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인생이 우리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몸도 마음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인생이 우리 계획대로 되는 시간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로 가고 있습니다.
로마는 그가 늘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로마로 가고 있는 바울의 모습은 그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죄수의 몸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인생 가운데 가장 무력한 상태에 처해있습니다. 그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핍박이나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말씀으로 양육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죄수였기 때문에 자유를 뺏겼고,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고, 있으나 마나한 투명인간처럼 바울을 대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무력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엄청난 실패를 경험했을 때, 어느 순간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절망에 사로잡힐 때 존재감 없는 투명인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무기력에 빠지고, 사람들은 의견을 무시하고,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바울도 백부장에게 지중해에서 두 번이나 파선을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간곡하게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9-10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그는 간곡하게 호소했지만 무시당하고 말았습니다. 11절입니다.“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죄수를 인솔하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무력함을 느끼고 절망에 빠져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폭에 고통받는 학생들, 직장에서 떠돌림 당하는 외톨이들, 성폭력의 2차 가해로 신음하는 여성들, 존재감없는 삶을 살며 신음하는 이들에게 교회와 성도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가운데 교회와 성도들도 존재감을 잃고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비난했고, 교회는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신천지나 전광훈목사 같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일들도 있었지만 교회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코로나가 종식되고 교회의 예배와 사역이 회복되어가야 하는 이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해 힘을 갖고 싶어합니다.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거나, 권력을 갖거나 그렇게 되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 방법을 교회와 성도들이 본받고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영향력을 가지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존재감은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탁월한 은사와 재능을 뽐낸다고 회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 삶에서 증거함으로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자굴에 들어갔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이 그의 입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때 다니엘도 존중받고, 바벨론 잔국에 하나님의 이름이 울려 퍼졌습니다. 바울은 배에 탄 사람들이 겪는 고난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무시한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렸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때도, 그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교회와 성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무력감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런 태도는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교만입니다. 주어가 주님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존재감없는 이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소망의 사람 (리더의 역할을 한다.)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그들은 유라굴로 태풍속에 빠졌습니다.‘유라굴로’태풍은 크레타섬의 가장 높은 2,456M의 이디산에서 남쪽으로 부는 찬바람과 따뜻한 남풍이 부딪쳐서 급격하고 거센 돌풍을 만들어 태풍이 되는 것입니다. 광풍이라 할만큼 거센 바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절망에 빠졌습니다. 짐을 바다에 버리고, 배의 기구들도 버렸습니다. 이제 그 배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돈도 포기했습니다. 배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속에 바울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리더는 절망의 태풍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신분과 관계없이 그가 있는 그곳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무언가 특별한 재능과 은사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리더입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12월에 퇴임했습니다. 독일인들은 그녀를 무티(Mutti, 엄마)라고 부릅니다. 그녀는 동독출신입니다. 1954년 동독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올 때 그녀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는 갓 태어난 메르켈을 데리고 동족으로 이주해서 목회를 했습니다. 메르켈은 최초의 여성총리이고, 이혼녀입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보다는 이웃집 아줌마 같은 스타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격변의 시기에 세계적인 리더가 되어 일한 비결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미 주신 것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많은 역경속에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갖고 역경을 이겨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무엇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활용하면 리더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물맷돌은 모두 이미 주신 것들입니다. 내게 이미 주신 것 중에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헤쳐 나갈 무기가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바울이 소망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한 것이 없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면 소망을 주는 리더로 살수 있습니다. 그의 첫마디는 “이제는 안심하라”였습니다. 소망의 사람은 평안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배가 처한 상황은 평안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전히 구원의 희망은 보이지 않고 그들은 짐을 버리고 배도 포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굶주렸고 살 소망마저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제는 안심하라”그대로 번역하면“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리더는 용기와 도전을 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다를 걸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한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그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크리스찬 리더쉽이 필요한 때입니다. 코로나로 절망과 아픔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제는 안심하라”고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는 리더의 역할을 하는 에신 가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소망의 사람 (하나님을 만난 사람)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입니다. 이 태풍속에서, 삶의 희망마저 희미해진 이 때에도 소망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사람입니다. 목사도 사람입니다. 왜 두려운 일이 없겠습니까? 왜 버겁다고 느끼며 내려놓고 싶은 때가 없겠습니까? 바울이 무슨 어벤저스도 아니고 로보캅도 아니고 그 배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광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배는 중심을 잃고 파선 직전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파선의 위험을 겪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드러면 인생의 중심이 바로 잡히게 됩니다. 태풍속에서도 안전합니다. 다시 일어서서 희망을 말하게 됩니다.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타는 풀무불속에서, 사자굴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니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자가 도비니다. 날마다 말씀안에서, 기도가운데, 예배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이 암울한 세상에서 소망의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잘나가는 33살의 신문기자가 취재한 사건이 잘못되어 만삭의 아내와 홀어머니를 두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억을한 일을 당했는데 신문사마저 나몰라라 했습니다. 구치소에서 폭력배 방에 배당 받고 들어갔는데 조폭 두목이 물었습니다.“야, 너 교회 다녀”/“안 다닙니다.”/“찬송 아는 것 있어?”/“모릅니다.”/“그럼, 성경은 읽어 봤어?”/“예, 다 읽지는 않았고, 대학 다닐 때 서양 문화사 시간에 신약 성경만 읽었습니다.”/ 그러자 조폭 두목이 말합니다.“그럼, 됐어. 오늘부터 네가 이 방에서 예배 인도하고, 설교도 해.”교회도 안 다녔는데 그 방에서 유일하게 대학 나왔고, 신약성경을 읽었다는 이유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라는 것입니다. 조폭두목이 무서워서 찬송도 부르고, 성경 아무 곳이나 펴놓고 엉터리 설교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폭 두목이 그의 설교를 듣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깜짝 놀라며‘조폭 두목이 쑈를 하는 건가?’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릴 때마다 조폭 두목은 은혜를 받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독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처음으로 성경을 진지하게 읽으면서 조폭 두목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동안 지적 교만으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믿었지만, 이번에는 철저하게 성경을 믿기로 작정하고 그 어떤 것도 의심하지 않고 무조건 믿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어나가자 성경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가 연루되었던 사건이 해결되고 그는 석방되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아내가 기자로 취직하는 것을 막아, 작가로 7년을 작품을 썼지만 실패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지적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했고,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쓴 소설이 10만부만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가 쓴 소설은 무려 30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쓴 조창인 씨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삶에 소망이 생겼고 마침내 오랜 시간의 연단 끝에 소망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따뜻한 가정의 회복을 전하는 소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예신 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 그분이 주시는 소망으로 다시 일어서서 소망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바울이 말합니다.“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하나님은 바울 때문에 이 배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를 담대하게 하셔서 이 침몰해가는 배위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전하게 하시려고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인생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우리를 담대하게 붙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가이사 앞에 서겠고” 그 말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다는 뜻입니다.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다”우리는 신분에 상관없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지도자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들입니다. 내 가족과 직장의 동료들과 교회의 지체들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을 빌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소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