재활용되고 있었던 걸까
깨끗이 빨아 입어도 낡은 슬픔뿐
어둠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입가에 붙은 미소를 보풀처럼 떼어 주며
스웨터보다 한 뼘 더 기어올라서
가느다란 목을 움켜쥔
검은 손은 내 것이 아닌데
당신은 내게 애원하는 눈빛이다
우리의 실마리를 쥐었다 놓았다
벌거벗은 잠자리까지 파고드는
어둠의 손아귀
바닥에 누워 풀썩거리던
한 사람이 밧줄 더미처럼 풀어지고 있었다
가볍고 뜨거운 핏방울이 한 코 한 코 솟구쳤다
어둠의 매듭이 묶이고 풀릴 때마다
핏물로 짠 스웨터가 몸속에서 뒤척거렸다
입을 닫아 주어도 잠들지 않았다
—《문장웹진》2015년 12월호,
ARKO 창작기금 수상작 7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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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하 / 1967년 전북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모조 숲』『세상의 모든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