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미사 중에 성체성가를 부르는데 익숙한 곡조가 나왔습니다.
'성가 127번 십자가 바라보며'였는데, 원어가사가 번역가사와 다른 ‘Tantum Ergo’ 였습니다. 작곡자는 바흐였는데 이 영화를 볼 때도 작곡자는 생각도 않고 그냥 그레고리안이겠거니 했었던 무지함이 부끄럽더군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갖고 있던 .Tantum Ergo. 파일을 음원으로 만들고 다시 한 번 이 영화의 음악을 들으면서 장면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영화중 이 곡의 제목은 Wer Nur Den Lieben Gott Lasst Walten입니다.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
Vaya con dios는 에스파니아 말입니다. 영어로는 Go with God 이라는 뜻입니다. "봐(뱌)야 곤 디오스"
<신과 함께 가라>가 진정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수도사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파격적이고 까다로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어렵지 않게…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고, 재치 있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수도사에게 처음 다가오는 여자의 유혹이 당혹스러울 법도 한데, 그는 전혀 당황하거나 그 사랑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수도자들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다. 자연스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기쁘고 당당하게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을 받아들인다. 수도사의 일탈(?)을 목격한 다른 수도사 조차 그를 꾸짖거나 질타하기는커녕 "레몬 세일이라 온 동네가 난린데 너흰 한가하게 뒹굴고 있어?"라며 그의 사랑에 자연스럽게 응수한다. 수도사이지만… 비록 그들이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따뜻이 받아들이는 당당한 모습 덕분에 <신과 함께 가라>의 금지된 사랑은 아름답다.
세상에는 참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신을 섬기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흔치 않은 수도사의 이야기가 바로 "신과 함께 가라"입니다.
칸토리안 교단은 오래 전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파문 당해 독일과 이탈리아 단 두 곳에만 수도회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중 독일에 있는 칸토리안 수도회는 제정 적자에 허덕이면서 원장 수사님 포함 수도사 4명만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늙고 고지식한 원장(수사신부), 지성적인 벤노 수사, 시골 농부 같은 타실로 수사. 그리고 아기 때부터 수도원에서 자란 순수한 청년 아르보...
어느 날 후원자의 후원거부라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과 덮친격으로 원장신부의 사망으로 수도원이 위기에 몰립니다.
결국 저당잡힌 수도원을 빼앗기게 되고 남은 세사람은 그곳을 떠나야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원장신부의 유언대로 그들은 하나남은 이탈리아 수도원을 향해, 돈도 없고 재주도 없이 30년 동안 수도원에서만 살던 사람들이 교단의 보물인 규범집과 한 마리 남은 아르보의 친구 염소를 데리고 무모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중세에서 현대로 시간 여행을 하듯...
영화는 그들의 좌충 우돌 여정을 다루게 됩니다.
수도사와 종교를 다룬 영화라고 하니 딱딱하고 칙칙할 거란 생각을 하면 오산입니다. 영화는 세 명의 수도사가 무전 취식하며 이탈리아까지 가는 과정을 산뜻하고 유쾌하게 표현해 놓았습니다.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캐릭터도 재미있고, 마지막 결말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보는 이들에게 웃음과 인간의 따뜻함을 함께 안겨 줍니다.
이렇게 길을 따라 진행되는 영화를 로드 무비라고 합니다.
로드 무비에는 참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성스러움에 대해 아시는분은 영화 중반주, 성당에서 세 수사가 성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무반주로 흐르는 인간의 목소리가 전율처럼 아릅답게 들립니다.
갑작스레 속세에 떨어진 3명의 수도사.
기차를 타는 방법조차 쉽지 않은 그들은 이탈리아까지 무작정 걸어서 가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여행과 함께 시작된 침묵수행! 그러나 도사도 사람인 것을...
너무도 이 아프고 입이 간질간질한 것은 당연한 이치!!우연한 기회로 폼나는 자동차를 탄 매력적인 여인 끼아라와 마주치게 되어 잠시 다투지만 그녀의 차를 얻어타고 가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끼아라 역시 만만치 않은 성깔을 소유자. 그녀로 인해 '킬러수도사'란 어처구니 없는 불명예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싸우다가 정이 든다고 했던가요?
난생처음 아르보수사는 여인의 냄새를 맡고 그녀의 유혹을 거부하지않고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에 빠진 아르보수사의 방황과 모험은 결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저희들의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이탈리아행을 포기하고 그녀와 살겠다던 아르보는 끼이라의 냉정함에 상처를 받습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아르보에게 두 수사는 "레몬 세일이라 온 동네가 난린데 한가하게 뒹굴고 있어?"라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를 데리고 다시 여행을 계속합니다.
자신의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평화롭던 수도사 생활에만 익숙해져 있는 그들에게 운전은 커녕 전화를 거는 일조차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집에 전화로 안부라도 전하려 했던 타실로 수사는 전화 거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직접 찾아가 인사드리고 가겠다고 어머니가 계시는 농촌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노모는 늙어 병이 들었고 아들을 너무도 간절히 원합니다. 집에는 농사일이 잔뜩 밀려 있었거든요. 병든 노모를 혼자 두고 갈 수없어 타실로 수사는 그곳에 머물겠다고 합니다.
원장신부님의 유언이 있었지만 타실로 수사는 노모를 도와 농사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할 수없이 두사람만이라도 이탈리아 수도원으로 가야겠지요?
남은 두 사람은 다시 여정을 시작합니다.
벤노수사는 칸토리안 수도원으로 오기전에 예수회에서 성음악연구를 하고 있어서 그곳에 들러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여비라도 얻어볼까해서 들릅니다.
예수회의 원장수사는 칸토리안 교단의 보물인 규범집을 탐을 냅니다.
벤노수사에게 규범집을 갖고 다시 예수회에 오게되면 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성음악부분의 높은 자리를 주고 그에게 평생 성음악 연구를 하고 살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벤노수사는 심한 번민에 빠집니다. 교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칸토리안 수도원으로 다시 간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차피 독일에 하나밖에 없었고 이제 없어진다면 이탈리아에서도 존재의 유무가 불투명하였거든요.
결국 벤노수사는 규범집을 들고 예수회로 갑니다.
자~~이제 철없이 사랑놀음에 빠졌던 아르보 수사님 한분이 남았네요.
혼자라도 가야겠지요? 유언이 있었으니..
그러나 갖고 가야 할 규범집이 없습니다. 우리의 순진무구한 아르보 수사님은 혼자 이탈리아로 갈 수 있을까요?
아르보 수사는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타실로 수사를 찾아갑니다.
순진한 농촌총각 타실로 수사는 정의감에 불타서 규범집을 찾아야 겠다며 아르보 수사와 동행합니다. 노모는 좋다가 말았지만, 하느님이 아들을 데려가시니 농사일은 알아서 지켜 주실것입니다.
그들은 규범집만 되찾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결국 벤노수사를 감동시켜 예수회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그 장면이 아주 감동적입니다. 음악과 함께 장면을 한번 보십시오.
Wer Nur Den Lieben Gott Lasst Walten
주의 손길 받아들이는 자
희망 잃지 않으리
고난과 슬픔에서 구원 받으리
전능하신 주를 믿는 자
굳건히 서리라
기쁨의 순간을 알며
언제 부름 받을지 알고 있으리
주께 진실하며 거짓 없는 자
곧 선으로 충만한 인생 맞으리
노래하고 기도하며
신과 함께 가라
그리고 선을 행하라
천국의 장엄함을 믿는 자
거듭나리로다.
주님께 아무 의심 없는 자
버림받지 않으리로다.
여정이란 수많은 사연을 낳고 얽히고 설킨 많은 에피소드를 남기게 됩니다.
사랑에 빠져 하느님과 평생 살겠다는 맹세를 저버릴뻔한 아르보수사, 어머니에 대한 연정으로 하느님을 잠시 잊었던 타실로 수사, 자신의 권위와 욕심때문에 같은 수도사들의 우정을 저버릴뻔했던 벤노수사.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형제애로 이해하고 도와주어 마침내 원장신부님의 유언대로 이탈리아의 칸토리안 수도원 형제들과 합류합니다.
실제로 수도원의 규율은 상당히 엄합니다. 여성(수녀원은 남성)과의 관계가 알려지만 수도복을 벗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불가능한 설정을 해서 관객이 금지된사랑을 훔쳐보는 재미를 주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에 불명예를 주는 영화라고 상영금지 피켓을 들고 난리치는 종교인들을 많이 봤습니다.
가톨릭은 예전1983년 가시나무 새(신부가 여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고 나중에 주교까지 되는)가 상영될 때도 그랬고 이번 영화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영화니까..하는 관대함을 보였습니다. 그냥 픽션 예술이니까요.
그러나 가톨릭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보고 이런 일이 실제로 가톨릭 내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면 무척 위험한 일이 되겠지요.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이 아닌 다음에는 영화는 그냥 재미로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본지 오래되서 줄거리가 제대로 아귀를 맞췄는지 모르겠습니다.
넓게 양해 하시고 그레고리안 성가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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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잘 봤어요...그리고 감사합니다. 꼭 영화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