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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경> 핵심진언
"나모 바가와떼 빠르쟈빠라미따예 옴 나떼띠따 일리씨 일리씨 밀리씨 밀리씨 빅나옌 빅나옌 나모 바가와떼 떼땸따띠 일리띠 일리띠 밀리띠 밀리띠 쓔리띠 쓔리띠 우쓔리 우쓔리 부유예 부유예 쏘하"
: ★ ★ ★ ★ ★ 이 <금강경>의 핵심진언을 한번만 외워도 <금강경>을 1만9천 번을 읽는 공덕과 동등하다! ★ ★ ★ ★ ★
"언설 벗어난 반야바라밀다
생김과 멸함 없는 허공 자체이며
스스로 깨닫는 지혜(견도 이상의 무분별지)의 대상이신
삼세 부처님의 어머니께 예경합니다."
-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 존자 曰
★ ‘능단금강(能斷金剛)’이라고 하는 성스러운 반야바라밀 ★
인도어로 아르야 바즈라체디까 쁘라즈냐빠라미따 나마 마하야나 수뜨라
( वज्रच्छेदिकाप्रज्ञापारमितासूत्र, Ārya-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nāma-mahāyāna-sūtra)
티벳어로 성스러운 반야바라밀인 ‘능단금강(能斷金剛)’이라는 대승경
(འཕགས་པ་ཤེས་རབ་ཀྱི་ཕ་རོལ་ཏུ་ཕྱིན་པ་རྡོ་རྗེ་གཅོད་པ་ཞེས་བྱ་བ་ཐེག་པ་ཆེན་པོའི་མདོ། 팍빠 쎼럽끼파롤뚜친빠 도제쬐빠 셰쟈와 텍빠첸뾔도)
한국어/중국어/일본어로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 <금강경>은 누구를 위한 경전인가?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와 대승경전의 기원에 대해 정확한 기록과 전승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금강경>은 '견도 이상의 경지에 이른 (성자or천신) 보살', 즉 '최소한 번뇌장을 소멸하여 아상을 여의고 공성을 마치 눈으로 보듯 환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보살'들을 대상으로 한, 보살의 반야바라밀 수행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즉, <금강경>은 오직 중생을 위한 마음에 한량없는 억겁의 세월동안 지혜자량과 복덕자량을 한량없이 쌓아 발보리심과 행보리심으로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는 견도 이상의 보살들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최소한 견도 이상의 경지에 이른 성문/연각 경지의 분(사향사과의 경지에 이른 분들)에게도 해당된다. 즉 견성이 아닌 '견도'의 경지 이상에 이르는 분을 위한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해탈열반을 목적으로 하는 성문/연각의 아라한과, 번뇌장 뿐만 아니라 소지장까지 여의며 중생제도를 위한 부처가 되려는 견도 이상의 보살을 잘 구분해야 한다. 성문/연각은 오직 집중명상을 통한 공성(무아)의 체득, 즉 지혜자량을 통해 육도윤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분들이다. 그러나 보살은 지혜자량 뿐만 아니라, 한량없는 '복덕자량'을 억겁의 세월동안 쌓으면서 중생구제를 위해 윤회를 한다. 복덕자량은 지혜자량을 쌓기 위한 원인도 되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힘이기도 하다. 복덕이 없으면 구제할 중생과 인연이 되지 못한다. 즉,
지혜자량 + 벌해탈계 => 최종 목적은 아라한, 성문/연각의 길
지혜자량 + 복덕자량 +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계 => 최종 목적은 부처, 보살의 길
소승과 대승의 차이는 바로 '보리심'이고, 소승의 별해탈계를 받았느냐 대승의 보살계를 받았느냐에 대한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라한과 부처에 대한 구분을 하지 못해 매우 혼란스러워지게 된다! 하여 대승이라 말하고서 소승의 수행법을 하게 되거나 아예 전생자체를 부정하는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한국 불교는 현재 이런 명확한 구분을 가르쳐주는 눈밝은 아사리가 없다 싶이 하다!
★ <금강경>은 누가 기록하고 전승했나?
<금강경>은 대천신이신 문수보살(문수본존)님으로부터 전해졌다고 나가르주나 용수보살님과 날란다의 수많은 대아사리 스승으로부터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금강경론>에서도 부처님과 문수보살과의 대화를 통해서 <금강경>의 구전과 전수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대보살, 현교(한국과 같은 대승불교문화인 바라밀교/원인승)에서는 문수보살이라고 부르나, 밀교(대승불교 결과승)에서는 보살이 아닌 부처로 보기에 문수본존이라 부른다.
★ <한문/한글 금강경>에 빠지거나 누락된 구절이 있다고?
중국과 한국의 <금강경>에는 본래 누락된 구절이 몇몇 있다. 그 한 가지 예로서, <제1 법회인유분>에서 "부처님과 함께 있었던 대중이 1250명의 큰스님이 있다"고 기록되어있는데, 대아사리 카말라쉴라의 티베트어로 기록된 <금강경>에서는 1250명의 스님들과 더불어, 인간이 아닌 '보살', 즉 문수보살을 포함한 여러 (천신인) 보살과 보살마하살들도 같이 함께 하고 있다 기록되어져 있다.
금강경의 내용은 보살의 반야바라밀다 수행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제1 법회인유분과, 마지막 제32 응화비진분에서는 그 대상의 주체인 '보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금강경 이야기 핵심의 주체이자 주제인 '보살'이 없다는 것은 보다 원만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해석과 이해를 초반부터 불명확하게 하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강경은 한량없는 보리심을 바탕으로 견도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보살이나 보살이 되기 위한 수행자들을 위해 설하는 무아의 법문이고, 공성의 법문이며 무자성의 법문이다. 또한 연기법 중에서 '언설'을 벗어난 (선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언어도단 심행처멸) 색즉공 공즉색의 본성의 가르침이다.
(이런 한국불교 경론의 허술함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불교에서는 <금강경> 교육에 대해 잘못 대상을 두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는 6조 혜능 대사의 영향으로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아 불교 초심자들의 초/중단계의 경전으로 제시하는데, 사실 <금강경>은 보살의 반야바라밀에 대한 수행법을 말하고 있다. 보살은 일반 불자들이 쉽게 이해하거나 생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보살은 나와 상관없는 모든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원을 실천하며 동시에 한량없는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쌓고 있는 10지 과위의 대천신들이다. 이 대천신들은 삼계의 모든 곳곳에 몸을 나투지 않은 곳이 없으나, 주로 욕계천 중에서 도솔천 또는 도리천에서 머문다. 그 이유는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보살들이 거처하기에 제일 알맞은 곳이기 떄문이다. 색계와 무색계는 선정의 즐거움으로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자칫 선정에 빠져 복덕을 쌓기가 어려워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이 색계와 무색계의 경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색계와 무색계의 경지에 충분이 이를 수 있는 뛰어난 선정력이 있지만, 마하살로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처가 되기 위해 중생구제를 위하여 한량없는 복덕자량을 쌓고 동시에 원만한 일체종지를 이루기 위한 지혜쟈랑의 완성을 위해 소지장을 제거하기 위하여 도솔천 또는 도리천에서 머무는 것이다.
즉, <금강경>의 이해 대상은 최소 100분의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초지 이상의 보살 경지에 오른 분들이나, 이들과 비슷하게 4상을 여의고 번뇌장을 여의어 무아를 체험한 성문/연각 이상의 스님들을 대상으로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것이다. 고로 <금강경>은 사실, 초심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스님들에게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경전이 결코 아니다. 즉, <금강경>은 최소한 무아의 경지를 체험한 사람, 자신의 정광명을 직접 눈으로 환하게 보듯[비량이 아닌 현량의 경지] 제대로 체험한 사람, 즉 제대로 된 견성을 체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금강경>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6조 혜능 대사는 과연 견도이상의 분이신가? 견성과 견도는 무슨 차이일까?
육조혜능에 대한 공부의 수준은, 주로 육조단경만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 과연 육조 혜능 대사는 견도 이상의 경지에 오르신 성자 보살인가? 그가 남긴 시는 수준이 매우 높다. 분명히 육조혜능은 자신의 성품을 보았기에 신수대사의 시를 반박해서 오조홍인대사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데, 그렇다면 육조혜능은 과연 그 성품을 본 경지는 어느정도일까? 견성을 넘어 견도에 이른 분일가?
참고로 견성이라는 경지는 '유식 5도'의 단계 중에서, 제일 처음 초심자들이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쌓기 위한 예비의 단계인 제1 자량도(자량위) 단계에서도 전생의 선근에 영향을 받아 '견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즉 견성했다고 바로 견도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용수보살님의 <법기찬탄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마치 항아리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서 빛이 세어나오는 것과 같은 구절이 있다. 견성 체험은 자신의 성품을 보는 것으로 마치 이와 같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반면 견도란, 번뇌장으로 이루어진 항아리가 완전히 깨져버려 내 몸과 마음 및 주변까지도 완전히 빛으로 가득차 환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보살 초지부터는 견성을 현량으로 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런 견성의 체험에 대한 기준을 대아사리 스승으로부터 직접 구전/전승되러 부처님 말씀에 근거한 삼장에 근거하지 않고, 그저 주관적인 체험과 그 체험으로 기록된 중국선사들의 주로 주관적인 경험담을 담은 선사어록으로서 비교 판단하기에, 스승의 경험 및 집착을 여읜 걸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화두라는 것으로 테스트한 후, 스승의 주관에 맞다면 또 그 제자가 전생에 인연이 깊다면 깨달았다고 인정하는 식으로 검증을 이어왔다. 이런 중국선의 심각한 돈오집착 문제점들은 자칫 사마타의 과정 중 구주심의 중간단계에서 체험한 경험을 견성의 경지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티베트 승단에서는 아무리 견성체험을 했다 할지라도, 유식오도의 기준에 족하지 않고서는 스스로가 함부로 견성했다거나 깨달았다라는 말, 공부가 다 해 무학을 이루었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으로 현실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다 할지라도 밀교의 은밀한 따시종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수행의 경지가 제2 가행도인 난/정/인 중 한 경지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는 <구사론> 현성품에서 이 경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나온다. 복덕자량이 받혀져 반드시 구주심과 미지정의 초선 이상의 사마타에 머물지 않고서는 절대로 견도에 이를 수가 없게 되고, 이 조건이 충족되면 죽어서 중음신의 경지에서 자량의 힘에 의해 인간의 몸을 받지 않고도 중음신 상태에서 바로 아라한과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견도의 경지는 반드시 십신/십행.. 등의 제1 자량도와 난/정/인/세제일의 제2 가행도를 1겁동안 순서대로 닦아 복덕자량을 통한 구주심의 단계를 거쳐 미지정의 단계를 초월한 사마타의 과정을 이루어 완전히 아가 사라지고 공성을 현량으로 환하게 볼 수 있으며 현량의 선정삼매 속에서 24시간 머물 수 있으며 100분의 부처님을 친견하고 100겁의 전후생을 볼 수 있는 근기가 되어야지 드디어 견도에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혜능 대사는 이러한 경지에 이른 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육조혜능 스님보다도 훨씬 더 깊고 깊은 법문을 하신 초지보살 용수보살님과 보살3지이신 무착보살님을 비롯한 날란다 대학의 17분의 대아사리와, 17명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더라도 아쉬바고쉬(마명)과 같은 수많은 수행자들의 논서를 보면 육조혜능의 <단경>보다도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 <육조단경>에 '경'을 붙히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그리고 <육조단경>이라 이름하지만, 실은 절대로 육조단경이라 할 수 없다. <육조단론>이라 해야 맞는 것이다. '경'은 반드시 부처님께서 3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신 것 외, 부처님께서 인정하지 않은 후대인의 가르침을 절대로 경이라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있다. 즉 <육조단론>이라 해야 맞지 <육조단경>이라 함은, 이는 중국인들의 거만하고 오만한 자기 우위적이고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민족성이 그대로 투형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로 <육조단경>이 아닌 <육조단론>이 정확한 표현이다.
★ 금강의 의미하는 뜻 두 가지 ; 부정과 긍정
- 부정적 측면 : 육조혜능 가풍 하택신회의 법제자였던 마하연 스님의 주장한 중국 선불교를, 티베트 삼예대사원에서 날란다 삼장의 논리로 마하연을 꺾어 제압한 인도의 위대한 날란사 대아사리 스승, '카말라쉴라'께서는 금강의 의미를 가장 부수기가 어려운 번뇌장(아라한 또는 보살 7지까지가 제거하는 거친 번뇌)과 소지장(부처의 경지가 되기를 방해하는, 8지~10지 보살이 제거하는 미세한 번뇌)을 금강이라 비유하여, 능히 금강의 번뇌를 단멸하는 경전이라 해서, <능단금강경རྡོ་རྗེ་གཅོད་པ 能斷金剛經> <금강능단경རྡོ་རྗེ་གཅོད་པ 金剛能斷經>이라 설법하셨다. 즉 금강의 뜻을 번뇌장/소지장으로 부정적 비유로서 설명하셨다. 그래서 <능단금강경>은 번뇌장과 소지장을 제거하는 최고의 무기같은 공성을 깨달은 반야(무아, 무자성, 공성)의 지혜를 말한다.
- 긍정적 측면 : 고대의 인도에서 쓰이던 전쟁 무기 중, 최고의 무기인 금강저, 부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일체종지의 지혜를 금강이라 말한다!
★<금강경>은 경장 율장 논장 중 어디에 속하는가?
: 경장에 속한다.
★ <금강경>을 외우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
<금강경>을 외우면, 보살6지 현전지 경지에 도달하신 야마라자(염라대왕)께서 <금강경>을 외운 자에게 엎드려 절 하며 그를 찬탄할 것이고, 다음 생에 더 좋은 가문과 부모 인연의 태아로 인연맺게 해주며, 수명을 늘리거나, 다시 환생시켜주거나, 재물을 늘려주거나 하는 등등, 대승보살의 길인 부처가 되기 위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증장시켜준다.
전생의 원수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화합을 이루어주고, 원하는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대천신이신 보살님들께서 호위를 해주시며, 절대로 지옥/아귀/축생 삼악도 세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며, 다음생에도 불법 수행을 위한 인간의 몸을 받는 유가구족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전생에 지은 크나큰 업장을 소멸시켜주고, 다음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는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이루게 해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