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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부활절의 기도 (Ⅱ)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돌무덤에 갇힌 침묵이 큰 빛으로 일어나 눈부신 봄
빛이 어둠을 이겼습니다.
용서가 미움을 이겼습니다.
슬픔과 절망으로 웃음 잃은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시는 분
분쟁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 평화로 오시는 분
산 위에 바다 위에 도시 위에,
눈물 가득한 우리 영혼에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빛나는 단 하나의 이름 예수여!
당신은 왜 그리 더디 오십니까?
오오, 주님! 생명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이제는 살아야겠습니다...
하루하루를 수난의 마지막 저녁처럼, 부활의 첫 새벽처럼 살아야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과 함께 죽어서 당신과 함께 살게 해 주십시오.
당신과 함께 어둠 속에 누워서 밝은 빛으로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왜 자주 숨어 계십니까...
좀 더 일찍 알아 뵙지 못했음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이 부활하신 세상에서 이제 거짓 사랑은 끝난 것입니다.
삶을 지치게 하는 교만과 불신이 사라지고, 겸손과 감사가 넘쳐 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기심의 무덤을 빠져나와
어디든지 희망으로 달려가는 하늘빛 바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오직 죽음을 이긴 사랑 하나로 새롭게 듣고, 새롭게 말하고, 새롭게 행동하는
부활의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님이 오시는 들길을 웃으며 달려가는 연초록 봄바람으로 깨어있게 해 주십시오.
알렐루야... ! 알렐루야... !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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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부활시기를 지내며…
글 : 윤 클레 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그토록 바쁜 듯 부지런 내는 듯 지내던 사순시기가 엊그제인 듯한데, 벌써 부활3주간이다.
산에 가득하던 진달래, 철쭉 지나고, 냇가, 담장에 소복하던 개나리도 지금은 연푸른 잎새나무 봄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산색(山色)은 연푸른 숲으로, 들에서는 봄의 일들로 바빠지고, 나무와 풀들도 연녹색(軟綠色) 세상이다.
‘하늘에는 하느님, 들에는 종달새, 아침이 밝으니 세상은 평화롭다’ 읊조리던 로버트 브라우닝의 봄노래가 저절로 피어나는 봄의 산하(山河), 들, 언덕이다.
계절은 봄, 전례는 부활시기, 때는 만물이 시작되고, 새로운 가꿈을 시작하는 아름다움이 열리는 시간들이다...
이 봄날들에 행사들도 많다. 큰 행사도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대소사(大小事)행사들이 있다.
우리 사람들 사는 세상은 그렇듯이 늘 분주함이 떠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습이 그러하고, 우리 인간의 삶이 그러하다.
세상은 그 사이에 엄청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외톨이 한 인간이 많은 동료학생들의 죽음을 불렀다. 세상은 그렇게 불행이 일어난다. 우리 인간사(人間事)와 마음 안에서 멀지 않은 이웃들의 삶에서는...
그리고 너와 나의 가슴 속에서는 그렇듯이, 빛과 그늘이 계속된다.
그러하듯이 위로와 아픔이 일어난다.
어제, 오늘, 내일... 과거, 현재, 미래...
전쟁과 평화, 불안과 평안, 슬픔과 기쁨, 눈물과 희망,
고통과 환희, 절망과 위안, 어둠과 은총, 미움과 사랑,
오류와 진리, 이별과 만남.
그렇게 우리 인간의 삶은 불행과 행복이 오고 갔다.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인간 삶, 세상에서... 이 인간 길,
땅위에서 그렇듯 불러야 하는 슬픈 노래들을...
하늘을 우러러도 땅을 바라보아도, 나무, 꽃, 풀, 바람, 이슬을 보아도, 때로는 모든 것이 슬픔이다. 어느 때는 많은 것이 아픔이다...
몸 맘 영혼은 슬픈 영가를 부르고, 인간의 약한 존재성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들 속에서 떠남과 이별을 헤아리기도 한다.
쉬이 다가오는 어둠과 그늘, 종종 가까이와 머무는 상처들...
그러는 인간의 길, 그렇듯 슬픈 존재성의 땅에서 우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며, 다시금 새로움을 향해 눈을 든다.
날마다 새롭게 부활을 그린다.
‘샬롬! 너희에게 평화를... 갈릴레아로 가라...
와서 아침을 들라. 나를 사랑하느냐?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니...‘
부활하시어 날마다 새롭게 오시는 주님,
아침마다 새 하루를 주시는 주님,
당신으로 우리 부활케 하소서.
우리도 당신처럼 죽음으로써 살고, 자비와 용서로 새롭게 일어나며,
용기와 희망으로 거듭 태어나는 당신의 부활을 살게 하소서.
당신 부활로 사랑하게 하소서.
생애의 많은 날과 시간동안 절망과 상실로 힘없이 길을 가고,
힘듦과 아픔으로 하늘을 보며, 고통과 슬픔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적에도 엠마오길에서 제자들과 동행하던 당신의 현존처럼 부활하시어 평화를 선물하시던 당신의 다가옴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현존하시고,
그렇듯 우리 삶에 찾아오소서...
부활하신 주님, 당신의 부활과 현존으로 우리 살아가는 생애도
부활과 희망으로 기쁨이게 하소서.
빛과 생명으로 약동하게 하소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깜박이는 심지를 꺼버리지 않으시는
자비와 인내의 당신 은총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죽음으로써 사는 부활이게 하소서.
현재도 미래도 그렇듯 자비와 용서로 새롭게 약동하는 당신의 사람들로 살게 하소서.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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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형제회 초창기 회고사 >
“복음전파를 위해 달릴 길을 다 달렸다” - 제 2 부 -
서울 이문동 일반팀 FㆍB
팀 봉사자 : 박 팜필로(원석)
마태오복음 17, 1~9절 중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4절)
변화산에서 베드로 사도처럼 성서형제회에서 천국을 느끼고 있을 쯤, 당시 운수업을 하신 형님께서 집안에 학문하는 형제가 없으니, 막내가 서울로 유학을 떠나라시며 거금 500만원을 주셨습니다.
최규업 수사님을 만나서 말씀드렸더니, 아주 엄숙한 모습으로 “판필로 형제를 성서형제회 경수지역의 사도로 보내네” 하시며 안수해주셨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서울엔 연고가 없고 수원에는 누나가 계셨고, 무엇보다 전주교구 제8차 연수회 때 뵈었던 수원 빈센트수도원 최 디모테아 수녀님을 소개 받아 상경하였습니다.
수원에 도착하여 최 디모테아 수녀님(성빈센트 수도원 첫 번째 지원자)께서 수원교구 조원동성당(당시 주교좌성당)에 원장수녀님으로 계셨으므로 조원동성당으로 출석하며, 에밀리오 봉사님께 배운 대로 성서를 모시고 성체 조배한 후, 배영무 신부님(조원동성당 주임)을 뵙고 성령께서 이끄신 대로 성서형제회에 대하여 소개해드렸더니, 신부님께선 무릎을 치시며 “바로 내가 찾고 있던 모임이다. 본당에 이런 모임이 꼭 필요 하지, 내가 혼자 복음묵상을 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뇌했는데, 이제야 해답을 찾았다.” 하시며 당장 사제관에서 시작하자하셔서 배 신부님, 최디모테아 수녀님 지도하에 1977년 8월에 조원동성당 청년팀이 발족되었습니다. 이때 참여했던 송요셉 형제는 교구사제가 되셨으며, 한 자매는 수원 성빈센트 수도원에 입회하셨습니다.
1977년 11월 13일엔 수원교구 큰모임(조원동 청년팀. 성빈센트병원 간호사팀 한기성 바오로(성균관대 학생)을 배영무 지도신부님 야외 미사로 수원 용주사 융능(사도세자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렇게 수원교구 조원동 청년팀이 활발할 수 있었던 계기는 한 분의 수도자 최 디모테아 수녀님의 보이지 않는 기도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주성당 자매팀이 양창민 바오로 형제님(선종) 주선으로 시작되어 수원과 교류가 빈번했습니다.
수원 빈센트병원팀엔 박마리아 수녀님(숙대 약대팀 졸업 약사, 수도자명 ; 레지나) 지도로 수간호사 민병희 말타(선종) 자매님이 말씀봉사자로 수고해 주셨습니다.
물론 당시는 성서형제회를 통하여 얻는 신앙의 기쁨이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항상 성서를 모시고 성무일도를 매일 바치기도 하였지만, 은혜 충만한 코이노니아(팀회합)을 위하여 복음연구를 정양모 신부님의 주석서를 보며 연구하였고, 더욱 더 치밀하게 준비하기 위해, 예를 들어 월요일에 빈센트병원 간호사팀의 모임이 있다면 참석하여 이행 연습까지 하여 수요일에 있는 조원동성당 청년팀을 팀회합을 하였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불가능한일을 가능하게 한 열정의 시간은 성령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조원동성당 청년팀이 안정적으로 팀이 활성화될 때, 이웃한 북수동성당 이원규 시메온 선생님(사제서품 며칠 남겨놓고 교통사고로 한 쪽 팔 잃으심, 성령세미나 중 평화의 은사 받으셨음. 당시 수원교구성령쇄신운동 봉사자, 북수동성당 사무장)께 F.B를 소개해드렸더니, 북수동 성당에 1984년 9월 20일에 일반팀이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수원교구가 성서형제회 중심이 되어 1991년 화서동 성당(2개팀) 한일희 스테파노. 윤미령 루시아 부부 중심, 세류동성당 청년팀(연마티아. 김안나 중심), 매교동성당 베델팀(강의문 갈리스도 중심, 선종), 매교동성당 바오로마리아팀(김하서 하상바오로 중심) 병점성당 1개팀(김경자 미카엘라와 박승희 베로니카 중심), 안양 석수동성당 청년팀(류인표 아우스팅 중심), 의정부성당 1개팀(임월주 세실리아 중심), 대전교구 입장성당팀(정지풍 아킬레오 주임신부님. 박승희 베로니카 병점에서 입장으로 이사하며 중심)...
무엇보다도 큰 열매는 안산 원곡성당 견진성사교리를 제1차 성서생활화 세미나(2003년8월19일~9월23일)로 대신하면서 교리가 끝날 때 이원규 시메온 선생님은( 초대교회 때 베드로 사도는 단번에 3천명에게 세례 주신 것처럼) 3개 팀을 단번에 형성하여 성서형제회 선교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제3차 성서생활화세미나(2004년 10월 3일 ~ 11월 23일)을 영통 성요셉성당에서 개최하여 3개 팀을 형성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수원교구 북수동 일반팀을 통하여 김안나 수녀님, 김미카엘라 수녀님을 축복해주셨으며, 장대식 토마스모어(1991년 4월 14일 선서)형제 교구사제, 이보열 요한, 정춘섭 레지나 부부님과 함께 팀 회합할 때 옆에서 뛰놀던 이미카엘 형제가 교구 사제가 되어 봉헌된 삶을 살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2018년 5월호에 제3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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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
2018. 4. 1
요한 20, 1~9
♠ 복음 공부
* 1~2절 : 빈무덤 사화-주간 첫날은 일요일로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3일이 되는 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뵙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아직 어두울 때 서둘러 무덤을 찾아간다.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진 빈 무덤을 보고 그녀는 놀라고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려고 달음질쳐간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 맞았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을 보인다.
* 3~8절 : 빈무덤 확인 사화-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불신의 늪에서 나와 빈 무덤으로 달려간다. 살아나신 분의 표징을 찾으려고 애쓰는 교회의 초조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이 깊었던 요한이 더 빨리 도착하여 수의를 보았지만 들어가지 않고 베드로를 기다린다. 그는 사도들의 으뜸으로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 둘은 함께 들어가 아마포와 수건이 개켜져 있는 것을 보고 직감이 강한 요한은 즉시 알아본다. 주님의 표징이다. 주님을 누군가 꺼내간 것이 아니라, 그제야 “ 보고 믿었다” 부활과 믿음에 관한 요한 복음서만의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 9절 :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우리 생활의 여건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지 못했을 때 성경의 도움을 받아서 표징을 식별하고 사소한 일에서 부활하신 하느님을 발견해야 한다.
♠ 복음 요약 : 표징을 찾는 교회에도 마리아의 애정. 요한의 직관, 베드로의 느린 동작 등의 ‘다양성의 협력’이라는 보기가 이 일화에서 엿보인다. 난국에 처해 주님 현존의 표징들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각자가 본 단편적인 것들을 이야기 하고 그것들을 종합해서 그리스도교적 실존의 방향을 정립한다. 초대교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극성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무덤은 빈 채로 있고 아무도 그곳을 찾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부활 사건은 빈 무덤에서 시작되었다. 빈 무덤은 실패와 좌절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를 말한다.
♠ 대화 방향 : ① 부활절이다. 사순절이 언제였나 싶고, 부활이 기쁘지만은 않다. 이 부활이 내게 어떤 의미일까?
②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부활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고 말하는데 나는 정말 그렇게 느끼는가?
③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이런 생각들로 그저 빈 무덤 안에서 계속 있지는 않는가?
기도 안에서 무덤으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제자들처럼 바쁜 와중에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지 그 마음을 느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 문헌 : ▪ 요한복음 성서묵상 ( 한남 성서 연구소, 정태현 지음 / 성바오로의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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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18. 4. 8
요한 20, 19~31
♠ 복음 공부
-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발현 기사를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그리고 토마스가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과 다음 토마스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다. 두 경우는 빈무덤의 확인(1절 5-7절)과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14,20절), 그리고 소명의 부여(7,23절)로 이루어지며, 이 대목에서 예수님은 두려움에 쌓인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두 번이나 건네신 다음,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성령을 내려주시고 사죄권을 포함한 사목직을 부여하신다.
* 19~23절 : 예수님이 제자들 사이에 나타나신 장면이다. 발현일은 주간 첫날 일요일 주님의 날로 초대교회는 주간 첫 날에 빵을 떼어 나누려고 모였던(20.7-12 참조) 것과 관련하여 요한의 의도는 교회가 주일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의 부활과 토마스의 신앙고백을 신자들에게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공관복음은 ‘다시 살아나셨다’는 표현을 쓰지만,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어’라는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교회에 오시고, 교회의 역사 과정에 오셔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분을 만나는 상황이 재현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전하며, 고별담화(14장 17절) 에서 약속하신 참된 평화가 부활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주어져 세상에 전해지며,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성령이 주어진다.(7.38-39). 사도행전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이 강림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요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직접 제자들에게 준 것으로 되어 있다(22절). 그만큼 예수님, 성령은 제자들에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동시에 에제키엘서 36.25-27에서 예언된 인간의 죄의 용서에 관한 권한과 함께 주어진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하느님만이 할 수 있기에 유다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권한을 제자들, 곧 그리스도 공동체에 위임하셨다.
* 24~29절 : 토마스는 여덟째 날에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의 발현을 보지 못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표하고 새로운 시기, 곧 교회의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했던 제자였으나 그분의 부활하신 모습이 아니라 상처를 보고 만져보고 싶어 한다. 오로지 그는 십자가에 희생된 그 흔적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 스친 그 인류의 잊지 못할 사랑의 흔적을 통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을 한다. 이 일화는 ‘참된 행복’ 즉 ‘믿는 행복’과‘실천하는 행복’으로 믿고 실천하는 행복이다.(29절)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 표징에 눈뜨고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는 예수 부활의 능력을 믿게 된다면 행복하다는 말씀을 기록함으로써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 30~31절 : 요한복음서의 저자 목적이 간결하게 언급된다.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려고 복음서를 썼다는 것이며, 특히 저자 자신의 ‘믿음과 생명’을 언급하면서 복음서를 맺고 있다.
♠ 복음 요약 :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기까지 며칠은 제자들에게의 풍경은 후회와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문을 잠그고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상황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이 인사말은 재자들에게 유대인들이 박해할 수 있다는 두려움 가운데 하신 인사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당신의 깊은 상처가 남아있다. 이 상처를 보고 그들은 위로를 느끼게 된다. 사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받은 인간의 상징이었지만, 그 상처가 제자들에게 커다란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어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고 기뻐들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문이 잠겨있는 상태에서 오심은 죽었던 육체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암시한다. (1고린 15.35 참조) 다른 차원이기에 문이 잠겨 있지만, 원한다면 사랑의 눈으로 보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다. 동시에 과거의 체험은 예수님과의 친교는 한 차원 높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점에서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을 고백했으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아버지께서 받은 사명을 나누어주시고, 영을 불어 새롭게 하시며,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이것이 부활신앙이며, 부활이 현실인 것이다.
♠ 대화 방향 : 우리는 누구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느 때는 그 상처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하여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온갖 힘을 쓰고, 또 어느 때는 그 상처 앞에서 작아지고 무기력해지는 나약한 모습을, 한편 먹고 사는 문제에 지칠 대로 지친 고된 삶속에서도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려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들을 만날 때 위로를 받게 되고 그 안에서 평화를 나누게 됩니다. 나의 깊은 상처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저주나 좌절이 아닌 하느님을 체험하는 상처라면 분명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바라보고, 나의 상처 안에 부활하신 주님을 느낄 수 있는 은총을 청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끌어주신 상처는 무엇인지요? 아니면 상처를 회피하거나 냉담하려는 충동을 받았는지 또는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 참고 문헌 : ▪ 월간 영신수련 (2012년 4월호/이냐시오 영성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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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2018. 4. 15
요한 24, 35~48
♠ 복음 공부
- 복음서를 쓰게 된 경위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12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로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이후 제자들과 그들의 제자들인 교부들도 직접 기록할 필요하지 않았는데 예루살렘 성전파괴, 그리고 네로 황제 때에 베드로 사도의 순교로 인하여 주님을 직접 체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행하심과 말씀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를 느껴서 성령의 감화로 쓰되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쓰여 진 것이다. 4복음 중에 마태오복음서가 가장 많이 읽었기에 신약성서 가장 첫머리에 두었다고 한다. 마태오는 예수님을 직접 따라 다니던 12제자중의 하나이고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의 통역관이고 루카는 사도바오로의 협력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을 글자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그때당시 유다인들의 관습과 지식의 정도를 통해서 과연 복음사가와 그들의 공동체가 주님의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이기에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부활이고 그리고 예수탄생이다. 이들은 유다인들의 관습에 영향을 받았으니 그 당시 가장 중요한시기는 봄이 시작되는 시기이고 날이 점차 길어지기 시작한 시기로 본 것이고, 이들 시기를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본 것입니다. 성탄이 동지이후이고 부활이 춘분, 보름이 지난날로 삼은 것이 그런 까닭이지, 일부사람들이 주장하는 로마신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가 있다.
* 35~38절 : 예수 발현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곧 원혼이 출현한 것으로 곡해할세라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으로 루카는 인지 발현사화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육체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부활하신 분의 육체는 이승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육체를 ‘영광스러운 몸’이라 하였고, 장차 부활할 신도들의 육체를 ‘영적 몸’ 이라 하였다(1코린 15/44).
* 39~43절 : 예수께서 생선을 잡수셨다는 것도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뜻으로, 그 육체성을 또 한 번 강조한 것이다. 루카는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설교할 때 ‘우리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 그분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 44~46절 : 1코린 15/3-5에 수록된 선포문을 옮기다시피 한 것이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루카는 앞에서도 예언과 성취의 도식에 따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했거니와, 앞으로 사도들의 설교를 창작할 때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 47~48절 : 전에 예수님은 갈릴레아에서 시작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으나, 이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구원 사건을 선포할 것이다. 일찍이 세례자 요한도 ‘죄 사함을 위한 회개’를 선포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제 사도들도 ‘죄 사함을 위한 회개’를 선포하겠는데, 그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요소이다.
♠ 복음 요약 :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 주는 인지 발현사화, 제자들을 교육하여 고난과 부활의 증인들로 삼으시는 사명 발현사화로 짜여 있다. 여기 인기 발현사화는 요한과 닮았다. 그런가 하면 여기 예루살렘에서의 사명 발현사화는 갈릴래아에서의 사명 발현사화와 모든 민족에게 전도하라는 명령이 닮았다. 루카가 마태 28/16-18의 원형과 비슷한 갈릴래아에서의 사명 발현사화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그가 전승된 사화를 대폭 수정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루카의 사명 발현사화는 句句節節 그의 낱말과 문체와 사상으로 가득하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는 고난을 겪고 부활하셨다는 선포문, 성령의 약속, 제자들은 예수 사건의 증인들, 모든 민족에게 죄 사함을 위한 회개 선포...
♠ 대화 방향 :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복음의 끝 부분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내 이름으로는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가 나지 않고 부담마저 될 수도 있지만, 그분의 이름을 빌리면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참다운 부활의 삶을 계획하여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분도 출판사) ▪ 보득솔 (청년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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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 성소 주일
2018. 4. 22
요한 10, 11~18
♠ 복음 공부
* 11~13절 :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 놓는다. 하지만 삯꾼목자는 양들을 돌보기는 하지만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자기목숨을 보존하려고 양들이야 어찌되든지 관심 없고 오직 자기보존을 위해서 도망가 버린다. 삯꾼 목자는 오직 자기가 받은 삯에만 관심이 있다.
* 14~16절 : 착한 목자는 양들을 일일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시는 것과 같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는다.
* 17~18절 : 아무도 착한 목자의 목숨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빌라도와 유다인들도 예수님의 목숨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내어놓으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목숨을 얻는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 복음 요약 :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는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랑 때문에 사랑으로 죽음으로써 다시 목숨을 얻게 되는 사랑이 바로 목자가 지닌 영원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하느님으로 부터 온다. 따라서 아무도 착한 목자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 착한 목자가 내놓은 사랑이 이토록 강하고 크고 넓기에, 착한 목자의 돌봄 아래 있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의 사랑은 보편적이고 차별 없는 사랑이다. 따라서 착한 목자의 시선은 양우리 안에 있는 양들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비와 의로움의 손길에서 벗어나 길을 헤매고 소외된 양우리 밖의 양들 또한 하느님 사랑의 온돌방으로 데려오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것이 착한 목자의 마음이다. 편견도 차별 없는 사랑의 경계를 한없이 넓혀가는 것이 목자의 소명이다.
♠ 대화 방향 : 착한 목자를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는 착한 목자의 양답게 살아야 한다. 지난 주일에 아프리카 수단에서 부활을 축하하는 편지를 받았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오지 않았는데, 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사로 살아가시는 살레시오수도회 원선오 신부님과 공 수사님의 편지였다. 9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뇌경색 때문에 고국인 이탈리아로 치료하기 돌아갔지만 원선오신 부님의 마음은 수단에 있었으며 다시 가시기를 희망하시어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하시어 쓰신 편지이다. 이 편지를 받으면서 직감을 했다. 최근 수원교구의 한 사제가 이태석 신부님이 활동한 수단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 여성 봉사자의 미투 고백 때문에 밝혀지면서 아프리카 수단 후원자가 많이 줄어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픈 편지를 보고 숙연함을 느꼈다. 원선오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진정한 착한 목자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참고 문헌 : ▪ 작은 형제회 수사님의 묵상 ▪ 원선오 신부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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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 이민의 날
2018. 4. 29
요한 15, 1~8
♠ 복음 연구
* 1~2절 :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종종 불순종하여 타락한 이스라엘을 묘사할 때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본 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 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신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가지와 같은 제자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 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 3절 : ‘하느님 말씀’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 4절 : ‘내 안에’ 라는 말씀은 바오로 신학의 핵심 용어인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로마서 3장) 라는 말씀의 근간이 된다.
* 5절 :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은혜와 보호 안에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다. 반면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요한묵시 3장 20절) '우리 안에' 모시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그리고 우리가 하나가 됨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가 있다.
* 6절 :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자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 7절 : 4,5절을 비교해보면 '나' (그리스도) 라는 대명사가 '내 말'로 바뀌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제부터 '말씀'으로 우리들의 인격 속에 현존하실 것을 뜻한다.
* 8절 : '열매'는 '사랑'을 뜻한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사랑을 위시한 우리의 선행은 하느님께 영광이 된다. (마태오 5장 16절)
♠ 복음 요약 : 이 단락은 예수 안에 머물러야만 결실을 맺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포도나무와 가지들에 관한 예수의 비유 말과 사랑의 계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은 10절에 언급된 ‘계명들’이 12절에 사랑의 계명으로 설명됨으로써 서로 연결된다. 특히 예수의 이 비유의 말은 목자와 양들에 관한 비유와 비교될 수 있으나, 순수한 비유나 우화는 아니다. 의미를 전달하는 표상 또는 은유 및 비유와 예수의 말이 서로 얽혀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유말’이라고 별도로 칭한다. 그리고 예수의 비유 말에는 ‘머물다’와 ‘열매를 맺는다’란 표현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예수 안에 머무르라는 경고는 제자들과 제자들과의 이별 상황을 시사한다. 또한 제자들의 청을 들어주겠다는 약속,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에 관한 결속관계, 사랑의 계명 등은 앞서 살펴본 예수의 고별담화에서 이미 언급된 내용들이다.
따라서 내용적으로 고별담화와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15-16장의 내용을 추가 보도된 것으로 여긴다. 이에 비해서 13장31절에서 14장31절의 내용을 첫 번째 고별담화라 칭한다.
♠ 대화 방향 : ① 당신은 교회공동체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까? 무엇 때문이었고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② 당신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말씀을 간직하고 삶으로써 큰 난관을 이겨낸 경험을 이야기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200주년 성서주해서 ▪ 청년성서모임 묵상지 보득솔
▪ 소공동체를 위한 복음 해설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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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동계 묵상회 스케치 >
화려한 출발 천호에서...
FㆍB 서기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다가 뜸금 없이 그들에게 질문을 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
필자의 아버지가 계시는 대구에서 전주로 해서 수련회장소인 천호성지로 갔다. 그동안 수없이 수련회의 후기를 남겼건만, 그 기간 동안 저는 대충 참여하면서 그 상황을 남김없이 전달하려고 했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전주의 밝은 하늘은 그곳에 있는 분들에게 아무런 차별 없이 내리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는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잠시 전국조정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의 사람보고 있노라면 어떤 이에는 행복을 주지만, 하늘과 상관없이 수많은 차들이 엉켜서 서로 먼저 가려다 전부 가지 못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
서신성당에 들러서 성체조배한 후 주변의 맛집에서 주신 성찬을 들고 급히 성지에 예상보다 20분 늦게 도착한다.
서울팀, 안산팀... 전주의 일부 팀이 먼저 와 계셨다. 방 배정이후 전국조정봉사자가 일정을 소개하고 숨고르기 성체조배를 자유롭게 시작한다.
잠시 후, 천안에서 오신 정 아퀼레오(지풍) 신부님이 묵상회 시작미사를 봉헌하시고, 강론 중에서 50주년 주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잘 알려진 탕자이야기로 연결시킨다. 내가 그 안에 속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수녀님은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1박2일의 이야기꺼리가 될 만한 큰 보따리를 우리를 위해 서슴없이 풀어내셨지만 이를 정리할 필자에게는 큰 걱정거리로 다가온다.
주님께서 지혜를 주신다. 그 현장에서 받아들이는 몫은 각자의 간절한 만큼이라는 것을 깨달아주시기에 저는 그저 분위기만 전달하고자 한다.
오히려 수녀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간절함이 묻어 내리시는 것이고, 평소에 하신 말씀을 성지에서 듣게 되니 또 다른 목소리임을 느끼게 된다.
수녀님의 좋은 강의내용은 다른 기회를 통해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은 제 노트에 빼곡히 적힌 메모의 실타래가 엉켜있기 때문이다.
짧은 성체조배시간과 저녁시간을 가진 우리는 지난 천안에서 신부님의 ‘사랑의 산물’인 ‘사랑’을 표시한 설립50주년 주제가 오늘 저녁 담당자 별로 그 과제를 풀이해 보였다. 짧은 기간 그렇게 살았나 싶은 마음과 함께 여전히 제약 속에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6주제까지 한 분씩 나와서 발표한다.
주제발표자가 하고 나면 신부님이 보충설명하는 방법으로 하였다. 그 이후 주제에 대해서는 신부님이 간략하게 설명해주셨다.
시간은 흘러서 저녁 10시30분이 지나서야 못 다한 내용은 내일하시기로 하고, 잠시 이후 봉사자월례회의로 하루일과를 정리했다.
회의는 차기봉사자선출, 그리고 신임봉사자들의 조각이 이뤄졌다.
그동안 제가 느낀 가장 행복한 선출이 되었다. 차기봉사자와 부봉사자, 그리고 새로 시작되는 전국조정말씀봉사자를 도울 서기와 회계는 전혀 새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 다음날 아침은 밝았지만 무거운 몸을 추리지 못한 저는 아침기도와 가상칠언기도는 하지 못했다. 지난 번 여름피정에도 가상칠언을 위한 언덕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 후 전날에 못 다한 50주년 주제에 대해서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초대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성서말씀인용(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고 빵을 떼어 나누며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사도행전 2장 42절)과 우리의 공동체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조명해주셨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소상하게 말씀하신다. (마태오복음 산상설교 루카복음의 참된 행복 : 아나윔정신)
추가설명과 질의는 참석자들이 작성하여서 파견미사 때 봉헌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근거로 신부님과 봉사자들이 정리하여서 어떤 형태로든 밝혀지리라 본다.
가벼운 성체조배 이후 진행자가 마련해준 조별로 신부님의 강의를 주제로 코이노니아를 하였다. 중식이후 코이노니아 나눔을 전체 앞에서 발표하였고, 설립50주년준비위원장이 향후 일정을 설명하였다.
파견미사가 있었다. 미사 중에 지난 조정봉사자를 신부님이 축하해주셨고, 막 시작하는 조정봉사자와 봉사자들에게 안수해주셨다. 미사 후 파견식과 기념촬영을 마친 우리는 변모의 산에서 체험한 제자들과
주님이 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내려가셨듯이 우리들도 각자의 터전으로 되돌아갔다.
* 덧붙이는 글 : 전주로 돌아가는 차편에서 좋은 얘기를 나누었으며, 늦은 저녁에 서울 팜필로 형제님과 전화로 앞으로 고민해보자는 말씀을 들었다. 무거운 주제를 현명하신 지혜로 우리의 신앙을 이어가게 하신 신부님, 수녀님 이하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빌 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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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15대 ‘전국 조정 말씀선포자’ 임기를 마치며...
15대 전국 조정 말씀 선포자
이정혁 보니파시아
봉사 임기를 마치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은총을 눈앞에 두고도 영적으로 메말라 게으르고 완고하며 교만 때문에 하느님 초대에 눈을 감았던 저는 태생 소경이었습니다.
스스로 본다고 자부하면서 보지 않으려는 바리사이들처럼 핑계 대기에 바빴습니다
.
이렇게 부족한 제가 열정을 가질 수 있었음은 하느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창세 28,15)하고 야곱에게 하신 말씀을 매일 되새긴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복음 말씀은 재 창조였습니다.
내 생각이 바뀌고 내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살아갈 힘을 주는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2016.2.20.~2018.3.3.까지 15대 전국 조정 말씀 선포 봉사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힘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F.B.선배님, F.B.후배님, 봉사자들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으면서도 협조해주시고 하느님 사랑 보여주심으로 하나의 길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장벽에 부딪칠 때마다 하느님을 찾지 않았다면 2년의 봉사기간의 십자가는 무거운 짐이 되어 있었을 터인데, 십자가를 안고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의 성거산 큰모임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가까워지곤 했습니다.
수난과 고난을 안고 사셨던 회원들의 신앙 고백은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천호성지 동계 묵상회, 수류성당 하계 연수회 프로그램은 하느님과 함께 하신 회원들 협조로 주제가 완성되었습니다.
‘70.5.17. 최규업 바오로 창설 신부님의 교본은 예수님사랑 안에 머무는 삶의 지침이었으며, 09. 6. 17. F.B.인준해 주신 이병호 주교님의 사랑, 윤양호 지도신부님, 정지풍 신부님, 천호성지 남종기 신부님, 본당신부님, 에콰도르 선교지 가족, 예수그리스도 수녀원 가족, 김성자 수녀님, 2013년 10월 20일 9명의 에콰도르 선교지 방문,
전주
교구 주교관 미사
, 윤양호 신부님 치료중인 양평 국립교통재활병원의 월례회의, 정지풍 신부님 사제관 미사, 각 교구월례회의와 회원들의 환영의 미소, 안산 F.B회원 댁 식사 초대, 본당 코이노니아 구성을 통한 사랑의 발돋움은 하느님나라 순례의 길에서 멘토가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과 F.B.가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랑의 만남이고 휴식처였습니다.
2018. 2월 후 정지풍 신부님께서 함께해 주심은 안도의 시간이었으며, 게으름도 부려보고 싶을 정도로 여유로워졌습니다.
성서형제회원으로서의 시작은 예수님께 머무는 사랑의 작업이었고, 하느님 뜻을 실현하는 기쁨이었습니다.(교본 5쪽)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에 놓는 작업이었으며, 사랑의 일치를 향한 길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사랑하는 이들과의 친밀한 친교를 통하여 F.B.는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교본 6 쪽) F.B.의 코이노니아는 부활의 삶, 사랑의 삶을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인류 공동체와 교회, F.B.의 적은 이기심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절하는 교만이고, 사랑하지 않는 무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교본 3쪽)
이러한 생각들은 저의 F.B.생활에 서서히 녹아 들어왔나 봅니다
.
아나윔 정신, 겸손 가난 순명은 생명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일치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예배를 곧바로 배척하시며, 하느님께 바치는 선물은 이웃사랑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십니다.(강론집)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유다인들의 죄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시는 것을 환시에서 보았다.(에제 10.18)고 합니다.
주님께서 F.B.을 떠나시지 않도록 죄의 노예가 아닌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의 일치는 가장 중요하며 하느님 나라 완성의 길입니다.
사랑의 일치로 F.B.가 완성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 봉사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리며, 무한하신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15대 봉사자들과 함께 성인의 말씀으로 감사의 말씀 하느님께 올립니다.
‘주님 당신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은총은 영원토록 당신을 사랑하는 것, 제 마음에 그 사랑 되새기게 하소서.’ (성요한 마리아 비안네)
2018.3.4.(일) FB 동계 묵상회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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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윤 클레멘트(양호) 지도신부님 병문안 다녀와서...
전주 중산성당 프란치스코 F.B
조 세실리아 (혜경)
필리핀 피정 중에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2년이 지나서야 찾아뵙게 되었다. 새벽 본당공현성 신부님께서 클레멘스 신부님을 위한 미사를 집전 해주시고 잘 다녀오라는 배웅 속에 우리 네 명의 회원은 어서 뵙고자하는 바람으로 씽씽 운전하며 달렸다. 국립재활원식당에서 휠체어를 타고계신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쓰러지시기 전 건강한 몸이 아니어서 놀랐고,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중한 상태일거라 생각했는데, 휠체어도 타시고, 의사표시도 하시고, 아기처럼 투명한 피부에 소년 같은 순수하시고 맑으신 모습 이었다. 아직 말씀은 어둔하셨지만, 먼 길에서 찾아오고 은인들의 물심양면의 관심에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감동의 눈물이 맺혔다.
‘신부님께서는 얼마나 움직이시고 싶으실까? 생각대로 안 되니 얼마나 답답하시고 불편하실까?’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보살피시는 자매와 무엇보다도 신부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거룩한 향기에 애잔함의 눈물은 맺혔지만 경외심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의 그 해맑으신 모습은 하루아침에 순간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리라. 평생 동안 믿음 소망 사랑의 향주덕의 갈고 닦은 거룩하신 삶을 살아오신 터라 그 거룩한 성령의 빛이 외적으로 극도의 고통의 어두운 현실의 벽을 뚫고 이처럼 더욱 환하게 빛날 수 있고, 마음의 어둠을 안고 가는 나의 삶, 이웃의 삶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신부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신부님과 함께 간략히 F.B. 나눔도 하고, 필립비서 4장 4절의 말씀,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언제나 감사하고 간구하며 하느님께 소원을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멘 !” 을 신부님과 함께 바치고, 강복을 받은 후에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자리를 떴다.
왕복 6시간 운전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감사와 행복감으로 피곤한 줄 몰랐다. ( 2018년 3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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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8년 2월 및 FB묵상회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