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기 인생 20년을 걸어온 정보석은 영화배우로도 탤런트로도 부족함 없는 연기자다. 딱딱한 제도권의 바깥에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바람둥이 택시기사를 연기한 그를 만났다.
주성철 기자 요즘 TV 드라마 <대조영> 출연진들이 가정을 버렸다는 기사까지 봤는데? 정보석 일주일 내내 스탠바이 상태다. 약속은 절대 잡을 수 없다.(웃음) 월, 화는 수원에 있고 수요일부터는 속초나 문경으로 간다. 사극이라 준비할 것도 많고 하여간 정말 힘들다.
주성철 기자 그런데도 최근엔 연예인 야구팀 투수로 활동하던데. 정보석 지난해에 우승했고 올해도 다행히 2승중이다. 물론 내가 투수로 2승 올렸고 현재 2전 2승이다. 다행히 후배들이 나를 밀어줘서 선발로 나가고 있다. 과거 고교 시절에 야구를 하다가 부상으로 그만뒀는데 그게 30년 전이니까 정말 30년 만에 공을 처음 잡아본 거나 마찬가지다. 그 뒤로 절대 야구는 안 했으니까.
주성철 기자 그렇게 TV 드라마도 하고 야구도 하는데 언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찍을 틈이 있었나? 정보석 시나리오가 정말 유쾌했다. 불륜 얘기를 이렇게 유쾌하게 풀 수 있다니, 하는 생각에 받자마자 하기로 했다. 물론 바쁘지만 배우들은 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리고 감독이 내 속에 있는 개발되지 않은 다른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욕심이 나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무슨 역할이라 딱 정하고 보내주지 않아서 난 남편인 ‘태한’ 역인 줄 알았다. 그래서 태한으로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감독님을 만나러 갔더니 택시기사인 바람둥이 ‘중식’이더라.(웃음) 왜 그랬냐니까 평소 나를 보면서 내 모습 중에 그런 비슷한 면을 봤다네. 그래서 어쨌건 다듬어지지 않은 내 새로운 모습을 나도 함께 개발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다.
주성철 기자 그 역할을 보면서 <오! 수정>(2000) 때의 모습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보석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둘은 워낙 차이가 있으니까. <오! 수정>에서는 전혀 바람둥이가 아니고 예술 하는 사람이고, 나이는 먹었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완전히 숙맥이다.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는 혼자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은 바람둥이다. 그래서인지 에너지가 넘치고 정말 단순한 역할이라 좋다. 별로 생각 안 하고 사는 것 같고 가까운 사람을 챙기고 먼 사람을 나쁘게 여기는 전형적인 흑백논리의 ‘단순남’이다. 그래서 한없이 낙천적이기도 하고 매사에 긍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공통점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서 나 역시 참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김태식 감독이 원하는 중식과 나의 중식 사이에서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이 나온 것 같다.
주성철 기자 중식을 아마 다른 배우가 했으면 무척 얄밉고 못되게 보였을 텐데 정보석의 중식은 묘한 느낌이 있다. 분명 싫은 남자인데 이상하게 그의 얘기에 설득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보석 그런 점에서 <오! 수정> 분위기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게 배우로서 장점이지만 극복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시사 뒤에 배우 장현성이 “형을 보면 악해도 완전히 악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난 그게 나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악당이라도 아주 미워지지 않는 악당을 연기할 수 있는 것도 배우로서 장점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진짜 혹독한 악역을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나쁠 수도 있다는 거지.
주성철 기자 전혀 마초처럼 보이지 않는 남자가 그런 마초 행세를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정보석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TV에서건 영화에서건 정말 안 했던 역할이 거기 있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었고. 자신은 바람을 피우면서 아내의 불륜에는 화를 내는 전형적인 남자의 모습이다.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면서 수컷들이 갖고 있는 자기 과시를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다. 남자가 자신의 우월함을 보이려고 상대의 약점을 보고 밀어붙이기도 하고. 폭포 장면에서 내 벌거벗은 뒷모습을 볼 수 있는데(웃음) 김태식 감독은 앞부분도 드러내자고 했다. 나야 뭐 연기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일단 상영이 좀 힘들지 않겠냐, 못 보여줄 걸 왜 하냐며 설득을 해서 그 정도로만 갔다.
주성철 기자 어쩌면 그런 장면을 찍을 수 있다는 게, 연기자로서는 TV 드라마에서 느끼지 못하는 영화만의 장점이 아닐까? 정보석 물론 그렇다. 그런 게 아니라도 영화의 매력은 엄청나다. 일단 감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그만큼 연기가 디테일해져야 되고, 어떤 폐쇄된 어둠 속에서 배우를 보게 되니까 관객과 스크린과 나라는 관계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스크린이라는 넓은 공간을 채워야 할 것도 많고, 클로즈업이나 편집 등 나는 그대로지만 다양하게 강조를 하거나 분절해서 보여주는 여러 효과가 크니까 스크린의 매력이란 게 짜릿하다.
주성철 기자 1986년 TV 탤런트로 데뷔하고 1989년 곽지균 감독의 <그 후로도 오랫동안>으로 영화 데뷔를 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이기도 한데 원래 영화에 더 큰 꿈을 갖고 있지는 않았나? 정보석 이상하게 그때는 중앙대 출신이 영화계에 별로 없었다. <걸어서 하늘까지>(1992)를 함께한 장현수 감독도 그 뒤였고. 물론 영화배우가 더 큰 꿈이었지. 그래서 그때 얘기를 하자면, TV 탤런트를 한 3년 정도 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과감하게 당분간 영화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후로도 오랫동안>을 찍었다. 그 뒤로 계속 많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런데 SBS라는 방송사 하나가 더 생겼던 게 연기자로서 내 인생궤도가 바뀐 분기점이었다. 방송사가 하나 더 생겼는데 탤런트 숫자는 그대로여서 무척 경쟁적이었다. 탤런트가 부족하니까 그 전에 나에게 기회를 주고 은혜를 줬던 고마운 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계속 영화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두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내가 아쉬울 때 도와줬던 분들인데 이제 그들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 모른 척할 수는 없겠더라. 그래서 다시 TV 드라마를 하게 됐다.
주성철 기자 그렇게 영화와 TV를 확실하게 선 긋고 오가는 게 쉬웠나? 정보석 그게 1992년 KBS <정든 님>이라는 드라마였는데, 당시 중국과 수교도 되기 전에 내가 중국 교포와 결혼하는 내용의 기획이었다. 굉장히 큰 기획이라 다른 작품과 병행한다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계 쪽에서 비난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그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보니 더 욕을 먹었다. 욕먹으며 영화계 떠나서 TV 드라마 했는데 그것마저도 잘 안 된 거지. 게다가 그 전에 영화를 하면서도 한 회사랑 어쩌다보니 전속 아닌 전속이 됐다. 그 제작자 분께서 딱히 전속도 아닌데 다른 회사 영화 하는 걸 무척 못마땅해 했다. 그래서 영화를 하면서도 TV를 하면서도 이상하게 비난을 좀 받았다.(웃음) 내 속사정도 모르고 다들 그렇게 보니까 적도 많았던 거다. 하여간 그렇게 내막은 따로 있는데, 이 영화 저 영화 다 튕기면서 안 그래도 밉보이던 차에 영화 안 하고 TV로 갔고, 또 그게 실패를 했으니 안 좋은 소리를 더 들었던 거다.
주성철 기자 그래서 그 이후는 어땠나? 정보석 뭐 꼭 그런 이유로 다시 영화를 안 한 건 아닌데, 그런 오해가 안타까워서 미안한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이다. 그 드라마가 잘 안 되고는 오기가 생겼다. 탤런트로 잘될 때까지 만회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송에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방송국이 주 무대가 됐고 한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게 됐다. 방송은 반응이 즉각적이고 훨씬 순발력을 요하니까 그것도 참 매력 있다. 영화와는 다른 묘한 긴장감이 있다.
주성철 기자 그런 상황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995)에 출연한 건 어떤 이유로? 정보석 평가를 받거나 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 작품도 할 때는 기분 좋게 했다. 이휘소 행적만 추적해갔으면 좋은 영화일 수 있었는데 스케일을 강조하는 바람에 아쉬움이 좀 남는 영화였다. 내 작품 선택 같은 건 인연을 따라서 하는 스타일이다. 친절을 받고 은혜를 입으면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좀 있다. 관객으로서는 한 배우를 보며 그 사람이 좋은 작품만 취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이 있겠지만, 배우 개인으로서는 연기를 하는 순간에 이게 좋은 작품일 거다, 나쁜 작품일 거다, 하는 뚜렷한 의식이 없을 거다.
주성철 기자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정말 안성기, 박중훈, 최민수 등과 더불어 한국영화계의 중심 남자배우였다. 그중에서 역시 최고작은 ‘물새’로 출연한 <걸어서 하늘까지>였던 것 같다. 정보석 장현수 감독의 데뷔작이었는데 리얼리즘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그의 재능이 빛난 영화였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나의 변신이라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영화 얘기를 할 때마다 안타까운 게, 남상진이라는 제작자다. 내 또래였고 <제5의 사나이>를 하면서 알게 된 친구인데 그 <걸어서 하늘까지> 개봉하고 얼마 안 돼서 세상을 떴다. 당시 장현수 형도 데뷔를 못 하던 안 좋은 상황이었는데 ‘내가 이런 좋은 감독이 있는데 잘 안 된다’면서 얘기를 하니까 당장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하루 만에 오케이를 해서 영화가 진행됐고 좋은 감독,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굉장히 의욕적으로 영화에 달려들었다. 할리우드 직배가 시작됐을 때 더욱 공격적으로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난 아직도 남상진 사장이 살아서 영화를 계속 만들었으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더 일찍 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거 참 옛날 일인데.(웃음)
주성철 기자 이 역시 옛날 일이지만,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투 문 정션> 등으로 유명한 잘만 킹 감독이 당신을 자신의 에로영화에 캐스팅하고 싶다고 해서 직접 만난 일도 있었다.(웃음) 그랬다면 당시 ‘할리우드 진출 1호’ 뭐 그런 수식어가 붙지 않았을까? 정보석 하하 맞다, 그런 일도 있었다. 잘만 킹 감독이 한국에 와서 함께 인터뷰도 했고 당시 내가 진행하던 ‘영화음악실’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그 감독이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의뢰가 왔었다. <레드 슈 다이어리>의 시리즈 중 하나였는데 일단 당시 내 스케줄이나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 작품 자체가 내가 글로벌한 그 무엇을 얻는 데도 조금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해외로 가는 것보다 일단 여기 남아서 더 열심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별다른 아쉬움 같은 건 없다.(웃음)
주성철 기자 <꼭지딴>(1990) 같은 영화에서는 최진실과 함께 액션 연기도 직접 다 했다. 기본적으로 남성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정보석 고맙다. 나 역시 그런 이미지를 계속 보이고 싶다.(웃음) 실제로 내가 운동이나 액션하는 걸 좋아한다. 지금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어지간하면 내가 직접 다 하는 편이고. 우리 집 마당에도 샌드백을 걸어놓고 늘 친다. 액션영화는 배우로서 늘 해보고 싶은 장르다.
주성철 기자 또 하나 궁금한 건, 사실 정보석이라는 최초의 이미지는 TV 사극 <사모곡>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대조영>도 그렇고 그전의 <신돈> <상도> 등 사극을 꽤 많이 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더라. 정보석 딱 하나 배창호 감독님의 <꿈>에서 안성기 선배, 황신혜 씨와 연기한 적 있는데 그 뒤로는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제의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웃음) 요즘에야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사극영화가 정말 드물었으니까. 만약 사극영화를 한다면 무사 역할 같은 걸 해보고 싶다.
주성철 기자 영화배우로서 가장 큰 전환점이자, 가장 긴 공백 뒤의 작품이라면 <오! 수정>일 것 같다. 5년 정도 완전히 영화계를 떠나 있다가 돌아와 ‘정보석의 재발견’이라고 회자됐다. 정보석 정말 홍상수라는 이름 하나로 출연했던 영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을 강남 동아극장에서 봤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배우란 어디까지나 자기를 드러내는 작업인데 저 감독하고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원도의 힘>(1998)도 너무 좋았고. 설마 했는데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시나리오 같은 게 없었는데도 정말 기꺼이 했다. 내가 동경하는 스타일이었고 처음부터 나라는 배우가 무장해제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괴롭긴 했지만(웃음) 그런 과정들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편집실에서 ‘어, 내가 언제 저런 장면을 찍었지?’하는 장면도 나왔고. 다들 내가 정자에 앉아서 “수정 씨, 이리 와요!”했던 장면을 많이 얘기했는데 난 정말 기억이 안 난다.(웃음) 그래서 이거 나는 맨정신에 연기하면 안 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하여간 영화 찍는 내내 단 한 번도 속상했던 적이 없는 작품이었다.
주성철 기자 <오! 수정>도 그렇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도 그렇고 당신의 음성이 중요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부드럽고 편한 음성이라 캐릭터의 흡입력이 있는 것 같다. 정보석 내 목소리에 불만은 없는데 요즘 <대조영>에서 장군을 하면서 어려움을 좀 느끼고 있다. 혼자 활동하는 무사 캐릭터를 하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수십, 수백만 대군을 거느리는 장군을 하기에는 목소리가 좀 여윈 편이다. 물론 바꿀 수는 있지만 좀 버겁다는 생각을 한다. <대조영> 하면서도 앞에 실제로는 2, 3백 명 두고서 수만 인파가 모였다고 상상하고 연기를 하는 건데 아무래도 가끔씩 감당이 안 되는 오버페이스를 하게 된다. <오! 수정> 같은 연기 스타일이 좋다고 말하는 게 난 내 안의 것을 솔직하게 풀어놓는 연기방식을 좋아한다. 스스로 내 감정이 나와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게 좋다. 무언가 극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오버를 하게 되는 연기는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역할들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웃음)
주성철 기자 이후 이지상 감독의 <그녀 이야기>(2000)도 그렇고, 전수일 감독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2003) 등 독립영화에 모습을 비췄다. 여전히 TV 드라마에서는 잘나가는 메인이었는데 말이다. 정보석 그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돈오>를 보고 이지상 감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역시 하게 됐던 거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역시 새로운 면을 봤다. 일단 내가 TV에서 하기 힘든 역할이라면 관심이 간다. 그리고 그런 독립영화들이 제도권 안의 상업적인 영화들을 모방한다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하면서 의미 있고 생명력 있는 그런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자체적인 경쟁력이 생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쉽사리 TV 드라마나 상업 영화에서 할 수 없는 캐릭터 제의가 들어오면 쉽게 응하는 편이다. 그냥 술만 얻어먹고 할 때도 있고, 또 적당히 받아야겠다 싶으면 물론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지만 그래도 일이라 생각하고 받기도 한다. 작품이 가진 예산이나 그런 거 따져서 받아야 하는 거니까. 그러면서 나도 즐겁고, 배우로서 나를 긴장시켜주고 만족시켜주는 작업들이다.
주성철 기자 현재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나? 정보석 아직 정해진 건 없다. <대조영>을 끝내고 중국에 갈지도 모를 프로젝트가 하나 있긴 한데 확정된 건 아니다. <대조영> 같은 큰 드라마들이 거의 1년 단위로 제작되는 작품들이다. 그러다보니 <신돈>부터 <대조영>까지 거의 2년을 쉴 틈 없이 한 편씩 매달렸고, 이제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어쨌건 장군 말고 좀 다른 역할로.(웃음)
프로필 1962년 생 |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 영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젊은 날의 초상> <꼭지딴> <제5의 사나이> <걸어서 하늘까지> <웨스턴 애비뉴> <49일의 남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오! 수정> <쓰리>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등 | TV 드라마 <사모곡> <상도> <명동백작> <용서> <신돈> <나도야 간다> <대조영> 등
사진 김병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