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햇살이 따갑지만 조금의 바람이 있다면 더위를 이겨낼만 하다.
확연히 계절은 바뀌어 간다. 절기로는 엇그제 처서가 지났고, 10여일이면 백로와 추석이 연이어 다가온다.
강에는 조정 선수들이 벌써부터 훈련에 나섰고, 지나는 공장엔 잔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들판으로 들어서니 벼가 익어가고 있다. 벌써부터 수확에 나선 트랙터의 기계음이 요란하고, 변하는 환경에 새들은 먹이 터전을 잃을까? 걱정스러운 듯해 보인다.
바람이 잦아들자 햇살이 따갑다. 문득 학교다닐때 배웠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을날/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놓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숙케 하여
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그런데 시가 이 계절에 맞기는 하는걸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나는 시를 읽으며 그 마지막 과일이란게 포도일 것이라 짐작해 보았다.
왜냐하면 오스트리아는 포도주가 유명하다. 와인 제조역사가 2000년이 넘고, 그곳의 여름 건조한 날씨는 포도재배에 적합하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포도수확기는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8월 중순부터 한달 정도라고 들었다. 그래서 이 시가 지금의 계절에 맞을 것이란 추측을 해보는 것이다.
벼논을 둘러보러 나온 농부에게 물으니 올해의 벼농사는 지금 상태로선 괜찮은 편이란다.
올 밤은 수확에 들어갔고, 감과 사과며 대추도 읶어간다. 추석엔 햇쌀과 햇과일도 눈에 띌 것 같다. 시인의 글처럼 마지막 과일이 익을때까지 좋은 날씨가 지속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