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궁녀 의자왕~ 황산벌의 계백' 역사가 흐르는 부여 부소산
660년,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백제의 계백은 5000명의 군사로 신라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군사를 맞아 네 차례나 대승을 했다. 그러나 백제는 결국 신라에 무릎을 꿇고 만다. 궁지에 몰린 백제 의자왕과 왕자들, 궁녀들은 신라군을 피해 산속에 숨지만 적이 코앞에 다다르자 낙화암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백제 역사의 대단원을 장식한 낙화암은 충남 부여군 부소산에 있다. 약 140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부소산은 그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채 걷기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 ▲ 백제의 문화유산과 흔적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부여의 사비길.
부소산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부여의 진산(고을 뒤 지역을 보호하는 산)으로 해발 106m, 동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로 나뉘어 있는 산이다. 산의 남쪽은 산세가 완만하여 앞쪽에 시가지를 이루고 북쪽은 가파르며 백마강과 맞닿아있다. 이곳에 있는 부소산길을 걸으면 약 1400년 전 백제가 쌓은 2495m의 토성을 비롯해 삼충사, 군창지, 사자루, 낙화암, 고란사와 절터 등 백제시대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부여를 방문하기 전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는데 먼저 '사이버 사비백제인'이 되는 것이다. 사이버 사비백제인 홈페이지(http://www.baekjein.kr)를 통해 가입하면 부소산성, 정림사지 등 문화재 입장료를 면제 또는 할인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음식, 숙박 할인 등 10가지의 특별한 혜택을 준다. 인증서는 홈페이지 메뉴에서 문서출력, 모바일다운받기로 발급받을 수 있다.
- ▲ 부소산 정문(위)에서 사이버 사비백제인증서(오른쪽 아래)를 보여주고 문을 지나면 푸른 숲(왼쪽 아래)이 펼쳐진다.
서울에서 출발해 부여까지 2시간 반, 부여 관광안내소에 차를 주차하고 부소산 정문으로 올라 미리 발급받은 '사이버 사비백제인증서'를 매표소에 보여주고 부소산문을 지났다. 산의 이름인 부소(扶蘇)는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를 뜻하는데 그래서인지 산에 들어서자 푸른 숲의 기운이 물씬 몰려온다.
입구에서 벽돌이 깔린 널찍한 숲길을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삼충사'(충남 문화재자료 제115호)가 보인다. 이곳에는 백제 말 임금에게 직언을 하다 감옥에 갇혀서도 나라 걱정을 했던 성충, 성충과 함께 임금께 고하다 유배를 당한 흥수, 황산벌전투로 잘 알려진 계백의 위패가 봉안된 곳이다.
두 개의 문과 하나의 사당으로 구성돼 있는데 삼충사의 문을 하나하나 통과할 때마다 풍기는 숭고함에 숙연해진다.
- ▲ 삼충사의 두 개의 문을 지나면 성충, 흥수, 계백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삼충사를 지나면 '영일루'(충남 문화재자료 제101호)가 보인다. 이곳은 백제의 왕이 멀리 계룡산 연천봉으로 떠오르는 해를 맞았다는 곳인데 이날에는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정비사업(7월 말 완료예정)으로 인해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부소산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보도블록으로 잘 닦여진 넓은 숲길과 옛 토성을 따라 걷는 좁은 숲길이다. 넓은 숲길은 연인, 친구,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며 걷기 좋고 좁은 숲길은 조용한 숲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다. 두 길은 영일루를 지나면서부터 나오는데 취향에 따라 선택해 거닐어 보길 추천한다.
- ▲ 보도블록으로 잘 닦여진 넓은 숲길(왼쪽), 옛 토성을 따라 걷는 좁은 숲길(오른쪽).
영일루를 뒤로하고 걸으면 널찍한 평지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보인다. 군창지(충남 문화재자료 제109호)는 1915년 이곳 지하에서 쌀·보리·콩 등의 불에 탄 곡식이 발견되면서 군량미를 비축해 뒀던 창고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됐다. 지금도 이 일대를 파보면 불에 탄 곡식들이 나오는데 분청사기(14~16세기 도자기)편도 다량으로 출토돼 조성연대를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추측하고 있다.
부소산성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인 서쪽봉우리에 오르면 '사자루(충남 문화재자료 제99호)'가 있다. 이곳은 백제시대 귀족들이 하루의 국정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했던 곳인데 이곳에 오르니 백마강('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 ▲ 14~16세기 군량미를 비축해 뒀던 창고터, 군창지의 모습.
지금까지 오르막길이었다면 이곳부터는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내려가는 길에는 특별한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삼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충남 문화재자료 제110호)'이 그곳이다.
또 낙화암 아래에는 한 번 먹을 때마다 3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로 유명한 '고란사(충남 문화재자료 제98호)'가 있다. 고란사에 다다라 뒤편에 있는 '고란정'에서 젊음의 약수를 마시니 산행으로 오른 몸의 열기가 싹하고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 ▲ 삼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 정상에 있는 백화정(왼쪽 위)에서 바라본 백마강(오른쪽 위), 젊음의 약수 고란약수터(오른쪽 아래가 있는 고란사(왼쪽 아래).
부소산길의 마지막은 고란사 선착장에서 배(성인기준 편도 4000원)를 타고 구드래공원으로 가는 것이다. 배를 타고 선착장에서 공원까지 약 10분 남짓. 공원에 다다르면 부소산행이 끝나게 되는데 가는 동안 선상에서 낙화암과 고란사를 품은 부소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소산행은 이렇게 부소산문~구드래공원의 방법과 반대로 오는 구드래공원~부소산문의 코스가 있다. 먼저 고란사와 낙화암을 보고 산행을 하려면 반대로 오는 코스를 이용하면 되고 두 곳만 보고 다시 공원으로 배를 타고 가도 된다.
- ▲ 고란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구드래공원으로 가는 동안 낙화암과 고란사를 품은 부소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소산문을 지나 공원까지 산행길은 약 2.3km. 공원에 다다라 시간을 확인하니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이곳에서 처음 차를 주차한 관광안내소에 가는 길에는 '굿뜨래 음식특화거리'가 형성돼 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고 산행으로 고픈 배를 달래기로 했다.
부여의 맛은 무엇보다 연잎밥, 이곳에서 연잎밥으로 유명하다는 향우정에 들려 정식을 시키니 연잎밥은 물론 소 불고기, 청국장, 굴비, 김치, 갖은 나물 등이 한 상 가득 나왔다. 연잎밥은 연잎에 찹쌀과 콩, 밤, 은행, 대추 등의 곡물을 한데 모아 넣고 쪄낸 것이다.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찹쌀의 찰친 맛과 곡물의 고소함, 연잎의 향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냈다.
- ▲ 부여 '굿뜨래 음식특화거리' 음식점에서 연잎밥(오른쪽 아래) 정식을 시키면 한 상 가득 차려 나온다.
부여에는 부소산성 외에 많은 볼거리가 있다.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현존하는 국내 연못 가운데 최초(634년)로 인공으로 조성된 곳으로 여름에서 가을 초까지 연꽃이 환상의 자태를 뽐내며 사진 애호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년)의 중심 사찰 터인 정림사지(사적 제301호)에는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인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이 우뚝 서 있다.
- ▲ 현존하는 최초의 인공 연못 궁남지(왼쪽 위)에 펴있는 연꽃(왼쪽 아래)과 정림사지오층석탑의 모습.
※ 관련 정보
▷ 사이버백제인 되기
- 홈페이지 : http://www.baekjein.kr
- 혜택 : 부소산성, 정림사지 등 문화재 입장료 면제 또는 할인
▷ 부소산성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음 관북리 63-1
- 문의 : 041-830-2527
- 입장료 : 2000원(부여시민, 사이버부여인 무료)
▷ 궁남지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
- 문의 : 041-830-2512
- 입장료 : 무료
▷ 정림사지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6
- 문의 : 전화(041-832-2721), 홈페이지(http://www.jeongnimsaji.or.kr)
- 입장료 : 어른 1500원, 청소년 900원, 어린이 700원(사이버부여인 무료)
- ▲ 부여 부소산성 관광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