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사람에겐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자, 퀴즈 나갑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쯤살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1. 저 푸른 초원 2. 그림 같은 집 3. 사랑하는 우리 님 4. 한 백년쯤 함께 살 수 있는 충분한 노후자금
답은? 예, 맞습니다. 노후 자금,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도 못 사고 사랑하는 우리 님도 벌써 떠나고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두 번째 퀴즈 나갑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쯤 살려면 도대체 얼만큼의 노후자금이 있어야 할까요?
요즘 한국은 10억 만들기가 대세입니다. 너도 나도 10억 정도는 있어야 행복한 노후를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한 노후란 이런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두 번 골프를 칠 수 있어야 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 한 번의 외식과 1년에 한 번 가까운 동남아라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 수 있는 행복한 노후"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행복한 노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초 생활 보장 정도는 받을 수 있는 노후를 지금 3-40대의 젊은 사람들이 준비하려면, 여자 평균 수명 82세, 남자 평균 수명 78세를 기준으로 60세에 은퇴하여 서울에 주거를 할 경우는 약 5억 3천 1백만원, 서울을 떠나 군 단위의 지방에 살 때는 약 2억 4천 1백만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독일처럼 잘났나 못났나 그래도 비슷하게 늙어갈 수 있는 연금제도가 확실한 나라도 아니고 결국 스스로의 노후를 국민 각자가 알아서 책임져야 하는 한국에서는 적어도 한 2억이상은 현금으로 쥐고 있어야 우아한 품위 유지는 못해도 기초 생활이 가능한 노후를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이것 또한 속 썩이는 자식이 없어야 하고, 또 무엇보다도 크게 아프지 않아야만 이룰 수 있는 근사치라고 하니, 정말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는 일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어디가도 돈이 문제입니다. 돈 나고 사람 난 것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절 때마다 집에서 큰 소리나는 이유도 다 돈 때문이고, 눈물 쏙 빼도록 사랑했던 사람마저도 돈 때문에 돌아서 이혼 도장 찍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돈돈 하다 돌아버릴 돈 이야기를 굳이 주일 강론에서 하자니 딱한 노릇이긴 합니다만은 복음에 충실한 루르 본당 신부가 마다해서도 안 될 터 오늘은 우리에게 흥분과 실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돈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보도록 합시다.
돈이 뭡니까?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돈은 피와도 같은 것입니다. 돌면 삽니다. 하지만 피가 뭉치면 어떻게 됩니까? 어혈이라고 그러지요. 어혈이 혈관을 막으면 죽습니다. 도는 피는 사람을 살리지만 뭉친 피는 사람을 죽입니다. 돈도 마찬가집니다. 돈이 돌면 죽는 사람도 살립니다만, 돈이 안 돌면 멀쩡한 사람도 판판이 죽어나갑니다.
얼마 전 어느 유수의 건설회사 자금부장이 회삿돈을 빼돌려 호화생화를 하다 잡혔는데 그 액수가 자그마치 1800억,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돈을 못 받아 줄 도산을 놓고 길거리로 나앉을 때 흥청망청 살던 그 사람은 이미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는지 모릅니다.
부산 기장의 어느 부부는 고기잡이 하고 잘 살다가 어느 날 남편이 아내를 쫓아가 살해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로또 당첨금을 아내가 들고 튀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로또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작년에 금은방 털이범이 잡혔습니다. 잡고 나서 보니 그 앞 해 16억짜리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로또에 당첨되어 펑펑 썼지요. 그리고는 그런 생활이 1년쯤 되자 이제는 그렇게 아니면 못 사는 겁니다. 돈은 다 떨어지고 어떻합니까?
강도가 된 것이지요. 우습지 않습니까? 뭉친 돈만 아니었더라도 그는 뉴스에 등장할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움켜쥐고 뭉쳐진 돈이 결국 그 사람을 잡았습니다.
지금 한국에 황금알을 낳는 땅은 서울 용산입니다. 미군 기지 떠나고 그 일대가 재개발의 광풍에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뭉칫돈 때문에 벌써 여섯명이 백주 대낮에 불타 죽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그 동네에 유족 보상금도 제대로 내지 않은 삼성물산은 얼마 전, "용산에 돈이 몰린다! 세계가 몰린다!"며 대대적인 광고를 뿌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결국 왜 죽었습니까? 돈 때문에 죽었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도 또 사람들은 부나방처럼 돈이 몰리는 곳으로 몰빵을 합니다. 돈 앞에서는 그야말로 예의도 염치도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돈이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돈이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보면 소시민들입니다. 평생 김밥 팔아 번 돈을 장학기금으로 내놓고 어리시절 부터 소아마비로 공부하셨던 어떤 교수님은 은퇴하실 적에 어려운 학생들에게 모든 것 다 내놓고 가신 분도 있습니다. 문근영이라는 젊은 배우는 그 나이에 벌써 8억의 돈을 복지 시설에 기부해서 화제가 되거나 김장훈이라는 가수는 가수 생활하면서 번돈 50억을 모두 기부하고 정작 자신은 전세집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돈의 두 얼굴입니다. 후자의 돈은 사람을 살리는 돈입니다. 다른 이를 살릴 뿐 아니라 자신을 살립니다. 돈이 나를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돈이 나를 죽이고 있는가? 오늘은 이것을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나를 죽이는 돈은 움켜쥔 돈, 곧 탐욕과 속박으로 굴레가 된 돈입니다. 없으면 안되는 돈이고 절대로 나눌 수 없는 돈입니다. 그런 돈은 이미 나에게 하나의 우상이 된 것입니다. 나는 돈에 큰 욕심이 없다는 둥 도튼소리 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이것만은 안되고, 이것만은 꼭 있어야만 되는 그 순간 우리들은 얼마든지 돈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돈의 노예는 돈이 없어서 노예가 아닙니다. 내 것이라 움켜쥐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돈을 부리지 못합니다. 그 때부터는 돈이 나를 부릴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을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의 기준과 판단과 사고가 자꾸만 돈의 방향으로 흘러갈수록 하느님과는 자연히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과 탐욕은 이미 하느님의 방향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반대 방향으로 걷는 그 순간 악마를 뒤따라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분 현존에 대한 인식은 사라지고 하느님은 내 인생에 소용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적잖이 신실했던 사람도 돈 맛을 보고 난 다음 하느님 뿐 아니라 가족도 버리고 그것만 쫓아 살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마귀가 쓰는 가장 쉬운 무기인 동시에 확실한 무기가 바로 돈입니다. 그러니 생각지 못한 돈이 들어오면 마귀도 함께 따라 들어온다는 사실을 얼른 알아차리 십시오.
쥐약입니다. 내 것이라 움켜쥐는 순간 그것은 쥐약입니다. 쥐약은 안 먹으면 됩니다. 살리는 돈이 되게 하면 됩니다. 돈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인 동시에 우리를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됨을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예수께서 부를 단죄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벗들 중에는 부유한 아리마태아의 요셉도 있었고, 구원받았다고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자캐오 또한 이름난 부자였습니다. 오늘 복음 또한 부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부자가 구원을 받느냐?”의 문제입니다.
어떤 부자? 가난한 부자는 결코 구원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부자 중에는 가난한 부자들이 더 많습니다. 노예 살이 부자들이지요. 늘 부족하고 자신의 애착과 탐심에 지금도 죽어가는 부자입니다. 그는 남도 못 살릴 뿐만 아니라 자기도 스스로도 죽이고 있는 암 덩어리 같은 부자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바늘귀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부자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겠습니까? 하느님께 의탁하는 부자들입니다. 구원의 비상구를 알아차린 깨달은 부자들입니다. 구원의 비상구란 다름 아닌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 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도울 줄 아는 일입니다. 가난한 이를 통해 구원 받을 줄 아는 부자들입니다. 재물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기 위한 도구이지 서로가 서로를 지옥으로 몰아넣기 위한 도구가 아님을 명백히 드러내는 부자들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부자를 많이 못 만난 것이 아쉽습니다. 예수께서 단죄하신 애착의 노예살이, 우상숭배의 부자들을 더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진 것에 자기 목숨을 걸고, 자기만을 위해서 보화를 모으는 어리석은 자는 길 바닥에서 구걸하는 걸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신세입니다.
많이 가졌건 적게 가졌건 “쇠를 부어 만든 우상”(탈출 34,17),을 섬기는 이는 결국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이 한이 되어 도적이 되는 것과 부가 자만이 되어 다른 이를 섧게 만드는 모든 것, 이 모든 우상 숭배가 내 인생에 우상이 판을 치기 시작하면 좋은 끝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쇠로 부어 만든 우상 아래 춤추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가능하지 않는 일은 하느님 앞에 지천으로 있습니다. 돈으로 참된 사랑을 못 사고 깊은 우정도 못 살 것이며 진정한 호의도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으로 정의를 살수도 없고 돈으로는 진리도 살 수 없으며 마지막 돈으로는 구원을 살 수도 없습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하느님께 향하지 않고 돈을 향해 서 있을 때 그 때부터 불길한 우상숭배는 시작됩니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못내 버리지 못하고 못내 떠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 속에 믿어도 탁 내어 맡기질 못하니 믿어도 믿는 것 같지 않고, 하느님만 믿자니 이 세상이 여엉 불안하고 또 세상 돈만 믿자니 너무 속물인 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상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내가 하느님께 내어맡기는 부분에 있어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질 필요가 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하느님은 그냥 당신 자리에 계시고 내 노후는 내가 알아서 챙길 터이니 간섭하지 마십시오.’ 가 아니라,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내가 이룰 수 있도록, 나만의 노후가 아니라 나 이외의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에 백년 2백년을 살더라도 사랑하는 임 없고, 하느님 아니계시면 그 세월이 도리어 고역이고 지옥임을 깨달아, 푸른 초원 보다는 사람을 일구는 일에 먼저 나서고, 집 짓는 일 보다는 사랑 짓는 일에 먼저 움직일 줄 아는 더 후한 노후, 그리하여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도 함께 희망할 수 있도록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둘째는 통장을 두 개 만드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야 하기에 하나는 세상을 위한 통장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위한 통장을 하나 더 만드십시오. 그리고 얼마가 생기든 거기에서 미리 떼서 넣으십시오. 부모님 용돈 드릴 때, 내 쓸 꺼 다 쓰고 나면 부모님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미리 땝니다. 그리고 떼고 나면 그것은 이미 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느님 몫을 미리 떼십시오. 얼마가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한달에 얼마 받지 않는 유학생들도 마찬가집니다. 지금부터 연습하십시오.
나중에 돈 벌면 해야지?... 안됩니다. 돈 벌면 더 큰 욕심이 생깁니다. 그러니 미리미리 떼는 연습을 하십시오. 그것이 오늘 복음을 통한 구원의 길입니다. 그 돈 가지고 성당에 내라는 소리가 아니라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 하다못해 나보다 형편 어려운 유학생 책상 위에라도 남 몰래 놓아보십시오.
한 사람이 삽니다. 얼마가 되든 상관 없습니다. 그 사람은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을 가지게 됩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희망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이 사랑과 희망의 법칙입니다. 당장 몇 푼 이득 생긴다고 헤헤 거릴 일 아닙니다. 그것이 너에게로 가 돌고돌면 더 크게 나에게 돌아옵니다.
신부되고 이래저래 희사금을 내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 중에 정기적으로 자선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시장에서 장사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하루의 마수걸이를 하게 되면 그 돈을 모은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것이라는 것이지요. 아예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니 그때부턴 모든 것이 자유로와지고 또 당신 사는데도 별 지장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 시장 사람들이 주신 희사금으로 귀머거리 아이 수술도 해주었고, 16명 모여 사는 소년소녀 가장들 공부 다 시켜냈습니다.
“돈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세상의 논리가 결코 이 세상을 살린 적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악마의 사기극입니다. 돈 있으면 가능한 모든 것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멸망의 길일 뿐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고백합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돈으로 가능한 이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 자유로왔으면 좋겠습니다. 재물 때문에 표정이 어두워져 생명의 주님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아멘.
<가진 것을 팔고 나서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30<또는 10,17-27>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