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영(羅運榮 1922. 3. 1. 서울-1993. 10. 21. 서울)
나운영은 당시의 한국적 환경에서는 이른 나이에 음악과 접한다, 그는 5세 때에(1927) 부친에게 양금 교습을 받았다. 그러니까 시작은 국악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곧 양악에 심취한다. 그는 베토벤 음악 등 많은 서양음악을 들으면서 예비 음악가가 되어갔다.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신춘 현상에서 가곡 『가려나』(김안서 작시)로 작곡 부분에 당선되었다. 이 때 심사를 맡은 사람이 홍난파였다. 1940년에 일본 동경제국 고등음악학교 본과에 입학하여 작곡을 공부했다. 1942년에 본과를 졸업한 후, 연이어 같은 학교의 연구과에 입학하였다. 그의 스승은 모로이 자부로(諸井三郞)였다. 그의 스승은 무조건 서양음악을 추종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적 음악을 세울 것을 강조하였다. 나운영의 민족적 음악론은 그의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바 크다.
나운영은 한국에 돌아와 1945년 중앙중학교 교사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에 성악가 유경손과 결혼하였다. 이 부부는 같은 해에 중앙여자 전문학교 전임교수로 취임하였다. 그는 1946년에 민족음악문화 연구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또한 1948년에 서울 성남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임명되어 30년간 활동하였다. 1952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전임강사, 1954년에는 덕성여자대학 교수로, 1962-76년까지 연세대학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교수하였다. 1972-93년 한국찬송가 위원회 음악분과 위원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제주도 민요의 수집을 위해 1973년에는 한국 민속음악 박물관을 제주도에 창설하였다. 1974년에는 미국 포틀랜드(Portland) 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1975년에 한국 찬송가학회 회장으로 1977년에는 한국 찬송가 통일 위원회 음악전문위원으로 일하였다. 1980년-93년 운경교회(현 호산나교회) 장로로 임직하였다. 1981-82에는 세종대학교 교수 겸 음악학과장으로 82년-85년에는 전남대학교 강사, 교수, 예술학과장으로 85-93년에는 목원대학교 음악학부장으로 있다가 퇴직하였다. 그는 1993년 서거 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나운영은 당대의 작곡가로서는 작품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실험정신도 대단히 강한 편이다. 그는 13편의 교향곡을 썼다. 1번 『Korean War}(1958), 2번 『1961』(1962), 3번(1963), 4번(1964), 5번(1965, 12음기법으로 시도된 작품, 66년에 수정됨), 6번 『탐라』(1966), 7번 『The Bible』(1968), 8번 『1967』(1968), 11번 심포닉 밴드를 위한 작품(1969), 10번 『The Creation』(1972), 12번 『남과 북』(1974), 13번 『아리랑』(1974). 그리고 14번으로 기획된 것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나운영의 교향곡은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작곡되었으며, 민족적인 표제, 성서적인 표제, 연도의 표제 등이 달려 있다. 음악기법적으로는 한국 전통음악으로부터 끌어온 음악어법과 현대적인 기법 등이 혼재되어 있다. 그는 또한 3개의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No.1, 2, 3.) 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Violin Concerto No. 1, 2), 6개의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 No.1, 전6곡)을 썼다. 3개의 오페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에밀레종』, 『바보온달』을 썼으나 무대에 올려진 일은 없었다. 실내악곡 피아노 독주6, 바이올린 산조1, 첼로 독주곡2 등을 썼다. 그는 가곡 『가려나』와 『달밤』과 같은 초기의 대중적 가곡을 쓰기도 하였으나 이미 1950년에『접동새』와 같은, 서양식 가곡을 전통음악적으로 소화해낸 예술가곡을 쓰기도 했다. 이 가곡은 계면조 성격의 선율을 중심으로 서양적 삼화음을 크게 억제하고, 4도, 5도, 2도 등의 음정을 자주 드러낸다. 반주도 나름의 독자적 선율을 갖기도 하며, 간혹 많게 간혹 적게 붙여지는 첨가적 음정들로 꾸며져 있다. 그의 가곡들 중에는 아직 적절한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한국어와 음악의 적절한 결합을 중요시하면서도 음악적인 독창성을 잃지 않는 그의 가곡은 한국 가곡에서 흔치 않게 보는 깊이를 가졌다. 또한 그의 교회음악 중 『부활절 칸타타』(1956)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판소리 음악을 교회합창음악에 접목시킨 이 곡은 예수의 수난을 그리는 가사의 내용과 "서러운" 한국적 소리가 잘 어울린다. 화성 역시 조성적인 면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완전5도에 단2도가 첨가되는 파격성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200여곡의 동요를 작곡하였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 가장 많은 수량을 남긴 것은 찬송가로서 총 1105여곡에 달한다. 이는 1979년부터 시작하여 그가 죽은 해인 1993년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는 그가 찬불가를 썼다는 비난을 받은 후, 이를 회개하는 의미로 쓴 것들이다. 그는 이 찬송가들을 통해 한국화성이라는 것을 확립하는데, 여기에는 화성적인 문제도 들어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대위법적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가 한국적인 것에 몰두하고 현대적인 것을 이차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을 대략 1950년대 중반쯤이다. 이 때에 그는 "선토착화 후 현대화"(先土着化 後現代化)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구호화했다.
나운영은 초기에 서양의 전통적 삼화음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생의 말기까지 이런 음악을 써왔다. 특히 동요나 찬송가 분야에서 이런 음악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음악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런 음악을 썼던 것은 주문자나 연주할 사람을 위한 양보였다. 그의 중심 생각은 우선 서양음악에 "토착적" 내용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이런 음악이 어느 정도 현대성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운영의 삼화음 음악에는 특이한 점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단순한 삼화음으로 꾸며진 {시편 23편}은 "물구나무 삼화음"으로 되어 있다. 이는 화음의 바탕음이 맨 밑에 있는 음이 아니라, 맨 위의 선율에서 사용하는 음이다(참조: 홍정수, 나운영의 교회음악이 가진 기법적 특징들). 이러한 면들은 조성적 음악의 사용에서도 그냥 관습적인 길을 가지 않았던 그의 생각이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의 음악에는 20세기 서양음악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복조성(예: Violin concerto Nr.1. 1965), 드뷔시적인 4도와 5도 병행 그리고 온음음계 사용(예: 2번 심포니), 12음기법(예: 피아노 트리오 1955) 스크리야빈 식의 음악과 색깔의 결합(예: 7번 심포니), 우연음악(예: 7번 심포니), 클러스터(예: 10번 심포니)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법들은 그의 음악에서 중심적 무게를 지녔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기법들은 그에게서 음악작품 한 곡의 전체를 관통하는 일은 드물고, 부분적인 현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현상이란 여러 악장 중 한 악장 정도를 그렇게 작곡한다든지, 아니면 한 악장 중에서도 어느 부분만 그렇게 작곡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예외는 있다. 즉 {피아노 트리오}(1955)는 전 악장이 12음기법으로 착상되었다. 그런데 이 곡은 원래 서양에서 착상된 방식의 12음기법의 지향점과는 내용적으로 차이가 난다. 전곡을 관통하는 옥타브 중복,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4도병행 선율,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 강조되는 조성적 부분(솔라도미) 등이 그러한 요소들이다. 이렇게 오음음계의 일부 음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현대적 서양 기법 가운데에서도 "한국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이 "한국적인 것"은 "현대적인 것"과 상호 충돌관계에 있는데도 이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운영은 서양의 새로운 기법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변형적 수용은 다른 모든 기법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나운영에게서 이런 당대의 서양음악적 기법들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수용되고 체화(體化)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나운영은 20세기 서양음악의 모더니즘적 정신, 즉 "새로운 것" 자체를 가장 높은 가치로 삼는 일과 무관하다. 그는 20세기 서양음악 기법들을 자신의 음악과 적응되는 지를 살피기 위해 20세기 서양음악 기법들을 사용했다고 판단된다. 즉 그는 기법들의 융화(또는 조화)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관점의 차이가 나운영을 한국의 작곡가이게 한다.
그에게 더 체화된 음악은 "토착적"인 성격의 것이다. 토착적인 음악은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 장단, 악기의 음색, 각 장르들의 형식들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본래의 것 그대로 그의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는 한국의 전통음악의 요소들을 변형시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선율에 쓰이는 어떤 전통음악적 음계의 음들 중 일부를 탈락시키거나 변형시킨다. 그럼에도 그의 선율에는 전통적 한국음악의 요소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어서 전통음악과의 관련성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리듬 부분에서도 전통적 장단의 어느 부분을 빼거나 더하는 방식으로 변형시킨다. 선율과 리듬이 비교적 전통음악적 원형과의 관계를 보일 때에는 화성 부분이 "현대적"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자주 있다. 즉 더 긴장도가 높은 음정을 첨가시킨다. 그의 한국화성에는 5도와 4도의 음정이 -단독으로 또는 함께- 병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3도, 2도 등이 나타난다. 이 때에 소프라노와 앨토가 상행하면 테너와 베이스는 하행하는, 소프라노와 앨토가 하행하면 테너와 베이스는 상행한다. 이런 구조는 선율이 화성과 함께 각 성부의 진행까지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런 진행은 기본적인 틀이고, 이 틀은 작곡하는 과정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형된다. 나운영의 한국화성에는 3도(그리고 삼화음)가 쓰이지만, 곡의 무게가 실리는 주요 부분인 시작과 종지 부분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주로 5도가 사용된다. 이는 그가 서양의 초기적 화성음악으로 되돌아가고자 한 때문이 아니라, 서양의 삼화음을 극복하고자 한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전통적 음악적 성격이 강한 음악에서는 국악의 시김새적 요소들을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미끌어지는 소리(글리싼도), 긴 음에 짧은 장식적 음(들)이 붙는 것, 조성적 음악에서는 정해진 음계음을 벗어나는 것 등이다.
나운영의 음악을 음향적으로 성격지어 보자면 드뷔시와 바르톡의 사이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자주 들리는 5도와 4도의 병행선율, 그리고 온음음계적 병행선율 등에서 드뷔시와 가까운 거리를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강한 민속적 리듬과 긴장도 높은 첨가음들이 결합된 화성은 바르톡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나운영은 드뷔시도 바르톡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적 원재료를 한국의 전통음악에서 가져 오기 때문이다.
나운영은 많은 저서도 남겼다. 이 책들은 그가 강단에서 가르치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쓰고 수정한 것들이다. 『대학음악통론』(1979), 『대위법』(1981), 『합창편곡법』(1972), 『작곡법』(1963), 『연주법원론』(1982), 『화성학』(1979), 『악식론』(1978), 『관현악법』(1981), 『음악분석법』(1982), 『현대화성론』(1982) 등이 그것이다. 또한 『주제와 변주』(1964), 『독백과 대화』(1970), 『스타일과 아이디어』(197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1985)와 같은 수필집도 냈다.
참고문헌:
가.나운영 전집 1-5 운경음악출판사
1.나운영 가곡집(운경음악출판사, 1995)
2.나운영 성가곡집(운경음악출판사,1996)
3.나운영 칸타타집(운경음악출판사,1998)
4.나운영 동요곡집(1) (운경음악출판사,1999)
5.나운영 동요곡집(2) (운경음악출판사,2000)
가곡집
아흔아홉양(한국 현대음악학회, 1952)
다윗의 노래(한국 현대음악학회, 1954)
나운영 가곡선(한국 음악문화사, 1967)
성가곡집
골고다의 언덕길(악원사 1969)
한국 성가곡집 (악원사, 1971)
성가합창곡집 제1집(교회음악사, 1976)
나운영 데스칸트 100곡집(에덴문화사, 1976)
성가합창곡집 제2집(교회음악사, 1979)
칸타타 <나의 주 나의 하나님>(한국 기독교교육연구원, 1980)
한국찬송가 100곡선 제1집(기독교음악사, 1984)
한국찬송가 100곡선 제2집(교회음악사, 1986)
크리스마스 칸타타(기독교음악사, 1989)
부활절 칸타타(교회음악사, 1991)
한국찬송가 100곡선 제3집(호산나음악사, 1991)
동요곡집
나운영 유경손 동요 135곡집(보육사, 1980)
동요 100곡선(세광음악출판사, 1991)
기타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연세대학교 80주년 기념논문집 인문학편 1965
피아노협주곡 제3번(예당출판사, 1993)
8명의 연주자를 위한 시나위(예당출판사, 1993)
심포니
Symphony No.3. Yonsei University Press 1972.
Symphony No.9 Yonsei University Press 1971
Symphony No.10 Yonsei University Press 1975
논문
{음악과 민족}의 나운영 특집:
제9호(1995) 조선우, 「나운영의 삶과 작품」/ 이충자, 나운영 가곡 작품의 유형별 분석/ 이문승, 나운영의 음악기법 연구- 교회음악을 중심으로/ 안일웅, 나운영의 실내음악 작품 분석.
제10호(1996): 홍정수, 나운영의 음악관- 그의 민족음악론을 중심으로/ 홍정수, 나운영의 교회음악이 가진 기법적 특징들.
제11호(1996): 이건용, 나운영의 화성이론에 관한 연구- 그의 이론서를 중심으로.
홍정수: 양악작곡과 시김새 ↗이강숙회갑기념문집 {음악이 있는 마을} 민음사 1996. 9. 20. 817-846쪽.