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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딤후 4:7-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24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얼마 전, 한 해의 첫 주일을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 덧,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할 때, 두근거리는 설레임이 있었던 것처럼, 마무리 할 때에도, 웬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교회를 가까이 하고,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였는가?” 돌이켜 보면, “더 많이 노력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스러움이 살며시 밀려옵니다.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안되지만, 그래도,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는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맡은 일에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책임을 다했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지난 일년 동안을 되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개인적인 일들을 제외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일어났던 많은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하고, 괴롭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는 실수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함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계수”라는 말은 “숫자를 세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라는 말은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라는 말인데, 한 마디로, “세월이 참 빠르다. 인생이 덧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하소서”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루라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잘 사용해야 합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잘 살았다”라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5-17)라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평안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월을 아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생명, 주님이 주신 평안과 자유를 온전하게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허송세월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쉬움이 남지 않는 보람되고 알찬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 활짝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홍해를 건넜던 모세는 그의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각 지파별로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라고 말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데, 단 한번의 실수로,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에, 아쉬움이 한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기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볼 때에, 부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자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고달프지만,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평안과 자유를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 때, 어떤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잘 극복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생명도, 평안함도, 자유도 없습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평안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했던 여호수아는 그의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이 땅에 사는 동안,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시 115:11-13)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기 때문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고달픈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가 쓴 마지막 서신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싸웠다”라는 말은 레슬링이나 격투기 선수처럼 싸웠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스포츠 경기는 대부분 시간이 정해져 있고, 점수로 승부를 가리지만, 바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을 때, 그 경기가 끝났습니다.
2000년에 발표되었던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최근에 2편이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1편의 줄거리를 보면, 로마 제국의 황제 중에, “명상록”이라는 책을 저술한 철학자이자, 지혜로운 황제로 평가를 받고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네로보다도 더 악한 황제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아들 코모두스, 그리고, 코모두스를 암살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그의 누이에 대한 실제적인 역사 이야기를 가상 인물인 검투사 막시무스를 등장시켜, 그의 가족을 죽인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막시무스의 복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래디에이터”, “검투사”라고 하는 영화제목처럼, 검을 들고서 싸우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싸웠습니다. 시간이 정해져 있거나, 점수로 승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바울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라고 말한 것은 검투사처럼 자기 목숨을 걸고서,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라고 말했는데, 악의 영, 다시 말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악의 영, 사탄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산다고 하는 것, 예수님을 전한다고 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싸움이 바로 선한 싸움이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싸움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온통 싸움판입니다. 별별 싸움이 다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세상 싸움에서는 질 수 있다고 할지라도, 선한 싸움에서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선한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말했습니다.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는 말 속에는 아무 길이나 무턱대고 달려가서, 그 달리는 것을 마쳤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 길이나 막 달려가서는 달려갈 길을 잘 마칠 수가 없습니다. 승리자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 종목 중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마라톤 경기일 것입니다. 마라톤 경기는 아주 길고 긴 거리를 달려가야 합니다. 정해진 코스를 정확하게 달려야 합니다. 빠르게 가고 싶다고, 샛길로 가면 안됩니다. 정해진 코스가 아닌 다른 길로 가면, 안됩니다. 잠시라도, 딴 길로 가면 안됩니다.
마라톤 경기의 유래를 보면, 고대 중동을 장악했던 페르시아 제국이 헬라의 도시 국가들을 침략했습니다. 그때 헬라의 작은 도시들은 연합군을 결성하여, 마라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페르시아군 100만명과 싸워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가?” 초조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한 시간이라도 빨리 알리고 자,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아, 이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뛰고 뛰어, 아덴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라고 말한 후, 기진맥진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 후, 헬라의 도시 국가들은 마라톤의 승리를 기념하여, 해마다 같은 거리에서, 같은 거리의 코스를 뛰면서, 그날을 기념했습니다. 그 사람은 목표를 향하여 달렸습니다. 승리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 자신의 일을 마쳤습니다.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삶의 목표가 아주 분명했습니다. 사명감이 뚜렷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말한 것처럼, 바울은 오직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기쁨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자, 예수님이 계시는 그 푯대만을 향하여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달려갈 길을 마쳤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열심을 다하여,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합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행복한 삶이어야 합니다.
어떤 장애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가야 할 길이 멀다 할지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끝까지 이 믿음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 끝까지, 우리가 가야 할 이 믿음의 길을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란 어렵거나 괴롭거나, 어느 때이건간에,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굳세게 하시고,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어느 한 순간에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멀리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고난과 죽음의 위기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역경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충성했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는 그의 고백처럼, 죽음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는 주님을 위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어떤 장애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상을 주실까요?
8절 말씀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은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마라톤 경기에서는 우승한 사람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모든 사람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풍성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선한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달려갈 길을 잘 마치기를 원합니다.
믿음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많은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으나,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힘이 되시는 주님,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그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게 하여 주옵소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 날, 웃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