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윤식 명예교수 별세
60년간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 도서관 구석까지 발품 팔아 취재
김윤식은 평소 "나는 발바닥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국 근대문학사 현장을 취재해
1936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근대 문학 연구자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9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1973년 첫 저서 '한국 근대 문예비평사연구'를 펴낸 뒤 한국적 '근대성'이 지닌 의미를 문학 사상의
차원에서 평생 연구해 국문학계 거목(巨木)으로 우뚝 솟았다.
민족주의·계몽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가 뒤엉킨 근대성이 한국 문학에 투영된 역사를 치밀한 실증
작업을 거쳐 왕성한 필력으로 풀이했다. 이론서 '한국 근대 문학사상' '한국 근대 작가 논고'
'한국 근대 문학과 문학교육' 등을 펴냈고 김동인·이상·염상섭·김동리 등 주요 작가들 삶을 추적한
평전도 써냈다.
김윤식은 당대 문학 현장을 쉼 없이 조명한 비평가로도 활동해 팔봉비평상·김환태문학평론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단행본뿐 아니라 여러 문예지에 발표된 신작 단편까지 다 챙겨 읽으며
그때그때 평론을 썼다. 병석에 눕기 전까지도 올해 초 문예지들에 실린 단편을 품평했다.
지난 6월 발행된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평론이 그의 마지막 현장 비평이 됐다.
김윤식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전념해 개인 저서만 150여 권에 이른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라고 했다. 매일 200자 원고지 20장씩 썼다. "하루 20매란 내 건강 리듬 감각"이라고 했다.
제자들은 스승이 팔순을 맞자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김윤식 저서 특별전: 읽다 그리고 쓰다'를 열었다. 김윤식이 60년간 원고지 10만장이 넘도록 써서 출간한 개인 저서 147종을 비롯해 총 200여 종 책을 한자리에 모았다. 개막식에서 김윤식은 "누구든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 할 수 있지만, 나처럼 전시회를 여는 사람은 행운아"라고 밝혔다.
그날 그는 "지금껏 남의 글을 읽고 글을 썼는데 이제 내 글을 쓰고 싶다. 그게 시가 될지,
소설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끝내 창작은 내놓지 않았다.
유족으로 부인 가정혜(83)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8일 7시. (02)2072-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