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차의 '먹튀', 파산과 법정관리, 77일 점거파업, 마힌드라에 재매각…. 이 과정에서 신차 하나 없던 쌍용차가 2011년 실로 몇 년 만에 코란도-C 신차를 내놓을 때, 쌍용차 마니아들이 이렇게 술렁였다. 쌍용차 최초로 '모노코크 방식'을 채택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SUV 대세는 유니바디(unibody)
쌍용차를 비롯해 SUV 업체들의 전통적인 설계 방식은, 하부 뼈대(프레임)를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차체를 얹고 부품을 장착하는 '프레임 바디' 기법이었다. 이런 기법으로 만들어진 차는 무엇보다 튼튼하다는 강점을 갖는 반면, 차체 무게가 많이 나가고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2000년대 들어 몇몇 업체들이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차체 중량이 커지면 그만큼 연비 효율성도 낮아지고, 같은 출력의 엔진이라도 느껴지는 힘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소비자의 심리는 작은 차(소형차) 쪽으로 쏠리기 시작해 전반적으로 '다운사이징'이 완성차 업계의 대세가 되었다.
변경된 방식이 이른바 '모노코크(monocoque)' 방식인데, 본래는 항공기 설계 기법에서 따온 이름이다. 항공기는 땅 위를 굴러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하부 뼈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디와 프레임이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SUV 설계에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미 일반 승용차 설계에서는 일반화된 양식이다.
즉, 차체를 하나의 상자처럼 만들어 엔진과 변속기 등의 부품을 넣고 범퍼와 문 등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프레임과 차체 바디가 일체형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항공기 설계 용어인 '모노코크'라는 말보다 '유니바디(unibody)'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국내 완성차 업계 역시 SUV 설계에 대부분 모노코크(유니바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쌍용차를 제외하면 현재 프레임 바디 방식으로 제작되는 차량은 기아차의 '모하비'가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코란도 스포츠, 렉스턴, 카이런, 액티언, 로디우스 등 모든 차량에 프레임 바디를 고집하던 쌍용차가 최초로 코란도-C에 모노코크 바디를 적용한 것이다. 유니바디가 대세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소형 SUV 개발의 꿈? 기술 이전의 꿈!
물론 쌍용차의 신차 코란도-C를 제외하면, 기존 차량의 부분 변경 모델들은 여전히 프레임 바디 기법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출시된 코란도 투리스모나 렉스턴W가 그렇다. 마힌드라의 전략과 관련해 보자면, 여기서 렉스턴W는 좀 눈여겨봐야 할 차량이다.
구형 렉스턴은 주로 배기량 2.7ℓ 엔진을 사용한 반면, 렉스턴W는 쌍용차가 자체 개발한 배기량 2.0ℓ e-XDi200 디젤 엔진이 탑재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최근 추세대로 확실히 '다운사이징'을 한 것이다. 1.4ℓ 가솔린 엔진 또는 1.6ℓ 디젤엔진이 탑재되는 쉐보레 트랙스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SUV 차량 엔진 중에는 2.0ℓ가 배기량 최저급에 해당한다(기아의 스포티지R, 현대의 투싼ix).
최근 엔진 다운사이징 추세는 배기량을 낮추고 연비와 출력을 높이는 방향인데, 같은 배기량 2.0ℓ라 하더라도 의미가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모노코크 바디 기반의 스포티지R이나 투싼ix와 달리 렉스턴W는 프레임 바디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급의 SUV 차량에 비해 렉스턴W의 힘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지만, 중량이 좀 더 무거운 차체에 적용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기존 2.7ℓ 엔진은 유럽의 엄격한 환경 규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2.0ℓ 한국형 디젤 엔진은 이 기준을 통과했다. 그래서 최근 렉스턴W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4개국 시장에 출시되어 판매를 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스토리가 딱 들어맞는다. <인사이드 경제>에서 몇 차례 분석한 바, 마힌드라가 쌍용차로부터 절실히 원하는 것은 최근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소형 SUV 신차 개발, 그리고 이 차량을 구동시킬 배기량 1.6ℓ 디젤엔진 기술이다. 빠르면 내년 말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X-100이 바로 그 주인공 아니던가!
쌍용차는 코란도-C를 출발점으로 하여, 향후 신차 개발 대부분은 프레임 바디가 아니라 유니바디에 기반해 설계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렉스턴W 프레임 바디에 탑재한 2.0ℓ 디젤 엔진 기술이 바로 유니바디용 1.6ℓ 디젤 엔진 기술의 징검다리 아니겠는가? 즉, 코란도-C의 유니바디와 렉스턴W 디젤 엔진 기술의 결합!
지난해 마힌드라는 렉스턴W 출시와 거의 동시에 CKD(반조립 제품) 형태로 부품을 가져다 인도 현지 공장에서도 렉스턴W 조립을 시작했다. 조만간 렉스턴W는 인도의 프리미엄 SUV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토요타의 포추너(Fortuner)와 경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 신장만 봐서는 곤란하다. 현지 조립이라는 방식으로 기술도 함께 이전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렉스턴W일 뿐이지만 여기에 머무를까? 그렇다. 보나마나 인도 현지 공장에서 조립될 다음 타자는 코란도-C가 될 것이 확실하다. 코란도-C(유니바디)와 렉스턴W(디젤 엔진 기술), 이 2가지가 소형 SUV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두고 보면 금방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뭘 의미하겠는가?
▲ 쌍용차가 선보일 대형 SUV 콘셉트 카인 LIV-1의 렌더링. ⓒ쌍용자동차
신차 개발에서 마힌드라가 담당하는 역할은?
올해 초부터 마힌드라는 언론에 지속적으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인도에는 9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1개의 차량 플랫폼과 3개의 엔진을, 한국에는 9억 달러를 투자해 마찬가지로 1개의 플랫폼과 3개의 엔진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쌍용차가 개발하는 플랫폼은 이미 X-100이라 알려져 있지만, 마힌드라가 개발한다는 B-100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업계 내에서 도는 소문으로만 추정할 수 있는데, 소형 SUV보다 사이즈를 더 줄인 경차 기반의 마이크로(micro) SUV라고 한다. 물론 여전히 추정일 뿐이다.
최근 여러 국제 모터쇼에서 쌍용차는 현재 개발 중인 신차의 콘셉트 카를 공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제네바 모터쇼에서 쌍용차는 X-100의 콘셉트 카인 XIV-2를 공개한데 이어, 올해 제네바에서는 중형 SUV인 SIV-1을 선보였다. 조만간 열릴 서울국제모터쇼에서는 대형 프리미엄 SUV인 LIV-1을 선보일 예정이다. 다시 말해 개발 중인 소형-중형-대형 SUV 라인업이 모두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마힌드라가 모터쇼에서 보여주는 것은 XUV-500 등 기존 차량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별한 기술력을 선보이지 않고 있다. 뭔가 깜짝 놀랄 만한 기술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완성차 업체라면 누구나 국제 모터쇼에서 신기술을 선보이려 안간힘을 쓴다. 그것이 브랜드 가치 상승에 도움을 주고 소비자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쌍용차에 소형-중형-대형 SUV 라인업 개발을 맡기고, 마힌드라는 그 외의 SUV 개발을 하려는 것일까? 소형-중형-대형 SUV를 제외한다면 개발 욕심을 낼 만한 차종은 2가지가 남는다. 하나는 앞서 얘기한 경차 기반의 마이크로(micro) SUV,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엔진이 아예 필요 없는 SUV 전기차이다. 하지만 아래 기사를 읽어보면 그럴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이 관계자는 또, "X100 초기 모델은 1.6ℓ 디젤엔진으로만 출시할 예정이지만, 향후 1.0ℓ급 다운사이징 엔진을 추가 개발해 라인업을 다양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데일리안>, 2013년 2월 21일, "쌍용차, 트랙스 잡을 1.6ℓ 디젤엔진 개발 본격화")
X-100은 B-세그먼트, 즉 엑센트나 프라이드, 아베오 등 소형차 세그먼트에서 만들어지는 SUV이다. 그렇다면 엔진 배기량은 1.4~1.7ℓ 수준이 적당하다. 그런데 1.0ℓ급 다운사이징 엔진을 개발? 이 정도 엔진이라면 B-세그먼트가 아니라 A-세그먼트(경차)에 탑재하는 게 정상이다. 국내에서도 1.0ℓ 엔진은 기아차 모닝과 쉐보레 스파크에만 장착되고 있다.
다시 말해 B-세그먼트인 X-100에 1.0ℓ 엔진을 탑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게 혹시 B-100에 탑재할 엔진이 아닐까? B-100이 경차 기반 SUV라는 세간의 소문이 맞다면 말이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마힌드라가 개발한다는 B-100 역시 사실상 쌍용차가 개발하는 셈이 된다.
'2011 서울모터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부회장은 1일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그룹 계열사인 인도의 전기자동차 업체 '레바'와 쌍용차가 함께 인도에서 조만간 전기차 개발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2011년 4월 2일, 마힌드라 그룹 부회장 "쌍용차와 아프리카 SUV 시장 공략")
그렇다. 전기차 역시 쌍용차의 기술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얘기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12월 쌍용차 이사회에서는 "Electric Powertrain Architecture 공동 개발 승인의 건"이 다뤄진 바 있다. 쌍용차 기술력으로 전기차 (공동)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 그렇다면 거의 모든 신차 개발과 기술력은 쌍용차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도대체 마힌드라는 신차 개발과 기술에서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 것일까?
'이전가격'만이 아니라 '이전기술'도 문제다
최근 국세청이 르노삼성에 이어 한국GM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르노와 미국의 GM이 한국의 완성차 업체를 인수한 후, 이른바 '이전가격(移轉價格)'이라는 방식으로 이익을 해외로 빼돌리고 세금을 탈루한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전가격'이란 간단한 개념이다. 이를테면 본사에서 부품을 적정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수입해 본사 매출액을 늘린다. 이를 한국에서 최종 조립한 후, 완성차를 해외에 싼 가격으로 수출한다. 해외 딜러망은 싼값에 차를 인수해 제값을 받고 판매하면 차익은 해외 법인에 쌓이게 된다. 반대로 한국 법인의 수익·매출과 영업이익은 대폭 줄어들고 따라서 세금도 덜 내게 된다.
이미 국세청은 르노삼성 세무조사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무려 700억의 과징금 예고 통보를 한 상태이다. 지난달에 시작된 한국GM 세무조사는 5년 만에 이뤄지는 정기 조사라고 하지만, 통상 3개월 걸리는 세무조사를 이번에는 장장 6개월 동안 진행한다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국GM 역시 의혹이 매우 뚜렷하다. <조세일보>에 따르면 2007년에 연결회계기준으로 매출액 13조9373억 원, 영업이익 6036억 원을 기록해 매출액영업이익률이 4.3%에 달했다. 하지만 2011년에는 매출액이 16조5708억 원으로 3조 가까이 뛰어올랐으나 영업이익은 2365억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매출액영업이익률은 1.4%로 급락했다. 한국GM의 외부감사는 쌍용차 회계조작 의혹을 받았던 안진회계법인이 맡았다.
최근 한국GM 사측은 "차 1대 팔아 6만 원 남는다"는 말까지 내뱉은 바 있다. 오토바이를 팔아도, 아니 아이들 장난감으로 쓰는 모형 자동차를 팔아도 이것보다 더 남을 텐데? 하물며 수천만 원짜리 차를 팔면서 고작 6만 원 남긴다니! 이거야말로 기술료(로열티)와 부품 값을 비싸게 물고 싼값에 해외로 완성차를 넘기고 있다는 반증 아닌가?
쌍용차 역시 생산량과 판매량은 과거 수익을 내던 2004년 수준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리해고로 수천 명이 회사에서 쫓겨난 터라, 2004년보다 노동자 수는 훨씬 줄어들어 인건비도 확 떨어진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르노삼성·한국GM에 이어 쌍용차도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쌍용차와 마힌드라 사이에 오가는 거래 내역은 회계 장부 조사와 계좌 추적으로 윤곽이 드러난다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유출 의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르노와 GM이야 선진 기술력을 갖춘 업체라서 그런 의혹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지만, 이미 상하이차에 한 번 당한 전력이 있는데 마힌드라 역시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또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위 자료는 금속노조나 쌍용차지부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경총이 최근 발간한 "쌍용자동차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소책자의 한 페이지이다. "기술 유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외국기업에 매각", "투자 약속은 경영권 포기 시점까지 전혀 지켜지지 않았으며 …" 경총조차도 상하이차의 목적이 쌍용차로부터 기술 유출이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구들, 최근에 많이 본 얘기들이다. "쌍용차에 현금 더 못 줘…개발비 자체 마련해야"(<조선일보> 2월 18일자 파완 고엔카 사장 인터뷰 기사), "마힌드라 그룹, 쌍용차 '기술 이전' 시나리오?"(<한겨레신문> 2월 19일자) 이렇게 가다가 또다시 "기술 유출의 우려가 현실화되었다"는 얘기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오래전부터 '쌍용차'라면 힘이 세고 튼튼한 차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디자인 감각이나 승차감은 좀 떨어져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한때 '무쏘'라는 차는 너무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회사에 이익이 안 된다는 말이 회자되었다. 가끔 부서지고 파손되어야 부품도 갈고 차도 바꾸는데, 워낙 튼튼해서 오랜 기간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이런 것을 자부심처럼 갖고 있었다. "내가 만드는 차는 30대 부부가 구입해 50대 노년까지 타고 20대 아이들에게 중고차로 물려줄 수 있는 차." "아프리카 오지의 사막과 자갈밭을 달리면서도 안전하게 환자를 실어 나르는 앰뷸런스가 되어줄 차." "충격 흡수력이 좋은 차가 아니라 충격을 받아내고 튕겨내는 차. 흡수력이 좋다는 것은 오히려 운전자와 승객에게도 고스란히 충격이 전달된다는 말이니까."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프레임 바디와 모노코크 바디 차량이 충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쌍용차 최초로 모노코크 방식을 코란도-C에 도입했을 때, 쌍용차 마니아들이 받았을 충격도 못지않았으리라. 자본은 대량 생산에 유리한 모노코크 기법을 도입하고, 그 사이 기술은 보이지 않게 어딘가로…. '먹튀'와 기술 유출, 정리해고와 죽음의 행렬로 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자부심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우리가 기대했던 쌍용차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