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사람을 향한 청원 세 번째에 해당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에서 “들게하다”라는 말은 원어대로 직역하면 “데려가다(데려오다), 가지고 오다”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13절은 “우리를 시험에 데려가지 마세요, 우리를 시험으로 이끌어오지 마세요”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데려가고, 우리를 시험에 가지고 온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목표 지점이 시험입니다. 우리를 데려가는데 시험입니다. 우리를 가지고 오는 데 시험입니다. 우리를 시험하는 주체가 내가 아닙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에서 "시험"에 사용된 헬라어는 “페이라스모스”인데 성경 안에서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먼저는 영어 “test”에 해당하는 "시험"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그 시험입니다. 둘째는 종말의 때에 오는 시련입니다. 영어로는 “tribulation”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4장에 예언된 것과 같은 시련입니다. 셋째는 유혹입니다. 영어로는 “temptation”인데, 본문의 영어 번역이 이 해석을 취하여 “lead us not into temptation”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13~14절을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은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시험"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는 모두 “페이라스모스”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서 12절“시험을 참은 자는 복이 있도다”에서 시험을 “test”로 번역하고 13~14절은 “tempted(temptation)”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야 논리적으로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12절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test”입니다. 그러나 13~14절이 말하는 페이라스모스는 시험이라기보다는 "유혹"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도 “temptation”과 같은 뿌리인 “tempt”라는 동사를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 반면, "유혹"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은 기꺼이 받아야 하지만,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이라고 말할 때 두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시험입니다. 즉 마귀가 하는 시험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장면들이 많이 소개됩니다. 창세기 22:1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통하여 시험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에서 빌립에게 자신을 좇는 많은 무리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면서 그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한다”라고 말씀할 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8:2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에 대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한 분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게 하려고 시험하십니다. 우리를 연단함을 통하여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험, 즉 시련을 주십니다.
교회에서 세상과 달리 많이 쓰는 말 중에 “연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단련”이란 단어를 더욱 많이 사용합니다. “연단”이란 말은 금속 용광로 속에 넣어 불순물을 제거해서 순금을 얻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4:12~13절을 보면 “불 시험”을 소개합니다. 베드로전서 4:1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주후 1~2세기에는 예수를 믿었더니 자신이 불에 들어간 것처럼, 불에 들어가서 녹아져 내리는 것과 같은 고통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불 시험인데, 이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4:13절을 보면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나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주후 1~2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불 시험을 은혜로 여겼습니다. 베드로전서 4:14절을 보면 복으로 여겼습니다. 베드로전서 4:16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로마서 5:3~4절을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연단은 헬라어 원문으로 “도키메”로 “증거, 시련의 결과”라는 뜻이고, NIV에서는 “character”라고 번역돼 있습니다. 인내를 통해 시련을 통과하여 어떤 기질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캐릭터”, 즉, “인격, 품격”을 가지게 됩니다. 시험, 시련 속에서, 불 시험 속에서 은혜로 생각하고 버티는 것, 이것이 케릭터, 즉 인격, 품격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시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시험은 유혹입니다. 야고보서 1:13~15절의 “하나님은 누구도 시험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할 때의 시험입니다.
유혹 시험은 마귀가 합니다. 좋은 것, 값비싼 것을 던져 놓고 하는가 안 하는가 시험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뺏습니다. 우리의 삶을 뺏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굳건히 세우지만, 마귀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람을 향한 청원 세 번째 기도는 “우리를 시험에 데려가지, 이끌어 가지 마세요”는 내가 불 시험 같은 시련 속에 있어도, 남들이 볼 때 실패자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그 속에서 버티고 견디는, 그래서 이것이 캐릭터, 인격과 품격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이것이 나만이 아닌 우리 공동체에도 같이 일어나는 역사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유혹(시험)으로 인해 마음 뺏기고, 삶을 뺏기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