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님
앞서의 편지는 '하늘의 작은 악마'라는 말로 끝났는데, 오늘은 그 말부터 시작하겠어요. '하늘의 작은 악마 - 당신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나에게 확실히 설명할 수 있나요? 하늘의 악마란 무슨 뜻일까요? 다른 말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어요. 외부에서 본 하늘의 악마와 내부에서 본 하늘의 악마입니다.
첫번 것은 흔히 말하는 '고집쟁이, 아는 체 주제넘은 행동을 하는 것' 등 나를 유명하게 한 모든 혐오하는
성질 입니다. 그러나 둘째의 경우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나만의 비밀입니다.
내가 일종의 이중인격자라는 것은 이미 당신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의 절반은 턱없이 명랑하고, 뭐든지 재미
있어 하고, 무슨 일이든지 가볍게 생각합니다. 윙크를 받아도, 포옹을 해도, 천한 농담을 들어도 화를 내지 않는
나입니다.
이러한 면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서 보다 잘 깊게 순수한 다른 면을 밀어내 버립니다. 아무도 안네의 좋은 면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 주세요. 그러므로 대개의 사람들은 나를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나는 한나절쯤 경박한 어릿광대가 됩니다. 그러면 모두들은 내가 한 달 동안이나 어릿광대 역할을 하고
있는 듯이 불쾌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색적인 인간이 연애 영화를 보는 것과 같아서 금방 잊어버리는 그 때
만의 기분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쁠 것도 없지만 확실히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런 말을 당신에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는
한 말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요. 나의 경박하고 피상적인 면은 곧바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깊고 순수한 면은 늘 그것
에 지고 맙니다.
나는 이 경박한 안네를 밀어젖히고, 굴복시키고, 감추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결국 안네라는
인간의 반쪽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잘 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평소의 나를 아는 사람이 나에게 다른 면 - 보다 좋은 면 - 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까 봐 언제나 겁을 먹고 있
습니다. 모두가 나를 비웃으며 우스꽝스럽고 감상적이라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대해 주지 않는 것이 두렵기 때문
입니다.
이런 일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에 익숙해서 참을 수 있는 것은 '명랑한' 안네뿐이고, '심각한' 안네는 약해서
도저히 그것에 견디지 못합니다. 내가 가끔 억지로 좋은 쪽의 안네를 15분쯤 끌어 내면 그녀는 겨우 입을 열고,
입을 열자마자 당장 풀이 죽어 '명랑한' 안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좋은 쪽의 안네는 남 앞에서는 결코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내 놓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일 때는 언제나 그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 지금의 자
신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오직 마음속에 간직해 둘 뿐입니다.
내가 나 자신은 내면적으로 행복한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표면상 행복한 것 같다고 생각
하는 것은 아마 - 아니, 오로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순수한 안네이지만, 겉으로는 기뻐
하며 뛰어 노는 아기양 같은 것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나 자신의 진정한 생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미쳤느니 바람둥이니 연애소설 애독가니 하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쾌활한 안네는 그 정반대의 반응을 일으킵
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감정이 상하여 자신을 바로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반드시 좀더 무서운 적에
게 부딪칩니다.
'너는 동정심이 없고, 거만하고, 까다롭게 보인다. 너는 좋은 쪽 안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까 모두가 싫어
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라고 내 마음속의 목소리가 흐느끼면서 말합니다. 아아, 나는 귀를 기울이고 싶지만 도무지
잘 되지 않습니다. 내가 얌전하고 진지한 태도를 취하면 모두들 또 희극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농담
으로 얼버무려 본디의 태도로 돌아갑니다.
우리 가족들은 내가 얌전히 하고 있으면 병이 났다고 지레짐작을 하여 두통약을 먹이고, 열이 나지나 않나 하여 목과
머리에 손을 대어 보기도 하고, 변비가 없느냐고 묻기도 하고, 혹은 침울함을 나무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
까지나 얌전히 있거나 진지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처럼 남들이 감시하면 화가 나서 마구 소리치고, 그 다음엔 슬퍼
지고, 마침내 다시 번민을 되풀이합니다. 이리하여 나쁜 안네가 언제나 표면에 나와 있고, 안으로 숨어 있는 좋은 안네
는 - 만일 이 세상에 자기 혼자뿐라면 - 나는 이런 인간이 되고 싶다. 이런 인간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그런 인간
이되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안네로부터
--- 이상 冊 '안네의 일기' (김혜경 옮김)에서 ---
. . . ★☆★ '안네 프랑크' 는 모든 인류에게, 시들지 않고 영원히 피어 있는
'평화의 꽃' 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