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9월11일 일요일 새벽
일어나니 새벽3시 반이었다. 12시가 지났으니 어제다. 어제가 추석, 한가위였다. 명절은 고된 하루가된다. 어젯밤, 아들네가 떠난후 씁쓰레할 틈도없이 뒷정리로 몸이 천근 만근이되었다. 평소보다 조금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다리와 허리에 전해지는 묵직한 피로도에 잠들기가 쉽지 않았으나 어느순간 기억이 사라졌다 일어나니 아직 깜깜한 새벽인 것이다. 어제 언제 잠들었을까? 9시 반, 열시? 기억에없다. 그래도 5시간이상은 실신했던것 같다. 여태 명절음식과 부모님 제삿상만큼은 대구의 제수씨가 해 왔었다. 그러나 지난 설 부터는 오지않았다. 지난설은 "코로나" 이유로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명절과 부모님제사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는다는 뜻을 아들 정원이와 같이온 동생의 입을통해 들었다. 앞으로는 명절과 제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통보다. 많은 제사가 있지만 나 혼자서 젯상을 차려왔었다. 그나마 명절과 부모님 젯사상만큼은 제수씨가 준비해 왔었다. 물론 제삿상 비용은 모자람없이 내가 보냈다. 허나 그마저도 못하겠다는 것이다. 어쩔수 없는 일이다. 강제할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오래전 부터 젯상준비로 불평불만이 많다는 예기를 많이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척하고 넘어왔었다. 상차림으로 불만이 잔뜩묻은 젯상이 그리 편치는 않았었다. 이제는 아예 손절로 통보해온 것이다. 그래도 동생은, 보름전 부모님 기일에 젯상에 올릴 과일 몇가지를 준비해왔고 어제는 부침개와 과일을 준비해 왔다. 역시 30년 이상 이집에서 가족으로 같이 산 며느리는 남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꼭 그렇게만 생각 할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랄때의 환경과 교육수준은, 사람됨됨이로 만들어지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태생적 요인들이 인간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에의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는 기성세대에게는 조금은 눈살 찌푸리게하는 언어와 행동들이 있다. 이것이 시대적상황의 전환점이 될수 있는지는 잘모른다. 급작스런 변화는 눈에띄이지만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은 감지하기 어렵다. 일부의 기성세대들은 새바람이라는 잘못된 편견으로 핑계아닌 핑계를 남용하면서 대대로 이어져오는 풍습과 문화를 몰지각한 일부의 사람들에의해 경시당하고 배척되고 있는 것이다. 궂은 일은 마다하고, 풍부해진 물질만능주의는 쾌락과 즉흥적이고 단순한 만족감에 심취하면서 약물에 의존하는 한심한 젊은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은근슬쩍 그쪽으로 발을 내딛어보는 기성세대 또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있을 것이다. 정신이 황폐해지고 망가지는 사회는 활력이 상실되고 초점잃은 동공은 목표를 잊어버리고 황량한 사막에 자신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게으르고 향락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자화상은 불을보듯 뻔할 것이다.
각설하고
무엇이 어찌되었건 나의 정신과 몸의 피로도는 높아질 것이고 나이는 한계점으로 치닫고 있는데 언제까지가될지 알수는 없지만 그 순간은 그리 오래지 않을것 같다.
아무쪼록 누구에게도 귀찮음을 주지않고 편안하게 가야할 길을 갔으면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을뿐이다.
이 글은 범방산 꼭대기에서 마무리한다.
집에서 걸어 한시간, 지금 정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