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색 글씨는 청춘의 독서를 인용, 검은색은 대체적으로 저의 생각입니다.
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죄와 벌 >
에전에 읽었던 죄와벌의 줄거리를 생각하면서 유시민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유시민이 인용한 부분을 발췌해보면...
"그런일을 저질르려고 하면서,이토록 하찮은 일을 두려워하다니!'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 문장은 ..인간의 생활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람은 가슴에 큰 것을 품기도 하고 품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뭔가를 하려고 할 때 무엇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지를...그리고 무엇을 떨치고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우리가 살다보면 큰 생각을 품거나, 무엇을 하기 위해서 가장 큰 장애의 동기는 어쩌면 가장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상의 편린들일 수도 있다.
가장 하잖은 그것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인을 죽이기 위해서 살인을 계획하지만 정작 하숙집 아줌마와 마주치는 것은 주저한다.
집세와 식대가 밀려있기에...
죄와벌의 주인공처럼..우리도 그렇다.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어도 정작 눈앞에 현실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런데 풋! 하고 자신을 어이없게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은 정작 그런 사실이 당혹하고 어이가 없기도 할 것이다.
가슴에 살인을 계획하든, 가난을 구원하려 하든, 세상을 구하려 하든...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눈앞에 삶의 어떤 것들이 아주 크게 신경이 쓰인다는 사실은 인간이 그만큼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때로는 삶의 자질구레함에서 과감히 일어서야 할 때도 있다.
이상과 현실에서 보자면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사는 존재이기에 육신을 지탱하는 것의 대한 것을 쉽사리 무시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어쨌든 라스꼴리니꼬프는 그의 이상을 실행에 옮겼다. 여기에서 유시민의 견해는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와의 견해와 갈린다.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악덕 전당포 노인을 살인해하였다.
도스트예프스키가 죄와벌을 쓰면서 하는 '질문' 과 유시민이 죄와벌을 읽으며 하는 '질문' 은 일치된다.
나는 그 질문들이 정당한가? 혹은 질문의 답은 정당한가? 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본다.
가난은 누구의 책임인가?
유시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지 않고 사회에도 책임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사회악은 왜 생겨나는가? 개인에게 전부 책임지울 수 없는 사회악은 왜 생겨나는지에 대해서 그는 계속하여 의문을 품고 죄와벌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하는가?
도스트옙스키는 주인공의 살인을 행한후에 일어나는 정신적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또한 유형지에 따라간 소냐가 고통을 겪는 죄수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모습을 따뜻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의 발에 몸을 던져 키스하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이 죄를 인정하고 심리적 고통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유시민은 도스토옙스키의 견해에 다른 견해를 편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 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것은 ,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추론의 산물이 아니고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보고 체험한 끝에 얻어지는 스스로의 경험적.직관적 판단으로 그렇다고 했다.
유시민의 생각은 어떠한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악한 방법의 사용에 대해서 일말의 전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선한 목적은 선한 목적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고 있고, 독일의 히틀러가 전체주의라는 제도화된 악으로 행한 모든 악행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알고 있으며 그역시 비참한 종말을 고했던 것을 역시 알고 있다.
이에 유시민은 자신의 생각을 내보인다.
스탈린과 히틀러,그리고 이들의 지시를 받아 대량 학살을 저질렀던 수많은 부하들은 전당포 노파를 죽인것 때문에 라스꼴리니꼬프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번민과 고통에 시달렸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어떤 선한 목적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는 명백하다고 했다.
인류는 20세기의 전체주의 경험을 통해 나쁜 수단으로는 결코 좋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라고도 했다.
죄와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주장한 초인론은 현실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사후에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해서 전체주의 체제가 현실화 되었다.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완전한 권리를 행사한 전체주의 체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권과 참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게 의사 결정권을 제한적으로 위임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있다.
유시민은 두냐와 소냐라는 소설속의 여인들에게서 새로움을 본다.
도스토옙스키가 전형적이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러시아의 여인들의 표상을 유시민은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이상향도 얼핏보게 되는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스스로의 이상향을 러시아 여인들에게 그 향기를 심어놓았다.
이에 유시민은
곧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고 믿었던 비범한(?) 사람들 속에 평범한 사람,
평범하게 살면서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과 품격을 구현하는, 강력한 내면의 힘을 가진 '평범하고 지혜로운 러시아의 여인들'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유시민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도스트옙스키가 20세기를 목격했다면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라고 생각했지 않을까 하는 염원을 비추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살다보면 여러가지 생각속에서 그 생각의 일부분들을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모두 살다보니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등등의 많은 말들을 하거나 자기방어를 하기도 한다.
누구나 의도 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살았을 것이고 살아가고 있는중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어쩔 수 없어서 라는 것을 버리고 이제는 바른 것을 찾아서 그것을 가슴에 심어놓고
선한 목적을 갖고 선한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죄와벌의 주인공들 대다수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생각과 이상이 있다.
도스토옙스키와 유시민이 두냐와 소냐를 평범하면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사는 소시민에게 대표성을 부여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건정한 정신으로 사는 생활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속에서 살아가며 보는 것들 속에는 참으로 역겨운 것들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때로는 역겨워 보이는 것들 마저도 이 세상의 한 부분임을 알게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전체주의, 인류를 구원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인간과 인간사회를 지배했던 전체주의도 역사속에서 그 흔적을 사실로 남기고 있고, 오늘날에도 그 흔적은 곳곳에서 보이기도 한다.
인류의 삶도 이와 같이 맥락을 같이하여 왔고 아직도 그런 상처는 계속되고 있고 상흔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라는 이말이 아직도 강력하게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이념을 떠나더라도 우리 일상의 삶도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이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