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법률학자인 캐스 션스타인(Cass Robert Sunstein)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2차대전에서 승리한 요인에 대해서 뜻밖에 답을 내놓아 한때 세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선스타인(Sunstein)은 미국이 참전하기전 독일 정보기관이 내놓은 보고서에 주목했습니다. 독일 정보 기관의 내부 보고서는 (반대의 요구가 제도화된 미국식 민주주의가) “(전쟁상황에서)신속하고 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다양한 목소리로 이루어진 사회가 고유의 제도를 방해하고, 이기적인 사적인 이해관계로 자본주의가 마비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정보기관의 진단과는 달리 미국은 히틀러의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하에서 결정된 것은 막힘없이 신속하게 집행되는 전체주의적 국가를 상대로 전쟁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견인해 냈습니다.
선스타인(Sunstein)은 다양성을 장려하는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가 전쟁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일지 모른다는 강력한 추론을 설득력 있게 전개했습니다. (라이나 한크지음 ‘충성이라는 함정’ 시원북스 225, 226쪽 참조)
선스타인(Sunstein)은 “군집본능, 집단압력 그리고 완고한 충성에 대한 기대는 모든 국가와 사회에서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통치자들은 스스로 위대함의 매력을 주체하지 못하며 민중에게 빌린 권력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공공의 이해 보다 개인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기꺼이 직언을 하고 더 나은 반론을 제기하는 참모들이 곁에서 조언을 할 때 훨씬 나은 업무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입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라는 미증유의 스캔들을 일으켜 임기중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닉슨 전 미국대통령은 달랐습니다. 닉슨 전 대통령은 재임 초기 실업률이 조금 떨어졌는데도 이를 언론에서 크게 다뤄주지 않자, 이를 두고 자신의 정부를 실패하게 만들려는 음모 때문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은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은 노동통계국을 음모의 주범으로 지목했습니다. 닉슨대통령이 찾아낸 이유는 그가 조직에 충성하지 않는 기질을 타고난 ‘유대인’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측근인 홀드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정부는 유대인 천지 군. 유대인들은 대개 충성심이 없지. 그 놈들은 믿으면 안돼. 언젠가는 등에 칼을 꽂는다고.”
“맞습니다 각하.”
그의 곁에서 닉슨 대통령의 말을 듣던 예스맨 참모 홀드먼과 애드 맥마흔은 계속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결국 닉슨 행정부의 조직문화는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백안시하고 반드시 처단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대통령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정보기관이 나서서 사적으로 처리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닉슨 대통령 측근들은 형사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닉슨 전대통령 옆에서 예스 맨의 역할 을 하면서 국가적 재난을 초래하는 범죄 행위에 연루된 닉슨의 부하들은 형사재판정에서 단지 “(대통령에)충성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 놓으며 선처를 요구 했습니다.
워터 게이트 특별 변호사 아치볼드 콕스(Cox)는 닉슨 대통령의 실각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실각은 우리에게 충성에도 종류가 있으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라고.
닉슨 전대통령의 사례에서 고위공직자로서 개인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리더는 고작해야 아첨꾼이나 얻을 수 있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반추할 수 있습니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사람인 초나라 장왕에게는 오거(伍擧)와 소종(蘇從) 이라는 간언하는 측근이 있었습니다. 장왕은 즉위하자 마자 “짐에게 간 하는 자는 사죄(死罪)즉 사형에 처할 범죄로 처단 하겠다.”고 하는 포고를 내렸습니다. 그후 3년이 지나도록 정치는 뒷전으로 물리고 장왕은 주색에 빠져 살았습니다. 보다 못한 신하 오거가 풍간(완고한 표현으로 빗대어 풍자해 간하는 것)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왕을 알현하고 이런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3년을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가 있다면 그 새는 어떤 새입니까?”
장왕의 눈빛이 달라 지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3년을 날지도 울지도 않았다면,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듯이 날 것이고, 울었다 하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장왕의 난행이 계속되자 대부 소종이 죽음을 무릅쓰고 직간(거리낌 없이 간하는 것)을 올렸습니다. 그 후 방탕한 척하며 주위를 살피면서 신하들을 눈여겨 보아 두었던 장왕은 평소 부정한 관리들을 처형하고 자신에게 직언한 오거와 소종 등을 발탁하여 개혁에 박차를 가하면서 단숨에 천하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단일대오 또는 일사불란이란 말로 조직원 간에 의견이 다른 것을 조직에 대한 불충내지 배신행위로 보려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싹트고 있는 듯 합니다. 의견이 다른 것을 곧 충성하지 않는 것 또는 배신에 버금가는 행위로 보는 과오는 실패한 전 미국 닉슨 행정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패턴이었습니다. 최근 김건희 특검법 재의 투표에서 여당의 4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을 두고 불충의 딱지를 붙이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봉쇄하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어떤 불행을 초래 했는지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통하여 자초지종을 알아보겠습니다.
고사성어 가도멸괵(假道滅虢)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춘추시대 에 강성했던 진나라가 우나라에게 이웃 괵나라를 치려하니 길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우나라 왕이 길을 빌려주자 진나라는 괵나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집어 삼켜 버렸습니다. 우나라 왕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고사성어가 가도괵멸입니다. 권력정치를 강행하던 괵나라 왕이 나라를 잃고 오직 목숨을 보전하기위해 도망가면서 최측근 신하와 나눈 진솔한 대화에서 값비싼 교훈을 얻게 됩니다. 나라가 망한 후 도망가면서 왕과 최측근 신하가 나눈 은밀한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왕. 술과 밥을 준비했느냐?
신하.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왕 어찌해서 미리 준비해 두느냐
신하. 왕께서 피난하실 때 필요 할 것 같아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왕. 그럼 내가 망할 것을 알고도 왜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신하. 나라가 망하기전에 제목이 먼저 떨어질까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논어 제 13편 자로(子路) 제15장에 절대 권력자에 무조건 순종하는 “단일대오” “일사불란” “잡단동조”가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시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신동준 지음 교양인의 논어에서 전문을 인용했습니다. 원문은 지면관계로 생략하고 번역문 전체를 아래에서 음미 하실 수 있습니다..
“노(나라) 정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한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과연 가능하오?’
공자가 대답했다. ‘말한마디로 그렇게 할 수 없으나 그에 가깝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군주 노릇도 어렵지만 신하 노릇도 쉽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군주 노릇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의 이치를 안다면 그것이 바로 한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키는 것과 가까운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노(나라)정공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게 하는 것도 가능하오?’
공자가 대답했다. ‘말한마디로 그렇게 할 수는 없으나 그에 가깝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군주 노릇 하는 것 자체는 즐겁지 않지만 다만 내 말을 어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즐겁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그 말이 옳아서 아무도 거스르는 자가 없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말이 옳지 않는데도 거스르는 자가 없다면 그것이 바로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게 하는 것과 가까운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言路開塞 興亡 所係
언로가 열렸느냐, 막혔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달려 있다.
이이, 율곡전서
윤석열 대통령께서 국정운영상 오판으로 인하여 신뢰의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대통령을 잘 보좌하는 일은 전적으로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책임입니다. 김건희 여사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윤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구중 궁궐에 갇힌 듯 일반 국민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국민들과 소통을 잘 하기 위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겼다는 명분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곧 대통령 취임 3년차를 맞는 윤석열 대통령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한자 들을 청(聽)은 “귀이(耳)와 임금 왕(王)그리고 열십(+), 눈목(目), 한일(-), 마음 심(心)의 합성어입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임금의 귀와 열개의 눈 그리고 하나의 마음으로 듣는다는 의미입니다. 온신경을 집중해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음(경청함)으로서 상대방을 한없이 존중한다는 무언의 제스처gesture)로도 유효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즉 위정자가 국민의 소리를 귀 기울여 경청하는 것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비결이라는 필자의 주장을 펼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