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텃밭을 하는 친구가 싱싱하고 튼튼해 보이는 고구마 줄기를 가져왔다. 조금 준다고 했지만 내가 다듬기는 양이 많아 보였다. 작년에 마늘을 한망 사서 눈물을 흘리며 까고 나서는 그 힘듬이 생각나서 망설여 졌다. 힘들게 까고 보니 마늘의 양은 많았지만 껍질을 까는 동안의 수고, 손가락 아림, 허리 아픔, 시간 소요한 것을 생각하면 까서 파는 것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손질한 마늘, 채소들을 군소리하지 않고 사먹기로 다짐을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준 통통한 고구마 줄기의 껍질을 벗기면서 이 많은 것을 언제하려나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TV를 켜놓고 다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자 손톱 안은 까매지기 시작하였고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몸을 한자세로 있다 보니 뻣뻣해졌다. 눕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이렇게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려니 후회의 마음이 올라왔다. 차라리 사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나. 잠을 자는 것이 더 낫지 않았는지 다른 일을 했더라면 하는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끝까지 껍질을 다 까고 보니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았다. 삶고 나니 더 줄어들었다. 노동의 신성함을 맛보기는 했지만 그 댓가는 힘들었다. 허리가 욱신거려 한참을 누워 있었다.
우리의 일상도 늘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직장에 가기도 하고 아이들을 챙기기도 한다. 늘 다름없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젊은 친구가 물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해야 하나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가정을 가진다는 것은 의식주를 책임져야 한다.
“평생을 해야 해. 죽기 전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똑 같은 일을 매일 평생을 해야 한다니 자신은 그런 것이 너무 싫다고 투덜거렸다. 변화가 없는 반복되는 일은 재미가 없다고 했고 힘이 빠진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더 흥미롭고 신이 난다고 하였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오랜 세월 습관처럼 청소를 하고 시장을 보고 밥을 준비하고 가족을 챙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반복되는 일상보다는 다른 창의적인 일이 좋다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일상의 삶이 소중한 것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로 얘기할 것은 아닐 것이다
모임에서 유모어 많은 친구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생각 났다.
어느 날 지루하게 이어지는 일상적인 일을 반복하는 자신을 보면서 알베르 카뮈의 저서 시지프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와 같은 마음일 때가 있다고 한다. 죽음의 신을 속인 죄로 정상에 도착하면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인간 시지프스. 자신의 생활이 지루하고 권태롭고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가 생각난다고 하였다. 반복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서술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웃고 넘겼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평생을 벌을 받고 사는 삶이라고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이런 답이 있었다. 시지프스가 이 형벌을 내린 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형벌을 즐기는 것 뿐이라고 했다.
일상의 지루한 삶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찰한 생각이다.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 매일이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도 똑같은 날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구마 줄기를 까면서 힘들다고 생각한 시간들에 대해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가벼워 졌다. 자연의 공기, 햇볕, 비를 맞으며 밭에서 자란 고구마 줄기가 대견하지 않는가. 그것을 나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들에게 나누어 줄 마음으로 가져온 친구의 마음 참 고맙다. 직접 손으로 다듬어서 요리를 한 나도 대견하다. 왜냐면 맞벌이를 하느라 내 손으로 직접 무엇인가를 한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노고로 만든 싱싱한 자연산 반찬으로 저녁에 지쳐서 돌아올 가족에게 먹일 생각을 하니 손놀림이 가벼워졌다.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첫댓글 저도 고구마순김치가 맛있어서 농장에서 가져와 밤 티브이 보면서
다듬다보니 다리에 쥐도 나고 허리도 아프고 혼이 났지만
식구들이 모두 잘 먹어주니 기분도 좋았어요.
순김치 담는데 일이 너무 많더라구요.
한이틀 말린후 까면 꼬들해져서 잘 벗겨진다고 들었습니다
공감100%입니다.
제가 요즘 해마다 고구마줄기 김치를 담습니다.
며느님(?)이 먹고 싶다고, 좋아한다고 해서리..
우리 가족은 아무도 먹지 않는데
오직 새 가족이 된 며느님만 드신다니.
그것도 영양만점 잡곡밥을 해서 같이 보내주고 있으니..
남편은
"마~ 치워라, 잘도 사 먹고 밥도 안 해 먹는다면서리 " ㅋㅋ
저도 시골에서 고구마 순을 가져오면 집사람을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껍질을 벗겨주곤 합니다.
단순 반복 작업인데 힘들고 허리 아프고...
그래도 뿌듯하더라구요
먹기는 잘하는데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