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
민문자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 마음이 옛사람들과 같지 않다.
특히 관혼상제에 대하여는 옛사람들과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천양지차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6·25 전쟁을 어린 나이에 겪고
고교 시절에 4·19와 5·16 혁명을 거쳐 이제 IT 강국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민으로
내년이면 팔순을 맞이한다. 험난한 조국의 발전과정에서 그래도 낙오되지 않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지하철 무료 승차, 건강보험에 많은 혜택을 받는
노후생활을 맞이한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여름이면 시댁이나 친정에 애경사가 함께 몰려 있어 마음이 분주하다.
그동안 숙부님 제사와 아버님 제사, 할머님 제사, 시어머님 제사, 어머님 생신과
육촌 오라버님과 두 아들과 나의 생일이 있어 최선을 다하여 참여하여 동고동락을 나누었다.
이제 부모님 세대가 완전히 물러가고 나니 올해부터 제사를 모시는
동생들 의견이 간소화하자는 이야기로 결론이 났다.
나야 출가외인이니 따를 수밖에 없어 반세기 가까이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숙부님 제사에도 올해 마지막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아버님 제사에 해마다 참석하던 사촌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음력 6월 15일은 시어머님 기일이다. 이제 맏동서인 형님도 팔순이 넘은
신장 투석 환자이고 제사 모시는 며느리도 직장 생활을 하니
시아주버님이 미리 일요일에 성묘하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하셨다.
‘시속을 따르라’는 옛 격언처럼 그대로 따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선조들은 관혼상제가 있으면 가까운 혈족끼리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하였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꼭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이제는 바쁜 세상이라고 결혼 축하금이나 부의금도 은행 계좌를 알려오는 초대장과
카톡 문자메시지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처음에는 황당하게 생각되었는데 이제는
보편화된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가끔은 가까운 혈족에게도 결혼식 초대장도 안 보내는 세상이 되었다.
어제는 다음 주 휴일에 결혼할 외사촌의 딸 초대장을 기다리다 못해 전화로 재촉하니
멀리 부산에서 양가 부모만 참석하는 스몰 웨딩을 하기로 해서 초대장을 보낼 수가 없었단다.
겨우 계좌번호를 알아내어 축의금을 송금하고 나의 형제들에게도 알려주어 자칫 비례가 될 뻔한 일을 예방하기도 했다.
나는 옛 관습에 젖은 탓인지 가능하면 현장에 참석해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안양 결혼식장에 가서 맏딸 시집보내는 지인을 십여 년 만에 반갑게 만나보았다.
다음 주에는 부평 결혼식장에 가서 이십여 년 동안 적조하던 얼굴 만나보는 기쁨도 누리면서 생활하려는 생각이다.
해마다 7월 9일은 우리 집 떡 해 먹는 날이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20년이 되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오시(午時)에 풍성한
여름 과일인 수박 참외 토마토와 떡시루 양 귀에 통북어 꽂아놓고 삼겹살 돼지고기,
쌀 한 사발, 막걸리 한 사발, 물 한 사발에 촛불과 향을 피워 올리며 터줏대감에게
이 자리에서 저세상 가는 날까지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올해도 기도했다.
이것은 자랄 때 어머니께서 늦가을이면 고사떡을 해서 이웃과 나누어 먹을 때 심부름하던 그 추억이 나의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떡 접시를 아파트 경비원과 평소 다정히 소통하며 지내는 교장 선생님 댁 등 이웃과 나누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신세대는 떡도 우리 실버 세대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당연시되던 옛 풍습이 많이 사라져 이제는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