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임대주택 보증금도 비싼데 위약금까지 중도퇴거시 1000만원 내라는 논란은?'
조선비즈|최온정 기자|2022.06.03.
“10년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퇴거하시면 임차보증금에 정기예금 이자율을 곱한 금액만큼 위약금으로 내셔야 한다. 잔여기간이 1년이 남아있든 9년이 남아있든 위약금은 동일하다. 이 조건에 동의하셔야 계약을 진행하실 수 있다”
지난달 30~31일 임차인을 추가 모집한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 ‘은평뉴타운 디에트르 더 퍼스트’의 입주자격을 알아보던 A씨는 상담사와 통화하던 중 중도퇴거 시 내야하는 위약금 액수를 듣고 깜짝 놀랐다. 200만~300만원 수준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위약금이 1000만원을 넘겼기 때문이다. 계약기간 동안 꾸준히 청약을 넣어 내집을 마련하려던 A씨는 고민 끝에 청약을 포기했다.
은평뉴타운 디에트르 더 퍼스트는 은평구 진관동 149-4 일원에 들어서는 10년 장기일반 공공지원 민간임대 주택이다. 전용 59·75·84㎡ 주택 총 452가구로 구성되며, 임대보증금은 4억400만(전용 59㎡)~7억7400만원(전용 84㎡) 수준이다. 인근 아파트인 은평뉴타운제각말5-1단지(2010년 준공) 전용 84㎡ 주택의 전세 최고가가 6억4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보증금이 저렴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민간임대 상품과 달리 월 임대료를 별도로 내지 않고, 우선분양권도 있어 지난 2월 청약 당시 평균 경쟁률이 10대1을 넘었다. 하지만 뜨거운 청약열기가 계약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시공사이자 임대사업자인 대방건설이 확정분양가를 제시하지 않고 입주 시점에 감정평가를 거쳐 분양가를 정하기로 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단지 인근 은평뉴타운기자촌11단지(2015년 준공)의 전용 59㎡짜리 아파트는 8억5000만~9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10년 후 이 단지의 시세가 이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우려한 청약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과도한 위약금 규정은 이런 우려에 쐐기를 박았다. 대방건설은 잔여 거주기간과 무관하게 임차보증금을 은행에 넣었을 때 얻을 수 있는 10년 치 이자의 10%를 위약금으로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1년 치 이자 전부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자는 계약 해지일 기준 신규가입이 가능한 1~2년짜리 KB국민은행 예금상품을 기준으로 최고·최저 금리의 평균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임차보증금이 6억3000만원인 전용 84㎡짜리 아파트에 9년간 살다가 퇴거할 경우, KB국민은행 금리 평균값 1.625%(5월 31일)를 기준으로 위약금 1024만원을 내야 한다.
이는 다른 민간임대주택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금액이다. 통상 중도퇴거 위약금이 1000만원을 넘기는 일은 많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995년 제시한 임대주택 표준임대차계약서에 따르면, 계약기간이 1년을 넘는 임대차계약의 위약금은 임대보증금을 은행에 예금했을 때 얻을 수 있는 2년 치 이자의 10%다. 월 임대료를 내는 곳이라면 2년 치 월 임대료의 10%도 합산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보증금이 10억원인 아파트에 살다가 중도퇴거하더라도 위약금은 325만원(10억원×0.01625×2=3250만원, 3250만원×0.1=325만원)에 불과하다. 은평 디에트르 더 퍼스트의 경우에는 위약금이 1024만원에서 205만원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시공·임대를 맡은 대방건설은 표준임대차계약서가 정한 2년 치 이자가 아닌 전체 계약기간인 10년 치 이자를 기준으로 위약금을 산정해 금액을 대폭 높였다. 물론 표준임대차계약서는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일 뿐, 이를 따르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도한 위약금을 두고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보증금도 비싼데 위약금까지 내라니 너무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분양가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까지 논란이 되면서 계약을 포기한 청약 당첨자가 속출했다. 본계약 당시 전체 452가구 중 255가구에서 미계약이 발생했고, 대방건설은 지난달 잔여세대를 대상으로 2차 모집을 진행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1년치 이자 전부를 위약금으로 요구하는 사례는 보기 드물다”면서 “아무리 분양전환이 되는 곳이라고 해도 10년 거주기간을 다 채우는 임차인들이 많지 않을 경우 퇴거 시점에 문제가 될 수 있어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임대주택에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청약 당첨을 노리려는 임차인들 입장에서는 과도한 위약금에 불만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위약금 산정 방식이 임차인에게 과도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위약금 항목을 인지하고 계약을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약관법상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조항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약관규제법에 따르면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은 무효로 하고 있는데, 임대인이 입게 되는 손해와 비교해 위약금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해당 위약금 조항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소정 법률사무소 대표 김소정 변호사도 “임대차계약이 해제되더라도 임대인은 새로운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어 그 손해가 그리 크지 않아 임차인이 지급한 위약금은 실제 손해액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면서 “(해당 조항은)약관규제법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중도퇴거한 입주민들에게 임차보증금의 10%를 위약금으로 요구한 민간임대주택 ‘천안백석 중흥S-클래스’의 임대사업자 세흥건설(중흥그룹 계열사)에 지난 2018년 위약금 조항이 무효라는 취지로 시정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준공된 이 단지는 5년 민간임대 방식으로 임차인을 모집했는데,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퇴거한 임차인들 사이에서 과도한 위약금이 논란이 되면서 공정위에 민원이 접수됐다. 이후 세흥건설은 표준임대차계약서에서 명시한 산식에 맞춰 위약금을 조정했다.
대방건설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표준임대차계약서는 권고사항일 뿐 강제로 따를 의무는 없다”면서 “은평뉴타운 디에트르 더 퍼스트는 10년 장기임대로 운영되기 때문에 임차인 퇴거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위약금을 10년 치 이자를 기준으로 정했다. 10년 후 분양전환을 하는 조건도 있어 다른 민간임대주택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조선비즈 최온정 기자의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