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7월 10일 화요일 맑음
“여보. 거름 실러 간다 매”
안사람이 조심스레 깨운다. 매실 끝내느라 연일 바쁘게 일하다 지쳐 돌아 온 내가 안스러운가 보다. 요샌 또 왜이리 꿈자리가 사나운지....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백제당 거름창고가 꽉 찼단다. ‘어제 치웠어야 했는데.... 지금쯤 냄새도 나고 곰팡이에 구더기에 말이 아닐 거다’
아니나 다를까 ? 문 앞까지 꽉 차있는 창고에서 냄새가 풀풀 난다.
“죄송합니다. 어제 바쁜 일이 있어서....” “괜찮아요. 오후에나 오시려나 했는데....” 부지런히 치우기 시작했지. 30푸대가 넘으니 이것만 해도 트럭이 그득하다. 다음은 송촌건강원이다. ‘오늘은 조금만 있었으면....’
웬걸, 양파 철이라 양파즙 짜고 나온 찌꺼기가 잔뜩 쌓여있다. ‘하, 이 걸 어떡하나 ? 도명당도 있는데...’
마대 자루를 들쳐보니 아니나 다를까 ? 구더기들이 스물 댄다. 냄새도 고약하고. 어쩔 수 없지 눈 딱 감고 치워드려야지. 한 푸대, 두 푸대 많기도 하다.
국물은 뚝뚝 떨어지고, 손 만 아니라 옷이며 몸에도 여기저기 묻혀야 한다.
집에 들어갈 때 에리베이터를 혼자 타려고 신경을 써야 하겠지.
그래도 우리 형제님 돈은 많이 버셨을 테니 다행이지.
트럭 위까지 조심스럽게 싣고는 도명당을 향했다. 꼭 치워달라는 부탁까지 하셨으니 어쨌건 가야지. 이 집은 출근이 늦다. 9시 반은 돼야 나오신다.
한참을 기다렸다 거름을 실었지. 트럭 위로 한참을 치솟아 타이어가 괜찮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바로 칭칭 묶어대고, 그물까지 씌웠다. 다 실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이제는 차를 어디다 세워야 하나가 고민이지.
워낙 냄새가 심하고, 꾸물대며 기어나오는 놈들이 있으니 아파트 안의 주차장에는 절대 안 되고, 밖의 도로 어딘가에 세워둬야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있을지.... 아파트를 한 바퀴 돌며 두리번 거렸지.
딱 맞는 자리가 눈에 띄네. 아파트 뒷길에 건물이 없는 공터 채소밭 옆자리가 비어있는게 아닌가. ‘오늘 재수 좋은 날이 아닌가’ 앞으로 이틀은 세워둬야 하는데 민원은 피하게 생겼다. 그런데 3m 떨어진 집에 차려진 가게에서 할머니가 쳐다보신다. ‘아이코 문제가 생길 수 있겠네’ “그게 뭐여 ? 냄새가 많이 나” “예, 거름이예요.” “농사 지으시나 ?” “매실농사를 지어요”
“저거로 거름을 하려고 ?” “한약찌꺼기인데 썪혀서 거름을 해요” “그런데 언제 가져갈겨 ?” “내일 모레인데요” “아이구 안뎌. 냄새가 나서 못 견뎌. 빨리 거져가야 혀” “저도 먹고 살아야지요. 모레 아침 일찍 가져갈 게요” “아이구 애들이 들어오면 냄새난다고 야단 날겨” 이런 때는 화제를 바꿔야지.
“할머니 장사 잘 되세요 ?” “잘 되긴 뭐가 잘 되어.” “이 쪽으로 사람들이 잘 안 다니죠” “그려. 그냥 심심하니깨 하는 겨” “뭐 하나 사드리려고 해도 다 제가 농사 짓는 거라서 사드릴 게 없네요” “괜찮여” “올 해 매실 농사는 잘 됐어 ?” “봄 추위 때문에 수정이 안 됐어요” “그려 ?” “매실이 작년의 십분의 일도 안 열렸어요. 딸 게 없었어요” “팔 긴 어떻게 팔어 ?” “대개 직거래를 하고요. 남는 건 매실청을 담아요. 매실청으로 팔려구요” “그려. 오정동 시장 놈들 다 도둑놈들이여. 즤끼리 전화 쫙 돌려서 짜고 해여. 물건이 쬐끔 딸린다 싶으면 금방 전화질해서 다락같이 올려” “저도 경배 들어가서 많이 당했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 한이 없다. 할머니도 많이 심시하신가 보다.
“할머니 그럼 많이 파세요” 슬그머니 빠졌지. “그려 수고 해여”
샤워를 두 번이나 해도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간단한 식사 후에 점심 약속을 기다렸지. 일호 형과 만나기로 했으니까....
어디선가 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 게 뭔 소리야 ?’하다가 화들짝 놀랬지. 그 세 깜빡 잠이 든거야. “어디 쯤 와 ?”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아이고 형. 나 잤어. 조금만 기다려요” 그 다음부터 비상이다.
큰 실례를 했지.
모두가 피곤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