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도 가을이 깊어가는 징후는 여러 곳에 나타난다. 가로수 은행잎은 아직 노랗게 물들지 않아도 은행열매는 익어 떨어졌다. 잎보다 먼저 떨어지는 은행열매는 냄새가 좀 거북하긴 하다.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밤이나 대추를 비롯한 가을 과실이 눈에 많이 띈다. 고구마나 토란 같은 뿌리채소도 마찬가지다. 푸성귀도 가득했다. 백화점 의류매장에는 나가보질 않아 잘 모르겠다.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먼저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일찍 꽃이 핀 나무는 가을도 먼저 맞이한다고나 할까. 봄날 잎보다 먼저 화사하게 꽃을 피웠던 벚나무다. 벚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단풍이 빨리 물들고 잎도 먼저 떨어진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벚나무도 단풍이 물들고 잎이 질 때다. 시월 넷째 주 일요일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빗물 젖은 벚나무 잎이 뜰에 수북했다.
비가 내려 즐겨 가는 산행을 나설 수 없었다. 나는 반송시장을 거쳐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에서 216번 시내버스를 탔다. 대방동에서 출발한 216번은 삼귀해안 석교마을이 종점이다. 버스는 충혼탑을 지나 공단지역으로 건너갔다. 신촌까지 가는 길가의 벚나무도 단풍이 물들고 잎이 지고 있었다. 버스는 봉암 갯벌을 스쳐 삼귀해안으로 접어들었다. 바다 건너 마산이 눈에 들어왔다.
제4부두는 수출 선적을 위해 여러 차종의 신차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바다 가운데 돝섬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였다. 시내버스는 용호마을과 갯마을을 지나 삼귀민원센터를 둘러 석교마을 종점에 닿았다.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받쳐 썼다. 종점 소나무 아래서 석교마을 굽어보았다. 마을로 내려가질 않고 종점에서 서성였다.
나는 종점에서 귀산으로 걸어 나왔다. 외딴 횟집 부근 갯가에는 무속인이 굿을 하고 있었다. 요란스런 징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갯마을로 돌아 나올 즈음 서행하던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멈추어 섰다. 차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나하고 항렬이 같은 고향 집안의 형님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산 댓거리에 사는데 삼귀 횟집에서 친목모임이 있어 나선 걸음이라고 했다.
가드레일을 따라 해안도로를 걸었다. 낚시꾼들이 더러 보였다. 일부는 밤을 새운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느 한 낚시꾼 곁의 물간에는 노래미, 꼬시래기, 갯장어, 망상어 등이 보였다. 나는 낚시꾼한테 처음 들었는데 어미 망상어는 알을 놓지 않고 어린 새끼로 놓는다고 했다. 마창대교의 거대한 교각 밑으로 지났다. 두 개의 주탑에는 상판과 연결된 쇠줄을 팽팽히 당기고 있었다.
건너 가포는 너른 바다가 대부분 매립되었다. 삼귀 해안은 생각보다 물이 맑았다. 마산만이 생활폐수로 상당히 오염되었다만 바깥으로 나갈수록 물이 깨끗했다. 좁은 면적이긴 하나 어촌계는 갯벌에다 바지락을 양식하고 홍합을 양식하는 하얀 부표도 떠 있었다. 용호마을 앞에는 요트와 윈드서핑을 이용하는 위락시설도 보였다. 밤이면 해상관광유람선도 운항한다는 게시문이 보였다.
용호마을 앞에는 삼귀애향비가 세워져 있었다. 창원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귀현 귀곡 귀산의 세 자연마을에 살던 원주민이 떠나면서 세운 빗돌이었다. 고기 잡고 농사짓던 원주민들은 산업기지건설로 정든 땅을 떠나야 했다. 이제는 해안가를 따라 들어선 횟집들이 용호마을이고 갯마을이다. 포구에는 낚싯배 몇 척이 묶여 있었다. 건너편 가포와 무학산 허리는 옅은 안개가 걸쳤다.
용호 선착장에서 마창대교 교각을 한참 바라보았다. 다리 위 지나는 자동차는 드물게 오갔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날았다. 갓길에다 승합차를 세운 낚시꾼이 나한데 다가왔다. 그는 나를 낚시 나온 사람인줄 알았다. 오늘이 몇 물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물때를 잘 모른다고 했더니 음력으로 며칠인지 아느냐고 했다. 내가 구월 열이레일 거라고 했다. 그는 수첩을 펼쳐 물때를 확인했다. 1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