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 대신 ‘재테크’에 푹 빠진 도서관
동학·서학개미가 바꿔놓은 새로운 풍경
한예나 기자 입력 2023.07.13. 03:00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남편이랑 집을 사니 마니 하다가 결국 안 샀는데 후회돼요”, “아들은 투자를 열심히 하는데, 제가 돈을 좀 알게 되면 아들과 얘깃거리가 생길 것 같아 왔어요.”
지난 4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구룡역 인근의 한 북카페. 20~60대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 북카페 한가운데 마련된 10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A4 5장짜리 프린트물과 펜, 메모지 등을 나눠 받은 사람들은 이날 돈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투자 스터디 모임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 개포도서관이 동네 책방과 연계해 운영하는 독서문화프로그램인 ‘돈이랑 친해지길 바라’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개포도서관은 올해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이같이 주 1회 진행하는 1개월짜리 무료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인근에 사는 공무원 서모(40)씨는 “주변에서 하나둘씩 재테크에 관심을 갖다 보니 나도 돈을 불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재테크 책 작가로 강사로 나선 진예지 작가는 “다음 주에는 재무 목표를 설정하고 소비 포트폴리오를 점검해보자”고 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국내 주식 투자하기)’ ‘서학개미운동(해외 주식 투자하기)’ 등이 일어나고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도서관의 풍경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 도서관은 인문 위주의 교양을 쌓고 마음의 양식을 다지는 곳이라는 인식이 컸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돈, 투자 등에 관심이 많아지는 분위기가 되면서 도서관도 이런 재테크 열풍을 따르고 있다. 이용자들의 선호에 따라 재테크 서적을 구비하고, 개포도서관처럼 이용자들에게 재테크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북 익산에 있는 금마도서관도 지난달 16일 ‘선한부자 프로젝트’를 주제로 재테크 강연을 열었다. 재테크 서적을 출간한 김유라 작가가 강사로 나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절약 비법과 투자 노하우를 설명해주는 자리였다. 도서관 관계자는 “작년부터 연 2회씩 재테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40~50대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까지 참여하고 싶다며 20명이 넘는 사람이 신청했다”고 했다. 경북에 있는 예천도서관도 지난 4월 ‘슬기로운 경제생활’을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김정연 관장은 “최근 금융과 투자, 재테크에 대한 높은 분위기를 적극 반영해 이번 특강을 준비했다”고 했다.
서점에서도 재테크 책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재테크책 판매량은 코로나 전인 2019년에 비해 86.5% 늘었다. 올해 판매량은 부동산 침체기 등을 거치면서 작년보다 다소 줄어들었지만, 코로나 전과 비교하면 확연한 증가세다.
이용재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이용자들의 요구 사항을 파악해 장서를 개발하는 것은 도서관의 당연한 책무”라면서도 “지역사회 주민들이 재테크 외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도서관의 이런 변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테크책 ‘보이콧’을 선언하는 도서관들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동작도서관은 지난 5월부터 주식·부동산·가상화폐 등 시세차익형 재테크 서적의 구입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동작도서관은 ‘희망도서 신청 제도’를 통해 이용자들이 원하는 책을 구매하고 있는데, 최근 재테크 서적 신청이 급격히 늘어난 탓이다. 최근 2년간 새로 구입하는 사회과학 도서 중 경제학 비율이 54%를 넘고, 그중 금융 도서 비율이 35%라고 한다.
그래픽=김성규
서울 노원평생학습관도 지난해 2월 희망도서 선정 제외 기준을 변경해 주식·부동산·파생상품 등 재테크 및 투기 관련 도서는 이용자가 1회에 1권만 신청할 수 있게끔 했다. 노원평생학습관 관계자는 “최근 재테크 도서 신청이 폭증해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며 “주식, 부동산, 코인 등 투자 상황이 날마다 계속 변하니 1회성으로 읽히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라고 했다.
또 2000년대 초중반 국내 주가 급등기에 ‘3억 만들기’ ‘10억 만들기’ 등의 구호가 난무하면서 투자 열풍이 불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증시가 급락하고 이후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면서 재테크 열풍이 시들해졌던 것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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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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