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계사 입문
▲ 화계사 일주문(一柱門) |
속세와 북한산(삼각산)의 삼삼한 숲이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에 화계사의 정문인 일주문이 자
리해 있다.
이 문은 1998년에 지어진 것으로 화계사의 국제적인 명성에 걸맞게 문의 규모도 참
장대하다.
현판에는 '삼각산(三角山) 화계사'라 쓰여 있어 이곳의 정체를 알려주며, 문을 들어서면 오른
쪽(북쪽)으로 숭산행원선사와 고봉선사, 덕산선사, 적음선사의 사리를 간직한 부도탑의 공간
이
있으며, 화계사의 모습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
▲ 화계사에서 북한산(삼각산)으로 올라가는
화계사계곡 산길 |
화계사 경내 직전에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절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등산이 목적이
라면 절로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미련없이 계곡으로 내려가야 된다. 절과 등산로 사이에는 계
곡이
가로막고 있어 이어지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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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 옆에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
- 서울시 보호수 9-1호
나이는 약 450년, 높이 20.5m,
가슴 둘레 336cm |
▲ 대적광전(국제선원) 뒤쪽 느티나무
- 서울시 보호수 9-3호
나이는 약 460년, 높이 20m,
가슴 둘레 368cm |
▲ 대적광전(국제선원) 옆에 자리한 늙은 느티나무들
왼쪽 나무는 앞서 계곡 옆에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서울시 보호수 9-1호)이며,
오른쪽 나무는 서울시 보호수 9-2호로 나이는 약 460년, 높이 28m,
가슴 둘레 316cm의 큰 덩치를 지녔다. |
화계사에는 유난히 늙은 느티나무가 많다. 입구에 1그루, 대적광전 주변에 3그루가 포진해 있
는데, 입구를 제외한 이들 3그루는 모두 400년이 넘는 지긋한 나이를 지니고 있다. 제일
오래
된 나무는
보호수 9-2호와 9-3호로 약 460년을 헤아리며, (1981년 보호수 지정 당시 추정 나
이가
약 415년) 가장
키가 큰 것은 보호수 9-2호 나무, 제일 둘레가 큰 것은 보호수 9-3호 나
무이다.
화계사는 1522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데, 9-2호와 9-3호 나무의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거
의
1560년이 된다. 굳이 1522년이 아니더라도 이들을 통해 적어도 16세기부터 법등(法燈)을
밝혔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산증인들로 절에서 정자나무 또는 풍수지리에 따라 심은 것으로 여
겨진다. |
▲ 대적광전(大寂光殿) |
보호수 느티나무와 키를 겨루고 있는 대적광전은 4층 규모에 웅장한 건물이다. 겉으로
보면 3
층으로 보이겠지만 지붕에도 공간이 있어 총 4층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은
1991년에 짓기 시작하여 1993년에 완성을 본 화계사의 자존심 같은 존재로 복합적
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1층은 공양간과 국제선원 사무실로, 2층은 강의실(제일선원)과
요사
(寮舍),
3층은 대적광전, 4층은 국제선원 및 일요영어법회와 템플스테이 장소로 쓰인다. 특히
공양간은 300여 명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화계사의 내력을 짚어보도록 하자. |
▲ 경내 북쪽 언덕에서 바라본 화계사 |
북한산(삼각산) 동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화계사는 1522년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창건했
다고 전한다. 신월은 정체가 아리송한 서평군 이공(西平君 李公)의 도움을 받았는데, 벌채를
하지 않고
인근 부허동(浮虛洞)에 있었다고 전하는 보덕암(普德庵) 건물(법당과 요사 50칸)을
가져와 절을
세웠다. 아마도 서평군이 그곳을 매입하거나 빼앗아 절 건립에 제공했던 모양이
다.
화계사 건립에 희생된
보덕암은 고려 광종(光宗) 때 법인대사(法印大師) 탄문(坦文)이 지었다
고
전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보덕암 건물을 단순히 옮겨왔다는 이유로 화계사의 창건
시기를
고려
초로 우기기도 했으나 이는 단순히 건물만 가져왔을 뿐, 절의 이름과 성격은 다르므로
엄연한
별개로 봐야 된다. 그래서 1522년을 창건 시기로 크게 삼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던
460년 묵은
느티나무는 절의 창건시기를 그런데로 받쳐주는 산증인들이다.
1618년 9월 불의의 화재를 만나 절이 몽땅 잿더미가 되었다. 이때 도월(道月)이 덕흥대원군(
德興大院君) 집안의 지원을 받아 중창 불사를 벌여 1619년 3월 완성을 보았다.
이후 절이 크게 쇠퇴했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 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민씨(府
大夫人閔氏)와의
인연 덕분에 다시금 흥한 기운을 얻게 된다. 당시 화계사는 민씨 외가의 원
찰(願刹)로 자주 절을 찾아와 불공을 올렸는데, 그러다 보니 대원군도 부인 손에 이끌려 이곳
을 찾았다. 당시 대원군과 화계사와의 끈끈한 인연, 그리고 대원군의 야망을 엿보게 하는 설
화 한 토막이 세월의 바람을 타며 은은히 전해온다.
때는 바야흐로 안동김씨 세력이 한참 나라를 말아먹던 시절의 어느 여름날<헌종(憲宗) 때로
여겨짐>, 대원군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화계사를 찾았다. 무더운 여름이라 참을 수 없는 갈증
으로 꽤 지친 상태였는데, 절 앞 느티나무에 이르니 왠 동자승(童子僧)이 아무 말도 하지 않
고 꿀물이 든 사발을 내밀었다.
대원군은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듯, 사발을 신나게 들이키고 물을 준 이유를 물었다. 동자승
이
괜히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자 왈
'만인(萬印) 스님께서 이러이러한 손님이 오실
것이니 꿀물을 드리고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대원군은
자신이 올 것을 짐작했던 만인의 예지력에 크게 감탄하며 동자승의 안내로 만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대원군과 만인, 이들은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지 이번이 초면인지는
모르겠으나 금세 심
금을 터놓고 판이 큰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대원군은 안동김씨를 몰아내고
왕권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다. 허나 만인은 그의 야망은
물론이고 장차 나
라를 좌지우지할 인물이 될 것을 예견하고 있던 터라 크게 놀라진 않았다.
그래도 시치미를 한번 떼며,
'이것도 다 인연의 도리인데, 소승이 어찌하겠습니까? 흔쾌히 알려드리지요'
그 방법이란 무엇이냐?
충청도 덕산(德山,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가야사(伽倻寺) 금탑 자리
가 제왕(帝王)이 태어날 명당(明堂)이니 경기도 연천(漣川)에 있는 남연군(南延君, 흥선대원
군의 아버지)의
묘를 그곳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장차 제왕이 될 왕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명당 자리를 알려주는
것은 좋으나 그 자리에 이미 절이 있다. 절에 몸담은 승려로써 참으로
몹쓸 말을 한 꼴이 된다. 허나 그렇게 흥선대원군이란 든든한 후광(後光)을 얻게 됨으로써 가
야사에게는 무지하게 미안하지만 화계사는 이전보다 더 흥하게 된다. 그게 바로 만인이 노린
것이다.
대원군은 돈을 마련하여 가야사를 찾아가 그곳 주지승과 흥정했다. 돈에 함빡 넘어간 주지승
은 자기 절에 불을 지르며 탑을 부셨고, 대원군은 남연군 묘를 그곳으로 이전했다. 이후 아들
이재황(李載晃)이 태어났고, 1863년 조대비(趙大妃)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고종
(高宗)이다. 이렇게 대원군의 꿈은 그런데로 이루어진다. 동시에 만인의 꿈도 실현된다. 허나
그러면 무엇하랴? 3대도 못가서 이 나라는 물론 이 땅의 역사까지 죄다 말아먹었거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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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부전 지장시왕상과 지장보살도 |
▲ 천불오백성전 |
고종 이후, 화계사는 날개를 겹겹히 달게 되는데, 1866년 대원군의 두둑한 지원으로 절을 중
수했다. 이때 지어진 것이 대웅전과 보화루(화장루)이다. 1870년에는 용선(龍船)과 초암(草庵
)이
대웅전을
중수했고, 1875년에 화산재근(華山在根)이 대웅전의 아미타후불탱을, 성암승의(
性庵勝宜)가 신중탱과 현왕탱, 지장탱 등을 조성했다.
1876년에는 초암이 전년에 궁궐에서 받은 자수(刺繡)로 만든 관음상(觀音像)을 봉안하고자 관
음전을 고쳐지었다. 이 관음상은 1874년 2월 훗날 순종(純宗)이 되는 왕자가 태어나자
그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고자 모후(母后)인 명성황후(明成皇后)와 조대비,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
(헌종의 왕후로 홍대비)의 발원으로 궁녀들이 수를 놓아 만든 것이다. 기존 관음전이 1칸 밖
에 안되는 작은 건물이라 상궁(尙宮)들이 돈을 시주했고, 넉넉한 재정 지원에 장인들도 앞을
다투어 건립에 참여해
건물을 짓고 단청하는데, 불과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1877년에는 왕명으로 황해도 배천군(白川郡, 한자는 백천이나 배천이라 읽음)에 있던 강서사(
江西寺)의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을 가져와 화계사에 넘겨주었고, 이들을 봉안하고자 1878년 시
왕전을 고쳐지었다.
또한 1880년 조대비가 명부전에 불량답(佛糧畓)을 내렸으며, 1883년 금산(錦山)이 조대비와
홍대비의 지원으로 관음전의 불량계(佛粮契)를 세웠고, 1885년 산신각을 중수했다.
1897년에는 큰 종을 영주 희방사(喜方寺)에서 가져왔으며, 중종(中鐘)은 경도에서 구입하고,
운판은 해남 미황사(美黃寺)에서 옮겨왔다. 이렇게 고종과 순종 시절에는 왕비와 대비, 상궁
의 발길이 빈번해 속세에서는 이곳을 궁(宮)절이라 불렀다. 그만큼 왕실과의 끈이 두터웠던
것이다.
1910년 12월 월명(越溟)이 임종을 맞이하면서 강원도 양양에 있던 논 276두락(斗落)을 절에
헌납하면서 만일염불회가 세워졌으며, 1911년 왜정(倭政)의 사찰령(寺刹令)으로 봉은사(奉恩
寺)의 수반말사로 편입되었다.
1921년 3월 현하(玄荷)와 동화(東化) 두 화주가 김창환, 민준기 등의 시주로 관음전과 시왕전
을
중수 단청했고, 이듬해에 대웅전 개금불사를 벌였다. 1925년에는 주지 한찬우(韓讚雨)가
김종하, 오정근의 지원으로 법당 및 대방 앞뒤 축대를 쌓아 이듬해 7월 완성했으며, 1933년 7
월 한글학회 주관으로 한글맞춤법 통일안 마련을 위한 모임이 이곳에서 열렸다. 그때 논의된
통일안은
그해 10월 세상에 발표되었다.
1937년에는 종식(鍾植)이 낡은 건물을 정비했고, 북한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 바위에 마애관
음상을 조성했다. 그리고 1938년에는 승려 안진호가 '삼각산화계사약지(三角山華溪寺略誌)'를
편찬했다.
6.25전쟁 때는 다행히 총탄이 비켜가 별 피해는 없었으며, 1964년 최기남 거사의 가족이 기증
한
최기남의 오백나한을 봉안하고자 천불오백성전을 세웠고, 1972년에 진암(眞菴)이 범종각을
지었다. 1973년에는 대웅전 삼존불을 조성했으나 이듬해 관음전이 불에 타면서 소실되었으며,
1975년 진암화상이 퇴락된 산신각을 증축해 삼성각으로 이름을 갈았다.
1991년 4층 규모의 대적광전을 세웠고, 1992년 국제선원을 개원해 외국인 승려의 필수 수행처
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에는 명부전을 보수하면서 지장보살상을 개금했고, 2005년에 대웅전
을 보수했고, 2018년 12월 미륵존불을 크게 마련해 지금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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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승려의 생활공간인 조실당(祖室堂) |
▲ 화계사 동종 |
화계사가 외국인 승려의 성지가 된 것은 숭산행원의 오랜 노력 덕분이다. 그는 1970년대에 미
국으로 건너가 양이(洋夷)를 대상으로 한국 불교를 포교했다.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방
황하던 양이들은 그의 포교와 설법에 적지 않게 감명을 받았고, 그가 외국에 머무는 동안 5만
명이
넘는 양이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숭산이 외국에 세운 선원은 30개 나라에 120곳이 넘으며, 미국에서 처음 세운 '프로비던스 선
원'에서는 1982년 천하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평화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의 열성
적인 포교로 화계사를 찾는 외국인 승려와 승려 희망자가 나날이 늘자 계룡산(鷄龍山) 무상사
에
제2의 국제선원을 만들어 이들을 수용해 가르치고 있다.
화계사는 법당(法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삼성각, 보화루, 대적광전, 조실당, 천불
오백성전, 교육관 등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이중 대적광전
이
단연 규모가 크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동종과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등 국가 보물 2점과 대웅전,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아미타괘불도 및 오여래도, 천수천안관음변상판, 탑다라니판,
대웅전 상량문 및 복장물 일괄 등 지방문화재 10점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 400년 이상 묵은
느티나무 3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어 절의
오랜 내력을 대변해준다.
도심과 무척이나 가깝고 접근성도 좋으며, 주택가가 바로 지척이지만 삼삼한 숲에 포근히 감
싸여 있어 고즈넉한 산사의 멋을 누리기에는 그리 부족함이 없다. 국제적인
사찰이라 어색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인사를 건네는 외국 승려와 수행자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불교의 높은 위상
과 인기를 새삼 느끼게 한다.
* 화계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487 (화계사길 117, ☎ 02-902-2663, 903-3361)
* 화계사 홈페이지는 ☞ 이곳을 클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